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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86)화 (186/190)

185화 – 이거 보이스피싱이냐?

친구들과 따로 떨어져 행동하던 은새는 볼일을 마치고 맡겨 둔 마수들을 보기 위해 길드 빌딩으로 오던 중이었다.

그녀도 여러 사건들로 인해 거리 분위기가 뒤숭숭해진 걸 피부로 느끼고 있었다.

‘큰일이네…….’

사람들은 언제 헌터가 폭주할지 몰라 사방을 경계했고 헌터들은 지은 죄도 없는데 범죄자 취급을 당해 억울해했다.

세간에는 시국이 뒤숭숭한 틈을 타 ‘휴대용 이능 측정기’라는 말도 안 되는 비싼 쓰레기가 등장하기도 했다.

당연히 헌터들이 정밀 측정하는 기계와 비교도 할 수 없는 짝퉁이었으나, 그런 거라도 시민들은 불안감에 휩싸여 들고 다니다가 시비가 붙는 일이 생겼다.

지금도 멀지 않은 사거리에서 일반인과 헌터가 싸움이 붙은 걸 주변 사람들이 말리고 있었다.

그 광경을 안타깝게 지켜보던 은새가 헌협에서 출동한 걸 보고 걸음을 옮겼을 때였다.

“저기요.”

“네?”

“이거 떨어트리셨어요. 그럼 저는 이만.”

“감사합니다. 어…… 근데 이거 제 것이 아닌데요?”

은새가 어리둥절하게 받아 든 물건을 확인하고 고개를 들었을 때 이미 물건을 건네준 이는 사라지고 없었다.

기감을 펼쳐 추적할 수도 있었지만 은새는 그렇게 하지 않고 작은 봉투에 든 내용물을 먼저 확인했다.

[사람들을 살리고 싶으면 아래 장소로 유은새 헌터 혼자서 와 주세요. 절대 다른 사람한테 알리면 안 됩니다.]

잠깐 놀랐던 은새는 고급 용지에 금박으로 그려진 화려한 나비 문양을 매만졌다. 이는 신종 약물 ‘나비’를 의미하는 게 분명했다.

“흐음.”

다시 초대장을 봉투에 넣어 손바닥 위로 톡톡 두드리던 은새는 잘 챙겨서 길드 빌딩으로 왔다.

그리고 현재.

은새가 내민 초대장을 본 친구들이 어이없다는 얼굴을 했다.

“이거…… 우리한테 보여 줘도 돼? 여기 다른 사람한테 말하지 말라고 써 있잖아?”

“뭐 어때. 이거 준 사람들이 확인할 것도 아닌데.”

“그렇긴 한데.”

천연덕스러운 대답에 친구들이 혼란스러워했다.

이게…… 맞나? 이래도 돼?

“그리고 다른 사람한테 알렸을 때 어떻게 할 거라고 안 쓰여 있는걸?”

“유은새가 논리적인 말을 하니까 이상한데? 너 양설 헌터가 변용한 가짜 유은새 아니야?”

“하지 마.”

볼을 쭉쭉 늘리는 미리내의 손길을 은새가 웃으면서 피했다.

일반적인 경우에 비추어 봤을 때 이런 협박 편지를 받으면 숨기다가 나중에 사달이 나곤 하는데 은새는 당당히 공개했다.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우리가 가슴을 쓸어내렸다.

“남은 천창현 팀이 보낸 건 확실한 듯하고. 이걸 왜 은새한테 보낸 거지?”

“나는 왠지 이유를 알 것 같은데. 만약에 예전의 유은새라면 이런 초대장을 받았을 때 어떻게 했을 것 같아?”

“그야…….”

유하가 던진 화두에 친구들이 말끝을 흐렸다.

드래곤 부자를 만나고 지금은 많이 달라졌지만 예전의 은새는 주변 사람들에게 피해 끼치는 걸 가장 싫어했다.

SS급이니 본인 실력에 자신도 있고, 친구들을 번거롭게 할까 봐 혼자 가서 해결하고 오려고 했을 터였다.

이제 사랑하는 사람도 생기고 –드래곤이지만- 혼자가 아니게 됐으니 몸을 사린다는 표현은 그렇고 스스로의 안전을 한 번 더 생각하게 됐다는 게 정확했다.

“근데 은새를 붙잡아서 천창현이랑 인질 교환을 요구하려는 거면 너무 복잡하게 돌아가는 거 아니야? 우리에게 직접 협박해도 됐을 텐데.”

“어쩌면 은새를 불러내는 것 자체가 목적이라면?”

생각에 잠겨 있던 미리내가 문득 의견을 제시하자 친구들이 의아하다는 시선을 보냈다.

“예전에 천창현이 벨키오르 님과 별이를 직접 본 적이 있다고 했지? 왜, 처음 각성석을 얻은 C급 던전에서.”

“그랬었어.”

은새도 기억하고 있었다. 지형이 바다인 던전으로 마수들과 함께 휴가를 갔었는데 그곳에서 은신한 상태의 천창현을 마주쳤다.

“천창현이 만일 벨키오르 님이 인외라는 걸 눈치챘고, 그래서 은새를 경계하는 거라면?”

“뭐어? 그걸 어떻게 알아?”

“모르지. 하지만 단서는 제법 있었어. 천창현은 강림석을 사용해 세계의 포식자를 이 땅에 불러들일 생각을 하고 있어. 벨키오르 님이 방해 요소가 될지도 모른다고 판단했다면, 은새를 노리지 않을까?”

언노운이 ‘시작의 드래곤’을 언급하면서 대중에게 널리 알려진 상태였다. 게다가 하야트를 처단하기 위해 벨키오르가 직접 나서기도 했다.

은새의 옆에 있는 남자에 대해서 알아보려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었을 것이다. 성가신 일을 피하려 할 뿐, 벨키오르는 정체를 감추는 데 그리 진심을 보이지 않았다.

천창현은 머리가 비상하게 굴러가는 자이니 여러 단서를 취합해 벨키오르의 정체를 알아챘을 가능성이 있었다.

“어디까지나 추측이야. 하지만 염두에 둬서 나쁠 것은 없지.”

“유은새, 너는 인생이 왜 그렇게 박복하냐?”

“박복한지까지는 모르겠는데.”

“나는 속 터져 죽겠는데 웃음이 나와? 어쭈, 웃음이 나와?”

장난스러운 타박을 한 우리가 테이블 위에 놓인 초대장을 가리켰다.

“아무튼 그래서 이거 어떡할 거야?”

“가야지.”

“뭐? 여기를 왜 가?”

“오라고 했으니까. 혹시 모르잖아, 약물로 인한 피해를 줄일 방법이 있을지.”

은새는 위험을 무릅쓰는 성격은 아니었지만 사람들을 살릴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시도는 해 보는 게 옳다고 생각했다.

황당해하는 친구들을 보며 그녀가 가볍게 웃었다.

“갈 거야.”

***

초대장에 적힌 날짜가 되었을 때 친구들은 안절부절못하며 은새의 주위를 맴돌았다. 정작 적의 소굴로 가는 은새는 무덤덤한데 그들이 더 유난이었다.

“유은새, 역시 우리가 몰래 따라갈까? 너도 사실은 걱정되지? 솔직히 말해도 됨.”

“맞아. 너 SS급인 거 세상 사람들 다 아는데 설마 아무 생각 없이 불렀겠어? 쪽수로 몰아붙이면 너도 별수 없다고.”

“천창현이 거느리고 있는 불법 헌터 중에 위험한 사람이 제법 있다는데…… 은새야, 역시 다시 생각해 보자.”

SS급을 걱정하는 S급들의 모습은 가히 코미디였다. 

은새가 홀로 작전에 투입된 게 이번이 처음도 아닌데, 그리고 누구보다 훌륭하게 대처할 걸 잘 아는데 왜 이리 마음을 놓을 수 없는지 모를 일이었다.

그때 솔이 벌떡 일어나 홍염으로 만들어 낸 창을 쥐고 문으로 걸어갔다.

“아니다. 지금 내가 가서 다 쳐부수고 올게.”

“그래, 차라리 솔이 네가 가라.”

“아, 왜 나는 안 말리는데!”

솔이 씩씩거리며 다시 돌아와 자리에 앉자, 은새와 친구들이 키득거렸다.

“괜찮아. 나 절대 안 져.”

“아오, 무슨 고집이 쇠심줄보다 질기냐. 네 마음대로 해!”

앵돌아져서 솔이 몸을 휙 돌렸다. 미안해진 은새가 그녀를 불렀으나 대답하지 않았다.

미리내가 다가가 은새의 복장을 살폈다.

“은새야, 인이어 잘 착용했지?”

“응.”

“그래. 얘기했던 대로만 하고, 계속 상황 보고해 줘.”

“알겠어.”

그들도 아무런 계획 없이 은새를 보내는 게 아니었다.

그런데 우리의 핸드폰으로 띠링, 문자 수신음이 들렸다. 화면에 뜬 미리보기 메시지를 본 우리가 다급하게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이거 뭐야? 얘들아, 이것 좀 봐.”

“왜?”

다가온 친구들에게 우리가 핸드폰을 내밀었다.

[유은새 헌터를 데리고 있으니 인질 교환하시죠.]

그리고 뒤이어 도착한 사진 한 장.

조명 하나만 켜진 어두운 밀실, 이능 구속구에 묶인 채 정신을 잃고 쓰러져 있는 은새가 보였다.

서로를 쳐다보던 친구들이 은새를 바라봤다.

“뭐야. 이거 보이스피싱이냐?”

“유은새, 너 납치당했어? 언제?”

“납치는 무슨. 조작 아니야?”

“금방 들킬 텐데 조작을 왜 해.”

사진을 면밀하게 살피던 은새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 사람, 양설 헌터잖아?”

***

약국이 문을 닫자 양설과 왕호연은 조인준에게서 알아낸 블랙의 아지트 주변을 어슬렁거렸다.

천창현은 붙잡혔지만 ‘나비’에 관한 조사가 안 끝났기에 그들은 아직 그곳을 떠나지 못하고 있었다.

“저기에 틀어박혀서 무슨 작당질 중이야.”

편의점에서 사 온 빵을 뜯으며 양설이 투덜거렸다.

이아람을 포함한 이들은 일이 틀어졌다는 걸 알자마자 약국을 닫고 아지트에서 한 발짝도 나오지 않았다.

며칠 전 오하나가 잠깐 외출했다 돌아온 게 다였다.

“바로 천창현을 구하겠다고 나설 줄 알았는데.”

“저들 사이가 생각보다 끈끈하지 않거나 아니면 천창현이 시킨 거겠지.”

바깥 분위기를 보니 후자가 분명했다.

무료하게 시간을 죽이며 양설이 하품을 쩍쩍 하고 있는데 멀리서부터 다소 신경질적인 발걸음 소리가 들렸다.

등에 경호원을 매달고 수상하리만치 꽁꽁 얼굴을 싸매고 나타난 남자.

양설과 왕호연이 벽 뒤로 바로 몸을 숨겼다.

“헌터야?”

“뒤에 있는 사람은. 앞에는…… 일반인인데?”

아지트의 문 앞에 이르렀을 때 남자가 분장을 풀었다. 두 사람은 그가 누군지 바로 알아보았다.

“저거 그 인간이다. 유은새 헌터랑 싸운 재벌가 망나니.”

최인호. 왕호연이 작게 그 이름을 중얼거렸다.

이전 일 때문에 은새에 대해 다 조사했기에 그에 대해서도 잘 알고 있었다.

“저 인간이 여길 왜 왔지?”

“쉿.”

왕호연이 양설을 조용히 시킨 것과 동시에 짜증 섞인 욕설이 들렸다.

“빌어먹을! 내가 이 더러운 곳까지 찾아오게 만들다니.”

최인호는 지금 이 순간에도 귓가에서 들리는 이명 때문에 머리가 어질어질했다.

‘나비’의 중독성은 최인호가 예상했던 것보다 강력했다.

이명도 이명이지만 시시때때로 치미는 갈증과 불면증 때문에 생활이 제대로 안 될 정도였다.

약을 구하다가 도저히 못 구해 결국 여기까지 오게 되었다.

최인호가 겁도 없이 아지트의 문을 발로 걷어찼다.

“야, 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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