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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84)화 (184/190)

183화 – 검은 강

요 며칠 조인준은 꿈이라도 꾸고 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안개가 낀 것처럼 정신이 몽롱했다.

밥을 먹으면서도 걸어 다니면서도 몸을 움직인다는 자각은 있는데 현실감이 없었다. 발이 땅에서 1센티미터쯤 떨어진 듯한 감각.

“하나 씨, 어…….”

“뭔데? 왜 말을 하다 말아.”

돌아본 오하나가 뚱한 얼굴을 했다. 그녀는 대개 그런 표정이었기에 상처받고 할 게 없었다.

오하나의 얼굴을 보면 뭔가 떠오를 것 같은데 막상 생각이 나지 않았다

“음, 저한테 하실 말씀 없으세요?”

“내가? 부른 사람은 너잖아.”

“그, 그러게요. 하하…….”

“실없기는. 너 진짜 어디 아픈 거 아니야? 힐러가 정신 똑바로 차리고 다녀야지. 자가 치유해라.”

“아픈 건 아니지만, 네. 그럴게요.”

그런 조인준을 천창현이 가느스름해진 눈으로 바라보다 몸을 돌렸다.

“다녀온다.”

“그래요~ 설마 그럴 리 없겠지만 다치지 말고요.”

“천창현 헌터, 당신 어깨에 우리 목숨도 걸려 있는 거 잊지 마요.”

“다녀오세요.”

천창현은 한서리가 입원해 있는 병원으로 갔다.

보통의 경우였다면 진즉 퇴원했겠지만 4흉수의 신기로 부상당한 몸은 쉽게 회복되지 않아 그녀는 아직 치료받는 중이었다.

이매가 죽은 뒤 줄곧 그녀가 스스로를 보살피지 않은 탓도 있었다.

병원에 침투한 천창현은 기척을 죽이고 주위를 살폈다. 한서리의 병실은 10층.

알아본바 한서리를 지키고 있는 도천 길드원은 두 명이었다. 천창현이 다시 그녀를 노리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는지 적은 수였다.

‘그때 한우리를 불러온 자가 누군지 알아내야 한다.’

천창현은 한우리가 했던 말을 미심쩍게 여기고 있었다. 병원복 차림으로 나타난 그는 ‘그녀를 구해 달라는 부탁을 받았다’라고 했다.

한서리와 한우리는 이매를 끼지 않고서는 직접적인 친분이 없었다.

비록 갑화 길드와 도천 길드가 협력 관계이기는 해도 밤늦은 시간, 회복되지 않은 몸을 이끌고 구하러 올 사이가 아니라는 말이었다.

그렇다면 한우리에게 한서리의 위기를 전한 인물은 누구인가?

최소한 한서리를 계속 지켜보고 있었고 천창현이 하려는 일을 방해하려는 자가 분명했다.

또, 한우리는 그가 이매를 죽이고 강림석을 탈취한 걸 알고 있었다. 목격자는 멸구했음에도 불구하고.

‘내가 기척을 놓쳤을 리 없어.’

천창현은 자신이 알지 못하는 게 있다는 걸 가장 끔찍하게 여겼다. 한 번 실패해 봤기 때문에 강박적으로 변수를 최대한 억제하고 모든 걸 그가 통제하기를 원했다.

안내 데스크에 있는 간호사들의 눈을 피해 어두운 복도를 걸었다. 천창현의 발밑에서 그림자가 길게 뻗어 나가 한서리의 병실 앞을 지키던 도천 길드원들을 덮쳤다.

“뭐야, 누구…… 윽!”

“침입자다!”

그러나 이내 복도에는 정적만이 자리했다. 헌터들은 공격 한번 못 해 보고 그대로 그림자에 삼켜졌다.

병실 안에서 느껴지는 기척은 하나. 문밖의 소란을 듣고 한서리가 잠에서 깼어도 상관없었다.

어차피 그녀가 할 수 있는 건 없을 테니.

문틈으로 흘러 들어간 그림자가 병실을 잠식하기 시작했다. 내부에서 나갈 수도, 외부에서 침입할 수도 없게 완벽히 공간을 장악한 천창현이 드디어 움직였다.

드르륵.

가습기 돌아가는 소리만 들리는 고요한 병실 안. 한서리는 잠에 빠져 있었다.

아무리 환자라고 해도 헌터인 그녀가 아무런 반응이 없다는 게 이상하다고 느낀 차.

“천창혀어언!”

찢어지는 것 같은 외침이 들린 그 순간 천창현이 보던 환영이 깨졌다. 병원 안에 감돌던 희미한 기척들이 모두 사라지고 텅 빈 건물처럼 변해 버렸다.

눈이 벌게진 한서리가 단검을 수직으로 세워 천장에서 뛰어내렸다.

“죽어!”

비록 타나토스의 낫은 잃었지만 기세가 전혀 꺾이지 않은 한서리는 스킬 ‘저승 명부’를 발동하며 천창현의 팔다리를 구속했다.

동시에 뜨거운 홍염이 혀를 날름거리며 병실을 불의 감옥으로 만들었다.

캉!

“……!”

그러나 살의를 한껏 담아 휘두른 단검은 허공에서 가로막혔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 속, 천창현의 눈동자가 희번덕였다.

입원해 있는 내내 가슴 속으로 칼을 갈아온 한서리는 암기와 가진 스킬을 총동원해 천창현을 공격했다.

맞댄 검 너머로 천창현이 한서리에게 질문했다.

“내가 올 거라는 걸 어떻게 안 거지?”

“닥치십시오! 오늘 당신은 내 손에 죽을 테니까.”

튕기듯 올려 친 단검이 천창현의 목을 노리고 찔러 들어갔다.

타나토스의 낫을 사용하기 이전에 그녀는 단검을 주 무기로 사용했기 때문에 움직임에 막힘이 없었다.

그림자를 활용해 간발의 차로 회피한 천창현의 뺨에서 한 줄기 피가 흘러내렸다.

본능적으로 그는 기감을 펼쳤다. 근처에서 느껴지는 강한 기운이 다섯.

그들을 제외한 다른 생명체는 잡히지 않았다.

‘빌어먹을!’

함정이었다. 명백히 자신이 이곳에 오리라는 걸 알고서 대비한 것이었다.

“너는 이제 독 안에 든 쥐다!”

“포기하시죠, 천창현 헌터.”

은새를 제외한 도천 S급들이 은신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천창현을 향해 칼끝을 겨누고 우리가 드물게 차가운 낯을 했다.

“다시 만났군요.”

“…….”

“함정에 제 발로 들어온 기분이 어떻습니까?”

천창현이 병원으로 올 것이란 첩보를 입수한 우리는 우선 환자들을 전부 다른 곳으로 옮기도록 지시했다.

여차하면 인질로 사로잡힐 수 있었기 때문에 불가피한 결정이었다.

천창현의 눈을 속이느라 그 작업은 굉장히 은밀하게 진행되었다.

도천 그룹이 소유한 다른 의료원과 사설 병원들을 섭외하고, 공간이동 스킬을 가진 헌터들을 쥐어짜 위중한 환자부터 옮겼다.

신호하면 언제라도 대피할 수 있는 최소한의 인원만 남긴 채 왕호연을 시켜 병원이 정상 운영되는 것처럼 보이게 했다.

그 많은 인원의 입을 모두 막는 건 어려운 일이었으나 돈과 권력, 그리고 간단한 암시가 이를 가능케 했다.

한서리는 자발적으로 남는 쪽에 속했다. 천창현에게 진 빚을 갚기 위해.

‘유은새는 어디 있지?’

눈앞의 이들을 경계하며 천창현이 눈동자를 굴렸다. 도천 S급들이 여기 다 모였는데 유은새만 없다는 게 이상했다.

우리와 친구들을 말없이 노려보던 천창현이 뒤돌아 한서리를 공격했다. 상황이 어떻든, 그는 알아내야 할 것이 있었다.

“천창현 헌터, 쓸데없는 짓 하지 마세요!”

“저 자식이!”

“막아!”

그들은 즉각 반응했다. 회복됐다고 해도 타나토스의 낫을 잃은 한서리에게는 역부족인 상대였다.

콰광!

“윽, 먼지!”

“얘들아, 머리 조심해!”

“아이고, 건물 다 부서지네. 길짱, 복구 비용 우리가 내야 하는 거 아니지?”

“괜찮아, 아버지가 길드로 청구하면 십시일반 해서 함께 내자.”

“뭣, 저런 자식 때문에 내가 왜! 저 인간 돈도 많다면서, 쟤한테 내라고 해!”

“그러면 놓치지 말아야겠지, 남궁솔 위에!”

인찬이 방패를 꺼내 친구들을 보호했다.

병동이 파괴되며 낙하물이 떨어졌지만 천창현은 아랑곳하지 않고 한서리를 궁지로 내몰았다.

“당신이…… 당신이 이매 길드장님을!”

“그래, 내가 죽였다.”

무표정하던 창백한 낯에 비소가 비죽 떠올랐다.

“하지만 약해서 죽은 걸 어쩌라는 거지? 당신이 말하는 것과 달리 별 볼 일 없는 남자였다. 고작 인간 한 명 죽은 거 가지고 내가 미안해해야 하나? 그를 대체할 자들은 넘쳐나는데.”

천창현이 독사 같은 말을 속살거렸다. 상대방이 어떻게 하면 동요할지 잘 아는 사람의 태도였다.

“갑화 소속 헌터들은 그를 영웅이라고 불렀지만 던전 공략에도 참가하지 않는 헌터가 어떻게 영웅일 수 있지? 헛된 망상에 사로잡혀 사멸한 문명의 유물이나 찾아다니면서 사람들의 위험을 모른 척하는 게 정의롭다고 할 수 있나?”

“아닙니다! 이매 길드장님은 인류를 위해…….”

“그래서 그가 인류에 이바지한 게 뭐가 있지?”

“한서리 부길드장님! 그자의 말에 귀 기울이지 마세요!”

“누가 저 재앙의 주둥아리 좀 닥치게 할 수 없어?”

“그자는 자신의 무능력함을 대의라는 이름으로 감추고 있었을 뿐이다. 비겁한 겁쟁이라고!”

“더 이상 이매 길드장님을 모욕하지 마십시오!”

“한서리 부길드장!”

완전히 이성의 끈이 끊어진 한서리가 난폭하게 단검을 휘둘렀다. 평정을 잃은 그녀의 빈틈을 천창현이 찔러 들어갔다.

퍽!

“으윽!”

거센 발길질에 날아간 한서리가 처박히면서 벽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 솔이 만들어 낸 홍염의 불길이 화마처럼 넘실거렸다.

“쯧!”

솟구친 그림자를 피해 유하가 화살을 쏘았다. 연달아 쏘아지는 화살을 모두 피할 수는 없어 천창현의 팔과 다리에 적중했다.

눈도 깜빡하지 않고 화살을 뽑아낸 그가 을러대듯 한서리에게 속삭였다.

“말해, 그날 한우리를 불러온 게 누구지? 갑화 길드원인가?”

“내가, 말할 것 같습니까?”

“말할 수밖에 없을걸.”

습한 눈빛을 한 천창현의 손짓에 그림자가 한서리의 입으로 꾸역꾸역 밀려 들어갔다.

경악한 그녀의 눈동자가 흔들렸고, 안간힘을 다해 발버둥 쳐도 무도한 손길에서 벗어날 수 없었다.

“미친, 이거 뭐야!”

“그만둬, 천창현!”

공간이 쩌억 갈라지고 그 틈을 비집고 나온 끈적거리는 정체불명의 촉수에 발목이 붙잡힌 우리와 친구들이 당황해서 소리쳤다.

그때 홍염과는 다른 푸른 불꽃이 일렁이며 훅 피어났다. 그리고 서서히 드러나는 귀기 어린 눈빛을 한 누군가.

‘이매 길드장……!’

상대를 알아본 천창현의 손끝이 흔들렸다.

그 순간 한서리의 스킬이 발동되며 죽은 자를 인도하는 검은 강물이 흘러넘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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