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1화 – 블랙을 잡을 덫을 친다
길드로 복귀한 미리내와 유하는 우리에게 자신들이 알게 된 사실을 알리고 내부 단속과 더불어 ‘나비’ 중독자들을 찾아냈다.
약물이라는 게 드러내 놓고 하는 게 아니다 보니 정보부의 인력을 쥐어짜 은밀하게 조사해야 했다.
결과적으로 길드원들의 뒷조사를 하게 된 것이었으나 그들이 추후 초래할지 모르는 문제를 막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었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마약 청정국가가 아니게 된 지는 오래됐다고 해도 여전히 불법인 이상 우리는 이를 좌시할 생각이 없었다.
“충격적인데.”
결과를 받아 본 우리가 이마를 짚었다. 호출을 받고 모인 은새와 친구들도 아연하다는 표정을 했다.
양설과 왕호연에게 ‘나비’에 대해 전해 들은 건 최근이라 방심했다.
이미 이전부터 물밑에서 유통이 되고 있었던 듯, 생각보다 많은 수의 길드원이 목록에 올랐고 개중에는 주의 단계인 자들도 있었다.
‘우리 길드가 이러면 다른 길드들은 어떻다는 거야?’
보고서를 보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애석해하던 미리내가 말했다.
“약물을 처음 접한 경로는 다양해. 지인이 권해서, 클럽이나 술집에서 우연히, 소문을 듣고 호기심으로……. 헌터이니만큼 약물에 거부감이 없었고, 돈도 제법 버니까. 여차하면 해독 포션을 먹거나 힐러의 치료를 받으면 된다고 생각했겠지. 그러다가 중독 상태에 이르렀을 테고.”
“치료가 효과가 있었어?”
“목록에 올라온 길드원들을 대상으로 내가 실험해 봤는데 이게 좀…….”
미리내의 반응이 미묘했다. S급 힐러가 치유했는데 이런 애매한 대답이라고?
“음. 반만 성공했다고 할까. 약물에 의한 중독 증세는 해결했는데, 후유증이 남더라고.”
“후유증?”
치유와 후유증은 별개다.
흔한 예시로 잘렸던 팔다리에 환상통이 남거나 정신적 트라우마로 이명이 들린다거나 하는 것처럼 아무리 대단한 S급 힐러의 치유를 받는다고 해도 후유증까지는 어떻게 할 수 없었다.
그래서 몸을 혹사시킨 뒤에는 반드시 휴식 기간을 가져야 하는 것이었다. 몸은 회복되었어도 몸에 새겨진 ‘기억’은 남기 때문에.
하지만 부상도 아닌 약물로 부작용이 남는다니?
“일반 사원들은 무기력을 호소했고 헌터들은 이능이 불안정해졌어. 아마 약물에 들어 있는 어떤 성분이 그런 작용을 하는 것 같은데…….”
놀랍게도 ‘나비’에 중독된 건 헌터들뿐만이 아니었다. 일반인 사원 중에서도 중독자가 있었다.
“그거 헌터들에게 더 치명적인 거 아니야?”
“일단 시일을 두고 지켜봐야 할 것 같아. 일시적인 것이라면 좋겠는데. 부작용이 쌓이고 쌓이면 어떻게 되는지도 알아봐야 하고.”
“헌협에서는 실태를 파악하고 있을까?”
“관계자한테 연락해 볼까?”
“어. 이렇게 되면 일개 길드가 나설 문제가 아니잖아.”
그들이 알아낸 것이 사실이라면 이건 사회적인 문제였다. 어디까지 퍼져 있는지 모를 약물을 통제하는 건 길드 차원에서 할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때 미간을 찌푸린 채 듣고 있던 유하가 질문했다.
“블랙이 이 ‘나비’를 유통시킨 목적이 뭐지? 단순히 사람들을 중독시키는 거?”
“돈이겠지!”
핸드폰을 들여다보고 있던 솔이 대답했다.
“이미 많은 부를 쌓았다며. 그런데 돈 때문에 약을 풀었다? 그것도 헌터들에게 치명적일지 모를 약을?”
“그럼 유하 너는 블랙의 목적이 다른 데 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
“적어도 돈이 아니라는 건 알겠어. 그건 부차적인 거겠지. 그자가 과연 약물의 부작용을 몰랐을까?”
“…….”
싸한 정적이 내려앉았다. ‘나비’를 제조한 건 블랙이었다. 만약 부작용을 알고서 유통했다면 그건 다분히 악의성이 느껴졌다.
우리의 미간의 골이 깊어졌다. 천창현은 정말 이 세상을 멸망시킬 작정인가?
“……일단 연구팀에 ‘나비’의 성분 분석 의뢰 맡기고 미리내는 길드원들을 좀 주의 깊게 살펴봐 줘. 그리고 양설 헌터 측에 연락해 ‘나비’의 부작용에 대해 자세히 알아보라고 하자.”
그런데.
똑똑.
“길드장님, 긴급한 소식입니다.”
우리가 대답하자 비서가 문을 열고 들어왔다.
“뭔데?”
“잠실 일대에서 D급 헌터가 이능 폭주를 일으켰습니다. 그래서 협회 소속 헌터들이 출동했다고 합니다.”
“잠실? 잠실이면 바로 옆이잖아.”
“이능 폭주라니. 그거 힐러가 붙으면 금방 해결되지 않나?”
“그게, 힐러가 동원됐는데도 진정이 안 돼 피해가 커지고 있다고 합니다.”
과거, 던전이 처음 열렸을 때 헌터들이 자신의 능력을 통제하지 못해 이능 폭주를 일으키는 경우가 종종 있었다.
하지만 힐러의 능력으로 진정시킬 수 있다는 게 밝혀져 현재로서는 큰 위험이 아니었다.
오늘 일이 터지기 전까지는.
그때 전화벨 소리가 울렸다. 저장되어 있지 않은 번호이지만 외우고 있던 번호라 우리는 빠르게 통화 연결을 했다.
핸드폰 너머에서 왕호연의 목소리가 흘러나왔다.
-길드장님, 블랙이 다음에 나타날 장소를 알아냈습니다. 그리고 ‘나비’가 헌터들의 이능 폭주를 일으킨다는 거 알고 계십니까?
***
양설과 왕호연이 발견한 이는 골드스타에서 천창현 팀에 속해 있던 힐러 조인준이었다.
잡화점으로 들어서려는 그를 실종된 천창현 팀에서 가장 체격이 비슷한 오하나로 변용한 양설이 접근했다.
“이봐.”
“……! 깜짝이야. 뭐예요, 하나 씨. 기척 좀 내고 다녀요.”
나쁜 짓을 하려다 걸린 것처럼 조인준의 어깨가 파드득 튀어 올랐다.
럭키. 양설의 입꼬리가 올라갔다. 역시 이들은 행동을 같이하고 있었다.
“얼굴도 안 가리고 뭐 해요, 누가 보면 어쩌려고!”
조인준은 주변을 휙휙 돌아보며 그가 쓰고 있던 모자를 벗어 양설에게 씌워 주었다. 그의 행동이 더 수상쩍게 보이는 거 모르나.
그들은 추적당하고 있는 처지였기에 양설은 순순히 모자를 눌러썼다. 다행히 조인준은 그녀가 변장하지 않고 나온 것을 이상하게 여기지 않았다.
“여기 들어가려고?”
“네.”
“왜?”
“왜냐뇨……? 오늘은 제 순번이니까요.”
‘아하. 돌아가면서 약국을 감시하는구나? 겸사겸사 바깥 상황이 어떤지 알 수 있을 테고.’
조인준은 퍽 이상하다는 눈길로 양설을 바라보았으나 그녀는 샐쭉 눈가를 휘어 웃을 뿐이었다.
“그런데 하나 씨야말로 왜 여기 있어요? 오늘 따로 볼일이 있다면서요.”
“심심해서. 약 장사가 잘되는지 궁금하기도 하고.”
“하나 씨, 쉿! 쉿! 입조심!”
기겁한 조인준이 그녀에게 달려들어 입을 막으려 했다. 양설은 요리조리 피하며 질색했다.
“왜 이래? 미쳤어?”
“하나 씨야말로 미쳤어요? 큰일 나려고!”
“여기 오는 사람들 다 알고 오는 거잖아.”
“아닌 사람들도 있다고요.”
조인준이 조금 어두운 안색으로 끊임없이 사람들이 드나드는 잡화점을 돌아보았다.
표면상으로 일반 가게처럼 보이는 저곳이 ‘나비’의 판매점이라는 걸 아는 사람이 반, 모르는 사람이 반이었다.
……점점 알고서 오는 사람의 비중이 늘고 있었지만.
“하나 씨 오늘 정말 이상하네요.”
양설은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면서도 어떻게 하면 정보를 더 빼낼 수 있을지 머리를 팽팽 굴렸다.
“그런데 왜 그렇게 죽상이야. 장사 잘되는 거 보면 입이 찢어지게 웃어야 하는 거 아냐?”
“나 참, 뭐 좋은 물건이라고요.”
‘이것 봐라?’
양설은 그에게서 희미한 죄책감을 느꼈다. 파고들 구석을 찾아낸 그녀가 은근히 떠보기 시작했다.
“너랑 상관없는 남이잖아. 저 사람들이 어떻게 되든 너와 관련 있어?”
“하나 씨는 정말 아무렇지 않으세요? 저게 어떤 결과를 불러올지 알면서…….”
시선을 내리깐 조인준이 입술을 깨물었다.
“헌터들의 무덤이라고요, 저건.”
순간 양설은 표정 관리에 삐끗할 뻔했다. 무슨 약물 따위에 ‘헌터들의 무덤’이라는 거창한 말을 붙여?
조인준은 비록 천창현에게 은혜를 입어 그를 따르고 있었지만 사람들을 살리는 힐러로서 이것이 옳지 않은 일임을 자각하고 있었다.
가능하면 ‘그 일’이 터지기 전에 천창현이 마음을 돌렸으면 싶었다. 그랬다가는 정말 돌이킬 수 없게 되어 버릴 테니.
“에이. 중독자를 대거 양성할 뿐이잖아?”
“힐러도 제어할 수 없는 이능 폭주를 일으키니까……. 그런데 하나 씨, 왜 모르는 것처럼 그래요?”
그에게 바짝 다가간 양설이 은근한 목소리로 질문을 쏟아냈다.
“있잖아. 천창현이 ‘나비’를 만들어 낸 목적이 뭐야? 그리고 그는 지금 어디에 있어? 은신처가 어디야? ‘블랙’은 천창현인가? 그는 언제부터 이 일을 꾸민 거지?”
조인준의 눈동자에 의심이 들어찼다.
“……당신 누구야?”
“그가 앞으로 무슨 짓을 할 작정인지, 당신은 알아?”
“놔!”
붙잡힌 손목을 뿌리치려는 조인준을 향해 양설이 히죽 웃었다. 오하나라고 생각했던 얼굴이 서서히 녹아내리는 걸 본 그의 눈이 커졌다.
그 순간 양설의 뒤에서 왕호연이 모습을 드러냈다.
“젠장!”
도망칠 새도 없이 왕호연의 스킬이 조인준을 덮쳤다.
***
“천창현이 한서리 부길드장을 노릴 거라고?”
왕호연의 보고를 모두 들은 우리가 눈살을 찌푸렸다.
-네.
“한 번 실패해서 포기한 게 아니었나?”
-그것까지는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죽여야 할 이유가 있지 않겠습니까?
한번 찍은 목표는 놓치지 않는다는 것일 수도 있고, 한서리에게서 뭔가를 알아내려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쩌면 자신들을 유인하려는 함정일지도.
하지만 어떤 경우에서라도 이매가 살아 있다는 사실을 천창현이 알게 되면 안 되었다.
핸드폰을 내려놓은 우리가 친구들을 돌아봤다.
“다들 움직여. 블랙을 잡을 덫을 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