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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80)화 (180/190)

179화 – 당분간 위그드라실한테 가 있지 않겠나?

K미디어 대표 최인호는 지인들과의 약속 때문에 밤 외출을 했다.

상류층이 주로 이용하는 회원제 클럽. 담당 홀 매니저의 안내를 받아 안쪽 룸으로 가자, 미리 와 있던 지인들이 반갑게 그를 맞이했다.

벌써 즐기고 있었던 듯, 빈 병 몇 개가 탁자 위를 굴러다니고 있었다.

“최 대표! 왔어?”

“뭐야, 늦었잖아~ 주인공이야, 뭐야?”

“내가 너희처럼 한가하게 노닥거리는 줄 알아?”

지인들의 짓궂은 말에 최인호가 퉁명스럽게 대답했다. 익숙한 일이기에 그들은 술잔을 기울이며 낄낄댔다.

“그러시겠죠. 모두까기 인형 최인호 씨.”

“헌터까기 인형이겠지. 이번에 또 한 건 했다며? 김로나 헌터 불륜 단독 보도. 시청자 게시판 폭주했다던데.”

“불륜한 사람이 잘못이지.”

“이번 한 번만 그런 게 아니니까 그렇지. 안 그래도 어지러운 시국에 꼭 지금 터트려야 했어?”

적당한 자리에 앉아 새 양주를 까던 최인호가 코웃음을 쳤다. K미디어는 유독 헌터들에게 적대적인 언론사였다. 대표인 최인호의 성향을 반영한 결과였다.

지인도 진심으로 걱정해서 한 말은 아니라 그의 잔에 술을 따라 주었다.

“너는 왜 그렇게 헌터들을 싫어해? 세계 평화를 책임져 주는 사람들인데.”

“세계 평화는 얼어 죽을…….”

최인호가 인상을 와락 일그러뜨렸다. 그는 과거 은새에게 접근했다가 호되게 차인 인물로, 헌터들을 격렬히 혐오했다.

은새가 양설과 왕호연의 계략으로 누명을 썼을 때 그녀를 비난하던 사람 중 하나였으나 사실이 밝혀진 뒤에도 유일하게 아무런 타격도 입지 않았다.

전 도천 길드원이었던 김유빈이 여론의 뭇매를 맞은 것과 사뭇 대조적이었다.

최인호는 그때 그 일로 아직도 도천 길드와 은새에게 앙심을 품고 있었고, 그래서 건수만 생겼다 하면 물어뜯기 바빴다.

더 늦기 전에 도천이 거꾸러지는 꼴을 봐야 하는데…….

“말 나왔으니 하는 말인데 요새 불안하지 않아? 세상이 어떻게 되려고. 주식이 하루에도 몇 번씩 요동쳐서 피가 마른다.”

“안 그래도 그거 때문에 죽겠어. 우리 아빠 히스테리가 아주……. 우리 회사 이러다가 문 닫을지도 몰라.”

“너희 기업이 도산하면 대한민국에서 살아남을 기업이 몇 개나 되겠냐?”

“그건 그렇지.”

세습되어 온 기업 문화 때문에 그들은 정말로 자신들의 회사가 망할 거라고 생각하지 않았다.

일단 정부가 그렇게 두지 않을 것이었고 자신들이 없으면 사회가 무너질 거라는 지극히 오만한 사고방식을 가진 탓이었다.

“이러다가 던브라도 터지는 거 아냐? 어디야, 연천군 쪽에 결국 공략 실패해서 헌터들 다 죽었다며.”

“다는 아니고. 두 명 살아 나왔다고 했나? 후발대 뽑는 데 애먹고 있대. 공략할 고등급 헌터가 없어서.”

“아이고 무서워라. 살려 주세요, 헌터님들~ 내가 이 나라에 내는 세금이 얼마인데 다들 뭐 하고 있는 거야.”

“세금이랑 걔네가 무슨 상관이야?”

“돌고 돌아 걔네들 주머니로 들어갈 거 아니야?”

와하하 웃음이 터졌다. 가장 안전한 곳에서 한 번도 죽음의 위협을 직면해 본 적 없는 그들은 목숨 걸고 싸우는 헌터들을 우습게 여겼다.

술에 취해 분위기가 무르익었을 무렵, 한 사람이 주머니에서 뭔가를 꺼내 들었다.

“내가 아는 헌터한테 얻은 건데 이게 요새 헌터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캔디래.”

“아는 헌터 누구. 새로 사귀었다는 애인?”

“걔랑은 진즉 헤어졌고. 다른 애.”

“아는 헌터도 많네. 하여튼 바람둥이 새끼. 그런데 웬 캔디? 헌터들한테는 환각제 안 통하는 거 아니었어?”

“그러니까 신문물이라는 거 아니야. 이거 하나면 그 괴물 같은 인간들도 해롱해롱해진다는데?”

캔디란, 마약류인 엑스터시를 칭하는 은어였다. 헌터들에게도 통한다는 약물이라는 말에 그들이 관심을 가졌다.

“이거 우리한테도 통하나?”

“당연하지. 내가 해 봤는데 진짜 끝내주더라. 차원이 달라. 수천 마리의 나비에 파묻히는 느낌?”

“이거 먹으면 나도 헌터로 각성하는 거 아냐?”

“새끼, 설레발은. 그래도 헌터로 각성하면 우리 기업에서 고용해 줄게.”

“뭐래. 필요 없거든?”

그때 술에 취해 눈이 풀린 최인호가 손을 뻗었다.

“나도 줘 봐, 그거.”

“이열, 최인호. 도전?”

재벌가 자제들 사이에서 약은 흔하게 취급되었기에 최인호는 거부감 없이 물건을 받아들였다. 안 그래도 어지간한 약에는 내성이 생겨서 새로운 자극이 필요하던 참이었다.

남자에게서 건네받은 알약을 술에 떨어트리자 뽀르르 거품이 오르며 녹아 사라졌다. 지인들의 환호를 받으며 최인호는 단숨에 그것을 들이켰다.

그렇게 일반인들 사이에서도 ‘나비’가 은밀하게 퍼져 나가고 있었다.

***

‘블랙’을 추적하는 임무를 맡은 양설과 왕호연은 피비린내 나는 위험한 현장에 있을 거라는 우리의 예상과 달리, 의외로 한 유명 프랜차이즈 패스트푸드점에 있었다.

감자튀김을 산처럼 쌓아 두고 먹는 양설 옆에서 왕호연이 노트북을 빠르게 두들겼다. 유리창 너머로 그들이 주시하고 있는 건물.

평범한 잡화점처럼 보이는 저곳이 신종 약물 ‘나비’를 파는 약국 -판매점을 뜻하는 은어- 이었다.

“하여튼 간덩이가 배 밖으로 나왔다니까. 대놓고 저렇게 팔아 재끼다니.”

“한국에는 등잔 밑이 어둡다는 속담이 있잖아. 저러니까 외려 아무도 의심하지 않지.”

“하지만 드나드는 인간들이 죄 수상쩍은 낯짝이잖아.”

건물 내부의 CCTV를 해킹 중이던 왕호연이 창밖을 힐끔거렸다. 정말 잡화점의 손님처럼 보이는 이들도 있었지만 개중에는 주변의 눈치를 보며 슬그머니 들어가는 이들이 있었다.

‘직원에게 경고받겠네.’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은 그는 하던 일에 몰두했다.

감자튀김이 거의 바닥을 드러냈을 때, 왕호연이 키보드에서 손을 뗐다.

“OK. 완료.”

“오래 걸렸잖아. 실력 다 녹슨 거 아니야?”

“타박은. 어쨌든 성공했잖아.”

“내부는 어때.”

“침입 루트를 잘 짜야 할 것 같은데. 감시가 삼엄해. 그리고 지하 2층 아래로는 CCTV가 없어서 상황을 모르겠어. 길드에서 물품 좀 지원받아야겠고…….”

“흠?”

왕호연의 말을 흘려듣던 양설의 눈이 커졌다.

“야, 야. 왕호연. 저거.”

“왜?”

양설이 가리킨 곳을 본 왕호연이 저도 모르게 몸을 숙였다.

“저 사람은…….”

천창현과 함께 사라진 골드스타 길드의 헌터 중 한 사람이 잡화점으로 막 들어가고 있었다. 잘 위장했지만 이런 쪽에서 전문가인 두 사람의 눈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양설이 물티슈에 손을 문질러 닦았다.

“이거 의외로 쉽게 풀리겠는데?”

***

은새가 출근한 사이, 별이는 집을 보고 있었다. 황새와 백합이는 다른 방에서 놀고 있었고, 잠시 집을 비운 벨키오르는 금방 돌아올 터였다.

좋아하는 아동용 애니메이션을 보고, 스스로 율동까지 한 아이는 카펫 위에서 곰실거리다가 봄이가 자고 있는 방으로 갔다.

불을 켜지 않아 어두운 방 안. 쿠션에 파묻힌 봄이를 살짝 들여다본 별이가 은새가 하듯,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봄이, 아직도 졸려?”

삐…….

봄이가 별이의 손에 비비적대며 잠투정을 했다. 파르르 떨리던 눈꺼풀은 끝내 떠지지 않았다.

별이가 ‘힝.’ 하고 눈썹을 축 늘어트렸다.

“왜 자꾸 잠만 자지. 어디 아파?”

벨키오르에게 듣기로 봄이가 계속 자는 건 계절 영향도 있고 성장 중이기 때문이라고 했다. 하지만 이렇게 기운 없이 늘어져 있으니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별이가 봄이 주변의 쿠션을 꾹꾹 눌러 푹신푹신하게 만들어 주고 방을 나왔다.

“누나두 없구, 봄이는 잠만 자구. 심심해……. 빨리 누나가 왔으면 조캤다아.”

별이는 강원도 생활이 마음에 들었다. 인적이 드물어 한적했고 특히 겨울에는 사방이 고요해서 꼭 그들만의 세상에 외따로 떨어진 것 같았다.

마수들과 뒤엉켜 놀며 다 같이 둘러앉아 고구마를 구워 먹는 것도 좋았고, 하얗게 눈으로 덮인 설경을 구경하는 것도 가슴이 벅차오르는 일이었다.

여름과 가을, 겨울을 은새의 집에서 보낸 별이는 이제 봄이 되면 사계절을 다 지내는 것이었다.

안락하고도 포근한 보금자리. 별이는 하루 빨리 그곳으로 돌아가고 싶었다.

힝. 쪼쪼랑 쿠키 보고 싶어…….

“아빠아!”

그때 현관문 열리는 소리가 들리고 별이 부리나케 달려가 그의 바지춤에 매달렸다. 

벨키오르에게서 옅게 바람 냄새와 찬 기운이 묻어났다. 따뜻한 집에만 있던 아이는 기분 좋게 뺨을 문질렀다.

“아빠, 누나 이따가 밥 먹을 때 온대요. 우리 놀이터 가요!”

별이가 말한 곳은 키즈 카페였다. 신나게 뛰어놀 생각에 두근두근해하는 별이에게 벨키오르가 의외의 말을 했다.

“별. 당분간 위그드라실한테 가 있지 않겠나?”

눈을 끔벅이던 아이가 와락 울상을 지었다.

“시러요!”

또랑또랑하게 외친 거부 표현에 벨키오르가 미간을 좁혔다. 까딱하면 위그드라실에게 보내질 거 같은 위기감에 별이가 방바닥에 드러누웠다.

“안 가요, 나 여기 있을 거야!”

“너는 나 다음으로 위그드라실을 지켜야 할 의무가 있다. 미래를 생각하면 신역에 가 있는 편이…….”

“몰라요, 혼자는 시러요. 흐엉.”

“은새의 마수들도 함께 가면 되겠나?”

“누나 없으면 시러요! 히잉, 누나아…….”

커다란 금색 눈동자에서 서러운 눈물이 뚝뚝 떨어졌다. 소란을 듣고 황새와 백합이가 나와 부자를 멀뚱히 바라봤다.

“하아. 알았다.”

별이의 완강한 의사에 벨키오르가 두 손을 들었다. 만일을 대비하려던 것이지, 별이를 꼭 보내야 하는 건 아니었으므로.

“……그럼 나 안 가두 되는 거죠?”

그가 포기하는 기색을 보이자 별이가 슬그머니 일어나 손등으로 눈물을 꾹꾹 눌러 닦았다.

그 모습을 본 벨키오르는 어이가 없었다. 아이가 점점 영악해지고 있었다.

“아빠 나 푸딩 먹고 싶어요. 말랑말랑 캐러멜 푸딩~”

눈가에 눈물 자국을 매달고 별이는 해맑게 벨키오르의 손을 잡아 흔들었다. 밀려 나오는 한숨을 삼키고 그가 고개를 끄덕였다.

“기다려라. 곧 만들어 주지.”

“꺄악!”

엉덩이를 실룩거리며 뛰어가는 별이를 따라 벨키오르는 주방으로 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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