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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78)화 (178/190)

177화 – 그 남자인 것 같거든

“메갈로 레드드래곤…….”

입에서 불을 내뿜는 커다란 광룡이 날개를 펼치고 하늘을 비상하다가 은새와 친구들을 발견하고 수직 낙하했다.

크롸롸롸!

“읏, 젠장! 보스 몬스터까지 난리네!”

“다들 침착해! 진열 갖추고 목 아래 역린을 노린다! 미리내야, 지원 부탁해!”

“알았어!”

보스 몬스터와의 전투는 치열하게 진행됐다. 파괴력이 대단한 마수이기도 했지만 지능이 좋아서 그런지 지형지물을 이용하는 모습도 보였다.

근처의 다른 마수를 미끼처럼 던지기도 했다.

그래도 언노운과의 전투로 한층 성장한 은새와 친구들은 힘들었어도 무사히 공략을 마칠 수 있었다.

다들 지친 상태로 던전을 나왔을 때는 주변이 환했다. 시간을 보니 점심시간을 막 지난 무렵이었다.

몇 주간 쉬지 않고 던전을 순회해야 했던 그들은 한탄이 나올 수밖에 없었다.

“햐, 이게 얼마 만에 맡는 바깥공기야. 아직도 코에서 마수 누린내가 나는 것 같아. 이 태양! 이 매연 가득한 도시 문명! 기껏 S급 헌터가 됐는데 왜 자유롭지를 못 해. 나 은퇴 각 재도 되냐?”

“우리만 고생하는 것도 아니고 조금만 더 힘내자, 솔아. 안 그래도 희진이도 죽겠다고 메시지 엄청 보냈네. 그리고 어차피 너 은퇴 못 해.”

꺼 놨던 핸드폰을 켜 밀린 메시지를 확인한 미리내가 웃으며 말했다. 뒤따라 걷던 유하가 늘어지게 하품했다.

“길드로 돌아가면 씻고 밥부터 먹자. 중식 당기는데 다들 어때?”

“나는 입맛 없어서 생략할게. 사흘 뒤에 또 던전에 들어가야 하지?”

“그냥 던전 다 터져서 없어져 버렸으면 좋겠네.”

“없어지는 건 찬성인데, 터지는 건 안 돼.”

그들은 밴이 있는 곳으로 갔다. 그런데 그들을 발견한 오향기가 차에서 내려 우리에게 다가왔다.

“길드장님.”

“오늘은 오향기 헌터가 마중 나온 거야?”

“급히 병원으로 가 보셔야겠습니다.”

“병원? 왜. 누가 다쳤어?”

오향기가 굳은 얼굴로 말했다.

“한민혁 이사님께서 입원하셨다고 합니다.”

“……첫째 형이?”

한씨 집안사람들은 기본적으로 다들 강골이라 잔병치레를 하지 않았다. 그런데 웬 입원?

헌터도 아니고 사업만 하는 사람이 무슨 연유로. 단순한 피로 때문이라면 구태여 길드 측으로 알리지 않았을 것이다.

“얘들아, 나 먼저 가 봐야겠다.”

“그래. 우린 따로 갈게. 무슨 일 있으면 연락하고.”

친구들과 헤어져 서둘러 도천 그룹 산하 병원으로 간 우리는 병실에 들어서자마자 인사도 생략하고 한민혁의 상태부터 확인했다.

“형.”

“오. 명절에도 얼굴 보기 힘든 우리 막내 왔어?”

심각한 상황이 펼쳐져 있을 거라는 생각과 달리 -우리에게 심각한 상황이란 혼수상태 정도는 돼야 했다- 한민혁은 침대에 기대 누워 천연덕스럽게 손을 흔들었다.

몸 곳곳에 붕대를 둘둘 감고 있는 게 뭔 일이 있긴 있었던 모양이라 우리가 눈썹을 찡그렸다. 

한민혁은 낄낄거리며 간병인이 씻어 놓은 딸기를 포크로 찍어 먹었다.

“가끔 입원하는 것도 괜찮겠어. 형 다쳤다고 하니까 바로 달려온 것 봐. 아버지가 부러워하시겠네.”

“흰소리 그만하고. 몰골이 왜 이래?”

“너는 형한테 몰골이 뭐냐, 몰골이. 좀 다쳤다.”

“힐러한테 치료 안 받았어?”

“받았지. 이거 과잉진료야. 여기 담당의가 내 친구인 거 알지? 이참에 푹 쉬라고 퇴원도 안 시켜 준다. 잘됐지, 뭐. 솔직히 요 근래 너무 바빴으니까.”

“형은 항상 바쁘잖아. 뭐야……. 심각한 상황인 줄 알았더니.”

긴장감이 전혀 없는 한민혁의 모습에 우리는 맥이 탁 풀렸다. 이런 줄 알았으면 전화로 물어보고 올 걸 그랬다.

“어쩌다 다친 거야?”

“이사님께서 익산 공장으로 출장을 가셨다가 화재 사건에 휘말리셨습니다.”

회사에 있는 한도준 회장 대신 와 있던 비서실장이 우리에게 눈인사를 건네며 대답했다. 우리도 마주 인사를 하고 비서의 말속에서 단어를 하나 캐치했다.

“화재 사건?”

“어. 요새 곳곳에서 방화 사건 자주 일어나는 거 알지?”

“뉴스 보긴 했지……. 근데 그게 왜?”

“우리도 당했거든.”

내내 장난스러운 기색이던 한민혁의 표정이 가라앉았다.

“그래서 혹시 몰라 시찰 간 거였는데 하필 딱 내가 내려갔을 때 일이 터지더라고.”

“범인은. 잡았어?”

“불법 헌터들이었어. 일을 저지르자마자 도망가서 몇 명은 놓쳤는데 그나마 잡은 놈들은 잔챙이들이라 아는 게 없다더라. 그놈들 때문에 검찰도 골머리를 앓고 있대.”

“불법 헌터들? 작년에 정부에서 대대적으로 단속하지 않았나?”

“다 어디 숨어 있다가 기어 나온 건지, 원. 일을 쳐도 하필 이 시점에…….”

세상이 혼란스러운 시기였다.

역대 가장 추운 겨울이라고 불릴 만큼 폐쇄된 던전은 여전히 변화가 없어 사회적 불안감을 조성했고, 일부 개방된 던전은 터무니없이 등급이 상승해 헌터들이 죽어라 공략에 뛰어들고 있었다.

실제로 공략 중에 사망한 헌터들의 수도 꽤 됐다.

“우리야, 조심해라. 요새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

“…….”

“방화 사건도 그렇지만 헌터 실종 사건도 심심치 않게 일어나고 있는 거 알지? 그리고 개중 몇몇은 사망한 상태로 발견됐고.”

일부의 경우만 보고 실종된 헌터들 모두가 사망했을 거라고 단정 지을 수는 없지만 그래도 일반인도 아닌 헌터들에게 이런 일이 발생하는 건 평범한 경우가 아니었다.

심각해진 분위기를 환기하고자 우리가 으스대며 말했다.

“형, 나 S급이야. 한국에서 제일 센 헌터라고. 너무 무시하는데?”

“원숭이도 나무에서 떨어지는 날이 있는 법이야.”

“형처럼?”

“그래. 나처럼. 그러니 너는 조심, 또 조심해라.”

우리는 한민혁에게 걱정 어린 잔소리를 한참 듣고 난 뒤에야 길드로 돌아왔다.

샤워실에서 씻고 사무실로 들어서는데, 이미 누군가 안에 있었다.

“누구신데 주인 없는 사무실에 있는 겁니까? 아…… 왕호연 헌터?”

왕호연의 얼굴을 알아본 우리가 눈을 크게 떴다. 그의 시선이 왕호연 옆에 있는 낯선 이에게로 향했다.

파마기가 거의 풀린 긴 머리에 쌍꺼풀진 큰 눈, 뭉툭한 코. 그리고 콧등에 얹어진 안경과 흔한 디자인의 오피스룩으로 봤을 때 도천 길드에 속한 사무직 직원으로 보일 법했다.

“그럼 이쪽은 양설 헌터겠군요.”

“네. 안녕하셨습니까, 길드장님.”

변용 스킬로 얼굴을 바꾼 양설이 성의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본인이 맞다는 건지, 인사하는 건지 모호했다.

우리가 그들의 맞은편 자리에 앉았다.

“비서에게 부탁해 연락하지 그랬어요. 오래 기다렸습니까?”

“연락했는데? 한 시간이나 기다렸다고.”

부루퉁한 양설의 대답에 우리가 핸드폰 배터리가 방전된 걸 확인하고 ‘아.’ 하고 겸연쩍은 표정을 했다.

반말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은새에게도 그러는 걸 알았기 때문에.

일만 잘하면 됐지. 우리는 그런 걸 하나하나 꼬투리 잡는 성미가 아니었다.

“미안합니다.”

“아닙니다. 그보다 맡기신 일에 대한 보고를 하러 왔습니다.”

반면 왕호연은 다른 길드원보다 배는 깍듯한 자세를 취했다. 두 사람에게는 천창현의 추적을 맡기고 있었다.

“그자의 흔적은 찾았습니까?”

“없어, 깨끗해.”

양설이 주머니에서 막대 사탕을 하나 꺼내서 입에 물었다. 기다리면서 먹었는지 이미 그녀 앞에는 사탕 껍질과 막대가 가득 쌓여 있었다.

“흔적이 없다고요?”

“용의주도한 놈이야. 이런 일을 한두 번 해 본 게 아닌 게 확실해. 흔적을 지우는 것도 능숙하고 뭣보다 거짓 흔적을 남겨 이쪽을 낚으려고 하더라. 걸렸으면 정체 다 털리고 골수까지 발라 먹히고 꽥! 했겠지. 우리에게는 익숙한 본국의 방식이야.”

“천창현 헌터가 중국과 연관이 있다고요?”

“모르지. 그냥 태생이 야비한 놈일 수도 있고.”

양설이 키득거렸다. 머리가 지끈거려 와 우리는 관자놀이를 짚었다.

이렇게까지 아무것도 안 나오다니.

“방도가 없겠습니까?”

심각해진 우리와 달리 양설은 여전히 여유로워 보이는 태도로 느긋하게 대답했다.

“하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정보를 다루는 사람이라면 누구나 할 수 있는 방식’이고.”

사탕을 와드득 씹어 먹은 양설이 씩 웃었다.

양설과 왕호연. 두 사람은 청화 길드의 가장 더러운 일을 도맡아 처리했던 이들이었다.

그러니 평범한 사람들은 상상조차 하지 못할 다양한 방법을 알고 있었다. 당연히 불법적이고 비윤리적인 방식이었다.

하지만 목적을 이루려고 수단을 가리는 건 절실하지 않은 거잖아?

왕호연이 양설의 말을 받았다.

“지금 시장에 약이 퍼지고 있는 거 알고 있습니까?”

“약, 말입니까?”

시장이란 중국에서 뒷세계를 뜻하는 은어였다.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몰라 눈을 깜박이던 우리가 뒤늦게 뜻을 알아차리고 심각해졌다.

“‘나비’라는 이름의 약물인데 이게 특이합니다. 헌터들에게도 유효한 작용을 해요. 길드장님도 아시다시피 아무리 등급이 낮은 헌터라고 하더라도 기본적으로 독 저항과 내성이 있지 않습니까?”

헌터에게는 약물이 잘 통하지 않는다. 등급에 따라 차이는 있어도 그게 보통이었다.

그래서 헌터라면 가벼운 두통에도 진통제보다는 포션을 복용했다.

“한 번도 발견된 적 없는 배합식이야. 머리 좋은 놈이 만들었어. 그 좋은 머리로 왜 그딴 쓰레기를 만들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시장에 나비를 유통시킨 게 ‘블랙’이라는 자라고 합니다. 알아보니 알려지지 않은 뒷세계의 실세더군요.”

우리가 혼란스러운 얼굴을 했다.

“그런데 그게 천창현과 무슨 연관이 있습니까?”

“우리는 이 블랙이 그 남자인 것 같거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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