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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76)화 (176/190)

176화 – 혹한의 계절

예기치 못한 상황에 천창현은 갈등했다.

‘한우리를 죽일까?’

기세 좋게 등장했으나 완전히 회복하지 못한 그는 전력을 낼 수 없을 것이었다.

비록 천창현 본인도 4흉수의 신기로 정상인 상태가 아니었지만 가진 수를 모두 사용하면 불가능하지만도 않았다.

‘……아니야. 여기서는 한서리만 확실히 처리한다. 저 여자는 쓸데없는 걸 알아 버렸어.’

당연히 그녀를 죽일 생각으로 입을 나불거린 게 화근이 됐다.

목격자가 생겨 한서리를 살해하면 귀찮은 일이 따르겠지만 천창현이 가진 연줄을 잘 활용하면 어떻게든 빠져나갈 구석이 있었다.

이매가 죽은 뒤 한서리뿐만 아니라 갑화 길드원들은 다 제정신이 아니었다.

또 명백히 그녀가 먼저 그를 미행했고 선제공격한 것은 사실이었으므로 한우리가 도천 그룹의 힘을 빌린다고 해도 금성 그룹 자제들의 비호를 받는 자신을 어떻게 할 수는 없을 것이었다.

순간 눈빛이 바뀐 천창현이 무기를 휘둘렀다.

하지만 마치 그럴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이 갑자기 뛰어든 인찬이 고유 능력을 발동해 한서리의 앞을 막아섰다.

단단해진 팔이 오러를 한껏 밀어 넣은 무기를 막아 냈다. 인찬 역시 우리처럼 병원복에 패딩을 걸친 모습이었다.

환자면 환자답게 병실에 처박혀 있을 것이지 여길 왜…….

“인찬아, 한서리 부길드장 데리고 물러나 있어!”

“어!”

인찬이 사태 파악이 덜 된 한서리를 어깨에 둘러업고 자리를 벗어났다. 이제 이곳에 남은 건 우리와 천창현뿐이었다.

“한서리 부길드장을 죽이려는 게 당신이 이매 길드장에게서 빼앗은 강림석 때문입니까?”

“…….”

그걸 어떻게 알고 있는 거지?

이매가 강림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도, 천창현이 노린 게 강림석이라는 것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정작 이매조차도 그가 가진 게 강림석인 줄 몰랐다. 습득하자마자 감정을 맡기기 위해 귀국했다가 살해당했으니까.

‘그런데 한우리가 어떻게?’

“대답하지 않는 걸 보니 사실이군요. 천창현 헌터, 당신이 어떻게 강림석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

“그게 무엇에 쓰는 물건인지 알고 가져간 겁니까? 설마 당신이……?”

우리가 예리한 눈빛을 했다. 도천 S급들은 벨키오르에게 얻은 정보를 토대로 강림석과 세계의 포식자가 이 세계에 심어 둔 ‘씨앗’을 추적하고 있었다.

만약 천창현이 그들이 찾던 인물이라면.

“묵비권을 행사할 모양이군요. 반드시 그 입을 열어서 대답을 들어야겠습니다.”

우리가 이능을 끌어올렸다. 심장에서 아릿한 통증이 번졌으나 미간을 일그러뜨려 가며 참아 냈다.

그가 전투 의지를 보이자 천창현은 빠르게 도주를 결정했다. 한서리를 처리하는 데 실패했으니 더 이상 여기 남아 있을 이유가 없었다.

그가 숨겨 뒀던 스킬, ‘공간 도약’을 발동했다.

순식간에 천창현이 모습을 감췄다.

“아씨, 내 상태가 정상이기만 했어도!”

눈앞에서 천창현을 허망하게 놓쳐 버린 우리가 거칠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래도 소재를 아는 이상 급할 건 없었다.

언제든지 추궁할 기회가 있을 거라고 그는 생각했다.

검을 집어넣은 우리는 인찬과 한서리가 있는 곳으로 갔다. 인찬에게 부축을 받고 있던 그녀가 우리를 보자마자 질문을 했다.

절묘한 순간에 딱 맞춰 등장한 게 우연이라고 볼 수 없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죠, 한우리 길드장님? 왜 그런 차림으로?”

“일단 저희가 입원 중인 병원으로 가시죠. 상태가 심각해 보입니다. 치료부터 하고…….”

“아니요! 대답 먼저 들어야겠어요.”

천창현이 범인이었다는 걸 알게 된 한서리는 인간에 대한 불신이 팽배했다. 

치가 떨렸다. 원수를 눈앞에 두고도 알아보지 못했으니.

대답을 듣지 않으면 한 걸음도 움직이지 않겠다는 그녀의 모습에 우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부탁을 받았습니다.”

“누구에게요?”

“오밤중에 저를 찾아와 당신이 위험에 빠졌으니 도와달라고 하더라고요.”

“무슨……?”

일순 사위의 어둠이 짙어졌다. 그러더니 확, 하고 허공에 푸른 불꽃이 치솟았다.

일렁이던 불꽃은 서서히 사람의 형체를 갖추었다.

상대를 알아본 한서리의 눈이 크게 뜨였다. 비록 모습이 조금 달라지긴 했지만 모를 수 없는 얼굴이었다.

한순간도 잊어 본 적 없는 사람.

“길드장님……?”

죽은 이매가 푸른 영체의 모습으로 한서리의 앞에 서 있었다. 그는 어딘가 슬픈 표정으로 한서리를 바라봤다.

“죽는 순간에 스킬을 각성했다고 하더군요.”

이매가 각성한 스킬 이름은 ‘도깨비 의태’.

생전에 도깨비와 신령들을 부리던 그는 죽어서 그 스스로가 도깨비가 되었다.

한서리와 갑화 길드원들이 자신을 그리워하는 걸 알았지만 일부러 모습을 감췄다. 죽은 자에게 너무 미련을 갖는 것도 좋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다 한서리가 위험에 빠지자 연이 있던 우리에게 찾아가 도움을 청한 것이었다.

“길드장님!”

정신을 차린 한서리가 와락 이매에게 달려들었다. 하지만 그녀의 애타는 손짓은 그에게 닿지 않았다.

허공을 맴도는 손이 어찌할 바를 모르고 허우적거렸다. 한서리가 황망하게 이매를 올려다보았다.

“길드장님, 왜…….”

물끄러미 그녀를 바라보던 이매는 고개를 내젓고는 다시 스르륵 사라졌다.

“길드장님! 길드장님!”

“아직 영체가 불안정해서 능력을 오래 유지할 수 없다고 하더군요.”

애타게 그를 부르짖는 한서리를 우리가 붙잡아 진정시켰다. 한서리가 떨리는 눈동자로 이매가 서 있던 자리를 응시했다.

분명 저기에 길드장님이 있었는데.

“길드장님은…… 여기에 계신 건가요?”

“모릅니다. 한서리 부길드장도 그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눈치채지 못했잖아요. 하지만 확실한 건 이매 길드장이 한서리 부길드장의 위험을 모른 척하지 않았다는 거예요.”

그 말은 줄곧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다는 뜻이었다. 눈썹을 일그러뜨린 한서리가 울음을 참는 것처럼 입을 틀어막았다.

“그러니 병원으로 가시죠. 범인을 알았으니 잡는 건 시간문제일 겁니다.”

한서리를 입원시키고 난 뒤 우리는 늦은 시간임에도 바로 미리내를 불렀다. 

사건의 전말을 전부 들은 그녀는 이매가 죽지 않았다는 것에 놀라고 천창현이 범인이었다는 것에 또 한 번 놀랐다.

“천창현 헌터가 강림석을 가지고 있다고? 어쩐지 그 사람, 전부터 자꾸 뭔가 걸리더라니. 이제 앞뒤가 딱딱 맞네.”

“이매 길드장을 살해한 것도 그렇고 평범한 A급이 아니야. 한서리 부길드장 말대로 그가 백찬민을 살해했을 수도 있겠어. 아니, 이 경우에는 그럴 확률이 높아.”

“숨긴 능력이 뭘까? 그가 ‘씨앗’이라서 특별한 능력을 지닌 건가?”

“모르지. 아무튼 정보부에 시켜 천창현의 행적을 뒤쫓으라고 해. 내가 알게 되었으니 몸을 숨기려 할지도 몰라. 양설 헌터와 왕호연 헌터는 어때? 적응 잘 마쳤어?”

“응. 바로 투입해도 될 정도야. 두 사람에게 맡기게?”

“표면적으로는 우리 길드와 관련 없는 뉴페이스니까. 그들이 적임이지. 바로 연락해.”

“알겠어. 유력한 후보가 나타났으니까 나도 바로 대책을 세울게. 절대 그가 강림석을 사용하게 둬선 안 돼.”

하지만 그날 이후로 천창현은 모습을 아예 감췄다. 길드에 소속되어 있고, 외국으로 뜨지 않는 이상 금방 꼬리를 잡을 수 있을 거라는 예측은 틀렸다.

골드스타 내에서 천창현과 팀을 이루던 헌터들도 증발한 것처럼 같이 사라져 버렸다.

사람을 풀어 흔적을 뒤졌지만 마치 추적에는 이골이 난 사람처럼 그들은 포위망을 피해 숨어 버렸다. 하늘로 솟은 건지, 땅으로 꺼진 건지 도무지 알 수 없었다.

그리고 매서운 강추위가 휘몰아치는 2월.

[뉴스 속보입니다. 전국에 있는 모든 던전들이 일시에 폐쇄되는 일이 벌어졌습니다. 현재 헌터 협회에서 조사하고 있지만 뚜렷한 원인을 찾지 못하고 있습니다. 던전 사업을 진행 중이던 기업들이 큰 피해를 입었으며, 이 현상은 우리나라에 국한된 게 아닌 전 세계적인 현상으로 확인되었습니다. 전문가들은 또다시 격변이 도래하지 않을까 우려를 표하는 한편…….]

이 땅에 생겨난 모든 던전이 전조도 없이 일시에 폐쇄되었다.

일부 사람들은 던전이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것처럼 또한 갑자기 사라지지 않을까 기대했으나 대다수의 사람들은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라 불안해했다.

그리고 몇 주 뒤.

일부 던전이 개방되었다는 소식이 전해졌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포털이 검붉은 빛을 띠었다.

“뭐야? 히든 던전인가?”

“아니, 느낌이 조금 달라. 불길한데…….”

조사를 위해 던전에 들어갔던 헌터 협회 헌터들 모두 사망.

터무니없는 등급 상승이 원인이었다. 갑작스런 이변에 국제 사회가 혼란에 빠졌다.

그리고 천창현의 행적을 쫓기 위해 신경을 곤두세웠던 은새와 친구들은 빽빽하게 짜인 공략 일정으로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젠장, 던전이 왜 이 모양이야!”

덤벼드는 마수의 아가리에 창을 찔러 넣으며 솔이 짜증스럽게 소리쳤다. 쉬지 않고 이어지는 전투에 인내심이 끊어지기 직전이었다.

“이거 천가 놈이랑 관련된 거 아니야? 강림석 사용한 거 아니냐고!”

“천가 놈이 뭐냐, 천가 놈이……. 하지만 우리가 스토리형 던전에서 본 거랑은 다르잖아. 거기선 등급 상승 현상 같은 건 일어나지 않았어.”

“꼭 똑같이 흘러가라는 법 있어? 그게 아니면 멀쩡하던 던전이 갑자기 왜 이 모양이냐고!”

그때 은새가 어딘가를 가리키며 외쳤다.

“얘들아, 저길 좀 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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