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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73)화 (173/190)

171화 – 하지만 여기까지군

우리는 소리 높여 라크웰을 부르거나 하지 않고 검지만 까딱했다.

그의 도발에 기다렸다는 듯이 라크웰이 응했다.

조금 전 쿠랄이 혼자 날뛰다가 사망한 걸 보고도 그러했다.

솔직히 흥이 떨어지던 참이었다.

“어이, 라크웰! 너는 또 어디 가?!”

“있어 봐. 드래곤도 아니고, 인간들을 상대로 우리가 똘똘 뭉쳐 있는 것도 웃기잖아? 모양 빠지게!”

“네가 제멋대로 구는 걸 하야트 님이 용납하실 것 같아?”

“나중에 한 소리 듣지, 뭐. 그 하야트 님도 시작의 드래곤을 상대하느라 바빠서 이쪽에 전혀 신경을 못 쓰시는데.”

라크웰이 멀리서 번쩍거리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지상까지 퍼지는 흉악한 살기에 피부가 찌릿하고 피가 끓었다.

“왜 나는 그러면 안 돼? 저자들은 내 사냥감이다.”

“이 싸움광 자식이…….”

손마디를 우드득 꺾으며 진열을 이탈해 버리는 라크웰 때문에 센도라가 골치 아프다는 표정을 지었다.

원래 언노운은 대륙 각지에서 저 잘났다고 날뛰던 이들을 하야트가 힘으로 굴복시켜 모아 놓은 한시적 동맹체였다.

하야트의 ‘신이 되겠다’는 목적을 이루기 위한.

초월종인 드래곤을 사냥할 때는 어쩔 수 없이 힘을 합쳤지만 근본은 동료 의식이 전혀 없는, 뼛속까지 이기적인 망종들이라는 뜻이었다.

하야트라는 압제자가 눈을 떼자 분열하는 건 당연했다.

그러니 지시를 따르지 않는다고 해서 센도라가 라크웰의 행동을 막을 권한은 없었다.

라크웰은 앞을 막아서는 마수들을 무참히 베어 넘기며 전진했다.

광기로 반질거리는 그의 시선은 우리와 김우종, 육재희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마치 당장 너희를 도륙 내러 갈 테니 딱 기다리고 있으라는 것처럼.

“한우리 헌터, 계획이 있습니까?”

미간을 모은 육재희가 작은 목소리로 속사포처럼 질문했다.

라크웰의 무력은 재앙이라고 여겨질 만큼 대단했다. 단신으로 도시를 무너뜨릴 정도였으니.

게다가 신체 부위가 잘려 나가도 목숨을 내놓기라도 한 것처럼 꺾이지 않는 기세.

인간의 본능적인 방어기제가 작동하지 않는 듯 그는 오로지 쾌락만을 추구하며 모든 걸 파괴했다.

싸울 때 두려운 상대는 이런 자들이었다. 목적도 사명도 없이 오로지 싸우는 것에 목숨을 거는 이들.

“……네. 아까 보니까 저희, 나름대로 합이 잘 맞을 것 같은데.”

우리가 땀이 배어 나오는 손을 말아 쥐었다.

시간이 없어 길게 말하지 못하고 생각한 바를 핵심만 간결하게 전달했다.

“해 보죠. 찬물 더운물 가릴 처지가 아니니까요.”

김우종이 먼저 나섰다. 지척까지 다가온 라크웰을 향해 그의 검이 쇄도했다.

청풍검신이라는 이명답게 그의 강점은 바람의 결을 베어 내는 유연하고 현란한 검.

그러나 지금 그는 몰아치는 태풍처럼 공격 하나하나가 매섭고 폭발적이었다.

“크하하핫! 아까와 똑같은 수법이냐? 이러면 기껏 빠져나온 의미가 없는데. 좀 더 발악해 봐라!”

번쩍하고 라크웰이 검을 내리쳤다. 쉴 틈 없이 몰아치는 공격에 김우종이 빠드득 이를 깨물었다.

육재희가 사검으로 라크웰의 하체를 속박했다. 실처럼 가느다란 검이 그의 몸을 파고들었으나 호신강기를 둘렀는지 효과는 미미했다.

‘허점!’

하지만 김우종이 찰나의 틈을 파고들어 남자가 미처 반응하기도 전에 치명적인 일격을 가했다.

그걸 라크웰이 맨손으로 잡아챘다. 어찌나 억세게 쥐었는지 검이 부르르 떨릴 정도였다.

피가 주르륵 흘러내리는데도 라크웰의 광분에 찬 눈동자는 꺼질 줄을 몰랐다.

그 눈빛을 마주한 김우종은 벌써 몇 번째인지 모를 소름이 쫙 끼쳤다.

한편 우리는 검을 역수로 쥔 채 팔을 내리그었다.

벌어진 상처에서 검은 피가 흘러내리면서 검푸른 빛깔의 거품이 일었다.

현기증이 일 정도로 피를 뽑아낸 우리는 최상급 포션을 하나 비우고 병을 아무 데나 내던졌다.

‘이 싸움에 내 모든 걸 건다.’

인찬의 싸움을 보고 느꼈다. 자신은 과연 ‘온 힘을 다해서’ 이번 전투에 임했나?

필살기를 썼다고 해서, 제일 앞에 나서서 싸웠다고 해서 가진 능력을 모두 발휘했다고 할 수 있을까?

그가 여전히 전장에 서 있는 것만 봐도 답은 ‘아니요’였다. 정말 사력을 다해서 싸웠으면 그조차도 불가능했을 것이므로.

우리는 스스로가 자만했음을 인정했다.

상황이 앞으로 어떻게 흘러갈지 몰라서, 만일의 사태에 대비해야 하니까, 자신은 한국 1위 길드의 길드장이니까.

─그러니까 내가 끝까지 남아야 해.

지독히 독선적인 생각이었다. 자신이 아니면 안 된다는 생각.

‘나는 헌터다.’

정신을 몽롱하게 하는 독향이 잠식해 가는 가운데 우리가 하얗게 뼈가 드러나도록 검 자루를 움켜쥐었다.

등급 떼고, 길드장이라는 직함 떼고 그는 헌터였다.

전장을 가리는 건 헌터답지 못한 태도였다. 다음을 생각하지 못할 정도로 몰두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지금 이 현장에는 그가 아니어도 ‘다음’을 책임져 줄 능력자들이 많다는 걸 다시금 되새겼다.

챙! 챙! 끼기긱.

“하하하! 그래, 더 발악해라! 보잘것없는 재능에 절망하고 살려 달라고 애원해라!”

“네놈은 주둥이로 싸우는 거냐! 그 입…… 닥쳐!”

희번덕거리는 눈을 치뜬 라크웰이 김우종과 육재희를 몰아붙였다.

힐러와 보조계들의 지원이 쏟아지는데도 라크웰의 순수한 괴력은 무시무시한 수준이었다.

정녕 인간이 맞는지 의심스러울 정도였다.

푹!

“큭!”

“김우종 헌터!”

김우종의 옆구리에 대검이 틀어박혔다. 척 보기에도 생명을 위협할 만한 치명상이었다.

그때 하늘로 솟구친 우리가 라크웰의 정수리를 노리고 수직으로 낙하했다.

살기를 감지한 라크웰이 물러나면서 검을 비틀어 상처를 벌렸다.

육재희가 다급히 김우종을 둘러업고 뒤로 빠졌다. 핏물이 왈칵 쏟아졌다.

“……한우리 헌터.”

“김우종 헌터 데리고 빨리 후방으로 가세요.”

육재희가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저자를 한우리에게만 맡기고 물러나는 게 불안했으나 지금은 사람을 살리는 게 우선이었다.

“금방 돌아오겠습니다.”

“크흡, 한우리…… 헌터.”

후방으로 운반되기 전 김우종이 힘겹게 입을 뗐다.

“‘작업’은 끝마쳤습니다.”

“수고하셨습니다.”

다른 말은 필요 없었다. 비록 김우종은 여기서 퇴장하지만 임무를 완수했으니 계획대로 흘러가고 있었다.

우리의 눈동자가 어느 때보다 냉철하게 가라앉았다.

“다음은 너냐? 주변에 이건, 독기인가?”

어느새 주변을 잠식한 검푸른 빛의 방울들을 툭툭 건드리며 라크웰이 이죽거렸다.

퍽, 소리를 내며 터진 암혈의 독기에 피부가 타들어 가는데도 고통스러운 기색 하나 없었다.

“나한테는 소용없다는 거 잘 알 텐데.”

“그건 두고 봐야 알겠지!”

두 사람이 맹렬하게 격돌했다. 섬광이 튀어 오르며 정신없이 검이 맞부딪쳤다.

한 합이라도 놓치면 그대로 절명할지도 모른다는 위기감에 눈 깜빡일 새도 없었다.

순식간에 수십 합이 오갔다. 뼈가 으스러질 것 같은 통증이 덮쳤다.

“크하핫! 역시 네놈이랑 싸우는 게 손맛이 좋다니까! 한눈팔지 마라, 그랬다간 내 손에 목이 달아날 테니!”

“…….”

자세를 바꾼 우리의 검 끝에서 그윽한 향을 풍기는 연꽃이 피어났다.

수백 송이에 달하는 연꽃은 시야를 어지럽히며 라크웰의 움직임을 제한했다.

“꽃이라! 네놈과 지지리도 안 어울리는 이미지이군!”

“네놈이 미학을 알겠냐!”

김우종의 검술을 주의 깊게 보았던 우리는 불규칙적으로 난무하는 검격 속에서 충돌이 만들어 내는 결을 발견했다.

‘꿰뚫는다!’

결을 향해 칼을 내지른 우리는 살을 파고드는 특유의 감각이 손끝으로 느껴졌다.

촤악!

라크웰의 가슴에 상처가 쩍 벌어졌다. 놀란 듯 커졌던 그의 눈이 희열로 들어찼다.

흘러내리는 피를 손으로 훑어 입으로 가져간 그는 보란 듯이 빨아먹었다.

“이 사이에 발전했나? 대단한 재능이군.”

“너한테 그런 말 들어도 하나도 안 고맙거든?”

“진심이다. 내가 있던 세계에서도 몇 안 되는 재능이야. 오늘 나를 적으로 만난 게 네놈의 가장 큰 불행이겠군.”

“그 말 그대로 돌려주마!”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도 우리는 한 마디도 지지 않고 맞받아쳤다.

그때쯤 육재희가 돌아왔다. 속삭이듯 김우종의 상태를 전했다.

“생명에는 지장이 없다고 합니다.”

“다행이군요.”

“아쉽네, 일격에 숨통을 끊어 놨어야 했는데!”

그걸 또 들은 라크웰이 성질을 긁었다.

사인을 주고받은 육재희와 한우리가 양쪽에서 달려들었다.

바람의 이능과 사검으로 육재희가 활로를 열면 우리는 기회를 놓치지 않고 파고들었다.

용맹하면서도 아름답게 피어나는 검무.

“하하하! 하하하!”

몸에 상처가 늘어 가는데도 라크웰은 광소를 터트렸다. 정신 공격이라면 정신 공격이었다.

암혈의 독기를 흡수해서 상처가 썩어들어 가고 육체 능력이 눈에 띄게 저하됐는데도 그는 아랑곳하지 않았다.

외려 맨정신으로 생살을 도려내는 기상천외한 모습을 보였다.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기가 질릴 정도였다.

실처럼 가느다란 검이 라크웰의 무기를 휘감아 움직임을 저지하자 그는 오히려 역으로 사검째로 끌어당겨 육재희를 공중에 날려 버렸다.

파지직거리며 라크웰의 검에 에너지가 집중되었다. 유성처럼 쏘아진 섬광이 육재희에게 직격했다.

“육재희 헌터!”

“크흑!”

우리가 초조하게 육재희의 상태를 살폈다. 피투성이가 된 그는 정신을 잃은 듯 보였다.

‘숨을…….’

쉬고 있는 건가?

미동도 하지 않는 육재희 쪽으로 걸어간 라크웰이 피에 젖은 머리를 쓸어 올렸다.

“후우! 네놈도 그리 나쁘지 않았다. 하지만 여기까지군.”

다시 한번 검 끝에 에너지가 집중되는 순간.

챙!

균열이 깨지는 소리가 들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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