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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70)화 (170/190)

168화 – 어느 쪽이 더 빠를까?

눈 폭풍이 휘몰아치기 시작했을 때, 은새는 생각했다.

‘벨키오르 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리면 늦어.’

솔직한 마음으로는 벨키오르가 이곳에 오지 않았으면 했다.

비록 인간들이 상대하기 어려운 적이라고 하나 자신들은 어떻게든 돌파구를 마련할 테니 차라리 볼일이 늦어져서 그가 저들의 침입 사실을 모르기를 바랐다.

벨키오르를 쫓아 세계를 건너온 이들이 좋은 의도를 가지고 있을 것 같지 않았다.

그가 아무리 강한 종족이라고 해도 반려로서 걱정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하지만 그가 와야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시간이 얼마 없어.’

전투가 쉽게 결판나지 않을 것 같은 반면, 헌터들은 지쳐 가고 있었다.

힐러들이 기를 쓰고 부상자들을 치유했지만 결국 사망자가 나왔다.

그에 더해 적들의 초재생에 가까운 회복력을 봤으니 사기는 더 떨어질 수밖에 없었다.

‘……좋아. 해 보자.’

그녀는 할 수 있는 모든 일을 하기로 결심했다.

도다리의 등에 올라탄 은새는 눈보라가 몰아치는 먼 곳을 바라봤다.

사위가 어두컴컴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설산에 갇힌 조난자라도 된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SS급이 되고 나서 은새는 단 한 번도 능력을 극한으로 사용해 본 적이 없었다.

우선 익숙하지 않았고, 그럴 기회가 없었기 때문에.

오늘 그 기회가 왔다.

휘이익!

은새가 이능을 담아 휘파람을 불었다.

미약한 그 소리는 거센 바람 소리에 묻히는 게 당연했으나 의외로 청아하게 울려 퍼졌다.

지상의 헌터들이 그녀를 올려다보았고, 유하도 영문을 알 수 없는 은새의 행동에 의문을 표했다.

“은새야, 뭐 하는 거야?!”

“응, 생각 중인 게 있어!”

그렇게 대답한 은새는 조금 전보다 더 크게 휘파람을 불었다.

휘이익!

당연히 되돌아오는 소리는 없었다.

그래도 은새는 눈보라 속에 시선을 고정한 채로 기다렸다.

……컹! ……크륵.

바람 소리에 이질적인 소리가 섞인 건 얼마쯤 지나서였다.

두두두…….

심상치 않은 땅 울림이 느껴졌다.

전투에 집중하던 이들이 바짝 긴장했다.

“뭐야?! 또 다른 적인가? 아니면 저자가 또 뭔 짓을 한 거야?”

“아니야, 저기를 봐!”

“……마수?! 저렇게 많이!”

이곳은 북한이 붕괴한 이래 ‘마굴’이라 불릴 정도로 마수가 들끓는 땅.

은새가 새로 얻은 능력은 시야에 닿지 않는 마수에게까지도 통제력을 발휘하는 것이었다.

그녀의 확장된 기감은 수천 킬로미터 내에 있는 모든 마수의 기척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것들을 전부 끌어올 수만 있다면.

눈으로 다 헤아릴 수 없는 엄청난 수의 마수들이 설원을 뒤덮고 새카맣게 몰려왔다.

“흐읍!”

확실히 자주 사용할 만한 능력은 아니었다.

은새는 심장이 쥐어짜지는 것 같은 통증과 함께 극심한 탈력감을 느꼈다.

지금 이 순간에도 계속해서 이능이 빠져나가고 있었다.

그러나 무리한 만큼 결과를 기대해 볼 만했다.

“유, 유은새 헌터의 스킬이야! 몬스터 테이밍이라고!”

“이게 어떻게 가능한 일…… 아니, 저건 현실이야! 기적이라고!”

“다들 겁내지 마라! 원군이다!”

지상의 헌터들이 사태를 파악하고 환호했다.

절망이 잠식해 가던 그들 사이에 희망이 피어올랐다.

경탄 어린 시선들이 은새를 향했고, 그녀는 응답하듯 고통을 숨긴 채 살짝 웃어 주었다.

‘헌터들의 사기도 끌어 올렸고, 마수들까지 가세하면 이제 승산이 있어. 카마엘의 검을 꺼내서…….’

그때였다.

“악!”

공중에서 낚아채는 억센 손길에 은새가 비명을 질렀다.

끼에에엑!

도다리가 놀라서 피어를 내질렀으나 이미 은새는 언노운의 수장의 손에 붙잡힌 뒤였다.

“은새야!”

“유은새 헌터!”

그녀를 부르는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

은새는 떨리는 시선을 들어 하야트의 붉은 눈동자와 마주했다.

전투에 참여하지 않은 그는 먼지 하나 묻지 않은 멀끔한 행색이었으나 숱한 생명을 갈취해 온 자 특유의 역한 피비린내가 났다.

은새가 저도 모르게 코를 손으로 막았다.

“안 되지. 이런 잔재주를 부리는 건.”

“아윽……. 이거 놔!”

“인간치고는 제법 쓸 만한 능력을 지녔군 그래. 그래서 시작의 드래곤이 흥미를 보인 건가?”

“……뭐?”

은새가 행동을 멈추고 믿을 수 없다는 눈빛을 했다.

하야트가 입꼬리를 비틀어 웃었다.

“시작의 드래곤의 반려. 너에게서 천박한 드래곤의 냄새가 아주 진동을 하는군.”

“그게 무슨…….”

은새가 입을 다물었다. 머릿속이 복잡하게 굴러갔다.

‘냄새라고?’

자신에게 무슨 냄새가 났으면 친구들이나 주변 사람들이 말해 줬을 것이다.

그렇다는 건 아마 일반적으로 맡을 수 있는 냄새가 아니라는 뜻.

가끔 별이가 자신의 품에 안겨서 ‘좋은 향기가 나요.’ 하고 비비적거리던 것을 생각하면 아이는 알고 있었던 모양이었다.

모르고 있던 사실이지만 자신은 벨키오르의 반려였으니 그런 건 아무래도 상관없었다.

‘그런데 이 남자는 어떻게 안 거지?’

그가 벨키오르의 동족이라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드래곤을 많이 만나 본 것은 아니지만 느낌이…… 달랐다.

자연을 관장한다는 그들이 이런 피비린내를 풍길 것 같지 않았다.

한편 하야트는 물건을 살피는 시선으로 은새를 바라봤다.

그녀의 존재를 알아채고도 바로 사로잡지 않은 이유는 단순했다.

그의 시야에 들어온 이상 언제든 붙잡을 수 있었기 때문에.

거미가 사냥감을 바로 포식하지 않고 내버려 둔다고 해서 살려 준다는 뜻이 아닌 것처럼.

“……당신들은 왜 이 세계로 온 거죠? 무엇을 노리고?”

“내 소개를 하지. 내 이름은 하야트. 하늘의 신 모아누의 서자이며…….”

내려다보는 붉은 눈동자가 잔인한 빛을 띠었다.

“드래곤 슬레이어다. 시작의 드래곤을 사냥하기 위해서 왔다.”

“……!”

은새의 심장이 쿵 내려앉았다.

지금만큼은 이능의 과용으로 인한 고통도 느껴지지 않았다.

‘벨키오르 님을 사냥할 거라고?’

드래곤 슬레이어, 다른 말로 용살자.

드래곤의 천적이나 다름없는 이들이었다.

예전에 벨키오르에게 용살자에 대해 들은 적이 있었으나 그다지 신경 쓸 필요가 없다고 해서 잊고 있었다.

그런데 그자가 눈앞에 나타났다. 뚜렷한 목적을 가지고.

‘벨키오르 님과 절대 만나게 해서는 안 돼.’

낯빛이 희게 질렸던 은새가 입술을 잘근잘근 깨물었다.

그녀가 느낀 바로 하야트는 강했다. 그의 부하들보다도 더.

벨키오르를 믿지만 하야트의 몸에서 나는 피비린내가 누구의 것인지를 알게 되자 불안감이 물밀듯이 밀려왔다.

더군다나 서자이긴 해도 신의 핏줄이라고 하니 그 감정이 증폭되었다.

차라리 벨키오르가 자리를 비운 게 천만다행이었다.

“벨키오르 님은 절대 오시지 않을 거야. 허튼짓 그만두고 당신들 세상으로 돌아가!”

“안 그래도 이상하게 여기던 차다. 이만큼 난동을 부렸으면 나타날 만도 한데 이토록 잠잠하다니. 그는 어디 있지? 반려를 두고 멀리 가지는 않았을 터.”

“…….”

“아니면 내가 무서워 숨기라도 했나?”

조롱의 뜻이 여실한 말을 듣고 은새가 울컥했다.

그러나 쉽게 흥분할 만큼 그녀는 어리지 않았다.

“도발해 봤자 그분을 만날 수는 없을 거야. 나를 인질로 잡는다 해도…….”

“너는 드래곤의 반려에 대한 집착을 모르는군.”

“뭐?”

“오만한 그들이 딱 하나 귀히 여기는 게 있다면 그게 바로 반려다. 게다가 이리도 지독하게 영역 표시를 해 놓았는데 인질로서 효용이 없을 거라고? 순진하군.”

하야트는 미소 짓고 있되 전혀 웃지 않는 눈으로 은새를 직시했다.

“너를 건드리면 어떤 식으로든 반응이 오겠지. 시험해 보면 되겠군.”

“그만해!”

하야트가 손을 뻗어 은새에게 해를 가하려던 그 순간이었다.

번쩍!

시야를 멀게 하는 환한 빛이 터지더니 한쪽 팔과 더불어 하야트의 상체 절반이 날아갔다.

끔찍한 광경에 은새의 눈동자가 커졌다.

‘이건!’

벨키오르의 마법이었다.

그녀의 몸 주변으로 파지직거리며 금색 마력의 잔상이 떠다녔다.

“……하! 그럼 그렇지. 방비를 안 해 뒀을 리가.”

평범한 사람이라면 즉사를 면치 못할 중상임에도 하야트는 기가 찬다는 듯 비아냥거릴 뿐이었다.

그가 권능의 힘을 발휘했다.

부하들이 그랬듯 초재생에 가까운 엄청난 회복력으로 금세 본래의 모습을 되찾았다.

“방금 걸로 시작의 드래곤도 눈치챘을 테고. 이제 시간문제겠군. 그가 모습을 드러내거나 너를 보호하고 있는 마법이 모두 깨지거나.”

하야트가 섬뜩하게 웃었다.

“어느 쪽이 더 빠를까?”

퍽! 퍽! 퍽!

몸이 몇 번이나 터져 나가는데도 그는 고통을 못 느끼는 것처럼 쉴 새 없이 은새에게 살기를 내뿜었다.

퍼억!

은새를 감싸고 있던 금빛 마력이 전부 사그라들었다.

다시 몸을 수복한 하야트가 만족스러운 탄성을 내뱉었다.

“이게 마지막이었군.”

“…….”

“이 정도로 늦다니 유감인걸. 이봐, 인간. 네가 죽는 이유는 더러운 드래곤의 눈에 들었기 때문이다. 그러니 원망하면서, 죽어.”

은새는 눈도 감지 않고 하야트의 손길이 뻗쳐 오는 걸 노려봤다.

──!

다음 순간, 일대를 잠식할 만한 새하얀 섬광이 하야트에게 직격했다.

무슨 일이 일어난 건지 인지할 겨를이 없었다.

눈 폭풍도 이 순간만큼은 힘을 잃고 멈췄다.

간신히 시야를 회복한 은새가 어느새 그녀 앞을 가로막고 선 이의 이름을 불렀다.

“벨키오르 님…….”

그가 오지 않길 바랐지만 어쩔 수 없는 안도감에 목소리가 떨렸다.

“버러지 같은 반쪽짜리가 지금 누구의 몸에 손을 댄 거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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