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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65)화 (165/190)

163화 – 허락받으러 갈 거야

벨키오르는 눈앞의 이를 보며 못마땅한 표정을 지었다.

아케이아는 그에 아랑곳없이 손님을 대접할 차를 우렸다.

그윽한 향기가 퍼져 나가는데도 벨키오르는 입구에 선 채로 미동도 하지 않았다.

결국, 먼저 입을 뗀 것은 벨키오르였다.

“왜 부른 거지?”

“반려와의 좋은 시간을 방해한 건 미안한데, 앉아. 아직 항아리에 물이 차지 않았거든.”

아케이아의 시선이 흘긋 옆으로 향했다.

아무것도 드리워 있지 않았건만 입구가 좁은 항아리에서 똑, 똑 물방울 떨어지는 소리가 났다.

평범한 항아리가 아닌, 그녀가 예언의 능력을 발휘할 때 사용하는 도구였다.

물의 높이를 가늠한 벨키오르가 마지못해서 자리에 앉았다.

저것이 완전히 차오를 때까지 아케이아가 본론을 꺼내지 않으리라는 걸 직감했기 때문이었다.

“지난번에는 일부러 그런 건가?”

“네 반려가 왔을 때? 글쎄. 내가 뭘 했던가?”

“괜한 짓을 했군. 네가 나서지 않았어도…….”

“고마우면 고맙다고 해. 너답지 않게 말꼬리가 기네.”

“…….”

벨키오르의 매끈한 미간이 좁아 들었다.

언짢아도 반박할 수 없었다.

아케이아의 행동으로 인해 은새와 벨키오르의 사이에 진전이 생긴 건 사실이었으므로.

“다음부터는 그런 불쾌한 방식으로 내 반려를 상처 주지 않았으면 한다.”

“그래서, 네 반려가 날 원망하고 있어?”

“그녀의 성정이 워낙 선한 탓에.”

“그럼 됐네. 더 할 말 있어?”

아케이아가 벨키오르의 말을 끊었다.

다 안다는 듯한 백색 눈동자가 지그시 응시해 오자 그는 입을 다물었다.

한숨을 내쉰 벨키오르는 더 이상의 말은 무의미하다고 판단하고 고개를 돌렸다.

앞에 놓인 찻잔에는 손도 대지 않고 무료하게 시간을 보냈다.

항아리에 물이 떨어지는 소리만 간간이 들릴 뿐이었다.

“물어볼 게 있다.”

“말해.”

“‘반려의 인’처럼 그녀와 나 사이에 생명력을 공유할 방법이 있나?”

아케이아가 손끝으로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단순히 생명력을 전해 주는 방법이라면 있어. 하지만 네가 원하는 건 그런 게 아니잖아.”

“…….”

“그보다 단단한 영혼의 결속이겠지.”

질문의 본질을 짚는 말이었다.

벨키오르는 눈빛으로 대답을 재촉했다.

“벨키오르. 너는 ‘반려의 인’이 왜 생겨나는지 알아?”

“…….”

“아무리 우리가 하늘에 닿은 종족이라고 해도 완벽하진 않아. 신이 아닌 이상, 피조물에 불과하지. 의식하지 못해도 내면에, 영혼에 빈틈을 가지고 있어.”

“알고 있다.”

“그리고 반려는 우리를 신이 아니되 완벽하게 만들어 주는 ‘조각’이고. 반려의 인은 그래서 생겨난 거야.”

세상의 섭리는 결코 허술하지 않다.

온전한 하나를 둘로 쪼개 놓을 수는 있어도 처음부터 모자란 경우는 없었다.

수천 년을 홀로 살아온 벨키오르에게도 원래 그의 일부였던 조각이 어딘가에 존재할 터였다.

드래곤에게 운명과도 같은 ‘반려의 인’이 그에게만 나타나지 않는 건.

“하지만 너는 여태 내숭 부리느라 반려에게 가장 진실된 모습을 보여 주지 않았잖아.”

“무슨 뜻이지?”

“알아들었으면서 모른 척하기는.”

똑.

항아리의 물이 다 차올랐다.

절대 움직이지 않을 것처럼 자리를 지키던 아케이아가 테이블을 치우고 일어났다.

“시간이 됐어. 일어나, 같이 가야 할 곳이 있어. 채비는…… 할 필요 없겠지. 바로 가자.”

“어디 가는 거지?”

일방적으로 대화가 끊겨 벨키오르가 불편한 심기를 드러냈다.

그러거나 말거나 아케이아는 레어 밖으로 나갔다.

주인이 떠나니 벨키오르도 뒤따를 수밖에 없었다.

“신계.”

“……신계?”

그의 걸음이 우뚝 멈춰 섰다.

“무슨 일이 생긴 건가?”

“정확히는 생길 예정이지.”

아케이아가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돌아보았다.

“너와 무관하지 않은 일이야.”

“말해. 신계로 가는 이유가 뭐지?”

아케이아는 팔을 뻗어 신계로 가는 문을 열었다.

그녀의 얼굴이 자못 싸늘했다.

“하늘의 신, 모아누에게. 그의 서자를 죽일 것을 허락받으러 갈 거야.”

***

천창현이 복도를 걷고 있었다.

그가 지나가는 것을 보고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렸다.

그의 발길이 닿은 곳은 6층, 아이템 제작실이었다.

“창현아, 빨리 왔네.”

“내가 말했던 건?”

졸고 있던 김일문이 문 열리는 소리에 화들짝 깨어 순하게 웃었다.

그는 쭉쭉 스트레칭을 하고 암막 커튼을 걷었다.

어둡던 내부에 환한 빛이 들었다.

“음. 다 만들어 놓긴 했는데…….”

천창현의 시선이 김일문이 가리키는 곳을 따라갔다.

심연이 깃든 것처럼 검게 가라앉아 있던 눈동자에 순간 기묘한 이채가 돌았다.

“네가 요구한 사양대로 제작했어. 이 정도면 내가 만든 아이템 중에서도 상등품에 속할 거야. 품은 기운이 꺼림칙해서 나는 절대 다시 만지기 싫지만……. 그런데 진짜 재료들을 어떻게 구했어?”

“잘.”

김일문이 만든 건 중국 4흉수라 불리는 혼돈, 궁기, 도올, 도철의 신기가 담긴 무구였다.

사악하고 불길한 기운을 내뿜는 그것들을 천창현은 거리낌 없이 손에 쥐었다.

특히 붉게 번뜩이는 단검은 스치기만 해도 저주에 걸리거나 끔찍한 질병을 유발할 것 같았다.

이는 느낌만이 아니라 실제 단검이 가지고 있는 효과였다.

김일문이 ‘으으.’ 하고 벽까지 물러났다.

“대체 누구와 싸우려고 이만한 악의를 담은 무구를 만들어 달라고 한 거야? 백찬민 길드장도 죽었잖아.”

“있어. 내버려 두면 후환이 될 자가.”

“전부터 느꼈지만, 너는 왜 그렇게 적을 많이 만들고 다녀…….”

회귀자인 천창현에게 4흉수의 소재를 찾는 건 그다지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그는 자신을 은밀하게 따라다니는 한서리를 제거할 목적으로 이 무구들을 제작했다.

한서리가 사용하는 ‘타나토스의 낫’과 ‘저승 명부’ 스킬은 그 특이성 때문에 천창현에게도 위협적이었다.

피할 수 없는 죽음은 더 큰 살의로 맞받아쳐야 하는 법.

천창현이 단검의 날을 손으로 쓱 훑어 내리며 웃자 소름이 끼친 김일문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걱정이네, 정말.’

천창현을 만나기 전 김일문은 이중 계약서로 묶여 백찬민에게 오랜 기간 착취당했다.

하기 싫은 일을 억지로 하며 삶의 의욕마저 잃고 어떻게 하면 덜 아프게 죽을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던 차에 어느 날, 머리부터 발끝까지 새카만 남자가 나타났다.

‘백찬민의 손아귀에서 널 자유롭게 해 주지. 네가 만든 무기로 백찬민에게 복수할 수 있는 기회야. 내 손을 잡으면 절대, 후회하지 않을 거야.’

악마의 속삭임처럼 수상하면서도 혹하는 제안이었다.

다 포기하고 있었는데 자유라니, 복수라니……?

그때만 하더라도 천창현은 막 골드스타 길드에 입사한, 떠오르는 루키일 뿐이었다.

게다가 A급.

S급인 백찬민을 무슨 수로 상대하겠다는 것인지 지극히 오만했다.

그러나 김일문은 많이 지쳐 있었고, 이 지옥에서 벗어날 수만 있다면 악마에게 영혼이라도 팔 수 있었다.

이후 천창현은 본인이 말한 것처럼 백찬민에게서 김일문을 빼냈고, 얼마 전에 비로소 백찬민을 살해하는 데 성공했다.

자유.

어렵게 되찾은 자유에 김일문은 백찬민의 장례식에서 탈진할 정도로 펑펑 울어 댔다.

참을 수 없이 기뻐서, 안도해서.

자신의 인생을 구제했어도 천창현이 의로운 사람이 아니라는 걸, 외려 악인이라고 부를 만큼 잔혹하고 끔찍한 짓을 저지르고 다닌다는 걸 김일문도 눈치채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자라도 김일문에게는 구원자나 마찬가지였다.

영혼을 팔았으니 그를 위해 일하는 건 당연했다.

“어, 길드원 소집 명령 떨어졌다.”

반짝이는 핸드폰을 김일문이 확인했다.

이 시기에 소집이라면 아마도 중국에 테러를 가하고 북한을 통해 한국으로 내려오고 있다는 ‘언노운(Unknown)’들 때문일 터였다.

그들 때문에 사람들이 난리니까.

“창현아, 가자. 부길드장님이 부르셔.”

“어.”

알 수 없는 표정을 한 그가 김일문의 뒤를 따라 걸음을 옮겼다.

***

한국 정부는 미증유의 사태에 측정 불가 등급의 테러범들을 ‘언노운(Unknown)’이라 명명하고 길드들을 소집해 비상 대책 회의를 열었다.

지역에 상관없이 한국에서 내로라하는 길드들이 전부 한자리에 모였다.

“날씨 한번 꾸리꾸리하네. 으~ 추워!”

차에서 내린 양희진이 툴툴거렸다.

하늘은 먹구름이 잔뜩 껴 있었고 빗방울이 한두 방울씩 떨어졌다.

이런 날은 고데기를 해도 금방 풀려서 정말 싫었다.

“희진아, 입구는 이쪽이다.”

“네에, 길드장님!”

혜화 길드의 길드장, 목화시가 양희진을 챙겼다.

그녀는 중년의 나이임에도 강건한 육체와 태산 같은 기백을 지니고 있었다.

입구로 향하는 그들에게 누군가 말을 걸었다.

“오, 목화시 길드장~ 오랜만이야. 꼬맹이도 왔네.”

“아저씨!”

비슷하게 도착한 김일도가 슬렁슬렁 걸어왔다.

톈진 던전 브레이크를 함께 해결하면서 사이가 끈끈해진 양희진과 김일도가 하이파이브를 하는 걸 목화시가 못마땅하게 바라봤다.

“능구렁이 같은 낯짝은 여전하군, 김일도 길드장. 몸 관리 안 하나? 피둥피둥하잖아.”

“길드원이나 길드장이나 똑같은 소리 하기는. 나름대로 관리한 거거든?!”

“변명하지 마. 살 만한가 보지?”

“어. 마누라랑 행복한 나날을 보내고 있었는데 이게 뭔 일이냐, 진짜.”

김일도가 과장스럽게 한숨을 내쉬었다.

그때 묵직한 엔진 소리가 들리고 던전 부산물로 만들어진 SUV 차량이 들어섰다.

“골드스타 길드에서도 왔네.”

육재희와 간부들이 차에서 내렸다.

그들을 보는 사람들의 분위기가 기묘했다.

백찬민의 죽음으로 인해 골드스타 길드의 입지가 애매해졌기 때문이었다.

부길드장 육재희가 길드의 와해를 막기 위해 백방으로 뛰어다니고 있었으나 원래 골드스타 길드는 백찬민 길드라고 불릴 정도로 그의 상징성이 컸다.

“그 소문 들었어? 금성 그룹에서 육재희 헌터가 길드장 자리에 오르는 걸 반대한다던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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