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63)화 (163/190)

161화 – ‘시작의 드래곤’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년 새해가 밝았습니다. 오늘도 강추위가 계속되고 있는데요…….]

[어제 낮, 대구 수성구 던전에서 히든 던전화 현상이 발생했습니다. 기존 C등급이었던 이 던전은 A급으로 격상돼 공략 중이던 헌터들이…… 피해 규모는…….]

[겨울이면 생각나는 국밥. 전국에서 가장 맛있는 국밥집이 있다고 해서 찾아왔습니다. 사장님~]

[골드스타 길드의 차기 길드장으로 육재희 헌터가 유력한 것으로 알려져…….]

길드 휴게실에 드러누운 서호랑이 무성의하게 티브이 채널을 돌렸다.

뭔가 보려는 건 아니고 습관적인 행동이었다.

삑!

[전 세계적으로 스토리형 던전이 확산되는 가운데, 국제 헌터 연합에서는 던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조사단을 구성하는 한편…….]

“스토리 형 던전, 저거 난리네. 하기야 그럴 수밖에 없지. 꽤 의미심장한 내용이니까.”

어느샌가 나타난 이예나가 서호랑이 들고 있는 한 입 먹은 붕어빵을 뺏어 갔다.

호로록 사라지는 붕어빵에 서호랑이 펄쩍 뛰었다.

“앗, 내 붕어빵!”

“음식 앞에 놓고 고사 지내냐? 다 식었잖아.”

“왜 먹던 걸 가져가요!”

“원래 남의 떡이 더 커 보이는 법이야.”

“하씨…….”

서호랑은 막내의 설움을 토로하며 흰 봉투에서 새 붕어빵을 꺼냈다.

기름 묻은 손을 휴지로 닦은 이예나가 흘러나오는 뉴스를 심각하게 바라봤다.

“뭔가 변화가 오는 건 확실한 것 같은데. 길드장님이 하신 말씀도 있고.”

“격변 이후 최대 위기가 올 거라는 말씀요?”

“조용히. 누가 들으면 어쩌려고.”

“우리밖에 없잖아요.”

“그래도 말조심하라고. 어디에나 듣는 귀가 있는 거 몰라?”

서호랑이 붕어빵을 입에 쑤셔 넣으며 꿍얼거렸다.

자기가 먼저 말했으면서……. 아무튼 만만한 게 나지.

핸드폰을 하던 엘레나 킴이 대화에 끼어들었다.

“그런데 스토리형 던전이 다른 차원을 연결한다는 게 사실일까? 이 너른 우주에 생명체가 우리만 있을 거라고 생각하지는 않았지만 막상 다른 세계라고 하니 신기하다.”

“길드장님 보고서 봤잖아. 그러니 전 세계가 저 난리인 거고. 믿을 수밖에 없지.”

이예나가 스토리형 던전을 공략 중인 나라를 비추는 티브이 화면을 가리켰다.

박도윤 팀을 비롯한 도천 길드의 핵심 공략팀들은 ‘시그라엘의 시험’ 던전의 공략 보고서를 본 상태였다.

다소 충격적인 내용이었다.

세계의 포식자와 종말의 씨앗이라니.

벨키오르가 알려 준 내용이라고 한우리가 말하지 않았으면 절대 믿지 못했을 터였다.

그들이 사는 세상이 멸망할지도 모른다는데 어느 누가 선뜻 받아들일 수 있겠나.

미디어에서 나오는 건, 스토리형 던전의 특이성뿐이다.

내용도 보상도 일반인들에게는 공개되지 않았다.

사람들의 혼란을 방지하고 정보를 통제하려는 목적이었다.

그러나 ‘시그라엘의 시험’과 비슷한 스토리형 던전을 겪은 나라들은 세계의 포식자라든가, 종말의 씨앗 같은 자세한 내막은 몰라도 이 세상에 심상치 않은 일이 벌어지고 있음을 본능적으로 느꼈다.

“이걸로 던전이 다른 세계를 잇는 문이라는 가설은 거의 진실로 판명된 거나 마찬가지네.”

“그러게요.”

“앞으로 뭔 일이 닥치려고 그러나……. 아무튼 우리가 해야 할 일은 정해져 있지만.”

“잘 알고 있네. 다들 새해라고 언제까지 늘어져 있을 거지? 훈련 안 하나? 아니면 내가 직접 지도해 주도록 하고.”

“아, 팀장님~ 연초부터 무슨 훈련이에요.”

“맞아요. 저희 이틀 전에 던전 다녀왔잖아요.”

박도윤이 눈썹을 들썩였다.

“안 일어나?”

“예에…….”

미적거리는 팀원들을 끌고 훈련실로 가자 선객이 있었다.

“앗, 김유하 헌터!”

“쉿, 가만히.”

시골 똥강아지처럼 유하에게 알은체하려는 서호랑을 박도윤이 막았다.

유하는 누가 들어왔는지도 모르게 땀을 흠뻑 흘리며 고도의 집중력을 발휘하고 있었다.

은새의 CF 영상을 대가로 벨키오르에게 조언을 얻은 그는 하나 남은 과제인 ‘투과’를 연습하고 있었다.

‘투과에 대해 잘못 생각하고 있군. 사라졌다가 다시 나타나는 게 아니라, 그대로 물체에 스미는 거다. 이능을 완전히 네 지배하에 둬야 한다.’

길게 숨을 내쉰 유하가 눈을 번쩍 떴다.

그의 손끝에서 빛의 화살이 생성되어 빠른 속도로 날아갔다.

표적을 가로막은 장애물에 그대로 부딪히는 듯했던 화살은 순간 흐릿해지더니 흡수되듯이 사라졌다가 표적을 꿰뚫었다.

제어에 성공했어도 유하의 표정은 그리 밝지 않았다.

“이제 어느 정도 감은 잡았는데……. 위력 조절이 어렵네.”

투과시킬 때 이능 소실이 발생하는 게 문제였다.

아직 완전히 이능을 지배하지 못한다는 뜻이었다.

하지만 훈련을 거듭하면서 기감이 점차 예리해지고 있었다.

활을 내려놓은 유하가 그때서야 인기척을 느끼고 돌아보았다.

“도윤 팀장이랑 팀원들이네. 훈련하러 왔나?”

“우와앗! 방금 뭐였어요, 김유하 헌터?! 화살이 슉 사라졌다가 슉 나타나던데!”

“그냥 한번 해 보는 거지, 뭐.”

“그냥 한번 해 보는 수준이 아니던데요!”

서호랑이 대단하다고 엄지를 치켜들며 호들갑을 떨었다.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훔친 유하가 웃어 보였다.

“얼마나 오래 계셨습니까?”

“아침 먹고 내내? 자리 비켜 줄 테니 훈련 열심히 해요.”

“우와아, 저 팔뚝에 소름 돋은 거 보이세요? 나도 저런 필살기 배울래요!”

“체력이나 더 키워, 인마.”

오종환이 서호랑의 머리를 주먹으로 꿍 내리찧었다.

훈련실을 나가는 유하의 뒷모습을 보고 박도윤이 짝짝 박수를 쳤다.

“저런 걸 보고 가만있을 수 없지. 우리도 오늘부터 특훈이다.”

“엑.”

“연초부터 팀장님의 특훈……? 저 퇴근해도 되나요?”

훈련실을 나온 유하는 샤워를 한 뒤 길드장실로 갔다.

미리내도 우리와 같이 있을 테니 점심이나 먹자고 할 참이었다.

“하이. 너희 밥 먹었어?”

“훈련 끝났어? 아직. 너 올 것 같아서 기다리고 있었지.”

“어서 와.”

책상에 달라붙어 서류를 들여다보고 있던 두 사람이 유하를 반겼다.

유하는 간식 박스를 뒤져 감자 칩을 챙겨서 소파에 벌러덩 기대앉았다.

밥 먹기 전이지만 그는 그런 걸 신경 쓰지 않았다.

팡, 하고 과자 봉투가 뜯어졌다.

“조사는 어때. 진전이 있어?”

“강림석으로 추정되는 유물은 찾았어. 작년 말쯤에 일본에서 출토됐다는데, 이거야.”

‘시그라엘의 시험’을 통해 알게 된 내용으로 미루어 ‘씨앗’이 세계의 포식자를 불러들이는 의식을 거행하기 위해서는 강림석이라는 매개가 필요하다.

조사를 시작하면서 우리와 미리내는 국제 유물 아카이브에 접속해 강림석으로 추정되는 물건이 발견됐는지 확인했다.

던전에서 출토되는 아이템이 아닌 유물들은 국제법령에 의거, 연구 자료로 모두 아카이브에 등록하게 되어 있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빈틈은 존재했다.

도굴된 던전도 있을 것이고, 체계가 잡히지 않은 국가나 국제 사회에서 아웃사이더를 자처하는 국가들은 등록을 거부했으니까.

그런 경우가 아니면 아카이브로 전 세계 유물을 한 자리에서 볼 수 있다는 건 대단한 이점이었다.

덕분에 작년 말쯤, 일본에서 의심 가는 유물이 출토되었다는 기록을 확인할 수 있었다.

그러나 해당 유물은 현재 행방이 묘연했다.

우리가 내민 서류를 읽어 본 유하가 ‘흐음.’ 하는 소리를 냈다.

“일본이면, 이매 길드장이 그 시기쯤 가지 않았었나?”

“맞아. 생전의 그라면 분명 관심을 가졌을 텐데……. 한서리 부길드장이 뭔가 들었을 것 같은데 행방조차 알 수 없으니.”

이매를 죽인 범인을 찾겠다고 행적을 감춘 한서리와 갑화 길드원들은 어디서 뭘 하고 있는지 소식을 알 수 없었다.

헤어질 때 보았던 복수심에 사로잡힌 눈빛.

무슨 짓이라도 저지를 것 같았던 그녀를 떠올린 이들의 표정이 안 좋아졌다.

“강림석이 사라진 시기와 이매 길드장이 살해당한 시기가 공교로워.”

“일단 전문 수색팀한테 맡겨서 유물을 찾을 생각이야. 어쩌면 ‘씨앗’은 우리 가까이에 있을지도 모르겠어.”

적막이 내려앉은 가운데, 우리의 핸드폰에서 진동이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한 우리가 한쪽 눈을 찡그렸다.

“이 사람이 나한테 왜 전화했지?”

“누군데?”

그가 핸드폰 액정 화면을 보였다.

선명하게 뜬 이름을 보고 미리내와 유하가 얼른 받아 보라는 손짓을 했다.

“한우리입니다.”

-오랜만입니다, 한우리 길드장. 저 청화 유길선입니다.

중국 청화 길드의 유길선 길드장이었다.

용건을 묻기도 전에 그가 침착하지만 다급한 목소리로 말했다.

그의 입에서 예상치 못했던 단어가 튀어나왔다.

-혹시 ‘시작의 드래곤’에 대해 알고 있습니까?

“네……?!”

***

중국 베이징.

겨울이 오기 전, 톈진 사태를 성공적으로 무마한 유길선은 이후 길드들과 연합해 주석까지 몰아내느라 정신없는 나날을 보냈다.

빈 주석 자리에는 헌터 친화적인 인물을 올려 유길선은 명실상부한 중국 실세로 거듭났다.

그 과정이 결코 쉽지만은 않았으나 오래전부터 준비했던 일인 만큼 그는 실수 없이 완벽하게 해냈다.

중국 최정상 자리에 오른 유길선은 즉시 사영의 저주를 풀 재료를 끌어모았다.

사실상 권력의 정점에 서는 것보다 그 일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번거롭고 까다로운 재료가 주를 이뤘지만 드넓은 중국 땅에서 돈과 권력만 있으면 못 구할 게 없었다.

그는 전에 없이 좋은 혈색으로 잠에 빠진 사영을 말없이 바라보았다.

‘유은새 헌터에게 빚을 졌군.’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