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2화 – 위화감
트로이가 있는 침투 2조는 지하 4층이 아닌 지하 2층에 있었다.
멀리서 누군가의 외침과 병장기 부딪히는 소리가 들리자 오브리가 불안한 듯 뒤를 몇 번이고 돌아봤다.
“저, 트로이 님. 키에라 쪽은 괜찮을까요?”
“내가 신임하는 이이니 잘 해내겠지.”
오브리를 힐끗 내려다본 트로이는 무심하게 대답했다.
신임한다는 것치고는 건조하기 짝이 없는 눈빛이었으나 오브리는 이를 눈치채지 못했다.
“그런데 저희는 왜 여기로…….”
대신관들의 무덤이 있는 지하 4층으로 갈 것이라 여겼는데 정작 트로이는 지하 2층에서 더 내려갈 생각을 하지 않았다.
트로이가 마법으로 공간을 탐색했다.
“여기 있군.”
그는 전시된 성유물들 사이에서 상자를 하나 꺼내 들었다.
콰직!
단단히 걸려 있는 자물쇠를 마법으로 부순 그가 뚜껑을 열었다.
안에 무엇이 들어 있는지 확인한 오브리를 포함한 흑마법사들의 눈이 크게 뜨였다.
“가, 강림석이잖아요? 이게 왜 여기에.”
은새 일행이 발견한 것과 똑같은 비석처럼 보이는 검은 돌이었다.
자신이 찾던 물건임을 알아본 트로이가 만족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띠었다.
애초에 강림석은 두 개였다.
하나라고 말한 적은 단 한 번도 없었으므로 거짓말을 한 것은 아니었다.
그는 상자째로 잘 챙겨 들었다.
강림석은 심연에서 흘러나온 혼돈의 결정체였으므로 별다른 처리 없이 만졌다가는 큰 화가 미칠 것이었다.
흔적도 남지 않고 세상에서 사라지겠지.
아주 고통스럽게.
“우리는 이만 이곳에서 벗어난다.”
“트, 트로이 님! 이대로 나가신다고요? 지하 4층으로 향한 이들은 어떻게 하고요?”
“그들이 나와 무슨 상관이지?”
“……네?”
오브리는 자신이 들은 말을 이해하지 못했다.
신전 깊숙이 들어갈수록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알 수 없었다.
하물며 지하 4층은 고대 신성 결계가 감싸고 있는 대신관들의 무덤이지 않은가.
그러나 트로이는 오브리가 넋이 나가 있거나 말거나 제 할 말만 했다.
“작전 시간 안에 빠져나온다면 데리고 간다. 하지만 그러지 못한다면 실력 부족이라고 판단하고 명부에서 제명하겠어.”
“그럴 수가.”
다리에 힘이 풀린 오브리가 휘청거리자 바로 옆에 있던 하트먼이 붙잡았다.
평소 그녀가 키에라와 친했다는 걸 알기에 흑마법사들은 트로이의 눈치를 봤다.
하지만 용감하게 나서서 그들을 데리러 가야 한다는 말은 하지 못했다.
병사들의 눈을 피해 지하를 벗어나던 중 마도구로 외부에 있는 이들과 연락한 딘이 다급하게 말했다.
“트로이 님! 황태자와 에스퍼 1소대가 밖에 도착했다고 합니다!”
“뭐?”
트로이가 빠르게 옮기던 걸음을 우뚝 멈추었다.
“흐음.”
어떻게 알고 이렇게 빨리 왔는지는 알 수 없었으나 나쁘지 않은 상황이었다.
자신들의 근거지에 눌러앉은 거슬리는 에스퍼들을 처리하기에 안성맞춤이었다.
황태자가 혈안이 되어 그자들을 뒤쫓고 있다는 건 제국민이라면 누구나 다 아는 사실이었다.
여기서 반드시 붙잡으려 할 테지.
“서두르지.”
강림석을 손에 넣었을 때보다 기분이 좋아 보이는 트로이를 흑마법사들이 조용히 뒤따랐다.
***
아슬란과 마주하게 된 우리와 솔, 인찬은 당혹감을 삼켰다.
‘하필 여기서 마주치다니.’
아무리 신전이 수도에 있다고 해도 침입한 지 10분도 채 되지 않아서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지?
소식이 제대로 전해지기도 전이었다.
“이곳에 나타날 줄 알았다.”
그런데 마치 이곳에 그들이 오는 게 당연하다는 것처럼 아슬란이 말하자 우리가 눈매를 가늘게 좁혔다.
‘뭐야, 설마 트로이가 흘린 건가?’
가장 의심스러운 인물이었기에 그렇게 생각할 수밖에 없었다.
자신들만 온 게 아니라 다른 흑마법사들도 있는데 설마 그런 짓까지 했을까 싶었으나 그 인정머리 없고 냉혹한 트로이라면 가능하게 느껴졌다.
아슬란은 무기를 뽑아 든 채 우리 일행을 노려봤다.
외국인 에스퍼들이 무언가를 찾느라 신전을 자주 방문한다는 걸 알고 있었던 그는 흑마법사들의 도움을 받는지 흔적도 없이 꼭꼭 숨어 버린 그들을 잡기 위해 계속 신전을 주시하고 있었다.
그래서 신전에 이상이 생겼을 때 바로 소대원들을 이끌고 움직였다.
“너희는 흑마법사들과 결탁해 제국과 신전에 위협을 가하고 내란을 일으켰기에 황제 폐하께서 내게 부여한 권한으로 이 자리에서 즉결 처형하겠다.”
“아~ 귀찮게 됐네, 정말!”
머리를 벅벅 긁은 솔이 홍염으로 만들어진 창을 쥐고 달려들었다.
이렇게 바로 공격해 올 거라고 생각지 못했던 소대원들은 자세를 바꾸어 대응했다.
“야, 남궁솔 건물 무너지겠어! 적당히 해!”
“뭘 적당히 해, 이 자식들이 먼저 시작했는데!”
지하에 아직 은새 일행이 있었다.
하지만 저들이 적의를 드러낸 이상 적당히 할 수는 없었다.
밖으로 유인하든지 친구들이 지하에서 올라오면 바로 도주하든지 해야 했다.
결국 우리도 무기를 들고 공격했고 물러날 수 없는 상황임을 인지한 인찬도 방패를 들었다.
“우리가 좀 바쁜데 물러날 생각은 있나?”
“……없다!”
우리와 아슬란이 격돌했다.
쿠르릉!
신전이 뒤흔들리며 돌 조각 등이 천장에서 떨어졌다.
행동에 제약이 있는 건 이쪽이나 저쪽이나 마찬가지였다.
아슬란이 염력을 사용해 우리의 팔과 다리를 붙잡으려 했으나 그에 대한 방비책을 마련해 놓은 우리는 이능을 강하게 방출하는 것으로 간섭을 끊어 냈다.
그러자 아슬란은 충격파를 쏘아 냈고 벽과 천장을 뛰어다니며 우리와 솔은 유연하게 피했다.
도저히 회피할 수 없는 위치로 날아오는 것은 인찬이 방패로 막았다.
“윽!”
생각보다 강한 위력에 인찬이 당황해하자 솔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제대로 맞으면 뼈도 못 추리겠는걸!”
그렇게 여유를 떠는 솔의 머리 위로 갑자기 물의 장막이 드리웠다.
“엉?”
순식간에 응집된 물속에 갇히게 된 솔은 숨이 막혀 뽀르륵 공기 방울을 토했다.
“솔아!”
그렇게 되고도 솔은 전혀 위기감을 못 느끼는 사람처럼 무어라 살벌하게 욕을 해 댔다.
비록 소리는 들리지 않았지만 표정과 눈빛이 형형하기 그지없었다.
우리가 살갗을 그어 암혈을 두른 검으로 솔을 가둔 물길을 갈랐다.
물이 쏟아지며 솔이 해방되었다.
“푸하! 숨 막혀 죽는 줄 알았네.”
“방심하지 말라고 했지.”
“쫄딱 젖었어, 아주. 아, 찝찝해.”
목욕한 강아지처럼 머리를 터는 솔을 내버려 두고 주변을 돌아보니 신전의 병사들까지 몰려와 복도는 그야말로 난장판이었다.
시간이 너무 지체된 탓이었다.
‘애들은 어디까지 왔지?’
우리가 생각한 그 순간.
익숙한 힘이 느껴지며 적들을 대상으로 한 디버프 영역이 펼쳐졌다.
“미리내야!”
“다들 괜찮아?!”
“그러엄, 딱 좋을 때 왔다.”
은새, 미리내, 유하가 우리네 쪽에 합류했다.
마찬가지로 침투 1조에 속한 로먼과 키에라도 함께였다.
“하지만 여기를 어떻게 뚫고 나가지?”
앞뒤로 빽빽해 그야말로 독 안에 든 쥐 신세.
그런데.
“다들 물러나!”
“로먼?”
은새가 놀라서 목소리가 들려온 방향을 돌아보았다.
로먼이 사태에 휘말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신관 한 명을 붙들고 위협하고 있었다.
“로먼이 인질극을……?”
“이게 무슨 일이냐.”
친구들이 얼떨떨한 반응을 보였다.
이전의 일만 하더라도 어벙하게 걸려 넘어져서 붙잡힐 뻔했던 그가 아니었던가?
하지만 로먼은 꿋꿋하게 소리쳤다.
“비, 비켜! 안 그러면 이자의 목숨은 없다!”
“살려 주세요!”
신관이 바들바들 떨며 살려 달라고 외쳤다.
제국에서 신관은 귀한 존재였기 때문에 병사들이 주춤주춤 뒤로 물러났다.
아슬란과 소대원들도 쉽사리 움직이지 못했다.
상황을 보던 키에라가 창문을 깨부수고 먼저 튀어 나갔고 은새와 친구들도 지체 없이 창틀을 뛰어넘었다.
“로먼, 가요!”
은새가 로먼을 향해 팔을 뻗었다.
그런데.
퍼벙!
신관의 관자놀이에서 폭발이 일어났다.
그런 일을 자행한 로먼은 아무렇지 않게 은새의 손을 붙잡고 창틀을 뛰어넘었다.
충격을 받은 은새는 친구들이 부르는데도 선뜻 움직일 수 없었다.
왜…… 왜?
왜 죽였지?
“이봐, 빨리 안 와?!”
공간이동 마도구를 발동시키며 키에라가 소리쳤다.
그래도 누구와 다르게 그들을 버리고 가지는 않을 모양인 듯했다.
충격과 찝찝함을 안고 은새가 마력의 흐름에 몸을 실었다.
“은새야, 왜 그래? 나올 때 무슨 일 있었어?”
“이따 말해 줄게.”
로먼이 있는 자리에서 할 말은 아니었다.
그런 일을 벌이고도 로먼은 아무런 죄책감도 보이지 않았다.
우여곡절 끝에 흑마법사들의 근거지로 돌아오자 가장 먼저 별이가 뛰어나와 그들을 반겼다.
“누나!”
늦은 밤인데도 자지 않고 있었는지 별이가 힝힝거리며 은새에게 안겨 들었다.
아이의 작은 등을 은새가 토닥거렸다.
귀환한 그들을 보고 트로이가 싸늘한 눈빛을 했다.
신전에서 그대로 제거할 생각이었는데 계획대로 되지 않아 심기가 뒤틀린 듯했다.
“강림석은?”
“가져왔습니다.”
키에라가 은새를 돌아보았고 그녀는 잠자코 챙겨 두었던 걸 내놓았다.
“……이 상태로 들고 왔다고?”
“네. 무슨 문제 있어요?”
“…….”
트로이는 강림석과 그것을 아무렇지 않게 들고 있는 은새를 번갈아 쳐다봤다.
그는 흑마법사를 시켜 특수한 재질로 된 천을 가져오게 해 강림석을 감싼 뒤 저택 안으로 들어가 버렸다.
“뭘 꼬나보고 난리야.”
재수 없게.
트로이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는 솔의 말을 흘려 넘기며 은새는 별이의 손을 꼭 쥐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