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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50)화 (150/190)

149화 – 이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은새가 눈을 번쩍 떴다.

그녀의 눈동자가 이능 색으로 물들며 지척에 도사리고 있던 마수 중 몇몇이 옴짝달싹 못 했다.

크르륵! 구르르륵!

테이밍된 마수들이 다른 마수들을 공격하기 시작했다.

마수들끼리 뒤엉켜 혈투를 벌였다.

“와아!”

멀리서 인찬의 품에 안겨 지켜보고 있던 별이가 짝짝 박수를 쳤다.

“후우.”

마수들이 전부 죽고 난 뒤에야 은새는 이능을 거두었다.

“수고했어, 은새야.”

“괜찮았어?”

“응. 여전한데?”

인찬이 건네주는 물병을 은새가 받아 들었다.

흑마법사의 근거지 근처에서 은새는 종종 산책을 겸해 감이 떨어지지 않게 테이밍 연습을 하고는 했다.

이 세계에는 게이트에서 쏟아지는 마수가 아니더라도 주변에서 마수를 볼 수 있었기에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은새가 입가에 흘러내린 물기를 손등으로 닦았다.

“밖에는 며칠이나 지났을까?”

“글쎄. 던전과 현실이 시간이 다르게 흘러가는 경우가 더러 있어서. 모르겠네.”

“크리스마스 전에는 돌아가야 할 텐데…….”

새 가족이 된 드래곤 부자와 함께 보낼 크리스마스를 기대하고 있던 은새가 시무룩하게 중얼거렸다.

매년 오는 크리스마스이지만 올해는 의미가 남다른 만큼 꼭 지구로 돌아가 휴일을 맞이하고 싶었다.

트리 장식이랑 선물도 다 준비해 놨는데.

‘벨키오르 님과 마수들은 잘 있겠지?’

길드원들이 주기적으로 살펴 줄 테지만 그래도 걱정이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벨키오르 님 보고 싶다.’

아빠와 떨어졌어도 의연한 별이 앞에서 주책을 부릴 수 없어서 꾹 참고 있었으나 은새는 문득문득 벨키오르 생각에 사로잡혔다.

식사는 잊지 않고 챙기고 있는지, 뭘 하면서 시간을 보내고 있는지, 집에 별일은 없는지.

……마찬가지로 자신을 그리워하고 있을지.

마수 사체를 정리한 인찬이 은새를 불렀다.

“은새야, 이만 돌아가자.”

“그래.”

저택으로 돌아간 그들은 흑마법사들의 따가운 눈총을 받으며 로먼의 연구실로 갔다.

쨍하고 누군가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로먼! 내가 말했던 자료 아직도 분류 안 했어?”

인찬이 ‘또 시작이네.’ 하고 작게 소곤거렸다.

“으, 응! 거의 다 했어!”

“로먼, 내가 요청했던 재료들은 언제 와? 그거 오늘까지 꼭 필요하다고 했잖아.”

“로-먼! 트로이 님 연구실 청소 좀 해!”

“응, 알겠어! 재료, 재료…… 아, 여기 챙겨 놨어!”

로먼이 흘러내린 안경을 추어올리지도 못한 채 발바닥에 땀나도록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은새와 친구들이 이곳에 와 자주 목격한 풍경이었다.

“되게 웃기네. 지들은 손이 없어, 발이 없어? 왜 한 사람한테 다 시켜?”

소파에 늘어져 있던 솔이가 질색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 말을 들은 흑마법사들이 째려봤으나 솔은 코웃음을 쳤다.

로먼만 어색한 웃음을 흘리다 재차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후다닥 뛰어갔다.

“로먼이 고생이네.”

“그러게……. 우리가 도와줄 수도 없고.”

흑마법사 세력에 합류한 은새와 친구들은 이곳에 머물면서 던전 공략의 키인 로먼과 흑마법사들에 대해 살펴보았다.

스토리가 흑마법사들의 행보에 중점을 둔 만큼 그들이 앞으로 뭘 할지 알아 둘 필요가 있었다.

여기서 로먼은 온갖 궂은일을 홀로 도맡아 했는데 이는 흑마법사들의 수장인 트로이의 영향으로 보였다.

로먼과 트로이의 관계는 뭐라고 딱 집어서 설명할 수 없었다.

아슬란이 습격한 집회에서 로먼을 쉽게 버린 트로이의 태도를 봤을 때 사이가 나쁘지 않을까 싶었는데 예상외로 두 사람은 막역했다.

일례로 다른 흑마법사들은 트로이에게 깍듯이 존칭을 사용했으나 로먼만 트로이를 편하게 불렀다.

뭣보다 트로이는 간부 회의에 로먼을 빠짐없이 데리고 들어가고, 독대하는 모습도 보였다.

그러면서 로먼을 무시했다.

별이가 확인한 바로 로먼은 저런 취급을 받는 게 이상할 정도로 마법적 성취가 뛰어나다고 했다.

그런데 대체 왜 허드렛일 같은 걸 할까.

은새와 친구들은 로먼과 흑마법사들을 조금 더 지켜보기로 했다.

테이블 위에 올려진 봉투를 발견한 별이가 눈을 반짝였다.

“누나, 포슈예요! 머거두 돼요?”

“솔아, 마을에 다녀왔어? 응, 별이 곧 밥 먹을 거니까 하나만 먹자.”

“엉. 김유하랑 정찰. 헤라 아줌마가 별이 주라고 서비스로 주스도 주셨음.”

“와!”

포슈는 지구에서 군고구마와 비슷한 음식이었다.

은새가 아직 따끈따끈한 포슈의 껍질을 까서 별이의 손에 들려 줬다.

아이가 과일 주스로 입맛을 돋운 뒤 호호 불어서 행복해하며 포슈를 먹었다.

흑마법사들은 감시 목적으로 은새와 친구들에게 여러 제약을 걸어 놓았으나 정작 그들은 그다지 신경 쓰지 않고 지냈다.

별이가 충분히 파훼할 수 있는 수준이라는 이유가 컸고, 던전 공략이 끝나면 어차피 무용한 것이 되기 때문이었다.

흑마법사들이 정체를 숨길 수 있는 마도구도 제공해 주었기에 그들은 자유로이 마을을 오갔다.

선의로 그런 것은 아니고 그들로 인해 혹여 자신들의 꼬리를 밟힐까 경계한 탓이었다.

덕분에 친구들은 황궁에 갇혀 있을 때보다 이 세계에 적응을 잘하고 있었다.

“얘들아, 식사 준비 다 끝났어!”

미리내가 친구들을 불러 모았다.

그들은 식사하며 두런두런 대화를 나눴다.

“마을 촌장님한테 들었는데 황태자가 바짝 약이 오른 것 같더라. 우리 수배지까지 뿌렸던데?”

“근데 되게 웃김. 내가 몰래 뜯어 왔어. 볼래?”

“그거 뜯으면 안 되는 거 아니야……?”

인찬이 우려스럽게 말했으나 친구들의 반응은 태연했다.

“안 걸리면 되지.”

“맞아. 우리가 한 건 줄 모르면 되는 거야.”

“이것 봐, 남궁솔 되게 못생김.”

“야! 김유하 너도 만만치 않거든?!”

수배지에는 그들의 초상화와 특징이 적혀 있었다.

서로의 그림을 보며 한참을 낄낄대던 그들은 지구로 가지고 가고 싶은 마음에 혹시 몰라 아공간에 잘 챙겨 넣었다.

“피터 아저씨네 돼지가 곧 새끼를 낳을 모양이더라. 축사 보수를 도와달라고 해서 알겠다고 했어.”

“그래? 참, 헬렌이 지난번 일 고맙다고 식사를 대접하고 싶다던데.”

“아아, 아기 아팠을 때? 우리가 가져온 포션이 통해서 다행이지, 뭐. 아니면 미리내가 나서야 했을 텐데.”

“맞다, 검 수리 끝났을 거라 대장간으로 찾으러 가야 하는데. 이곳에서 실력 좋은 대장장이를 만나서 다행이야.”

가만히 대화를 듣고 있던 미리내가 문득 입을 열었다.

“그런데 우리가 보는 게 과연 환영이 맞을까?”

“…….”

친구들이 조용해졌다.

그들도 같은 생각을 하고 있었다.

이 세계에서 보내는 시간이 길어질수록 의문이 들었다.

그들이 먹는 것, 보는 것, 만나는 사람들까지 모두.

환영이라고 하기에는 너무도 실체가 뚜렷했으며 생동감이 넘쳤다.

친구들은 자신들이 먹고 있는 음식을 내려다봤다.

“……확신할 수 없어. 이 ‘이야기’가 끝나기 전까지는.”

조금 가라앉은 분위기 속에서 식사를 이어 가던 그들은 흑마법사들이 있는 방향을 힐끗거렸다.

“조만간 움직일 것 같지?”

“응. 슬슬 우리가 나설 때가 올 거야.”

***

늦은 밤, 간부 회의가 열렸다.

트로이가 방에 들어서자마자 흑마법사들의 울분에 찬 목소리가 들렸다.

“에스퍼 자식들, 아주 지들 세상이야! 쫓기는 처지에 마을을 돌아다니다니. 낯짝도 두껍지!”

“그분의 사자만 아니었으면 진즉 사지를 잘라 마수들의 먹이로 던져 줬을 텐데. 더러운 돌연변이 따위를 참아 줘야 한다니! 사자께서는 왜 에스퍼들을 비호하시는 거야?”

“너무 어려서 그런 게 아닐까? 혹시 그거 때문에 대업에 문제가 생긴다면…….”

“그럴 리 없어. 그분의 뜻이 우리에게 있는 한 사자께서는 우리를 반드시 도우실 거야.”

에스퍼들에 대한 불만이 튀어나올수록 그들을 이곳으로 데려온 로먼이 안절부절못하며 눈치를 봤다.

트로이가 싸늘한 눈길로 로먼을 노려보다가 제일 상석에 앉았다.

하여튼 쓸모없는 자식.

자신이 시키는 일이나 할 것이지 꼭 나서서 초를 친다.

제 손으로는 죽일 수 없어서 놔두고는 있으나 목숨 줄이 어찌나 질긴지 여태 버티고 있었다.

지난번 습격 때 황태자의 손으로 처리했으면 좋았으련만 그마저도 실패했다.

트로이의 한쪽 붉은 눈동자가 스산하게 빛났다.

‘그날이 오기 전에 처리해야 할 텐데…….’

‘계도자’의 역할은 자신이 하고 있으니 로먼은 사라져 줘야 했다.

같은 하늘에 태양이 둘일 수는 없었으므로.

에스퍼들이 거슬리는 건 맞지만 오늘은 그보다 중요한 할 얘기가 있었다.

“다들 주목. 계획이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

“…….”

“오랫동안 우리가 찾고 있던 ‘강림석’의 위치를 알아냈다.”

“오오, 드디어! 그게 사실입니까, 트로이 님?”

“해내셨군요! 축하드립니다.”

고대하던 소식에 흑마법사들이 열렬히 환호했다.

어느 날 갑자기 생겨난 이변, 게이트와 에스퍼들은 이 세계 질서에 큰 혼란을 야기했다.

흑마법사들에게 전해지는 ‘예언서’에서 따르면 이는 재앙의 시초라고 했다.

세계 존망에 대한 위협이 닥치자 흑마법사들은 혼란의 근원이 되는 에스퍼들을 전부 몰살시키고자 했다.

그를 위해 찾아낸 방법.

수백 년 전 선조들이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만 계획의 명맥을 여기 모인 이들이 잇고자 했다.

“대신전의 지하 4층에 보관되어 있다고 하더군.”

“대신전이라면……. 조금 힘들지 않을까요?”

한 흑마법사가 우려를 표했다.

대신전은 수도에 있었고, 그만큼 많은 병력이 포진해 있었다.

성기사단과 신관들, 그리고 황궁의 병사들.

게다가 황태자가 이끄는 에스퍼 군단도 문제였다.

아무리 흑마법사들이 은밀히 움직인다고 해도 그들 모두의 눈을 속일 수는 없었다.

트로이는 아무 걱정 할 것 없다는 듯이 힘 있는 목소리로 말했다.

“우리에게는 완벽한 계획이 있다. 그리고 때마침 쓸 만한 미끼도 있지.”

“설마. 이곳에 있는 에스퍼들을……?”

“그래. 어차피 그날이 오면 모두 죽어 없어질 것들이니.”

트로이가 비릿한 웃음을 흘렸다.

“어차피 우리를 돕겠다는 명목으로 이곳에 머무는 것 아닌가?”

흑마법사들의 에스퍼에 대한 불만이 극에 달했으니 이런 식으로 처리해도 문제될 것이 없었다.

“트, 트로이! 하지만…….”

로먼이 뭔가를 말하려고 했으나 트로이에 의해 말문이 막혔다.

반론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날카로운 시선.

“거사 일은 내일 밤이다. 준비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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