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화 – 진짜 왕자님처럼 생겼네
은새와 친구들이 세인나이츠 제국을 헤매는 사이.
백찬민과 골드스타 길드원들은 S+급 던전을 공략하기 위해 경북 울진으로 향했다.
“도착했습니다, 길드장님.”
조수석에 앉아 있던 육재희가 깍듯하게 말했다.
창밖을 내다본 백찬민이 즐거운 얼굴을 했다.
“많이도 모였네.”
이미 던전 주변에는 한국에서 두 번째로 SS급이 된 백찬민을 보려고 많은 인파가 모여 있었다.
전담 코디가 백찬민의 머리와 옷매무새를 만져 줬다.
그러나 그에 만족하지 않고 그는 거울을 보며 직접 머리 모양을 가다듬었다.
머리카락 한 올 한 올까지도 심혈을 기울여 손질했다.
급할 게 없었으니까.
오늘 그는 누구보다도 더 완벽해 보여야 했으므로.
“갈까?”
육재희가 먼저 차에서 내려 뒷좌석 문을 열어 주었다.
백찬민은 트레이드마크인 호쾌한 미소를 머금은 채 차에서 내렸다.
“백찬민 길드장이다!”
누군가의 외침에 이쪽을 주시하고 있던 이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기자들이 앞다투어 마이크를 들이밀며 질문을 쏟아 냈다.
“백찬민 길드장님! 전세계에서 열세 번째, 한국에서 두 번째로 SS급 헌터가 되셨는데요. 소감이 어떠십니까?”
“SS급으로서 오늘 첫 공략에 어떻게 임하실 생각입니까?”
“S급일 때와 SS급일 때의 가장 큰 차이점은 무엇인가요? 능력이 비약적으로 강해진 걸 느끼십니까?”
팬들도 가만있지 않았다.
“찬민 오빠악! 오빠 이목구비가 내 미래보다 뚜렷해!”
“형 보려고 제주도에서 왔어요! 형, 저 살림 잘해요! 형네 로봇 청소기보다 잘해요! 더 큰 대한민국을 위해 우리 함께 나서자!”
“백찬민이 대한민국의 미래다!”
백찬민의 미소가 점차 짙어졌다.
그래, 이 환호와 열기.
그가 그토록 원하던 것이었다.
비록 유은새에게 첫 번째 타이틀을 빼앗겼으나 경쟁자로 여기는 한우리도 아니고 백찬민은 충분히 만족했다.
그가 대중을 향해 인사했다.
“안녕하세요, 골드스타 길드의 백찬민입니다. 오늘 공략에 많은 관심을 가져 주셔서 감사합니다.”
“와아아!”
함성과 함께 카메라 플래시가 터졌다.
“금일 저희 길드가 공략할 던전은 S+급 ‘석양이 지는 콜로세움’입니다. 제가 SS급이 되고 첫 출진인데 기대 반, 설렘 반입니다. 고등급 던전이라고 해도 제가 있는 한 큰 무리 없이 공략할 수 있으리라고 예상합니다.”
“전략은 세우셨습니까? 역시 백찬민 길드장님을 필두로 다른 팀원들이 보조하는 식인가요?”
“멋있다!”
백찬민은 오늘 뜰 기사의 헤드라인을 어렵지 않게 예상할 수 있었다.
‘백찬민 길드장, 고등급 던전에도 강한 자신감 보여’, 혹은 ‘SS급 헌터 보유국 한국, 이제 던전의 위험에서 완전히 벗어나나?’ 정도겠지.
“하하, 저 개인이 아무리 뛰어나다고 해도 공략은 결국 팀워크입니다. 이번 공략에 참가할 저희 팀원들을 소개합니다.”
시원스러운 미소를 입가에 걸친 백찬민이 손짓하자 대기하고 있던 길드원들이 몰려와 그의 뒤에 섰다.
골드스타 길드 내에서도 에이스라 불리는 이들의 등장에 사람들이 환호했다.
여기저기서 호명이 들렸다.
“꺄아악, 육재희 헌터!”
“희수 형! 오늘도 빛이 납니다!”
그리고 백찬민의 신경을 거슬리게 하는 이름이 귀에 꽂혔다.
“천창현 헌터, 손 흔들어 주세요! 흑야의 검객!”
맞다. 오늘 공략에는 천창현도 참가하기로 되어 있었다.
백찬민은 웃고 있으나 싸늘한 눈빛으로 팀원들을 돌아보는 척, 천창현을 훑었다.
‘건방진 새끼.’
사람들의 열띤 환호에도 천창현의 표정에는 변화가 없었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모를 만큼 무감각한 얼굴은 섬뜩하기만 했다.
팬들은 그런 점이 좋다고 난리인 모양이지만.
‘흑야의 검객’이라는 우스꽝스러운 이명이 붙은 데에는 그런 이유가 있었다.
이제 천창현은 골드스타 길드 하면 빠지지 않고 이름이 거론될 만큼의 영향력을 지니게 되었다.
급속도로 성장하는 그를 권력관계에 예민한 백찬민이 그냥 놔뒀을 리 없었다.
그는 천창현을 길드로 들일 때 손안에서 굴릴 수 있는 쓸모 있는 말로만 생각했지, 자신의 권위를 넘볼 개새끼가 될 줄은 몰랐다.
천창현의 성장세를 위협적으로 느낀 백찬민은 그가 더 크기 전에 꺾어 놔야겠다고 결심했다.
그래서 길드장의 권한을 백분 발휘해 길드 내외적으로 수시로 천창현을 압박하는 짓을 서슴지 않았다.
그러나 그때마다 운이 좋은 것인지, 아니면 숨기고 있는 힘이 있는 것인지 천창현은 요리조리 잘도 빠져나갔다.
바짝 약이 오른 백찬민이 상황이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음을 깨달은 건 기어코 그를 길드에서 제명하려고 했을 때였다.
‘자네 길드에 천창현이라고 머리 좋은 놈 하나 있지? 잘 키워 봐. 길드에 큰 이득을 가져다줄 것 같으니.’
‘천창현 헌터를 내보낼 생각이라고? 이제 와 그를 다른 길드에 빼앗기는 건 너무 아깝지 않나?’
투자자들이 천창현을 옹호하고 나선 것이다.
알아보니 골드스타 길드의 모체인 금성 그룹의 자녀들과 천창현이 친분이 있었다.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길드에 처음 들어올 당시만 하더라도 천창현은 가진 거라곤 꽤 돌아가는 머리와 괜찮게 여겨지는 실력뿐이었다.
‘대체 무슨 수를 쓴 거지.’
도무지 짚이는 게 없었다.
천창현을 보는 백찬민의 눈길이 사나웠다.
하루가 다르게 골드스타 길드를 장악해 가는 천창현을 더는 두고 볼 수 없었다.
무슨 수든 써야겠다고 이를 갈고 있던 차에 백찬민에게 일생일대의 기회가 찾아왔다.
바로 한국에서 두 번째로 SS급이 된 것.
각성석을 해외에서 사 오는 일로 금성 그룹 이사들을 설득하는 데 애를 먹었지만 그들은 결국 막대한 금액을 들여서라도 각성석을 사 오는 게 이득이라고 판단했다.
그 혜택은 지금껏 그들에게 충성한 백찬민에게 주어졌다.
그만큼 목줄을 주렁주렁 달게 되었으나 SS급이 된 백찬민의 발언권은 전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강해졌다.
이제 금성 그룹 회장이라고 해도 그를 무시할 수 없었다.
백찬민은 이번 던전에서 사고로 꾸며 천창현을 제거할 작정이었다.
그래서 일부러 오하나와 진해성 등의 팀원들을 제외하고 천창현만 공략팀에 포함시켰다.
애초에 천창현에게 붙여 준 이들은 골드스타 길드의 재산이었으니 빌려준 것을 되돌려 받는 것뿐이었다.
‘‘석양이 지는 콜로세움’이라.’
헌협에서 기가 막힌 이름을 붙였다. 마치 그를 위한 던전 같지 않은가?
고작 A급 헌터 따위 백찬민이 손 하나만 까딱해도 압살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럼 곧 던전에 입장할 테니 모두 물러나 주세요.”
골드스타 길드의 헌터들이 사람들이 더 다가오지 못하도록 통제했다.
일순 천창현의 검고 축축한 시선이 백찬민에게 닿았다 떨어졌다.
***
경비대원들에게 붙잡혀 황궁으로 이송당한 은새와 친구들은 사방이 가로막힌 공간에서 조사를 받았다.
하지만 초반부터 난항이었다.
“이름.”
“남궁솔이요.”
“어느 나라 출신이지?”
“한국에서 왔는데요.”
“……한국? 대륙 어디에 위치한 나라지?”
“동아시아요.”
조사를 하던 남자의 인상이 굳어졌다.
“거짓말을 하는 것인가?”
“아니, 동경 127도, 북위 37도! Republic of Korea! 몰라요?”
솔이 부루퉁하게 대답했다.
황궁에 간다기에 극진한 대접이라도 받을 줄 알았던 그녀는 검찰청 조사실 같은 곳에서 삼엄한 감시를 받고 있는 이 상황이 불만스러웠다.
도천 크루의 만능 해결사 미리내가 중재에 나섰다.
“솔아, 그러지 말고. 조사관님, 제가 말해도 될까요?”
“해 봐라.”
“저희는 한 마법사의 계략에 휘말려 갑자기 이곳에 떨어졌어요.”
“마법사?”
친구들과 조사관이 똑같은 표정을 지었다.
친구들이 시선을 교환했다.
우리가 언제 마법사를 만났어?
나도 몰라. 그런데 미리내한테 생각이 있겠지.
미리내는 한 점의 거짓도 없다는 진실 된 눈빛으로 조사관에게 호소했다.
“그래서 이곳이 어디인지 잘 모릅니다. 저희도 많이 당혹스럽고 불안해요. 그저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했을 뿐인데 이런 일이 생기다니…….”
“……그랬군.”
먹혔어?!
친구들은 놀란 걸 티 내지 않기 위해 입술을 꽉 깨물었다.
대신 미리내의 설명이 맞다는 듯 엄숙한 낯을 했다.
오랜 시간 손발을 맞춰 온 그들은 이제 척하면 척이었다.
눈치 없는 –정확히는 눈치를 보지 않는- 솔도 벽만 바라봤다.
누군가와 눈이 마주치면 웃음이 터져 나올 것 같아서.
“마법사들의 에스퍼에 대한 증오는 상상을 초월하니까. 그런 일이 있었다고 해도 이상한 일은 아니다.”
혼자 무언가를 납득한 조사관이 말했다.
아무래도 이 세계의 구세력과 신세력의 갈등은 단순히 ‘사이가 나쁘다’ 정도로 치부할 수 있는 게 아닌 듯했다.
이런 허술한 설정을 믿는 걸 보니.
“하지만 그렇다고 조사를 안 할 수는…….”
그때 밖에서 소란이 들리고 육중한 문이 열렸다.
상대를 확인한 조사관의 눈이 크게 뜨이더니 서둘러 일어나 허리를 90도로 숙였다.
“황태자 전하, 오셨습니까!”
‘황태자라고?’
은새와 친구들이 흥미 가득한 시선으로 나타난 이를 쳐다봤다.
시스템창의 설명대로라면 흑마법사 ‘로먼’을 구하기 위해 대립해야 할 상대였다.
황태자는 그들의 목적을 모르니 지금이 그에 대해서 알아볼 절호의 기회였다.
그런데.
‘와, 진짜 왕자님처럼 생겼네.’
은새가 속으로 감탄했다.
편견이라는 건 알지만 그것밖에 설명할 말이 없었다.
흘러내리지 않게 깔끔하게 넘긴 백금발, 그리고 냉혹하게 느껴질 만큼 시린 벽안.
콧날은 베일 듯이 날카로웠고, 눈썹이라든가 턱선이 시원스럽고 굵직해서 남성성이 돋보였다.
이 나라의 의복은 잘 모르겠으나 눈이 돌아갈 만큼 화려한 복색은 그에게 전혀 과하게 느껴지지 않고 외려 기품이 흘러넘쳤다.
자연스러운 위압감을 두른 황태자가 내부를 둘러보다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평생을 높은 자리에서 군림한 이 특유의 어조와 목소리였다.
“미등록 에스퍼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