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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41)화 (141/190)

140화 - 당신이 한 짓이죠?

은새가 놀란 듯 입을 벌렸다.

“와. 진짜? 지난달에 러시아에서 경매로 삼천 억인가에 팔렸다는 얘기는 들었는데.”

“그건 자국 헌터한테 판 금액이잖아. 그것보다 훠얼씬 비싸게 샀을걸.”

유하가 누군가가 사 온 붕어빵을 꼬리부터 먹었다.

“듣기로는 성급하게 진행했대. 국내에서 각성석이 발견되지 않으니까 다들 눈치 게임 하고 있었는데 덜컥 SS급이 나와 버렸으니. 첫 번째보다는 스포트라이트가 덜해도 두 번째라는 타이틀을 놓치기 싫었겠지.”

“관종이 관종짓 한 거지. 그 돈 있으면 사회에 기부해라!”

“와. 솔이 네가 그런 말 하니까 되게 낯설다.”

“백찬민이 어깨뽕 넣고 다닐 생각 하니까 벌써부터 배알이 꼴려.”

솔이 배를 감싸 안고 끙끙거렸다.

피식 웃은 은새가 시선을 옮겨 미리내와 대화를 나누며 서류를 검토 중인 우리를 쳐다봤다.

그런데 이전에 봤을 때보다 눈 밑도 퀭하고, 살이 내린 듯 보였다.

은새의 눈빛에 걱정스러운 기색이 어렸다.

“우리야, 요새 잠을 잘 못 자? 안색이 많이 안 좋네.”

“음…… 아무래도 그런 편이지? 일이 많아서.”

우리는 아무렇지 않게 웃으며 대답했다.

“청화 길드랑 교섭도 남았고, 국내 길드들이랑 협업하는 일도 있고. 중국에서 사용한 폭탄 때문에 아버지한테 바가지 긁히고, 정부랑 헌협은 해 달라는 게 왜 이렇게 많은지……. 자질구레하게 신경 쓸 일이 많네.”

“그렇구나……. 그렇게 바쁘면 사람을 더 뽑지 그래?”

“아직은 괜찮아. 걱정해 줘서 고마워.”

실은 실연의 상처 때문이었으나 그걸 은새한테 말할 수 있을 리 없었다.

아마 아주 나중에.

시간이 많이 흐른 뒤에 일말의 미련도 남지 않고 후련함마저 느낄 때 ‘사실 내가 너를 좋아했었다.’라고 털어놓게 되지 않을까.

잠 못 드는 밤이 지속되면서 사고가 편협해진 우리는 그런 생각도 했었다.

‘빼앗으면 안 되나?’ 하고.

그가 고백하면 착한 은새는 곤란해하면서도 고민할 것이다.

끝내 거절의 말을 듣더라도 은새에게 자신의 존재를 확실하게 각인시킬 수 있겠지.

하지만 행복해하던 은새의 얼굴이 떠올라 도저히 실행에 옮길 마음이 들지 않았다.

‘이제 와 그게 무슨 소용이냐…….’

우리는 밀려오는 허탈감을 누르고 친구들을 자리로 불러 모았다.

“말한 것처럼 공략 일정 나왔어. 일주일 후에 경기도 남양주시로 갈 거야. 내용 확인해 봐.”

은새가 넘겨받은 파일을 펼쳤다.

던전 유형과 등급, 지형, 특이사항 등이 적혀 있었다.

그런데 특이사항에 눈길이 갔다.

“스토리형 던전……?”

“그래. 그리고 대전 던전처럼 처음부터 ‘시그라엘의 시험’이라는 이름이 붙어 있었어.”

“대전 던전이 분명 ‘아큘라의 미로’였었지?”

시그라엘, 그리고 아큘라.

단서가 없어서 그들이 누군지 몰라도 현 상황에서는 던전 제작자라고 보는 게 타당했다.

무슨 목적으로 던전을 만든 것인지는 모르겠지만.

“던전 등급이 고정되지 않았네? F급~S급 던전이라니.”

던전 등급이 유동적인 경우 누가, 어떻게 공략하느냐에 따라서 난도가 변동된다는 뜻이었다.

공략자들의 등급에 반응해 바뀌는 게 일반적이지만 -공략자들이 평균 C등급이라면 던전 역시 C등급이 된다- 스토리형 던전이라고 하니 아마 진행 상황에 따라 달라지리라.

“사실 우리가 공략할 던전 후보가 하나 더 있었어. 비슷한 시기에 이 던전 말고 경북 울진에 S+급 던전이 하나 발생했거든.”

“그런데 이 던전을 고른 이유가 있는 거지?”

“그래. 마수가 아닌, 사람이 나오는 던전이거든.”

“사람?”

은새가 놀란 표정을 했다.

던전에서 문명의 흔적이 발견된 적은 있어도 사람이 나온 경우는 처음이었다.

모든 나라와 정보 공유가 되는 건 아니라, 적어도 한국에서는 최초였다.

그런데 걸리는 점이 있었다.

“……사람도 마수로 치나? 죽여야 해?”

“일단 헌협이 조사한 바로는 환영 같은 거래. 말도 하고 움직이지만, 실재하지 않는.”

“다행이다. 그럼 마수는 없어?”

“세계관 내에서 마수가 존재하기는 하는데 마수 척살이 주된 공략 요건은 아니라나 봐. 말 그대로 스토리를 잘 풀어 나가야 해.”

“세계관이라…….”

던전이 지구와 다른 세계를 잇는 문이라는 가설이 뇌리를 스쳐 지나갔다.

그럴수록 던전 제작자에 대한 궁금증이 깊어졌다.

‘이매 길드장님이라면 뭔가 알고 있으려나?’

던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물을 모으는 그라면 베일에 싸인 던전 제작자에 대해서 들어 봤을지도 모르겠다.

“그럼 울진 던전은 어느 길드에서 가?”

“골드스타 길드. 백찬민 길드장이 직접 공략에 참가할 예정이라나 봐.”

“으으, 백찬민! 사람들 앞에서 엄청 멋진 척, 잘난 척하겠지. 그래 봤자 너는 두 번째라고! 첫 번째는 우리 도천이야!”

솔이 쿠션을 물어뜯으며 포효했다.

옆에서 친구들이 맞다고, 국산 피○츄가 SS급이 되어 봤자 라○츄가 될 뿐이라며 추임새를 넣었다.

골드스타 길드라면 덮어 놓고 까는 도천 길드원다웠다.

은새가 시간을 확인하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은새야, 왜 이렇게 일찍 가?”

“양설 헌터랑 왕호연 헌터가 지내는 곳이 어디야?”

“어? 그 두 사람은…… 왜?”

“잘 지내는지 확인하려고. 헤어질 때 연락처를 안 물어봤더니 통 소식을 모르겠네.”

그런데 친구들의 반응이 이상했다.

괜히 딴청을 피우거나 어색한 웃음을 흘렸다.

보다 못한 미리내가 나섰다.

“은새야, 혹시 최근에 커뮤니티 확인한 적 있어?”

“아니. 나 원래 잘 안 하잖아.”

“여기까지 오면서 이상한 일은 없었고? 누가 말 걸거나, 네가 모르는 소리를 한다거나.”

“아무 일도 없었는데? 나 도다리한테서 내리자마자 바로 길드장실로 올라왔어.”

불현듯 든 생각에 은새가 심각해졌다.

혹시 양설과 왕호연에게 무슨 일이 생겼나?

이제 와 청화 길드에서 못 보내 주겠다고 뻗댄다거나 중국에서 소환 명령이라도 떨어진 건가?

은새가 서둘러 질문했다.

“왜 그래?”

“음…… 아니야. 일단 가 봐. 주소 알려 줄게.”

미묘한 반응이었으나 미리내는 의외로 선뜻 주소를 알려 주었다.

핸드폰 메신저로 주소를 전송받은 뒤 은새는 길드 빌딩을 나와 택시를 탔다.

도다리는 길드에 맡긴 채였다.

양설과 왕호연이 지내는 곳은 멀지 않은 주택가에 위치한 아파트였다.

“빈손으로 가긴 그러니까 뭐라도 사 갈까?”

가까운 카페에 들어가서 디저트와 달콤한 음료 두 잔을 주문했다.

그런데 직원이 은새를 보고 반갑게 알은체를 했다.

“유은새 헌터, 또 와 주셨네요!”

“네? 아, 안녕하세요.”

은새가 눈을 깜빡였다.

내가 여기 와 본 적이 있었나?

그냥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려는데 직원이 이해하지 못할 말을 했다.

“지난번에 유은새 헌터가 하신 말씀을 듣고 생각해 봤어요. 역시 저 혼자 알고 있기에는 억울해서 친구들한테도 말했거든요. 그런 오해를 받으셨는데 어떻게 아무렇지 않을 수가 있겠어요. 많이 힘드셨죠…….”

은새의 눈동자가 당혹감과 의문으로 차올랐다.

내가 힘들 일이 뭐가 있지?

무슨 오해?

은새를 보며 하염없이 슬픈 표정을 짓던 직원은 돌연 주먹을 꽉 쥐어 보였다.

“앞으로 전 무슨 일이 있어도 유은새 헌터를 응원할 거예요! 실제로 뵈니 정말 친절하시고 말씀도 너무 예쁘게 하시고……. 앞으로 유은새 헌터에 대해 헛소리하는 사람이 있으면 그런 거 아니라고 제가 변호해 드릴게요. 아, 이건 서비스예요. 맛있게 드세요!”

“가, 감사합니다.”

뭐지? 사람을 착각한 건가……?

그렇다고 하기에는 직원은 정말 은새를 아는 것처럼 굴었다.

그런데 이런 일이 한 번만 일어난 게 아니었다.

아파트 단지로 들어선 그녀가 놀이터를 지나는데 웬 교복을 입은 남학생 무리가 큰 소리로 그녀를 불렀다.

“누나! 오늘은 나쁜 헌터 때려 준 얘기 안 해 줘요? 지난번에 해 주신 얘기, 그거 학교 가서 친구들한테도 말했는데, 누나랑 만났다고 하니까 다들 거짓말하지 말라고 하잖아요. 누나, 오늘은 사진 좀 같이 찍어 주면 안 돼요?”

“네? 저요?”

“네!”

“저기, 사람을 잘못 본 것 같은데요.”

“에이, 왜 그래요, 누나~ 또 장난치는 거죠? 이번엔 안 속아요.”

이쯤 되자 은새는 알 수밖에 없었다.

기시감이 느껴졌다.

자신이 한 일이 아닌데 주변인들이 마치 그녀가 한 것처럼 말하는 상황.

학생들에게 급한 볼일이 있다며 대충 둘러대고 자리를 피한 은새는 걸음을 빨리하며 당장 커뮤니티에 접속했다.

그리고 자신의 이름을 검색해 가장 조회수가 높은 글을 찾아봤다.

[자유게시판] 유은새 헌터 ○○동에서 만난 썰 푼다(분탕 종자 각도기 잘 재고 들어와라ᕕ(ꐦ°᷄д°᷅)ᕗ)

요새 가장 핫한 헌터라고 하면 단연 유은새 헌터임.

당연함. 그녀는 대한민국 최초 >>> “SS급” <<< 헌터니까★

그저 빛.... 갓은새.... 어디까지 완벽해질 셈이야.

유은새 헌터 톈진 다녀오고 인터뷰도 거절하고 두문불출하는 거 다들 알 거임.

물론 사기 사건이 뜨뜻미지근하게 종결됐고, 유은새 헌터만 언급됐다 하면 기사든 게시물이든 달려드는 한심한 놈들 때문에 과하게 몸 사리는 것 같아서 솔직히 안타까웠음.

그런데 어젯밤에 호떡 사 먹으러 나갔다가 우연히, 정말 우연히 포장마차에서 어묵 꼬치 먹고 있는 유은새 헌터와 마주침.

ヽ(゚◇゚ )ノ...!

언니가 왜 거기서 나와...?

아무튼 당황해서 호떡 먹으려던 것도 까먹고 어버버거리고 있는데 유은새 헌터가 먼저 인사하더라.

“안녕하세요.”

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안녕하세요...

나 진심 그 순간 유은새 헌터 뒤로 후광이 비치면서 귀에서 종소리가 댕댕 울리는 걸 들었다;;;

고작 인사인데 이렇게 성스러울 일?

내가 학교 다닐 때 신문부 활동해서 취재도 나가고 그랬거든?

그래서 호기심을 못 참고 가려는 유은새 헌터 붙잡아서 이것저것 물어봤지.

솔직히 내가 SS급 헌터를 만날 일이 일생에 두 번 있겠어?

중국이 봄이를 노린 거 사실이냐, 음해당한 거 맞냐, 톈진 사태가 벌어질 거라는 건 어떻게 알고 갔냐 그런 거 물어봤음. 솔직히 다들 궁금하잖아?

유은새 헌터가 한참을 망설이다가 나(쓰니)한테만 말해주는 거라고 되게 조심스럽게 말했는데

중국 갔을 때 변용 스킬을 가진 헌터를 실제로 만났대.

그 사람이 유은새 헌터 음해하려고 사건 꾸민 거 맞고, 중국 정부가 시킨 거라고 시인했대.

그런데 범인이 중국인이라서 제대로 처벌도 못 할 거라고 하더라.

그 중국인 헌터도 그거 알고서 말한 거겠지 유은새 헌터 놀리듯이;;;

이런 걸 공개적으로 말하면 아무도 안 믿을 거라면서 그냥 혼자서 결백하면 됐다고,

나(쓰니)라도 알아주시면 됐다고 상처받은 눈빛으로 말하는데 막 얼마나 사람들한테 시달렸으면 해명도 제대로 못 하나 가슴이 미어지더라.

그 뒤로 유은새 헌터랑 이런저런 얘기 더 나눴는데 진짜 인성이... 내가 십 년간 산에 들어가 도를 닦아도 유은새 헌터처럼은 못 될 것 같더라.

나 고등급 헌터는 싸가지없다는 편견 있었는데 유은새 헌터가 그거 다 깨부쉈음.

아직도 유은새 헌터 인성 가지고 왈가왈부하는 망상 종자들 눈에 띄는데

인생 그렇게 살지 말고 그 시간에 자기 계발이라도 하지 그래? 열폭하는 것 같아서 보기 안쓰럽다. ㅉㅉ

“아…….”

저도 모르게 탄식한 은새가 화면을 스와이프해 다른 게시물도 읽어 봤다.

그런데 그녀가 인터뷰도 피하고 아무것도 해명하지 않았음에도 여론이 완전히 뒤집혀 있었다.

그저 나도 유은새 헌터를 만났는데, 얘기를 나눴는데, 온통 무슨무슨 썰이었다.

공식(Official)이 아님에도 사람들은 그것들을 믿었다.

기어코 그 중국인 헌터를 처벌해야 한다는 국민 청원까지 올라온 걸 확인한 은새가 이마를 짚었다.

누가 한 일인지 너무도 명확했다.

“양설 헌터…….”

은새는 서둘러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가 호수의 초인종을 띵동띵동 눌렀다.

한참 뒤, 자고 있었는지 눈곱도 제대로 못 뗀 양설이 문을 열고 나왔다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뭐야, 당신이 여기를 왜 와?!”

“양설 헌터. 당신이 한 짓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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