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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39)화 (139/190)

138화 - 오히려 인간보다 나을지도?

우리가 은새를 짝사랑한 지는 꽤 오래되었다.

예전에 유하가 왜 고백을 안 하냐고 우리에게 두어 번 질문한 적이 있었는데, 길드 설립 초기에는 ‘아직 자리 잡기 전이라서.’라고 답했고 또 나중에는 ‘은새가 나를 친구로 너무 편하게 생각해서 어떻게 다가가야 할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너무 배려하려고만 했던 게 패착이지.’

고백은 타이밍이다.

그리고 우리는 번번이 기회를 흘려보냈다.

어쩌면 은새에게 사랑하는 상대가 생기는 건 예정된 결말이었을지도 모른다.

‘이거 잘못하면 분위기 완전히 싸해지겠는데…….’

미리내와 유하가 우리의 눈치를 봤다.

그런데 그가 손바닥으로 얼굴을 쓸어내리더니 굳은 표정을 완전히 지워 내고 웃어 보였다.

“축하해, 은새야.”

“고마워.”

속이 문드러졌을 게 뻔한데 우리는 겉보기에는 진심으로 은새를 축하해 주는 것처럼 보였다.

‘애쓴다, 길짱.’

‘나중에 어떻게 위로해 줘야 하나.’

우리가 자신의 마음을 숨기기로 결정했으니 유하와 미리내는 따라야 했다.

그들도 은새에게 축하의 말을 전했다.

그때 솔이 분연하게 자리에서 일어났다.

친구들이 의문이 담긴 시선을 보냈다.

“어디 있어? 그 드래곤.”

“벨키오르 님? 안에 계시는데. 왜?”

은새가 그 말을 하자 놀이방 문이 열리고 벨키오르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거실 풍경을 둘러보고는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나를 찾았나?”

“마침 잘됐네요. 할 말이 있었는데. 이보세요, 누구 마음대로 우리 허락도 없이 은새를 데려가요? 수천 살이나 많은 양반이. 그쪽에 비하면 우리 은새는 어제 태어난 거나 마찬가지인데 양심 있어요?”

솔이 따박따박 따지고 들자 벨키오르가 눈썹을 찡그렸다.

“내가 반려를 들이는데 왜 너희들의 허락이 필요하지?”

“잘 모르시나 본데, 인간들은 애인이 생기면 친구들한테 보여 주고 평가받는 풍습이 있거든요. 시험에 통과해야 사이를 인정받을 수 있다고요.”

아니다.

주변인들에게 애인을 소개하기는 해도 보통 축하받는 자리였다.

부모에게 결혼할 상대를 소개할 때나 까다로운 질문이 오갔다.

솔의 말을 들은 친구들이 서로를 쳐다봤다.

“우리가 은새의 가족이니까, 딱히 틀린 말은 아니지 않나?”

“솔이가 모처럼 맞는 말도 하네. 맞습니다, 스승님. 아니, 이 자리에서는 예비 매제라고 부르겠습니다.”

“왜 매제야? 매형 아니야? 은새 생일이 유하 너보다 빠르잖아.”

“조용히 해, 서인찬. 그런 사소한 건 따지지 말자.”

미리내가 테이블을 치워 자리를 만들었다.

“앉으세요. 은새를 정말 행복하게 해 줄 수 있는 분인지 저희가 확인해 봐야겠어요.”

“얘들아, 너희 왜 그래…….”

가장 이성적인 미리내까지 그러니 은새는 벨키오르의 기분이 상할까 봐 안절부절못했다.

벨키오르는 어이가 없었다.

저들이 어떻게 나오든 은새가 자신의 반려라는 사실은 변하지 않았다.

반려에 한해서 예민해지는 드래곤의 특성상 이런 모욕을 당하고도 참아 넘기기 힘들었다.

벨키오르는 눈앞의 이들을 치워 버릴까 하다가 자신의 눈치를 보는 은새를 발견하고 노기를 가라앉혔다.

그가 자리에 털썩 앉았다.

인간들의 풍습이라고 하니 맞춰 주는 것밖에 도리가 없었다.

시험이 뭐든 통과해 주면 그만이었다.

“해 봐라.”

“인찬아, 아까 우리가 가져온 거 어디다 놨어?!”

“여기! ……그런데 진짜 이걸 다 마실 건 아니지?”

“왜 아니야?”

로얄 살루트 38년산과 도수 높은 술들이 테이블에 쫙 깔렸다.

솔과 유하가 히죽히죽 웃었다.

“일단 정석대로 가야지? 드래곤은 얼마나 마셔야 취하나?”

“술?”

갑자기 술을 꺼내 드는 그들의 행동을 이해할 수 없어 벨키오르가 눈을 가느스름하게 뜨자 미리내가 사근사근하게 설명했다.

“술을 마시면 본성이 드러난다고 하거든요. 주량은 어느 정도 되는지, 술버릇은 있는지, 없는지. 그런 걸 알아보는 거예요. 아. 혹시라도 마법 사용하시면 안 됩니다, 예비 제부님.”

신경을 돋우려는 것처럼 꼬박꼬박 ‘예비’ 자를 붙이며 그들이 맥주 컵에 주홍빛 액체를 콸콸 쏟아부었다.

맡는 것만으로 취할 것 같은 향이 훅 피어났다.

“괜한 짓을 하는 것 같은데…….”

벨키오르와 술을 마셔 본 경험이 있는 은새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하지만 드래곤을 만취시킬 생각에 신이 난 이들에게는 들리지 않았다.

벨키오르가 제 앞에 놓인 잔을 말없이 보다가 한 번에 들이켰다.

마시라고 놓아 둔 것이니 마시면 되겠지.

그렇게 몇 잔이나 연달아 비워 냈다.

당연히 안주는 없었다.

아무리 드래곤이라지만 너무한 처사라고 생각한 은새가 보쌈 한 점을 벨키오르의 입에 대어 줬다.

그리고 빈 병이 바닥에 몇 개나 굴러다닐 무렵.

문답이 시작되었다.

“벨키오르 님은 우리 은새와의 사이를 진지하게 생각하시는 건가요? 인간이라고 가볍게 만나는 거 아니고요?”

“그랬으면 지금 너희와 상종도 안 했겠지. 어디까지나 은새 때문에 앉아 있는 것이다.”

“은새에게 제대로 고백은 하신 건가요? 혹 강압이나 협박에 이루어진 관계라면…….”

“나를 뭘로 보는 거지? 은새가 거부하는 건 아무것도 하지 않는다.”

“시기상조이긴 한데, 반려라고 하셨으니. 결혼도 하실 건가요? 설마, 신혼집을 저쪽 세계에 차리실 건 아니죠? 저희는 절대 반대예요.”

“겨, 결혼?”

외려 듣고 있던 은새가 깜짝 놀랐다.

벨키오르와 그런 미래를 상상해 보지 않은 건 아니지만 결혼은 너무 이른 감이 있다고 생각하는 그녀였다.

은새를 힐끔거린 벨키오르가 담담하게 자신의 생각을 밝혔다.

“드래곤에게는 혼인식이라는 게 따로 존재하지 않지만 인간 사회에서는 식을 올려야 부부 사이로 인정받을 수 있다고 들었다.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이 모인 자리에서, 가장 화려하게 할 생각이다.”

“그건…… 의외네요.”

은새와 친구들은 평소 눈에 띄는 걸 지양하는 벨키오르가 사람들 앞에 나선다고 하자 뜻밖이라는 느낌을 받았다.

“그리고 내 세계에도 같이 지낼 공간을 마련하기는 하겠지만 은새가 여기에 있기를 원한다면 그 역시 따를 것이다. 장소가 중요한 게 아니라, 은새가 있는 곳이 내게 의미가 있으니까.”

벨키오르의 대답에서 은새를 얼마나 아끼고 배려하는지 전해졌다.

친구들이 시선을 마주쳤다.

‘진심인가 본데?’

종족이 다르다 보니 걸리는 부분이 많았다.

사고방식이나 문화도 다를 것이고, 뭣보다 상대는 아득히 강한 드래곤이었다.

그와 은새 사이에 의견 차이가 생겼을 때, 무력으로 해결하려고 들면 답이 없었다.

그 점을 가장 우려했었는데 벨키오르는 전적으로 은새에게 모든 걸 맞춰 줄 생각인 듯 보였다.

‘오히려 인간보다 나을지도?’

예전에 은새에게 듣기로 벨키오르는 반려를 찾지 못해 긴 생을 줄곧 홀로 지냈다고 했다.

그런 그가 이제 와 은새를 두고 한눈팔 것 같지도 않았다.

그런데 무언가가 떠오른 인찬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잠깐만. 그럼 별이가 은새를 뭐라고 불러? 엄마?”

“엄마아아?! 유은새가 엄마?”

솔이 펄펄 날뛰었다.

“세상에, 그러고 보니 벨키오르 님한테는 아이가 있잖아! 이거 괜찮은 부분? 유은새, 별이가 네 자식이 되는 건데 괜찮겠어?”

“…….”

은새가 눈을 깜빡이다가 머리를 매만졌다.

‘그렇구나. 낳아 준 존재는 아니지만 내가 별이의 엄마가 되는 거구나.’

조금 고민되는 부분이긴 한데, 별이가 부담스러워서가 아니라 자신이 그 역할을 잘 할 수 있을지가 문제였다.

벨키오르보다 먼저 정을 준 이가 별이였으니, 애틋하고 사랑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다른 마수들도 제 자식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그에 대한 거부감은 없었다.

그저 지금보다 더 책임감을 가지고 아이를 돌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보단 별이가 이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일지 모르겠네.’

이미 별이가 알고 있는 줄은 모르고 은새가 걱정했다.

예비 신랑에게 아이가 있다고 하니 연상되는 문제가 있어서 미리내가 벨키오르의 앞으로 가 심각하게 질문했다.

“혹시 2세 계획은 있으세요?”

“정말 별걸 다 묻는군. 이미 후계자가 있기 때문에 그 부분에 있어서 은새에게 부담을 주지 않을 것이다. 은새가 아이를 갖기 원한다면 모를까.”

“근데 그게…… 되나요? 드래곤과 인간은 신체 구조가 다르다거나…….”

이번에는 참지 못하고 벨키오르가 경멸하는 눈빛을 했다.

미리내가 어색한 웃음을 흘리며 물러났다.

아, 그 부분은 문제없구나.

“질문은 끝났나?”

벨키오르에게 잔을 내밀면서 자신들도 쉬지 않고 마셔 그 많던 술들이 전부 동이 났다.

“더 마실 수 있다고~”

“이 주정뱅이야, 가만히 좀 있어. 왜 이렇게 몸을 흔들어대?”

이미 원래의 목적을 잃어버린 자리였다.

내내 조용히 있던 우리가 약간 흐려진 눈으로 벨키오르를 바라봤다.

“은새를 사랑합니까?”

벨키오르는 그에게 눈길을 줬다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답했다.

“사랑한다.”

“……그럼 됐습니다.”

우리가 씁쓸한 미소를 짓다가 고개를 아래로 떨어트렸다.

은새가 고주망태가 된 친구들을 씻겨서 손님방으로 보내고 자리를 정리했다.

방으로 들어오며 은새가 사과했다.

“벨키오르 님, 오늘 조금 곤란하셨죠.”

“나쁘지 않았다. 그보다, 은새.”

“네?”

벨키오르가 은새의 허리를 끌어당겨 얼굴 곳곳에 잘게 입을 맞췄다.

쪽, 쪽, 쪽.

간지러운 입맞춤을 내리던 그가 은새에게 몸을 묵직하게 기대 왔다.

그를 받아 안으며 은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혹시 취하셨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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