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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37)화 (137/190)

136화 – 아빠가 누나한테 침 발랐어

정식으로 반려가 된 그날부터 벨키오르는 은새를 품에서 놓지를 않았다.

얼마나 유난이었냐면, 씻으러 들어가는 은새를 따라 들어갔다가 등짝을 맞고 욕실에서 쫓겨나는 일도 있었다.

벨키오르는 욕실 문 앞에서 불만스럽게 얘기했다.

“반려의 목욕 시중을 드는 게 그다지 이상한 일은 아니지 않나.”

“싫어요! 왜 안 그러다가 갑자기 이러시는데요?”

문 너머에서 경악한 은새의 외침이 들렸다.

“……그리고 목욕만으로 끝날 거 아니잖아요!”

“은새. 나를 뭐로 보고…….”

억울해진 벨키오르가 항변하려는데 큰소리를 듣고 별이가 쪼르르 달려와 그의 바짓자락을 잡아당겼다.

“뉴나랑 아빠랑 싸워요?”

“별이야, 그런 거 아니야. 아빠 데리고 거실 가 있을래?”

“네에. 아빠, 가요!”

별이가 벨키오르의 손을 잡아당겼다.

그 손길에 순순히 끌려가면서 그의 시선은 욕실 문에서 떨어지지 않았다.

정말 이런 식의 매도는 억울했다.

그저 은새를 아끼는 마음에서 그리 행동했을 뿐이다.

다 씻고 나온 은새는 아까 벨키오르가 한 ‘씻겨 주겠다.’는 발언의 충격에서 헤어나질 못해 얼굴이 온통 새빨갰다.

그녀는 수건을 뒤집어써 얼굴을 가린 채로 터벅터벅 거실로 가 벨키오르에게 으름장을 놓았다.

이제 은새는 그를 대하는 게 많이 편해진 상태였다.

“다음부터는 이러지 마세요. 애들도 보는데 정말!”

“별과 마수들에게 그다지 숨길 일은 아니지 않나.”

“숨길 일이거든요. 애들이 뭘 보고 배우겠어요?”

벨키오르가 이해가 안 간다는 듯 머리를 기울였다.

“그대는 내 반려고, 반려를 아끼는 모습을 보이는 건 피양육자에게 좋은 영향을 미친다고 들었는데. 안 그런가? 별.”

“우웅? 뉴나랑 아빠랑 친하면 저는 좋아요. 싸우면 안 돼요. 싸우면 손잡고 ‘미안해.’ 해야 해요. 그쵸, 뉴나~”

별이가 빵실빵실 웃으며 은새에게 애교를 피웠다.

아이가 그렇게 말하니 은새는 할 말이 없어져서 벨키오르를 흘겨보고는 별이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맞아. 우리 별이 잘 기억하고 있네. 그런데 별아, 아까 아빠랑 누나 싸운 거 아니야.”

“네. 히히.”

별이가 알고 있다는 듯 은새의 다리에 말랑한 뺨을 비비적댔다.

아이는 요새 들어 행복 지수가 최고치를 찍었다.

이유인즉슨 자신이 가장 사랑하는 아빠와 누나가 더욱 친밀한 관계로 맺어졌기 때문이었다.

‘아빠가 뉴나한테 침 발랐어. 이제 뉴나는 앞으로도 쭉 별이 옆에 있어 줄 거야. 헤헤.’

별이 킁카킁카 은새의 냄새를 맡았다.

상큼한 바디 워시 향 위로 벨키오르의 향이 진하게 풍겼다.

벨키오르가 은새를 ‘반려’라고 직접 언급하기도 했지만 그보다는 그 향이 결정적이었다.

별이는 어느 날 아침, 잠에서 깨어 거실로 나가니 은새의 몸에 벨키오르의 향이 범벅돼 있어 깜짝 놀랐다.

‘머지? 어젯밤에는 안 이랬는데?’

하지만 이내 벨키오르가 은새를 진정한 의미의 반려로 맞이했음을 깨닫고 환하게 웃었다.

‘별이, 오늘따라 기분이 좋아 보이네. 좋은 꿈이라도 꿨어?’

‘으응. 뉴나, 밤에 아빠랑 같이 있었어요? 좋은 냄새가 나요.’

‘어? 아, 아닌데. 누나 별이랑 똑같이 일찍 잤잖아. 하하하…….’

본의 아니게 은새를 당황하게 만든 별이는 그저 날아갈 것처럼 기분이 들떴다.

드래곤은 반려에게 제 향을 묻히는 습성이 있었다.

정확히는 고유의 기운을 나누는 행위였다.

향은 반려를 향한 진한 소유욕을 드러내는 동시에 동족, 혹은 다른 종족을 견제하는 의미도 담고 있었다.

은새가 인간이라 일방적으로 향을 묻히는 것에 그쳤으나 그 의미가 퇴색되는 건 아니었다.

“은새. 머리를 말려 줄 테니 이리로.”

“매번 안 그러셔도 된다니까.”

말은 그렇게 하면서도 은새는 벨키오르의 옆으로 가 앉았다.

그는 수건으로 물기를 꼼꼼히 털어 내고 헤어 에센스까지 발라준 뒤 마법으로 건조시켰다.

“이건 되고 목욕 시중은 안 되는 이유를 모르겠군.”

“그거 아직 안 끝났어요?! 포기하세요!”

은새가 싫다는 걸 억지로 강요할 생각은 없었으므로 벨키오르는 그쯤에서 물러났다.

“손을.”

은새가 손을 내밀자 그는 핸드 로션을 쭉 짜 구석구석 발라 주었다.

적당한 세기로 딱 기분 좋을 만큼 손 마사지를 하는 것도 잊지 않았다.

“먹고 싶은 건?”

“음…… 바나나브륄레요. 그제 예능 프로그램에서 나왔는데 진짜 맛있어 보였어요.”

“그건 식사가 아니지 않나.”

같이 해당 프로그램을 본 벨키오르는 그게 어떤 간식인지 알았다.

바나나브륄레에 더해 식사가 될 만한 음식을 생각하며 주방으로 갔다.

식사 준비를 마치고 벨키오르가 거실에서 놀고 있는 은새와 별이, 봄이를 불렀다.

아이들을 양 옆구리에 끼고 식탁으로 온 은새가 반색했다.

“와, 브레드푸딩. 저 이거 진짜 좋아해요.”

“알고 있다. 들지.”

“뉴나! 저 아이스크림이요!”

삐!

“안 돼. 이거부터 먹자. 벨키오르 님이 힘들게 해 주셨으니까, ‘잘 먹겠습니다.’ 하고 먹어야지?”

“피이. 잘 먹겠씁니다~”

만드는 데 전혀 힘들지 않았지만 -유독 더 간단한 메뉴였다- 벨키오르는 고개를 끄덕이고 은새와 별이 앞에 우유를 한 잔씩 놓아 주었다.

브레드푸딩부터 공략하기로 한 은새는 포크를 들었다.

계피 향이 나는, 한 입 크기로 자른 식빵과 바나나를 한 번에 꿰어 와앙 입에 넣었다.

계란물을 부어 오븐에 구웠기 때문에 겉은 바삭, 속은 촉촉했다.

호두가 들어가 씹으면 고소한 맛이 났다.

“별이 한 입, 나 한 입.”

“헤헤. 뉴나가 먹여 주면 더 맛있어요.”

“그래? 나도 별이랑 함께 먹으면 더 맛있어.”

브레드푸딩을 사이좋게 나눠 먹은 뒤 소시지와 구운 파인애플, 토마토, 그리고 샐러드까지 비워 냈다.

드디어 대망의 바나나브륄레.

포크로 잘라 슬라이스 아몬드와 함께 먹자 입안에 달콤함이 퍼져 나갔다.

“음! 예상했던 그 맛이에요.”

예상을 빗나가지 않는 맛이었다. 누구나 아는 그 맛.

“뉴나, 나 아이스크림이요!”

“그래, 그래. 이제 아이스크림 먹어도 돼. 자, 아~”

은새가 바나나브륄레 위에 딸기 아이스크림을 조금 얹어서 별이의 입에 쏙 넣어 주었다.

우물거린 별이가 제 볼을 손으로 감싸고 눈동자를 빛냈다.

맛있음을 온몸으로 표현하는 별이의 행동에 은새는 절로 웃음이 났다.

“그렇게 맛있어?”

“네!”

그들은 마무리로 우유를 쭉 들이켰다.

봄이도 배부르게 식사하고 티슈로 장난을 치다가 은새에게 빼앗겼다.

삐잇!

“어허, 이걸로 장난치는 거 아니야. 오늘도 맛있었어요, 벨키오르 님.”

“묻었군.”

식사 내내 필요한 것들을 챙겨 주던 벨키오르가 무심한 손길로 은새의 입가에 묻은 우유를 닦아 내곤 제 입으로 가져가 핥았다.

그러고는 아무렇지 않게 식탁을 정리했다.

그 과정을 눈앞에서 고스란히 보게 된 은새는 얼굴이 화끈거려 눈가를 손으로 덮었다.

‘이런 건 평생 가도 적응 안 될 것 같아…….’

그날 이후 벨키오르는 은새를 더욱 각별하게 대했다.

이전에도 다정하고 세심했지만 지금은 정말, 잘하면 아주 은새를 땅에 발도 못 붙이게 할 것 같았다.

은새에게 필요한 게 생기기 전에 모든 걸 처리해 주는 식이었다.

잠시도 그녀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는 모양이었다.

헌신이라는 단어를 형상화하면 벨키오르가 될 것 같았다.

‘그때 유희라도 괜찮다는 말은 왜 해서. 으휴, 바보.’

참고로 은새는 그 발언 때문에 이후 벨키오르에게 눈물이 쏙 빠지도록 혼이 났다.

체념에서 흘러나온 말이었으나 벨키오르는 자신이 부족했던 탓이라고 덤덤하게 말했다.

그래서 더 금이야, 옥이야 품에 끼고 안 놔 주려고 하는 것 같기도 하고.

‘이젠 나도 모르겠다…….’

은새는 거실로 터벅터벅 걸어가 소파에 엎드려 쿠션에 얼굴을 파묻었다.

그러자 치카치카를 하고 온 별이가 쪼르르 달려와 은새를 흔들었다.

“뉴나! 밥 먹고 바로 누우면 안 돼요~ 소 돼요, 소. 음머~”

“아니, 우리 별이가 이런 표현을 언제 익혔지? 누나 소 되면 싫어할 거야?”

“아니요! 내가 밥도 주고, 재워 주고, 매일매일 놀아 줄게요! 음, 음. 산책도 데리고 나갈게요!”

“정말? 그럼 하~나도 걱정 안 된다. 누나 소 되면 별이가 잘 지켜 줘야 해?”

“네! ……그런데 그냥 지금 이대루 있으면 안 돼요? 힝.”

눈꼬리를 축 늘어뜨리는 별이를 은새가 꼭 끌어안고 좌우로 흔들었다.

별이가 너무 귀여워서 참을 수 없었다.

‘가끔 SNS 댓글에 팬들이 별이랑 봄이 입에 넣고 왈랄라 하고 싶다는 게 무슨 뜻인지 알 것 같아.’

“참, 벨키오르 님. 날씨 더 추워지기 전에 제 친구들 불러서 식사 대접해도 돼요?”

은새가 몸을 일으켜 주방을 향해 질문했다.

“저희가 그런 사이가 된 걸 친구들한테 말하고 싶은데……. 그래도 돼요?”

“왜 그런 걸 허락받으려고 하는지 모르겠군. 그대가 하고 싶은 대로 해라.”

“알겠어요! 언제가 좋으려나.”

은새는 친구들에게 벨키오르를 다른 이름으로 소개할 생각에 들떠서 핸드폰을 우다다 두드렸다.

그리고 며칠 뒤.

“여러분 보십시오. 이곳이 세계 유일, 국내 유일 SS급 몬스터 테이머 유은새 헌터의 집입니다!”

요란을 떨며 친구들이 강원도 집에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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