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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27)화 (127/190)

126화 – 네가 해라

이변이 생긴 건 한 시간쯤 지나서였다.

쿠구구궁.

땅이 흔들리더니 호텔을 비추던 햇빛이 잦아들었다.

스킬이 강제로 풀린 임신이가 당혹스러워했다.

“또 무슨 일이야? 뭔데?”

“나가 봐야겠어.”

헌터들이 우르르 몰려나갔다.

그런데 입구에서부터 덮쳐 오는 소름 끼치는 마기.

누군가 호텔을 공격한 마수의 정체를 알아차리고 비명처럼 소리쳤다.

“악마종 마수입니다!”

“하필 이때……!”

던전 브레이크가 터졌을 때도 침착하던 유길선의 얼굴에 곤혹스러움이 떠올랐다.

중국 헌터들은 악마종 마수라는 말에 하나같이 사색이 되어 두려움에 떨었다.

반면 한국 헌터들은 어리둥절해하는 이들이 많았다.

양희진이 심각한 표정을 지은 미리내의 옷자락을 조심스럽게 잡아당겼다.

“미리내 언니, 악마종 마수라니요?”

“한국에서는 잘 나타나지 않는 마계 던전의 마수야. 사실 마수라고 하기에도 애매한데……. 희진이 네가 생각하는 그 악마처럼 생긴 거 맞아. 실제로 솔로몬의 72 악마에서 이름을 따오기도 하고. 너튜브 같은 데서 봤지?”

“헉, 진짜 그거라고요? 위험한 거 아니에요?”

“위험하지……. 위험해. 이지를 가지고 있는데다 능력도 까다로우니까. 더군다나 신성 스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 별로 없잖아, 지금. 그리고 마수들이 몰리기 시작했어.”

헌터들은 얼어붙은 상태로 전투태세에 들어갔다.

하지만 숨길 수 없는 막막함이 엿보였다.

“히익! 이, 이렇게 많은 마수가!”

“여러분, 악마종 마수가 나타났습니다! 마수들이 호텔을 포위하고 있습니다!”

특파원들은 헌터들을 따라 나왔다가 기겁하고 물러났다.

악마종 때문에 헬기를 탈 수도 없어서 우리와 미리내가 그들을 호텔 안으로 들여보냈다.

버티려는 자들이 있어 살기를 내뿜어 쫓아냈다.

은새는 마기를 흩뿌리며 허공을 날고 있는 악마종을 올려다보았다.

불타는 꼬리를 지닌 사슴의 모습.

등에는 날개가 있으며, 하늘에 떠오른 절반이 사라진 달이 악마종을 비추고 있었다.

그리고 주변에 파지직 튀어 오르는 전류.

“푸르푸르인가?”

해외에 자주 파견을 다닌 은새는 악마종 마수를 상대해 본 경험이 있었다.

그래서 외관으로 바로 알아보았다.

“큰일이네. 권속을 부릴 텐데.”

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마른하늘에 날벼락이 치며 푸르푸르의 권속들이 나타났다.

검은 날개를 가진 다양한 동물 형태의 악마종들.

그것들의 마기에 반응해 흉포해지는 지상의 마수들을 보며 우리가 입술을 짓씹었다.

이대로라면 얼마 못 가 호텔의 결계가 깨질 것이다.

그러면 최후의 대피처마저 사라지게 된다.

‘어쩔 수 없이 ‘그것’을 사용해야 하나?’

미리내의 조언으로 챙겨 온 물건을 떠올렸다.

도천 화학 연구팀의 빛나는 성과.

되도록 사용하지 않으려 했으나 이제는 꺼내야 할 듯했다.

“성(聖) 속성 스킬을 가진 헌터 있습니까?”

우리가 중국 측을 향해 소리쳤다.

몇 명이 손을 들었으나 푸르푸르에 더해 권속들까지 상대하기에는 턱없이 모자란 수였다.

“……유길선 길드장, 마수들을 유인해 한곳에 몰아넣는다면 처리할 방도가 있습니다.”

“어떻게 말입니까?”

“범(汎) 던전 브레이크용 소형 폭탄이 있습니다.”

“폭탄?”

유길선의 눈동자가 커졌다.

“아직 시판 전이지만 확실한 화력을 자랑하며 반경 15km 이내에 있는 마수들을 전부 폭사시킬 겁니다.”

“폭탄이라.”

괜찮은 생각이었다.

이곳은 사람이 살지 않는 무인 구역.

폭탄으로 인한 피해를 걱정할 필요도 없고 지금 같은 상황에서는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유길선은 왜 한우리가 그걸 이제야 꺼낸 것인지 알 것 같았다.

이곳은 한국이 아닌 중국.

혹여 책잡힐 수 있으니 신중하게 다룰 생각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악마종에게까지 타격을 입힐 수는 없을 텐데요.”

악마종은 오직 신성 스킬로만 공격이 가능했다.

“권속들이 너무 많습니다. 게다가 푸르푸르는 번개를 다루기 때문에 따로 견제해야 할 사람도 필요하고요.”

“그건…….”

우리가 말끝을 흐렸다.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인간들의 대화를 조용히 듣고 있던 벨키오르가 별이를 불렀다.

“별. 네가 해라.”

[아빠?! 내, 내가요?]

“벨키오르 님?!”

별이만큼 은새도 화들짝 놀라서 그를 돌아보았다.

그는 무덤덤한 표정으로 이유를 설명했다.

“네 성장에 도움이 될 거다. 익숙하지 않은 마법도 다뤄 버릇해야 온전한 성체가 될 수 있다.”

[그, 그렇지만…….]

별이가 불안하게 푸르푸르를 올려다보았다.

저거 왠지, 예전에 그 ‘애애!’ 하고 울던 그 짐승이랑 닮지 않았나?

그리고 기분 나쁜 기운을 폴폴 흘려서 별로 다가가고 싶지 않았다.

별이가 머뭇거리자 은새가 결연한 얼굴로 나섰다.

“그럼 저도 갈게요.”

[뉴나, 위험해요!]

“위험하니까 더 같이 가야지. 별이 혼자서 저 무서운 마수를 어떻게 상대해.”

[뉴나…….]

별이가 촉촉한 눈망울로 은새를 바라봤다.

드래곤으로서 제 몫을 하도록 이끌어 주는 벨키오르를 원망하지는 않았지만 은새가 옆에 있어 준다고 하니 더없이 든든했다.

“민들레랑 하늘이도 가자! 도다리도!”

크르렁!

캬옹!

꾸꾸!

기다렸다는 듯이 마수들이 호응했다.

마수들을 독려해 주는 은새를 빤히 쳐다보던 벨키오르가 별이에게 말했다.

“별. 헤매는 것 같으면 도와줄 테니 할 수 있는 만큼 해 보도록.”

[아라써요!]

별이가 날개를 쫙 펼쳐서 날아올랐다.

으르릉!

이를 드러내고 포효하는 아기 드래곤은 귀여운 생김새였으나 초월종의 면모가 엿보였다.

“벨키오르 님, 저희 잘 해내고 올게요!”

“은새.”

당장 달려 나갈 것 같은 은새의 손목을 붙든 벨키오르가 고개를 숙여 은새와 이마를 맞댔다.

입을 맞추는 줄 알고 깜짝 놀랐던 은새가 금빛 마력이 어른거리는 걸 보고 얼굴이 빨개졌다.

아마 보호 마법이나 마기에 저항할 수 있는 마법을 걸어 준 듯했다.

“몸조심하도록. 내가 지켜보고 있을 테니.”

“……네!”

은새는 아무렇지 않은 척, 도망치듯 벨키오르에게서 후다닥 멀어졌다.

‘이런 거 하실 거면 미리 말을 해 달라고요!’

뒤돌아선 그녀의 얼굴이 울상인 건 비밀이었다.

표정을 갈무리한 은새는 별이와 마수들을 데리고 심각하게 작전 회의 중인 유길선과 우리에게로 갔다.

그녀가 말했다.

“푸르푸르는 저랑 제 마수들이 맡을게요. 코순이도요. 성 속성 스킬이 있는 헌터들이 권속들을 맡고 다른 분들은 마수들을 유인하는 걸로 해요.”

“은새야, 어쩌려고? 안 돼.”

정색한 우리가 즉각 반대했다.

“우리야, 잊었어? 나 지금 걸어 다니는 요새야.”

은새가 장난스럽게 웃으며 우리의 어깨를 툭 쳤다.

결코 과장이 아니었다.

벨키오르의 철벽같은 보호는 이미 검증된 바가 있었으므로.

우리가 미간을 좁혔다.

“하지만 성 속성 스킬이 없는데 어떻게 하게?”

“별이가 있잖아.”

[엣헴!]

별이가 오동통한 팔을 허리에 올리고 배를 한껏 내밀었다.

언제 우물쭈물했냐는 듯 당당한 모습에 은새가 속으로 웃음을 삼켰다.

“별이가?”

“응. 대전 던전에서 한 번 해 봤으니까 이번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야.”

[나 잘할 슈 있어요!]

별이가 믿어 보라는 듯 가슴을 팡팡 때리며 우리에게 전음을 보냈다.

우리는 쉽사리 결단을 내리지 못하고 망설였다.

그사이 유길선이 질문했다.

“이 새끼 드래곤은 능력이 정확히 뭡니까? 아까는 칼바람을 부르고 지진을 일으키더니.”

“우리 별이요? 만능이죠.”

[마자요! 나는 다 잘해요!]

인간을 차별하는 별이는 대답은 했지만 유길선에게 전음을 보내지는 않았다.

결국 사실에 근거한 귀여운 자랑은 은새만 들을 수 있었다.

“……알겠어. 하지만 위험할 것 같으면 바로 이탈해.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랑 애들이 올 테니까.”

“응. 그럼 움직이자.”

두 길드장에게서 작전을 들은 헌터들은 빠르게 각자의 위치로 이동했다.

마수들을 유인하기로 한 이들은 다섯 개 조로 나뉘어 움직였고 성 속성 스킬이나 아이템을 가진 이들은 호텔에 남아서 푸르푸르의 권속들을 상대하기로 했다.

그때였다.

꽈과광!

인내심이 한계에 달한 푸르푸르가 호텔 결계 위로 번개를 떨어트렸다.

결계가 크게 흔들리더니 불안하게 깜빡였다.

은새가 다급히 도다리의 등에 올라탔다.

“이러다가 결계가 깨지겠어. 가자, 얘들아!”

뿌우우우!

체력을 회복한 엘리펀티노소어가 쿵, 쿵 걸어 나가며 몰려든 마수들을 무자비하게 밀어붙였다.

그녀가 움직인 즉시 마수들을 유인하는 팀도 나섰다.

그들은 온갖 방법으로 어그로를 끌어 마수들을 호텔에서 멀리 떨어뜨리는 데 주력했다.

“간악하고 간교한 악마들을 처단하러 이 내가 왔다!”

“정화의 화살!”

권속들과 싸우는 박도윤과 엘레나 킴의 목소리가 들렸다.

하늘에서 본 악마종은 살기가 등등했다.

끈적끈적 달라붙는 마기 때문에 몸을 부르르 떨던 별이가 은새 앞을 가로막으며 개나리색 마력을 폴폴 풀어냈다.

[뉴나, 저거에 너무 가까이 가지 말아요! 기분 나빠요!]

푸르푸르는 바로 공격하지 않고 접근한 이들을 멀뚱멀뚱 쳐다봤다.

그런데 그것과 시선이 마주쳤다는 느낌이 든 찰나, 은새의 머릿속으로 사념이 흘러들어왔다.

「어라? 산 것이 아닌 인간이 있네?」

……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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