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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25)화 (125/190)

124화 - 서프라이즈 성공이야?

뿌우우우!

세 쌍의 눈과 통나무 같은 우람한 다리, 창으로도 안 뚫리는 두꺼운 피부.

그리고 길게 솟은 위협적인 엄니와 이마에 달린 뿔.

엘리펀티노소어가 코를 쳐들며 살기를 뿜어내자 돌진하던 마수들이 주춤주춤 물러나는 게 보였다.

은새는 지금이야말로 각성석을 사용해야 할 때임을 직감하고 그것을 움켜쥐었다.

각성석의 문양이 환하게 빛나더니 은새의 심장 안쪽에서부터 원래 그녀가 가진 것 이상의 이능이 차올랐다.

‘아…….’

기이한 감각이 온몸을 휘돌고 손끝, 발끝까지 내달렸다.

잠들어 있던 세포가 깨어나고 모든 게 새로이 정립되는 기분이 들었다.

두근, 두근.

세찬 심장 박동 소리와 함께 머릿속을 덮쳐 오는 황홀한 심상.

그녀의 한계를 짓고 있던 무형의 벽이 무너지고 그 너머가 보이는 듯했다.

그것은 마치 은새가 처음 헌터로 각성했을 당시를 떠올리게 했다.

빛이 잦아들고 각성석이 두 동강 나며 평범한 돌이 되었을 때, 은새는 기묘한 표정이었다.

주먹을 쥐었다 폈다 하며 몸 상태를 점검했다.

겉보기는 똑같지만 내부적으로 무언가 달라진 게 확실히 느껴졌다.

‘이게 SS급.’

한결 몸이 가벼워졌고 힘이 넘쳤다.

이능의 총량이 늘어난 것은 말할 것도 없고 좀 더 섬세한 컨트롤이 가능해졌다.

“이러면 무조건 해낼 수밖에 없지!”

달려오는 엘리펀티노소어를 노려보며 은새가 유길선에게서 뜯어낸 아이템들을 작동했다.

‘열두 갈래의 밤’, ‘레라지에의 심연’, ‘멈추지 않는 피에로’.

일시적으로 정신에 큰 충격을 가하는 아이템들로 개조실에서 유길선이 은새에게 사용했던 물건이었다.

그녀에게는 전혀 소용없었지만 엘리펀티노소어한테는 통할 것이다.

아이템의 효과가 발휘되자 마수가 저항하는 것처럼 몸을 세차게 흔들었다.

뿌우우우!

쿵! 쿵!

마수가 발을 구를 때마다 도로가 움푹 파이고 근처의 노후된 건물이 흔들거리다가 폭삭 무너졌다.

세 개의 아이템 중 두 개가 부서지고 엘리펀트노소어의 정신이 흔들린 찰나, 은새가 이능을 강하게 쏘아 보냈다.

이전과 확연히 다른 밀도의 새하얀 빛이 마수를 완전히 휘감았다.

“물어 와!”

테이밍을 더욱 견고하게 만들어 주는 스펠.

엘리펀트노소어의 눈동자가 그녀의 이능 색으로 물들다가 원래대로 돌아가기를 반복했다.

마수와 은새의 힘겨루기가 이어졌다.

“흐읍!”

[뉴나, 조금만 더 힘내요!]

별이가 안절부절못하며 응원했고, 도다리도 끼루루 울었다.

은새의 이마에 땀방울이 맺혔다.

아슬아슬하게 주도권을 놓칠 뻔했을 때 금빛 마력이 마수에게 타격을 가했다.

퍽!

‘벨키오르 님?!’

그 순간, 엘리펀티노소어가 완전히 은새의 이능에 사로잡혔다.

새하얗게 물든 눈동자로 마수가 행동을 우뚝 멈췄다.

은새는 몸을 돌려 벨키오르가 있는 쪽을 보고 환하게 웃음 지었다.

먼 거리였지만 그는 알아볼 수 있을 거라는 확신이 있었다.

은새는 테이밍이 풀리지 않게 정신을 다잡고 호령했다.

“가자, 코순아!”

[가자! 근데 뉴나, 저 마수 여자애예요?]

“나도 몰라!”

엘리펀티노소어에게 ‘코순이’라는 흉포함과는 맞지 않는 귀여운 이름을 지어 준 은새가 마수를 이끌었다.

뿌우우우!

엘리펀티노소어가 앞발을 쳐들며 코를 휘두르자 날뛰던 마수들이 쓸려나갔다.

쿵, 쿵.

그것이 걸을 때마다 마수들의 피가 흐르고 사체가 켜켜이 쌓였다.

마수들이 격렬히 저항했으나 엘리펀티노소어의 폭주를 막을 수는 없었다.

원래도 코끼리는 순수한 신체적 스펙만으로 지상 최강의 동물로 불렸다.

조금 전까지만 해도 공포의 대상이었던 엘리펀티노소어가 같은 편이 되자 국적을 막론하고 헌터들이 환호했다.

제한된 전력만으로 아득히 긴 시간을 버텨야 하는 이때, 엘리펀티노소어의 합류는 희망이나 마찬가지였다.

“와, 유은새 끝내주는데!”

“은새 너 반칙 아니냐? 엘리펀티노소어를 어떻게 이겨. 우리 지금 내기 중인데.”

“은새야, 각성석 사용한 거야? 전보다 스킬 사용이 능숙하네.”

“은새야……. 다친 곳은 없어?”

길을 뚫고 친구들이 은새가 있는 곳으로 몰려왔다.

숨길 수 없는 반가움을 드러내며 솔과 유하가 은새에게 장난을 걸었고 미리내는 스킬을 사용해 은새에게 문제가 없는지 살폈다.

인찬은 마치 은새 말고 제가 무슨 일을 당한 것처럼 안색이 핼쑥했다.

그들의 뒤를 따라온 우리는 속을 알 수 없는 표정이었다.

오랜만에 보는 얼굴들에 은새가 팔을 크게 휘저었다.

“얘들아! 이런 걸 준비했을 줄은 몰랐어. 깜짝 놀랐다니까?”

“서프라이즈 성공이야?”

“응. 벨키오르 님이랑 언제부터 준비한 거야?”

“네가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날 거라고 말했을 때부터. 청화 길드 놈들이 너한테 무슨 짓 했어? 자세하게 말해 봐. 복수해 줄게.”

“나중에. 지금은 던전 브레이크를 저지하는 게 우선이니까.”

은새는 하지 말라는 말은 하지 않았다.

유길선과 거래가 성사됐어도 당한 건 당한 거니까.

그때 우리가 입을 열었다.

“은새야.”

“응, 우리야. 고생했어.”

“고생은 네가 했지.”

그러고서 우리는 한동안 말을 잇지 못했다.

은새가 도다리의 등에서 뛰어내려 우리를 꼭 안아 줬다.

책임감 강한 그가 얼마나 괴로워했을지 보지 않아도 알 것 같았다.

“나 괜찮아.”

“다시는 너를 위험한 곳에 혼자 보내지 않을게. 다시는.”

“그래. 너무 자책하지 마. 이렇게 구하러 왔잖아?”

몸을 조금 떼어 내고 은새가 배시시 웃었다.

우리가 마지못해서 따라 웃었다.

“자, 자. 은새가 한 건 했으니 우리도 분발해야지? 저기 이매 길드장이 노려보는 시선이 따갑다.”

“도천 크루 완전체가 나가신다, 길을 비켜라!”

미리내가 두 사람에게 여기가 던전 브레이크 한복판이라는 걸 상기시켰다.

은새와 합류하고 텐션이 오른 솔이 화려한 불꽃을 일으켰다.

넘실거리며 일대를 휩쓴 불꽃은 하나로 뭉쳐져 동양 용의 형상을 띠었다.

이전보다 더 뜨겁게 달아오른 홍염룡이 위협적인 기세를 흘리며 주변을 에워싼 마수를 향해 불꽃의 숨결을 내뿜었다.

“‘신음하는 광야’!”

아가리를 쩍 벌린 홍염룡이 마수들에게 달려드는 것과 동시에 주변이 불바다가 됐다.

이글이글 타오르는 불길은 마수들을 통구이로 만들고 그게 아니어도 심각한 화상을 입혔다.

제대로 서 있을 수도 없는 뜨거운 땅 위에서 마수들이 고통스럽게 울부짖었다.

“남궁솔한테 지는 건 내 자존심이 용납 못 하지!”

솔의 등 뒤에서 유하는 활시위를 당겨 다중 타겟팅으로 마수들을 견제했다.

허공에 떠오른 수십 개의 빛의 화살.

여기까지는 평소와 같은 패턴이었다.

하지만.

우끼끼끼!

민첩성이 높은 마수가 화살을 피하자 유하가 손짓으로 화살의 궤도를 비틀어 마수의 관자놀이를 꿰뚫었다.

연이어 그는 날아가는 화살을 두 개, 세 개로 쪼개 마수들의 시야에서 벗어난 사각지대를 노려 공격을 가했다.

“유하야, 대단해! 어떻게 한 거야?”

“다 훌륭하신 스승님의 가르침 덕분이지…….”

은새가 감탄해서 목소리를 높이자 유하가 아련하게 대답했다.

그는 벨키오르의 시범을 보고 난 뒤 정말 죽도록 이능을 컨트롤하는 연습을 했다.

가진 이능이 바닥날 때까지 닥닥 긁어서 쓴 경험은 그에게도 많지 않았다.

하지만 이능 고갈로 탈력감에 허덕이면서도 그는 악착같이 매진했다.

오로지 강해지고 싶다는 일념으로.

‘그래서 화살의 궤도를 조작하는 거랑 쪼개는 건 얼추 감을 잡았는데……. 물체를 통과하는 건 도대체 어떻게 하는 거야?’

유하는 또다시 ‘드래곤이라서 가능한 게 아닌가’ 하는 의문이 생겨나는 걸 꾸역꾸역 삼켰다.

그럴수록 오기가 생겨서 어떻게든 해내고 싶었다.

그래서 벨키오르의 코를 납작…… 이건 아니고, 그가 다음으로 보여 줄 새로운 ‘경지’가 기대됐다.

“합!”

우리가 ‘베는 자의 맹세’ 스킬을 발동하며 마수를 압도적으로, 때로는 유연하게 일도양단했다.

해당 스킬은 싸울 상대가 많을수록, 적의 기세가 맹렬할수록 빛을 발했으므로 그는 독보적인 존재감을 드러냈다.

인찬 역시 고유 능력 ‘금강’을 활용해 보다 적극적으로 전투에 임했다.

스스로에 대한 자신감이 생기면서 그는 기백이 달라졌다.

인찬은 묵직한 방패를 부메랑처럼 던졌다 받으며 마수들에게 유효타를 먹였다.

또한 탱커로서 친구들을 지키기 위해 몸을 아끼지 않았다.

은새의 마수, 하늘이와 민들레는 미리내의 곁을 지켰다.

그녀는 친구들에게 적절한 힐과 버프를 넣어 주면서 정세를 살펴 오더를 내렸다.

아무래도 눈앞의 상대에 집중하다 보면 시야가 좁아지기 마련이니 미리내가 전체적인 흐름을 읽는 역할이었다.

완전체의 도천 크루는 누구 하나 모자람 없이 완벽했다.

청화 길드원들의 눈동자에 의문과 경악이 서렸다.

“도천 S급들이 저렇게 강했나?”

“엘리펀티노소어를 테이밍하다니……. 원래 유은새 헌터가 저 정도는 아니었잖아.”

“뭐지? 방금 그 기술은 어떻게 한 거지?”

그들의 수군거림을 엿들은 양희진이 볼을 부풀렸다.

어딜 가나 시선 집중, 과즙미 팡팡 터지는 헌터계의 아이돌은 관심이 고팠다.

“으으! 언니, 오빠들이 강한 건 사실이지만 나도 지지 않아! 길드장님, 제가 우리 길드의 명예를 걸고 싸울게요!”

양희진은 팀원들과 함께 전투에 임했다.

그녀는 물 속성 이능을 다루는 헌터.

‘파도를 부르는 석영 도끼’를 꺼낸 양희진의 주변으로 물보라가 일었다.

10대 소녀가 사용하기에는 험악한 무기였지만 도꾸(도끼 꾸미기)까지 열심히 한 그녀의 애장템이었다.

양희진의 팬들은 귀여운 외모와 그렇지 않은 무기에서 오는 갭 차이에 환장했다.

“으랴앗!”

양희진이 도끼를 휘두르자 하늘을 뒤덮는 파도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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