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24)화 (124/190)

123화 - 가장 무서운 사람

수십 대의 헬기가 포털로 이동했다.

포털의 정체를 묻는 사람들에게 우리와 미리내는 중국으로 가는 공간이동 포털이라고만 설명하고 더 말이 길어지기 전에 재빨리 헬기에 실어서 보내 버렸다.

의심과 당혹, 놀람과 충격 등을 안고 그들이 떠났다.

조금 전 포털의 빛에 휩싸여 사라진 헬기에서 양희진이 ‘엄마, 미안해!’ 하고 외친 소리가 들린 듯했다.

“그러게, 전화해서 사과하라니까.”

우리가 혀를 쯧 찼다.

엄마랑 싸우고 나온 일이 플래그가 되지 않게 신경 써서 무사히 집에 돌려보내야 할 것 같았다.

마지막 헬기. 비장한 표정을 한 도천 크루가 올라탔다.

“은새 보러 가자!”

“가자!”

포털로 진입하자 기이한 힘이 헬기를 감쌌다.

눈 깜빡할 새 시야가 바뀌었다.

다음 순간, 그들이 탄 헬기는 방치된 지 오래인 듯한 황폐해진 도시 상공에 떠 있었다.

그리고 멀리 보이는 이질적인 화려한 호텔.

먼저 도착한 헬기들이 상황 파악을 하느라 어수선한 게 보였다.

“저기 봐!”

솔이 어딘가를 가리켰다.

부식된 건물 사이로 독 안개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그리고 저 위치는 아마도.

“봉인된 던전.”

“던전 브레이크다!”

“남궁솔, 길짱 분위기 잡는데 가만히 좀 있어! 그리고 아직 우리가 나설 때가 아니거든?”

“우리야, 쟤는 신경 쓰지 말고 계속해.”

“…….”

우리가 짜게 식은 표정을 했다.

지금은 친구들의 배려가 전혀 고맙지 않았다.

그는 헛기침을 한 뒤 다른 헬기와 연결된 무전기를 들었다.

우왕좌왕하고 있을 특파원들에게 ‘특종’이라는 달콤한 보상을 줄 시간이었다.

“이곳은 중국 톈진의 베이천 구입니다. 아시다시피 봉인된 던전들로 인해 봉쇄된 구역입니다.”

그는 한 박자 쉬고 느리게 말을 이었다.

“그리고 지금 막 던전 브레이크가 시작됐습니다. 한 개의 던전이 아닌, 톈진 전역에서 연쇄적으로 브레이크가 일어날 것입니다.”

“크으. 길짱 폼 나네.”

“저게 저렇게 멋질 일이냐?”

삐친 우리를 달래 주려는 듯 친구들이 옆에서 과장된 제스처를 했다.

설핏 웃은 우리가 목소리에 힘을 실었다.

“독 안개가 피어오르고 있으니 헬기에 비치된 정화 아이템 사용하고 최대한 높이 올라가세요! 신호를 드릴 때까지 움직이지 마십시오. 만약 지시를 어기고 행동한다면 목숨을 보장해 드릴 수 없습니다.”

그는 살벌하게 경고했다.

다수가 모여 있으면 꼭 튀는 행동을 하는 사람이 나온다.

그럴 경우를 대비해 미리내가 도천 길드원들을 특파원들이 탄 헬기에 몇 명씩 배치했다.

“반대로 지시에만 따른다면 무사히 돌아갈 수 있을 테니 안심하지 마시고 긴장을 늦추지도 마세요. 신호를 기다리십시오. 다시 말하지만 절대, 지시를 어기지 마세요.”

무전기를 내린 우리의 눈동자가 기이하게 빛났다.

‘신호.’

신호를 주겠다고 했으나 정작 우리도 신호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의 시선 끝에 닿아 있는 호텔.

‘저곳에 은새가 있어.’

우리가 주먹을 꽉 쥐었다.

은새를 중국으로 보내고 그는 내내 불면의 밤을 보냈다.

벨키오르가 옆에 있는 걸 알아도 초조함과 불안감은 쉬이 가라앉지 않았다.

드래곤도 예기치 못한 상황이 생기면?

때때로 인간은 상상을 초월하는 짓을 서슴없이 저지르기도 한다.

벨키오르는 인간에게 익숙하지 않으니 은새를 보호하는 데 틈이 생길지 모른다.

‘……내 기우에 불과했지만.’

우리가 씁쓸한 미소를 머금었다.

결국 벨키오르는 은새를 완벽히 지켜 냈고 자신들을 여기까지 불러들이는 데 성공했다.

이제 멀쩡한 은새를 눈에 담는다면 완전히 안도할 수 있을 것 같았다.

한편 특파원들이 탄 헬기는 난리가 났다.

무전기를 통해 우리가 한 말 때문이었다.

“여기가 중국 톈진이라고? 봉인된 던전이 브레이크를 일으킬 거라고?”

“아까 그 포털은 뭐였지? 한국에서 중국으로 바로 이동하다니. 아이템? 스킬? 그게 뭐든 놀라워! 한국이 이런 일이 가능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어.”

“그런데 한우리 길드장은 옆 나라에서 벌어진 일에 왜 개입한 거지? 중국과 한국은 사이가 안 좋은 거 아니었나? 그러고 보니 아까, 몬스터 테이머가 안 보인 것 같았는데.”

“헌터 유은새가? 설마…….”

특파원들의 머리가 팽글팽글 돌았다.

작은 단서만으로 그들은 이미 그럴 듯한 소설을 한 편 뚝딱 써 냈다.

“……이 대재앙을 중국과 한우리 길드장이 어떻게 대처하는지 지켜보자고! 그러면 모든 전말을 알게 되겠지.”

“혹여 죽게 되더라도 이 사실은 바깥에 알려야 해! 중국이 과거에 얼마나 어리석은 선택을 했는지 밝혀야 한다고!”

중국의 악랄한 언론 통제에 대해 잘 아는 외국인 특파원들은 눈에 불을 켜고 주변의 모든 걸 기록했다.

카메라를 켜고 그 앞에서 상황을 설명했다.

특히 직업 관련 스킬 -비전투 스킬 중 ‘직업’에 특화된 스킬을 이리 부른다-, ‘스트리밍’ 스킬이 있는 특파원들은 즉시 실시간 중계를 시작했다.

문득 한 사람이 중얼거렸다.

“그런데 한우리 길드장은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거라는 걸 어떻게 알았을까?”

“그게 뭐가 중요해? 우리가 지금 역사적인 사건 한가운데에 있는데! 뭐든 찍어, 빨리!”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신호’라는 게 왔다.

정확히는 호텔에서부터 변화가 시작됐다.

처음에는 아무도 눈치채지 못했다.

독 안개 때문에 뿌예진 거리에 분홍빛 기운이 어른거리더니 무언가 꿈틀거렸다.

호텔을 둘러싸고 촘촘히 내려앉은 분홍빛의 기운은 곧 지상에 푸릇푸릇한 식물을 싹 틔웠다.

덩굴은 대로변을 기어서 폭발적으로 성장하며 도시를 온통 뒤덮을 기세로 퍼져 나갔다.

건물을 타고 오르며 영역을 넓혀 갔다.

마침내 손바닥만 한 새파란 잎이 일시에 돋아나는 순간, 독 안개가 퍼지는 속도가 주춤했다.

푸른 잎은 크게 호흡하듯 독기를 빨아들였다.

황폐한 도시가 녹음으로 뒤덮이는 건 순식간이었다.

“저, 저건!”

“여러분들 보이십니까? 도시를 뒤덮은 식물이 독 안개를 흡수하고 있습니다! 클로로키네시스(Chlorokinesis, 식물 조작 능력자)인 걸까요?”

시야가 걷히자 브레이크로 인해 던전에서 쏟아지는 마수들의 형상이 잘 보였다.

도시로 진격하는 마수들이 눈에 띄는 호텔을 발견한 건 당연지사.

“위험합니다!”

마수들과 호텔이 충돌하기 직전, 우웅 하는 소리와 함께 호텔 주변으로 방어막이 형성되었다.

결계 시스템이었다.

쿠어어어!

그르르르!

가로막힌 마수들이 울부짖었고, 호텔에서 헌터들이 쏟아져 나왔다.

그들 가운데 은새와 벨키오르, 별이와 봄이가 있었다.

봄이는 힘을 써서 지쳤는지 벨키오르의 품에 안겨 축 늘어져 있었다.

은새를 발견한 도다리가 꾸꾸 울며 민들레와 하늘이가 든 케이지를 움켜쥐고 하강했다.

기뻐하며 도다리와 마수들을 맞아 주는 은새를 눈에 담으며 우리가 무전기를 들었다.

“저희도 움직입니다.”

“야호, 은새야! 언니 왔다!”

“도천 크루, 중국에서 재결합!”

“얘들아, 중국 애들보다 누가 더 많이 마수 잡는지 내기할래?”

“콜!”

헬기의 문이 일시에 열리며 한국 측 헌터들이 뛰어내렸다.

도천 길드 공략팀과 양희진 팀, 김일도, 이매와 한서리도 허공을 밟으며 전투를 개시했다.

청화 길드원들은 그저 이 상황이 황당했다.

던전 브레이크를 예견한 듯한 유은새나 때맞춰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한국 헌터들.

그리고 이제 보니 온갖 나라에서 특파원들이 와 있었다.

‘거래를 받아들이지 않았으면 곤란해지는 건 내 쪽이었겠군.’

유길선이 허탈한 웃음을 흘렸다.

이 위기가 끝나면 은새는 어떻게든 한국으로 돌아갔을 것이다. 그렇게 판이 짜여 있었다.

이제 그녀는 개선장군이 되어 한국인들의 환호와 박수를 받으며 이전보다 더한 위상을 누리겠지.

중국은 국제 사회의 비난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얘들아, 보고 싶었어! 다른 애들은 잘 있어?”

꾸우우!

크러앙!

유길선이 자신의 마수들과 격하게 인사를 나누는 은새를 쳐다봤다.

가장 무서운 사람은 은새였다.

어쩌면 중국은 건드려서는 안 될 사람을 건든 것인지도 모르겠다.

유길선이 외쳤다.

“내륙에서 지원이 올 때까지 우리는 여기서 길을 뚫는다! 부상자들은 호텔로 돌아와 회복하고 오직 생존을 위해 싸워라!”

“예!”

그들은 모르지만 다행인 점은 벨키오르가 먼 곳에 있는 봉인된 던전들을 제어하고 있다는 것이었다.

적어도 물밀듯이 밀려드는 마수 떼에 짓밟혀 죽을 일은 없을 테니까.

유길선과 청화 길드원들이 한국 헌터들이 격전 중인 현장에 가세했다.

그 광경을 보던 은새가 마수들의 등을 도닥였다.

“얘들아, 우리도 가자.”

[뉴나, 나두여!]

도다리가 날개를 펼쳐 몸을 낮추었고, 별이를 어깨에 올린 은새가 훌쩍 등에 올라탔다.

민들레와 하늘이도 완전히 성체화해서 전투태세를 갖추었다.

그녀의 곁으로 봄이를 안은 벨키오르가 다가왔다.

“봄이야, 다녀올게. 벨키오르 님, 봄이를 부탁해요.”

“그러지. 조심해라, 은새.”

“네!”

벨키오르와 은새는 따로 행동하기로 했다.

카메라가 찍고 있으니 그는 너무 눈에 띄어서는 안 됐다.

그러니 한발 물러서서 인간들이 위험할 때 적당한 도움을 주기로 했다.

“가자, 도다리야!”

끼에에!

도다리가 긴 울음을 토해 내며 비상했다.

그녀는 주변을 돌아보며 정세를 살폈다.

쿵. 쿵.

그때 저 멀리서 심상치 않은 땅 울림이 들렸다.

그리고 나타난 건 다른 마수와 비교해 월등히 큰 덩치와 힘을 자랑하는 S+급 마수 엘리펀티노소어(Elephantinosaur)였다.

그것은 다른 마수들을 발로 차며 돌진했다.

지상의 헌터들이 엘리펀티노소어를 발견하고 굳는 게 보였다.

‘이제 이걸 쓸 때가 됐어.’

은새가 꺼내 든 것은 각성석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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