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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23)화 (123/190)

122화 - 혹시 우리한테 감정 있어?

[은새가 하려는 일이 정확히 뭡니까?]

“…….”

눈매를 가늘게 좁힌 벨키오르는 화면을 노려보다가 단말기를 톡, 톡 조작했다.

그는 뛰어난 지능으로 한글의 문자 체계를 모두 습득한 상태였다.

은새가 외출했을 때 그는 집에서 나름대로 알뜰하게 시간을 보냈다.

책을 읽는 게 가능하니 쓰는 것 역시 무리가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를 일으킬 거다.]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는 게 아니라 일으킬 거라고요?]

[그래.]

우리에게서 답장이 늦어졌다.

아마도 은새가 중간에 설명을 생략한 부분이 있어서 당황한 듯했다.

벨키오르는 무료하게 하늘을 올려다봤다.

단말기에 반짝 빛이 들어왔다.

[자세히 설명해 주실 수 있을까요?]

[내가 왜.]

[은새에게 힘이 될 겁니다.]

우리와 친구들은 벨키오르를 다루는 법을 잘 알았다.

그에게는 상식을 바라면 안 됐다.

그들이 아는 상식과 벨키오르가 아는 상식은 궤가 달랐다.

그러니 조리 있게 말하는 것보다 은새를 끌어들이는 게 빨랐다.

아닌 게 아니라 벨키오르는 잠시 후 견고했던 철벽을 조금 낮추었다.

[어떻게 힘이 될 수 있다는 거지?]

단말기의 한계 때문에 우리와 벨키오르는 짧은 문장들로 소통해야 했다.

핵심만, 간결하게.

그렇게 은새와 벨키오르의 ‘계획’을 들은 우리와 미리내는 곧장 작전을 수립했다.

“중국을 제외한 G9을 끌어들이자. 한국 언론만으로는 판을 키울 수 없으니 강국들을 이용해야 해. 뭣보다 추후 중국이 난리 칠 게 뻔한데 우리만 독박 쓸 수는 없잖아?”

“중국을 눈엣가시로 여기던 나라들이 좋아하겠네.”

“봉인된 던전에 대한 화제를 키우고 은새가 중국의 모략으로 인해 억울한 누명을 썼다는 것까지 흘리면 되겠네. 우리가 갑자기 중국에서 나타난 것에 대한 구실로.”

“중국 출장에 몇이나 데려갈 거야? 아예 한국을 비울 수는 없고 위험한 상황인 만큼 어느 정도 전력을 갖춰야 할 텐데.”

“다른 길드에 협력 요청을 하는 건?”

“동맹 맺은 길드라면 상관없을 것 같은데 굳이 그럴 필요 있을까? ‘그거’ 쓰면 되잖아. 도천 화학 연구원들의 빛나는 성과.”

“……그걸 시험해 보자고?”

“지금 아니면 언제 써 봐?”

아연한 표정을 지은 우리에게 미리내가 씩 웃어 보였다.

잠시 생각해 본 우리가 혹하는 기색을 보였다.

“……사람이 살지 않는 지역이니 괜찮을지도.”

“그래. 그게 만들어진 목적도 우리가 사용하려는 이유랑 일맥상통하잖아? 회장님께 잘 말씀드려서 몇 개 빼 와.”

“말씀드려 볼게.”

그리고 마침내 신호탄이 울렸을 때.

[놈들이 은새를 지하로 데려갔다.]

우리와 친구들은 계획한 대로 움직였다.

우선 며칠 전부터 도천 길드 빌딩에서 대기 중인 외국인 특파원들을 불러 모았다.

“한우리 길드장님! 정말 특종 주시는 거 맞죠? 언제까지 대기해야 합니까?”

“미스터 한, 약속된 시일이 머지않았어요. 저희 같은 사람들에게 시간은 금인 거 아시잖아요? 며칠째 공치고 있으니, 원.”

“중국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 겁니까? 그것만 알려 주세요.”

온갖 나라의 언어가 쏟아졌다.

이 말도 많고 의심도 많은 사람들을 불러 모으느라 우리와 미리내는 가진 수단을 다 동원했다.

인맥, 돈, 지위.

이들을 움직인 가장 결정적인 요인은 특종의 냄새였다.

그게 아니었으면 저 콧대 높은 사람들이 과연 아시아의 작은 나라까지 올 생각을 했을까.

제 발로 모였으면서 수시로 떠보는 말을 던지는 그들을 우리가 무신경한 눈길로 바라봤다.

저들은 성가신 만큼 확실히 도움이 될 터였다.

“앞으로 12시간 후에 움직입니다. 장비 챙기고 시간 되면 옥상으로 모이세요.”

“……예? 12시간 후라고요?”

이렇게 갑자기?

아니, 사건이라는 건 어느 때고 난데없이 벌어진다.

오히려 시간을 예고해 준 한우리가 이례적인 경우였다.

“다들 뭐 해! 장비 점검하고 필요한 거 챙겨!”

“빨리빨리 움직여!”

“그런데 미스터 한, 무엇으로 이동합니까? 중국 어느 지역으로 가는지 정도는…….”

“헬기요.”

“헬기……? 한국에서 중국까지 헬기로 이동한다고요? 잠시만!”

붙잡는 손길을 뿌리치고 우리와 미리내는 바로 이동했다.

많은 인원이 한 번에 이동해야 했기 때문에 수십 대의 헬기가 필요했다.

미리 연락해 놓은 곳들에 확인 전화를 돌렸다.

전화를 받은 이들은 아리송하다는 듯 물어왔다.

-한우리 길드장님, 이 많은 헬기를 어디다 쓰시려는 겁니까? 국내에 큰일이라도 터지나요?

“쓸 일이 있어서 그럽니다. 말씀드린 시간에 도천 길드 빌딩 옥상으로 보내 주세요. 조금이라도 지체되면 안 돼요.”

-허 참…….

다음은 공략팀원들이었다.

다른 이들과 다르게 중국으로 가는 정확한 목적을 알고 있는 도천 길드원들은 굳은 표정으로 우리의 호출에 응했다.

박도윤 팀, 배진혁 팀, 오향기 팀을 비롯해 도천 길드의 핵심 공략팀이 모였다.

그리고 뒤이어 협력을 요청한 동맹 길드 소속 헌터들이 속속들이 도착했다.

“이리 오너라! 우리 오빠, 미리내 언니 오랜만?”

“이야, 또 무슨 재미있는 일을 꾸미기에 바글바글해?”

“…….”

“다행히 늦지 않았군요. 아, 저희 길드장님도 반갑다고 하시네요.”

혜화 길드의 양희진 팀장과 그 팀원들, 언록 길드의 김일도 길드장, 그리고 갑화 길드의 이매 길드장과 한서리 부길드장이었다.

10대 후반의 양희진은 원래라면 학교에 다녀야 할 나이이지만 어린 나이부터 각성해서 벌써 4년 차 베테랑 헌터였다.

헌터계의 아이돌이라고 불릴 만큼 귀엽고 예쁜 외모를 지녀서 인지도가 높은 헌터이기도 했다.

양희진의 팀원들은 다들 그녀보다 나이가 많지만 양희진의 헌터로서의 경력을 존중하며 잘 서포트해 줄 수 있는 믿음직한 이들로 구성되었다.

그들은 던전 외의 장소에서는 양희진의 보호자 역할을 겸했다.

“꼬맹이, 너도 왔냐?”

“아저씨, 전에 봤을 때보다 배가 더 나온 것 같은데요?”

“윽, 너 아픈 곳을 찌르기냐?”

“헌터는 몸 관리가 생명인데 긴장하셔야죠.”

“인마, 너 나잇살이라고 들어봤어? 이건 내 의지로 어떻게 되는 게 아니다.”

“의지 부족이에요, 아저씨. 우리 길드장님은 아저씨랑 동년배인데도 빨래판 복근이시라구요?”

“동년배라는 단어도 알아? 똑똑하네.”

그리고 김일도는 30대 후반 남성으로, 1세대는 아니고 2세대 헌터쯤 되는 인물이었다.

나이 차이 많이 나는 양희진과 격의 없이 대화를 나눌 정도로 그는 동네 아저씨 같은 서글서글함이 있었다.

물론 김일도처럼 멀끔하고 체격 좋은, 호감형의 동네 아저씨는 환상종이나 마찬가지였으므로 비유일 뿐이었다.

참고로 김일도와 동년배인 데다 빨래판 복근이라는 혜화 길드의 길드장은 여성이었다.

김일도는 생긴 것처럼 성격도 시원시원하고 수더분해서 업계의 마당발로 통했다.

그의 길드는 던전 공략보단 사회봉사와 민간인 보호를 위해 만들어졌다.

던전 공략을 중요시하는 다른 길드와는 성격이 달랐다.

혜화 길드장에 대한 자부심을 뿜뿜 드러내는 양희진을 어린 조카 보듯 귀엽게 보던 김일도가 짓궂게 이매 길드장의 옆구리를 찔렀다.

“어이, 이매망량. 요즘도 세계 곳곳을 돌아다니면서 유물 같은 걸 찾나?”

“…….”

“던전의 비밀을 캐는 일에는 성과가 좀 있고?”

“김일도 길드장님. 저희 길드장님께서 그 입 닥치지 않으면 죽여 버릴 거라고 하십니다.”

“어어, 한서리 부길드장도 여전하네. 보기 좋아.”

갑화 길드는 길드장 이매를 필두로 소수 정예로 구성된 길드였다.

이매는 원래 길드 같은 거추장스러운 걸 싫어했으나 그의 추종자들 때문에 어쩔 수 없이 길드를 세운 경우에 해당했다.

그리고 한서리는 추종자 무리의 두목이었다.

격변의 시대가 도래한 뒤, 던전의 정체와 생겨난 이유에 대해 다양한 가설들이 제기되었다.

그중 가장 많은 이들의 지지를 받는 게 던전이 이세계와 지구를 잇는 문(Gate)이라는 설이었다.

실제로 던전의 환경은 가상의 공간이라고 하기에는 실체가 뚜렷했으며 지구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문명의 흔적이 발견되기도 했다.

던전 공략에도, 헌터들의 투쟁에도 흥미가 없는 이매는 던전의 비밀을 밝히기 위해 세계 각지를 돌아다니며 유물을 모았다.

한국에 머무는 기간이 채 세 달이 될까 말까인 그가 우리의 협력 요청에 응한 건 과거에 우리에게 도움을 받았던 적이 있기 때문이었다.

분위기가 대강 정리되자 김일도가 회동의 이유를 물었다.

“한우리 길드장. 우리 중국 간다며? 왜?”

“톈진 지역의 봉인된 던전들이 일제히 브레이크를 일으킬 겁니다.”

“…….”

“쿨럭! 켁켁.”

침을 잘못 삼켜 사레에 들린 양희진의 등을 그녀의 팀원이 두드려 줬다.

모두가 경악한 얼굴이었다.

순간 멍해졌던 김일도가 풋 웃으며 손사래를 쳤다.

“한우리 길드장. 그런 농담 재미없어. 혹시 우리한테 감정 있어?”

“사실입니다. 그리고 그곳에 은새가 붙잡혀 있습니다. 저희는 은새를 구출하는 것과 동시에 브레이크를 저지할 생각이고요.”

“……아니 왜? 유은새 헌터가 왜 거기에 있어? 그보다, 중국에서 일어난 던전 브레이크를 우리가 왜 막아? 봉인된 던전이면 그, 하여튼 그거 아니야? 말도 잘 안 나오네.”

당황한 김일도의 말이 빨라졌다.

감정 변화가 적은 이매마저 포커페이스가 깨졌다.

“우리 오빠! 저희 죽으러 가요? 어떡해, 나 오늘 아침에 엄마랑 싸우고 나왔는데!”

“안 죽어. 대비는 다 해 놨으니까. 그리고 얼른 사과 전화는 드려.”

“대비가 되어 있어도 현실적으로 가능한 일인가, 그게?”

우리는 간략하게 작전을 설명했다.

듣는 이들은 그저 ‘허…….’ 하는 탄식만 흘릴 뿐이었다.

미리내가 손목시계를 확인했다.

“시간이 다 됐네요. 옥상으로 올라가시죠.”

수십 개의 헬기가 날아드는 도천 길드 빌딩 옥상에는 솔과 유하, 인찬을 포함해 많은 인원이 모여 있었다.

은새의 마수인 도다리와 민들레, 하늘이 또한.

그리고 그 한가운데.

“저건 뭐야……?”

벨키오르가 만들어 놓은 대규모 포털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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