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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22)화 (122/190)

121화 - 제 친구들이요?

“마수? 마수가 왜 이곳에…… 설마!”

청화 길드원들이 동요했다. 그들 중 일부는 자리를 이탈해 바깥 상황을 살폈다.

“기, 길드장님! ‘돌아올 수 없는 숲’ 던전의 봉인이 풀렸습니다!”

“던전 브레이크입니다. 독 안개가 퍼지고 있어서, 이대로라면 고립되는 건 시간문제입니다!”

던전의 봉인이 풀렸다는 것은 S급 이상의 마수들이 쏟아져 나온다는 뜻이었다.

더군다나 해당 던전은 독 안개라는 특수성 때문에 난관이 예상되었다.

공기 중에 독 안개가 퍼지는 걸 인간의 힘으로 막기란 어려웠다.

바람 속성 스킬이나 정화 아이템을 사용한다고 해도 근본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않는 한 한시적일 뿐이었다.

결국 던전 브레이크 수습과 더불어 던전을 공략해야 한다는 결론이 나왔다.

그게 끝이 아니었다.

“길드장님! 봉인된 던전끼리 연쇄 반응을 보이고 있습니다. 베이천 구를 넘어서 톈진 전체가 마수로 뒤덮일 겁니다. 막지 못하면 내륙이 위험합니다!”

“‘제7의 마경’을 포함해 던전 세 곳이 히든 던전으로 변화할 조짐이 보입니다! 마수 추정 등급 S++급 이상……!”

“지원을 요청해야 합니다. 저희만으로는 감당할 수 없습니다!”

중국이 오래도록 방치해 온 시한폭탄들에 일제히 불이 붙었다.

그것은 외면한 세월만큼 후폭풍이 거셌으며 도망칠 수 없는 현실이었다.

게다가 히든 던전화.

등급이 상승한 마수들이 내륙으로 진입할 경우 민간인 피해는 말할 것도 없고 도시 자체가 파괴될 것이다.

예고된 재앙.

길드원들의 보고를 듣던 유길선이 끼기긱 은새를 쳐다봤다.

“유은새 헌터…… 당신의 계략입니까?”

“설마요. 호텔에만 있었던 제가 무슨 능력이 있어서요.”

은새는 천연덕스럽게 어깨를 으쓱했다.

유길선이 그녀 옆에 서 있는 정체불명의 남자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누구지?’

모습을 드러내기 전까지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저자의 존재를.

‘언제부터 여기 있었던 거지?’

처음부터? 아니면 도중에 합류했나?

어느 쪽이든 말이 되지 않았다.

은새에게는 언제나 감시의 시선이 붙어 있었고 누가 그녀에게 접근하는 낌새는 없었다.

룸은 물론, 개조실에서조차 알아차리지 못했다.

고등급 헌터의 감각과 온갖 스킬, 아이템, 마석을 이용한 결계로도 남자를 감지해 낼 수 없었다.

저토록 확연한 존재감을 가진 이를.

심지어 유길선은 공표하지 않았으나 각성석을 사용한 SS급 헌터였다.

‘…….’

그때 유길선과 벨키오르의 눈이 마주쳤다.

동공이 세로로 가늘어진 금색 눈동자를 목도한 그는 뒷덜미가 저릿할 만큼 오싹함을 느꼈다.

쿠웅.

벨키오르에게서 뻗어 나온 무형의 기세가 유길선을 옴짝달싹 못 하게 짓눌렀다.

살기?

그런 게 아니었다.

격이 높은 존재만이 지닐 수 있는 자연스러운 위압감.

‘강하다!’

이를 사려 문 유길선의 입가가 파르르 떨렸다.

인간과 마수를 통틀어, 지금껏 상대해 왔던 어떤 적보다 벨키오르 한 명이 강할 것이라는 직감이 들었다.

차원이 다른 격.

벨키오르의 뒤로 감히 올려다보기 힘들 만큼 거대하고 아득한 형상이 보인 듯했다.

‘숨이……!’

유길선뿐만 아니라 청화 길드원들 역시 같은 느낌을 받고 있었다.

봉인된 던전이 브레이크를 일으켜 위기일발의 상황인데도 도저히 움직일 수 없었다.

그곳에 모인 이들 중 오직 은새만이 멀쩡하게 걸음을 옮겨 쓰러져 있던 양설을 부축했다.

“괜찮아요?”

“어…… 어.”

양설은 귀신이라도 보는 듯한 표정이었다.

머리를 갸웃한 은새가 그녀를 왕호연 쪽으로 밀었다.

“둘이 같이 있어요. 위험하니까.”

두 사람의 능력은 대규모 전투를 하는 데 적합하지 않다.

뒤로 물러나 몸을 사리는 게 상책이었다.

곧 이 호텔은 마수들에게 포위될 테지만 이 안에만 있으면 은새가 보호해 줄 수 있었다.

‘이제 저 두 사람을 모른 척할 수 없게 됐으니 말이야.’

씁쓸한 미소를 지은 은새가 유길선 앞으로 가 섰다.

“유길선 길드장님. 시간을 많이 드릴 수 없다고 했잖아요.”

“…….”

“이제 결정을 내리세요. 국가 존속을 위협할 만한 사건이 터졌으니 중국 정부가 일개 헌터인 저를 신경 쓸 새가 있을까요?”

은새는 유길선을 회유하는 걸 포기하지 않았다.

봄이도 봄이지만, 사영 헌터 때문이었다.

‘살릴 수 있는 사람은 살려야지.’

그녀를 보는 유길선의 눈빛이 가라앉았다.

은새는 지금 당국의 뜻에 거역할 명분을 주고 있었다.

“제 손을 잡으시면 혹시 알아요? 길드장님이 원하는 것과 더불어 이 위기를 타개할 방법이 생길지.”

그에 더해 살아날 방도까지 제시하고 있었다.

즉시 이 구역을 벗어나는 것 외에는 사상 최악의 던전 브레이크에서 생존할 가망은 없다.

헌터 개개인이 얼마나 뛰어나든 물량에는 장사가 없는 법이었다.

하지만 그들이 물러나면 피해를 보는 건 중국 전체였다.

“……방도가 있다는 당신의 말을 어떻게 믿습니까?”

지금도 마수의 울음소리가 멀리서 들려오고 있었다.

은새는 천천히 사람들 사이를 가로질러 걸어가 줄곧 머무르던 최상층 룸의 문을 열었다.

통창으로 자욱하게 피어오른 독 안개가 보였다. 이미 상당히 위험한 수준이었다.

“잊으셨나 봐요. 우리 봄이의 능력을.”

삐이!

벨키오르가 모습을 드러냈을 때부터 그에게 답삭 안겨 있던 봄이가 해맑게 울었다.

봄이는 어떤 식물이든 자라나게 할 수 있고 또 지게 만들 수 있다.

해독에 뛰어난 식물로 이 도시를 덮는 것쯤은 어렵지 않은 일이었다. 기력만 받쳐 준다면.

‘산처럼 쌓아 둔 포션이 있으니 문제없지.’

그런데.

두두두.

“뭐, 뭐지?”

“왜 헬기 소리가…… 벌써 지원이 온 건가?!”

청화 길드원들의 목소리에 희망이 담겼다.

‘헬기라고?’

은새는 어리둥절해졌다.

이곳의 상황이 벌써 중국 내륙에 전해졌을 리 없는데 기다렸다는 듯이 나타난 저것들은 뭐지?

더군다나 고작 한두 대가 아닌, 수십 대의 헬기가 날아들고 있었다.

하늘을 까맣게 채운 헬기들을 의아하게 보는 은새에게 벨키오르가 말했다.

“은새, 네 친구들이다.”

“제 친구들이요?”

걔네가 여기를 어떻게 와?

설마 저 헬기가 전부 도천 길드원들이라고?

그러기에는 수가 너무 많았다.

‘으응? 방금 왠지 미국 뉴스 방송국 마크를 본 것 같은데?’

미국뿐만이 아니었다.

G9이라고 불리는 국제 헌터 연맹에 속한 강국들의 보도국 마크가 드문드문 보였다.

‘얘들아 설마…… 아니지?’

눈눈이이.

도천 크루가 입버릇처럼 외치는 구호였다.

여론전으로 싸움을 걸어왔으면 여론전으로 카운터펀치를 날려 주는 게 강호의 도리.

“…….”

불안감을 느낀 은새가 은근슬쩍 시선을 돌렸다.

아직 청화 길드원들은 눈치채지 못한 듯한데, 나중에 어떤 반응을 보일지.

‘파장이 내 생각보다 훨씬 더 크겠는데. 근데 어떻게 알고 이렇게 딱 맞춰서 왔지? 거리도 거리이지만 입국 허가를 받고 들어왔을 리는…… 무허가 입국?’

은새가 무언가를 깨달은 것처럼 벨키오르를 봤다.

그런 걸 가능하게 할 존재는 벨키오르밖에 없었다.

은새의 시선이 의미하는 바를 모르지 않을 텐데도 그는 아무 말이 없었다.

무언의 긍정.

‘역시 벨키오르 님이야!’

어째 단말기를 안 돌려준다고 했다.

친구들과 이런 계획을 세우느라 그런 모양이었다.

은새가 까만 눈을 반짝거렸다.

“제가 졌습니다. 유은새 헌터의 말대로 하죠.”

헬기마저 은새의 원군이라는 걸 알게 된 유길선이 항복 선언을 했다.

은새의 역량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 그의 패착이었다.

설마하니 저런…… 같은 인간인지조차 의심되는 괴물을 등에 달고 다닐 줄은.

“어떤 수를 준비해 놔서 이리 자신만만한지는 모르겠습니다만 당신에게 협력하겠습니다.”

중국과, 아니 유길선과 은새의 입장이 뒤바뀌는 순간이었다.

***

“벨키오르 님, 혹시 이렇게 해주실 수 있으세요?”

모든 계획은 은새의 그 한마디에서 시작됐다.

톈진 내에 있는 봉인된 던전이 위험하다는 얘기를 듣고 그녀는 이를 이용할 방법을 모색했다.

“저 사람들은 아직 이 사실을 모르니까 정보를 빌미로 빚을 지울 수 있겠어요. 어떻게 믿게 하느냐가 관건이기는 한데, 음…….”

은새는 생각한 바를 주절주절 늘어놓았다.

결론을 놓고 과정을 만들어야 했기 때문에 복잡하고 긴 설명이 이어졌다.

게다가 은새는 발이 묶인 처지라 다른 사람을 움직여서 증거를 모아야 했기에 까다로웠다.

얘기를 끝마친 은새가 뺨을 긁적였다.

“이러면 너무 복잡하려나요?”

“그대가 원하는 걸 빠르게 얻으려면 설득하기보다 봉인을 풀어 브레이크를 일으키는 게 낫지 않겠나?”

“네? 하지만 그러면 여기 있는 사람들뿐만 아니라 중국이라는 나라가 위험해질 텐데요. 저는 중국이 봄이를 포기하게 하고 싶은 거지, 망하게 하려는 게 아니에요. 무엇보다 무고한 민간인들이 희생될 거예요.”

던전이 하나만 터져도 재난이다.

그런데 여러 곳이 동시에 브레이크를 일으키면 인간이 극복하기 어려운 재앙이었다.

여기가 사람이 살지 않는 봉쇄 구역이라 시간은 벌겠지만 마수들이 내륙으로 밀고 들어가리라는 것은 자명했다.

은새의 걱정 어린 얼굴을 빤히 들여다보던 벨키오르가 말했다.

“피해를 최소화할 방법이 있다면?”

“어떻게요?”

그가 내놓은 계책을 들은 은새가 박수를 쳤다.

“좋아요! 그렇게만 하면 문제없겠어요. 저도 사력을 다해 도울게요.”

그리고 은새가 작전을 위해 분주히 움직이고 있던 어느 날 밤, 벨키오르는 한국에 있는 한우리로부터 연락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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