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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16)화 (116/190)

115화 -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어

은새가 호텔 시설을 돌아보고 있는 동안 벨키오르는 주변을 조사하고 있었다.

도천 크루가 그에게 맡긴 일이었다.

황폐한 도시 한복판.

그는 강한 푸른빛을 내는 던전 포털을 말없이 내려다보았다.

‘강제로 닫아 두었군.’

보는 시선이 없어 은신 마법을 풀고 모습을 드러낸 벨키오르는 샐쭉 가늘어진 동공으로 사슬처럼 얽힌 이형의 힘을 읽었다.

그것은 오랜 시간을 버텼는지 당장이라도 바스러질 것처럼 간신히 형태를 유지하고 있었다.

“얼마 못 가겠어.”

벨키오르가 못마땅하다는 듯 혀를 찼다.

봉인이 풀리거나 말거나 그와 일절 상관없는 일이었지만 하필 은새가 이곳에 있는 게 문제였다.

은새에게 듣기로 ‘던전 포화도’라는 것이 100%에 달하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난다고 했다.

내부를 가득 메운 마수들이 일시에 밖으로 터져 나와 도시를 파괴하고 사람들을 죽인다고.

현재 그가 있는 지역은 사람이 살지 않는 봉쇄 구역이었기에 인명피해는 나지 않겠으나 호텔에 상주하고 있는 인원만으로 재난을 막을 수 있을지는 장담할 수 없었다.

포털에서 흘러나오는 기운으로 봤을 때 이 던전에는 제법 강한 마수들이 도사리고 있었다.

그리고 이는 한 곳만 그런 게 아니었다.

벨키오르는 50km 정도 떨어진 곳에 있는 또 다른 봉인된 던전으로 가 상태를 살폈다.

그 던전 역시 불안정했다. 마치 짜 맞춘 것처럼.

“……알려야겠군.”

은새에게 미리 위험을 경고해 둬야 할 듯싶었다.

벨키오르가 그녀를 최우선으로 보호할 테지만 도천 크루가 이곳을 조사해 달라고 한 것에는 의도가 있을 테니까.

“쯧.”

그는 내심 은새를 자신의 세계로 데려다 놓고 싶었다.

복잡하고 허황되고 음모와 모략이 끊이지 않는 인간세계와 달리 벨키오르가 다스리는 세계수의 신역은 언제나 평온하고 아름다웠으니까.

아마 그곳에 가면 은새는 지금과 비교가 안 되게 안락하게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치열히 싸울 이유도, 누군가를 지킬 필요도 없고 가까운 이의 죽음을 지켜볼 일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은새는 이쪽 세계의 인간이었다.

드래곤과 달리 인간은 혼자서 살아갈 수 없으며 이곳에는 은새가 소중하게 가꿔 놓은 것들이 존재했다.

그런 걸 은새의 생각을 묻지도 않고 빼앗을 수는 없었다.

벨키오르는 자신이 침범해도 될 영역과 아닌 것을 명확히 구분하고 있었고, 어차피 반영생을 사는 그에게 조금 더 은새를 기다리는 것쯤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지금쯤 방으로 돌아왔을까.’

벨키오르는 은새가 머무르는 호텔이 있는 방향으로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

유길선은 통유리창으로 밖을 내다보고 있었다.

변화를 멈춘 폐쇄된 도시.

그 삭막한 풍경을 보고 있을 때면 유길선의 머릿속은 여러 심상으로 복잡하게 얽혔다.

세상을 발밑에 두었다는 우월감과 성취감, 그리고 정작 아무것도 손에 쥐지 못했다는 공허함과 허무감이 공존했다.

‘지루하군…….’

그때 유길선의 품 안에서 호출기가 울렸다.

베이징에 있는 부길드장 진아소의 연락인 걸 확인한 유길선이 호출에 응했다.

“무슨 일이지.”

-길드장님, 급히 알려 드려야 할 사안이 있어서 연락드렸습니다.

그녀는 현재 자리를 비운 유길선을 대신해 길드를 이끌고 있었다.

단조로운 억양으로 유길선이 대답했다.

“말해.”

-사영 님의 상태가 급속도로 나빠지고 있습니다. ……서두르셔야 할 것 같습니다.

사영.

그녀의 이름이 들려오자 유길선의 인상이 험악하게 굳었다.

무표정하던 그의 얼굴에 선명한 감정이 떠올랐다.

그것은 그와 어울리지 않는 초조함과 불안감이었다.

“알았다. 변화가 있으면 바로 연락해.”

호출을 끊은 유길선은 대기 중이던 길드원을 불렀다. 그리고 은새의 행적을 물었다.

“유은새는. 뭘 하고 있지?”

“훈련 시설에서 왕호연 헌터와 양설 헌터와 함께 있다고 합니다.”

“또?”

왕호연과 양설이 은새를 처음 찾은 지 며칠째.

그들은 유길선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은새의 주변을 얼쩡거렸다.

허튼소리만 하지 않는다면 구태여 만남을 막을 이유가 없어서 내버려 뒀더니 아주 은새가 룸 밖으로만 나오면 졸졸 쫓아다녔다.

그렇다고 그들의 사이가 온건한 것도 아니었다.

양설은 은새에게 날을 세웠고 은새는 그런 그녀를 무시했다.

왕호연은 양설 때문에 그 자리에 있는 것이었고.

‘무슨 생각으로 그러는 건지.’

왕호연과 양설에게 특별한 감정이 없는 유길선은 그저 방관할 따름이었다.

물론 그들이 계획에 방해가 된다면 가차 없이 처분할 테지만 아직 그 수준까지 오지는 않았다.

길드원들은 왕호연과 양설이 활개 치고 다니는 것에 불만이 많은 듯했지만 유길선은 그저 무관심한 것뿐이었다.

그들을 총애해서 그런 것이 아니라.

“유은새가 그들을 배척하지는 않던가?”

“예. ……혹시 다른 꿍꿍이가 있지는 않을까 해서 주의 깊게 살펴봤습니다만 아무 생각도 없는 듯했습니다.”

“알아낸 건?”

“없습니다. 혹시나 해서 룸 안에 은신 능력자를 한 번 더 투입했으나 금방 발각되어 철수시켰습니다.”

“역시 그건 우연이 아니었나.”

입가를 매만지던 유길선이 알았다는 듯 길드원을 내보냈다.

그가 창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더는 기다릴 시간이 없어.”

***

헌터 훈련 시설이 갖춰진 피트니스 센터.

별이와 봄이를 한구석에 앉혀 놓은 은새는 시원하게 몸을 풀고 있었다.

감시하는 자들이 보거나 말거나 한계까지 근육을 쥐어짜 격하게 움직였다.

[뉴나, 조금만 더요!]

삐-!

아이들이 응원하는 소리에 힘입어 은새가 시뮬레이터 마지막 관문을 통과했다.

“으아, 끝났다.”

역시 그녀는 헌터가 체질이었다.

던전 공략을 나가지 않으니 어찌나 몸이 늘어지던지.

마무리 스트레칭을 하는 그녀 곁으로 아까부터 와 있던 양설이 다가와 시비를 걸었다.

“이봐. 당신 몬스터 테이머가 왜 육체 단련을 하는 거야? 비효율적이잖아?”

은새는 양설을 힐끔거리고 하던 걸 마저 했다.

양설은 그날 그렇게 끌려가고도 별 탈이 없었는지 꾸준히 은새를 찾았다.

그래도 주의를 듣긴 들었는지 그날처럼 이상한 소리는 안 했지만 싫어 죽겠다는 티를 풀풀 풍기며 그녀 주위를 맴돌았다.

‘이상한 사람이네.’

그렇게 싫으면 안 오면 될 일 아닌가?

하지만 온통 감시하는 사람들 천지인 이곳에서 유일하게 은새에게 말을 거는 사람이 양설뿐인 것도 사실이라 은새는 적당히 응수해 주고는 했다.

왕호연은 불안해 죽겠다는 눈빛으로 양설을 지켜보고 있었고.

대강 분위기를 보니까 그들은 청화 길드원 사이에서도 겉도는 것 같았다.

정확히는 같은 길드 소속원이라는 게 믿기지 않을 정도로 서로를 끔찍해했다.

‘적의 적은 내 편이라지.’

그렇다고 그들과 가까워질 생각은 없었으나 저기 저 눈을 부릅뜨고 감시하는 사람들보다야 속내가 훤히 들여다보이는 왕호연과 양설 쪽이 낫다는 뜻이었다.

화법이 원래 저런 사람이라고 생각하면 뭐, 못 견딜 만한 것도 아니었고.

“모르나 본데 헌터는 스킬, 등급에 상관없이 육체를 단련해야 해요. 그래야 만일의 사태에 대비할 수 있으니까.”

“왜? 잘하는 것만 하면 되잖아.”

“체력은 모든 활동의 밑바탕이 돼요. 그쪽도 간단한 운동 같은 건 할 거 아니에요?”

“안 하는데?”

은새가 눈매를 가늘게 뜨고 양설을 위아래로 쳐다봤다.

“그럼 체형 관리는 어떻게 해요?”

“타고난 거야!”

은새는 의외라는 듯 눈을 크게 떴다. 두 사람의 체형은 놀라울 만큼 흡사했다.

하지만 은새는 실전 근육으로 다져진 몸이었고 양설은 그녀가 말한 대로라면 운동량이 전무하다는 건데.

“흐음.”

“뭐, 뭐야. 왜 남의 몸을 함부로 만져?!”

은새가 기습적으로 양설의 팔뚝을 조몰락거렸다.

기겁하면서도 피하지 못한 걸 보면 확실히 양설은 육체파는 아닌 모양이었다.

“근육이 말랑말랑하네요.”

“이익!”

하얀 얼굴이 수치심으로 달아올랐다. 양설은 은새의 손길을 피하려 바동거렸다.

은새는 목욕하기 싫어하는 고양이를 떠올리며 양설을 가볍게 제압했다.

‘옷을 입고 있어서 티가 안 났구나.’

운동도 안 하고도 이 체형을 유지하는 거면 정말 놀라운 일인데.

은새는 솔직하게 제 감상을 말했다.

“셀프 칭찬하는 것 같아서 좀 그런데 체형이 정말 예뻐요. 그러니까 운동하는 게 좋을 것 같아요. 분명 더 근사해질 거예요.”

“다, 당신이 무슨 상관이야. 내 몸은 내가 알아서 하거든?!”

은새의 손에서 풀려나 한참을 씨근덕거리던 양설이 몸을 휙 돌려서 피트니스 센터를 나가 버렸다.

왕호연이 은새를 힐끔거리다 그녀의 뒤를 따랐고.

‘하여튼 오는 것도 가는 것도 마음대로라니까.’

고개를 절레절레 흔드는 은새에게로 별이가 파닥파닥 날아와 어깨에 내려앉았다.

[뉴나, 왜 저 사람한테 친절하게 대해 줘요? 나쁜 사람인데.]

“내가 친절하게 대해 줬어? 아닌데.”

그녀가 평소 하는 것보다 어조도 불퉁하고 웃어 주지도 않았는데.

으음.

“그냥…… 말 상대가 없어서?”

은새가 어깨를 으쓱했다. 그녀는 아무 생각이 없었다.

뭐, 나쁜 사람들인 건 맞지만 어차피 저들도 명령받고 했을 테고. 굳이 따지자면 명령한 쪽이 나쁜 게 아닐까?

내친김에 은새는 풀 서비스 스파 시설까지 이용했다.

감금이라기에는 호화로웠지만 그 장소에는 줄줄이 따라다니던 헌터들이 들어오지 못해서 일부러 찾아간 것도 있었다.

여성 헌터들이 남기는 했어도 곳곳에서 느껴지던 시선이 차단되어 한결 마음이 편했다.

룸으로 돌아가 쉬고 있는데 유길선이 찾아왔다.

평소와 다른 분위기를 풍기는 그를 보고 은새는 왕호연과 양설 얘기를 하려나, 하고 짐작했다.

하지만. 

“유은새 헌터, 은가시나무 던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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