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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15)화 (115/190)

114화 – 이용 가치

“맞아, 나야. 내가 그랬어. 정확히는 우리가.”

은새의 날 선 반응에 양설이 만족스러워하며 스킬을 해제했다.

‘양설이라는 여자의 능력은 알았고, 저 남자는 무슨 스킬을 가졌지?’

은새의 시선이 왕호연에게 가닿았다. 그는 양설이 하는 걸 잠자코 보고 있을 뿐 나서지 않았다.

“사기 건은 그렇다 치고, 일반인들 습격한 건 어떻게 한 거예요? 도시에 함부로 마수를 풀어놓을 수는 없었을 텐데.”

“당신이 여기 오기 전에 황자문한테 우리가 벌인 일 다 수습하라고 했다며? 그래서 공들여 멋지게 그린 그림을 다 망쳤잖아. 괜히 아까운 마수만 죽고.”

양설이 키들거렸다. 질문에 답을 해 줄까, 말까 간을 보던 그녀는 은새가 별 반응 하지 않자 재미없다는 듯 술술 털어놓았다.

“실제로 마수를 한국에 데려다 놓은 기간은 짧아. 뭐……. 일반인들이 마수에게 습격당했다고 착각하게 만드는 건 쉽지.”

그 말에서 은새는 왕호연의 능력을 짐작할 수 있었다. 환상술. 아마 그는 환상술사인 모양이었다.

‘변용술사와 환상술사라. 청화 길드는 용케 이 둘을 붙여 놨네. 하지만 드러내 놓고 쓸 만한 스킬이 아니라 외부에는 이들의 존재가 알려지지 않았을 테고.’

은새는 자신을 곤경에 빠뜨리기 위해 중국이 숨겨 놓은 인재마저 이용했다는 것에 미묘한 기분을 느꼈다.

게다가 그들이 직접 찾아와 정체를 밝혔으니 중국은 비장의 패를 하나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같은 수법을 두 번 다시 쓰지 못한다는 뜻이니까.

“몬스터 테이머 유은새.”

양설의 부름에 은새가 상념에서 벗어났다. 한없이 껄렁하게만 보이던 조금 전과는 다르게 그녀는 무거운 분위기를 풍겼다.

언뜻 초조함이 비친 듯도 했다.

“당신의 능력은 희소해. 누가 뭐래도 세계 유일이니까. 하지만 당신보다 이용 가치가 높은 스킬을 가진 헌터는 우리 길드에 많아. 당신은 길드장님께 얼마나 도움이 될까?”

도움? 이용 가치?

은새는 양설의 단어 선정이 이상하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이어진 말에서 그녀는 무엇이 이상하게 느껴졌는지 확실히 깨달을 수 있었다.

“길드장님에게는 우리가 필요해. 고작 당신을 데려온다고 해서 우리의 쓸모가 사라지는 건 아니란 말이야.”

‘이 사람…….’

쓸모에 집착하는 건가? 유길선 길드장에게 인정받고 싶어서?

헌터들은 인정 욕구가 강하다. 하지만 양설의 태도는 남은 게 그것밖에 없다는 필사적인 감상을 주었다.

‘혹시 아까 헌터들이 말한 것과 관련이 있나.’

비천한 출신.

헌터와 던전이 등장한 새로운 사회에서도 보이지 않는 계급이 존재한다.

집안에 따라서, 가진 재물에 따라서, 지역에 따라서 사람들은 대우 혹은 차별받았다.

혹, 왕호연과 양설이 씬 시티(Sin city) 출신이라든가……. 그건 너무 갔나?

“양설, 그만해. 여기서 할 얘기가 아니야.”

골치 아프다는 표정으로 왕호연이 양설을 말렸다.

그냥 인사만 하겠다고 해서 데려온 건데, 이럴 줄 알았으면 절대 두 사람을 만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양설이 그의 손에서 벗어나기 위해 발버둥 쳤다.

“놔, 왕호연! 제대로 경고해 놔야 자만하지 않지. 지금은 길드장님이 당신에게 바라는 게 있어서 맞춰 주지만 가치를 증명하지 않으면 금방 버려질걸?”

“…….”

“게다가 한국 출신이잖아? 어딜 가나 온통 당신을 끌어내리려는 자들뿐이야. 몇 년만 지나도 단물 다 빨아 먹히고 밑바닥을 전전하게 될걸! 배신자라는 낙인이 찍혀서 한국으로 돌아가지도 못하고 서서히 사람들의 기억에서 잊힐 거야!”

이건 뭐 청화 길드로 절대 오지 말라는 덕담 같은데.

은새는 양설의 말에 기분 나빠하지도, 웃지도 않았다.

짐작건대 그녀는 은새가 청화 길드에 들어와 자신의 위치가 위태로워질까 봐 느끼는 불안감을 이런 식으로 표출하는 듯했다.

그걸 왜 은새 자신이 들어 줘야 하나 싶긴 하지만…….

‘그런데 묘하게 현실성 있지 않아? 이전에 다른 나라에서 온 헌터들이 어떻게 됐는지 알 것 같네.’

그때였다.

“양설 헌터, 왕호연 헌터.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지?”

“기, 길드장님.”

일찌감치 다가오는 인기척을 느끼고 있었던 은새는 놀라지 않았다.

유길선이 문을 열고 들어오며 차가운 시선으로 왕호연과 양설을 훑었다.

얼어붙은 양설의 앞을 왕호연이 막아섰다.

금방이라도 노호를 터트릴 것 같았던 유길선은 의외로 차분하게 은새에게 양해를 구했다.

“실례했습니다, 유은새 헌터. 이들에게 볼일이 없다면 데려가 되겠습니까?”

“그러세요.”

은새는 완전히 패닉에 빠진 양설 쪽을 힐끔거리곤 대답했다.

그들과는 오늘 처음 본 사이인데다, 그들은 그녀가 중국으로 오게 된 원흉이었다.

‘어떤 처벌을 받게 될지 내가 신경 쓸 건 아니지…….’

우르르 들어온 헌터들에 의해 왕호연과 양설이 끌려 나가고, 은새는 소란스러운 와중에도 잠에 빠진 봄이를 침대에 잘 눕혔다.

‘속 시끄럽네.’

괜히 알 필요 없는 것들을 알게 되었다.

그녀는 잡념을 몰아내기 위해 별이와 함께 소파에 앉아 티브이를 켰다.

하지만 방송에서 흘러나오는 말이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

은새가 떠난 뒤의 한국.

도천 길드는 사건을 수습하느라 내내 바빴다.

먼저 비리를 저지른 내부 인사를 해고하고 고소했다. 주주들을 진정시키고 내부 감사를 진행해 기강을 바로잡았다.

또한 길드 연구팀의 성과가 조작된 것이라고 주장하던 우해찬 교수의 논문 조작 사실을 역으로 밝혀 상황을 반전시켰다.

그로 인해 우 교수와는 완전히 척을 지게 되었으나 그쪽이 먼저 이를 드러낸 이상 원래도 잘 지낼 수 없는 인사였다.

노트북을 바쁘게 두들기던 우리가 미리내에게 질문했다.

“현재 여론은 어때?”

“그저께 사기 피해당한 사장단 중 한 명이 추가 증거 자료로 제출한 블랙박스 영상 있잖아?”

현재 은새에 대한 국내의 여론은 반반이었다.

일반인 마수 습격 사건이 급작스럽게 종결되면서 많은 의혹이 불거졌고 사람들의 관심은 현재 진행 중인 사기 사건으로 쏠렸다.

하지만 모 커뮤니티 게시판에 ‘공개된 사진에서 유은새 헌터의 귀 모양이 다른 것 같다’는 글이 올라온 뒤 누리꾼들은 사건을 자세히 파헤쳤다.

은새에 대한 절대적인 지지를 표명하는 팬들이 ‘변용 스킬을 가진 헌터가 유은새 헌터의 행세를 하는 게 아니냐’, ‘유은새 헌터를 음해하려는 세력이 있다’고 강력하게 주장했고 그를 뒷받침할 증거가 여럿 제시되었다.

물론, 도천 길드와 그룹에서 부단히 암약한 결과이기도 했다.

“그거 오히려 우리 쪽에 호재로 작용했어. 봐.”

미리내가 보여 준 것은 이미 댓글이 만선인 한 게시글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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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유게시판] 사기 피해 사장단이 제출한 블랙박스 영상에 반박할 근거(증거 자료 有)

(계약이 체결된 뒤 모 사장과 은새가 따로 만났다는 블랙박스 영상 캡처 사진)

현재 유은새 헌터를 둘러싼 논쟁 중에 ‘변용 스킬을 가진 헌터가 정말 존재하는가?’가 쟁점인 거 다들 알지?

그리고 저 블랙박스 영상은 모 사장이 ‘분명 유은새가 맞았다’고 제출한 증거 자료고ㅇㅇ

그런데 몇 주 전에 올라온 게시글을 내가 발견함.

(링크)

얼마 전 유은새 헌터가 무슨 바람이 불었는지 한동안 지방 던전 순회한 적 있었음.

그때 경주에서 편의점 들렀다고 알바생이 쓴 후기 글임.

사진도 첨부되어 있고 직접 사인도 해줬음.

보면 알겠지만 블랙박스 영상이랑 같은 날짜, 같은 시각임.

30분 정도의 텀이 있지만 유은새 헌터는 이다음 바로 던전 들어갔음.

자, 이래도 변용 스킬 헌터가 있다는 게 망상인 것 같니?

혼란이 가득한 댓글까지 모두 읽은 우리가 만족스럽게 웃었다.

“잘됐네. 이제 여기서 변용 스킬 헌터의 정체만 딱 밝혀지면 될 텐데.”

“그건 현실적으로 어렵지. 중국 소속일 테고, 헌터 본인이 밝히지 않으면 모르니까.”

에이패드를 내려놓은 우리가 의자 등받이에 몸을 기댔다.

“근데 은새 얘는 단말기를 줬는데 왜 연락이 없어? 제대로 전달된 거 맞아?”

“벨키오르 님과 무사히 만났다면. 그분이 그런 걸로 장난칠 분은 아니지.”

비록 벨키오르가 단말기를 부탁받았을 때 탐탁지 않아 하기는 했으나 은새에게 전달해 주기는 했을 것이다.

연락이 없는 건 은새가 그럴 만한 상황이 아니거나, 따로 생각이 있기 때문일 터.

“잘 지내고 있나…….”

우리의 표정에서 걱정이 뚝뚝 묻어났다. 말은 하지 않았지만 미리내도 마찬가지였다.

“다른 애들은?”

“훈련실에. 아주 거기서 살더라.”

“유하는 어때. 벨키오르 님한테 전수받은 기술은 잘 되고 있대?”

“그걸 전수받았다고 할 수 있나? 맨땅에 헤딩하는 게 낫겠던데.”

그들은 유하가 벨키오르에게서 성장할 실마리를 얻어 왔다는 것에 처음엔 놀랐었다.

하지만 벨키오르가 보여 준 기술이 아득히 경지를 초월해 있어서 ‘그럼 그렇지’ 싶었다.

유하는 어떻게든 그 기술을 습득하고 싶은 모양인지 각성 초기 때보다 더 혹독하게 구르고 있었다.

그걸 보고 자극받은 솔이가 자신도 신기술을 개발하겠다며 뛰어들었고 인찬은 길아연에게서 얻은 조언을 바탕으로 고유 능력을 발전시키기 위해 노력 중이었다.

히든 던전은 이제 한국만의 문제가 아니었다.

전 세계에서 던전 이상 현상에 대한 보고가 올라왔으며 히든 던전으로 인한 피해가 발생했다.

“……우리는 우리의 할 일을 하고 있자.”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은새가 무사히 돌아올 수 있도록 길을 닦아 두어야 했다.

도천의 길드장과 부길드장은 머리를 맞대고 앞으로의 일을 상의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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