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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10)화 (110/190)

109화 - 치킨게임이라도 해 볼까요?

[S급 헌터 유은새 씨가 사기 사건에 연루되었다는 소식입니다. 유 씨는 중소기업 사장들을 상대로 ‘던전에서 완벽하게 안전한 인공섬, 유토피아-아론’을 홍보하며 비밀리에 투자금을 모은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피해자들은 현재 유 씨에 대한 고소 절차를 진행하는 한편 공식적인 입장 표명에 대한 촉구를…….]

“…….”

적막이 내려앉았다. 은새는 조금 놀란 표정이었고 친구들은 뒤통수를 거하게 맞은 듯 얼어붙어 한동안 입을 열지 못했다.

가장 먼저 솔이 발끈했다.

“사아기?! 저 순해 빠진 맹탕이 사기?! 야, 사기를 당했으면 몰라. 사기를 쳤다고?”

“미쳤나 봐. 인공섬? 마수가 들끓는 바다 한복판이 안전할 리 있냐? 저 사장들은 뭘 믿고 투자한 건데?”

“은새야……. 괜찮아?”

유들유들한 유하도 이번에는 화를 참지 못했고 인찬은 온통 은새의 걱정뿐이었다.

황자문의 경고로 무슨 일이 더 터질 걸 예상하고 있었던 은새는 외려 차분했다.

“나는 괜찮아.”

“다른 건 몰라도 여론을 최악으로 만들 속셈인 건 알겠다.”

미리내가 얼굴을 쓸어내렸다. 여러 사건이 연이어 터지며 어디서부터 손을 대야 할지 엄두가 안 났다.

눈치를 보던 은새가 조용히 아까 전 묵살당한 제 의견을 피력했다.

“중국 가야겠지?”

“…….”

이번에는 단호하게 안 된다는 말이 나오지 않았다. 이 기세를 몰아 은새는 좀 더 단호하게 얘기했다.

“얘들아, 버티면 버틸수록 중국은 더 악랄하게 나올 거야. 이러다 살인 사건이라도 벌어지고 그 범인이 나라고 몰아가면 어떡해? 그러면 정말 끝장이야.”

“야! 너는 예시를 들어도 그딴 걸로 들어? 너는 안 무서워? 중국에서 어떤 일을 당할지…….”

“무서워.”

은새는 담담히 제 속내를 털어놓았다.

“하지만 너희가, 내 마수들이 다치는 게 더 무서워.”

“…….”

은새는 나름대로 제 살 궁리를 해 놓았다. 그녀를 회유해야 하는 만큼 중국 측의 대우는 그리 나쁘지 않을 것이다.

시간이 흐르면 어떻게 돌변할지 몰라도 당장 목숨이 위태롭지는 않겠지. 그때는 또 방안이 있다.

뭣보다 은새가 믿는 구석이 하나 더 있었다. 벨키오르가 했던 말.

‘중국의 목표가 봄이만이 아닌 것 같다고 했지.’

그게 뭔지 알아내면 의외로 손쉽게 해결될지도 모른다. 은새가 한창 머리를 굴리고 있는데 솔이 툭, 항복 선언을 했다.

“그래, 가라. 대신 3개월 지나도 돌아오지 않으면 다 부수고 구하러 갈 거야.”

“솔아, 그렇게 쉽게 결정할 문제가…….”

“그럼 어떡하라고! 보내지 않으면 다른 뾰족한 수라도 있어? 버틴다고 쟤가 멀쩡해질 수 있냐고.”

치켜뜬 눈동자 가득 물기를 그렁그렁 매단 솔이 씨근덕거렸다.

“그런 방법이 있으면 X발, 내가 제일 먼저 나서서 해치웠어.”

친구들이 통탄한 얼굴을 했다. 무력감이 그들을 짓눌렀다.

긴 침묵 끝에 미리내가 하아, 한숨을 쉬었다.

“얘들아, 은새를 중국에 보내는 건 위험 부담이 있는 일이지만 그렇게 하면 우리는 시간을 벌 수 있어.”

“시간?”

“국내 여론을 진정시키고 반격을 준비할 시간을.”

“반격이라고……?”

“중국을 칠 방법이 있는 거야?”

기가 죽어 있던 친구들이 되살아났다.

기대감 부푼 눈망울을 반짝이는 그들을 보며 미리내가 피식 웃었다.

“그럼 처맞고 가만히 있으려고 했어? 당한 것 이상으로 갚아 줘야지.”

“맞아! 억울하게 맞았는데 당연히 때려 줘야지!”

“그래, 왜 우리가 길드를 세웠는데? 덤비는 새끼들 자근자근 밟아 주려고 세운 거잖아.”

“아니야, 유하야……. 뭐, 우리를 지키기 위해서 세운 건 맞지만.”

미리내가 의욕이 되살아난 친구들을 불러 앉혔다.

“검찰에서 은새 소환하기 전에 빨리 계획을 세우자. 앞으로 어떻게 할지, 중국에 가기 전에 무슨 준비를 해 둘지.”

“근데 구속 수사당하는 거 아니야?”

“그 정도는 아버지한테 부탁하면 막거나 미룰 수 있어. 그리고 중국이 은새가 수사 기관에 붙잡혀 있게 놔두겠어? 하루빨리 비행기에 태워 날라야 하는데?”

“매번 한도준 회장님한테 이런 부탁만 드리는 것 같아서 죄송하다.”

“아냐, 아버지는 이런 거 해 달라고 하면 좋아해. 권력은 이럴 때 쓰는 거라고.”

조사관이 들이닥치기 전까지 그들의 회의는 길게 이어졌다.

***

강도 높은 조사를 마치고 은새는 약 48시간 만에 풀려났다.

마중 나온 차에 오르며 은새가 속으로 헛웃음을 삼켰다.

‘이번에는 꼼짝없이 구속되는 줄 알았는데.’

사기 사건 피해자들이 내놓은 사진이 결정타였다.

중소기업 사장들을 등쳐먹은 사기꾼은 무슨 배짱이었는지 그들과 기념사진을 남겼다.

그런데 정말 거기에 은새의 얼굴이 찍혀 있었다.

놀란 은새가 이거 합성 아니냐며 물었으나 온전한 원본이었다.

그제야 아귀가 맞는 기분이었다. 변용 스킬을 가진 헌터가 한국을 활보하고 있었다.

‘변용 스킬을 가진 헌터는 드물고, 보통은 그 사실을 숨기지. 그래서 일반인들은 그런 스킬이 실재하는지도 몰라. 중국이 자신만만해한 이유를 알겠네.’

그래서 아무리 한도준 회장이 용을 써도 구속 영장 발부는 막을 수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런데 검사가 48시간을 채우자마자 은새를 귀가 조치시켰다. 그도 이 결정에 불만이 많은 듯 보였다.

‘윗선의 지시라고 했지. 구속을 며칠만 미루라고.’

며칠이라. 의미심장한 기간이었다.

적어도 은새의 거취에 큰 변화가 있기에 충분한 시간이었다.

‘그런데 그 윗선이 누굴까? 청와대?’

그렇다면 이미 중국이 VIP와 만났을지 모르겠다.

VIP가 자국의 S급 헌터를 타국에 팔아넘겼을 리는 없으니 협박을 받았다고 보는 게 타당했다.

은새를 집 근처에 내려 준 차가 떠나자마자 기다렸다는 듯이 뒤에서 인기척이 느껴졌다.

“안녕하세요, 유은새 헌터. 생각은 좀 바뀌셨습니까?”

“황자문 씨.”

은새가 굳은 얼굴로 그를 맞이했다. 그녀는 보기 드물게 비아냥거리는 어투를 사용했다.

“선물은 잘 받았습니다. 어찌나 정성스럽게 준비하셨는지 기가 막힐 정도더라고요.”

“유감스럽게 생각합니다. 이제 저와 같이 중국으로 갈 마음이 드셨습니까?”

은새는 말없이 그를 노려보았다. 각오하긴 했어도 저들 뜻대로 따라 주는 게 속이 쓰렸다.

속된 말로 배알이 꼴렸다.

“따라가죠. 대신 한국에서 벌인 일들 다 수습해요.”

“……그건 곤란한 요구이신데요.”

미리내의 계책 하나. 중국 스스로 사건들을 정리하게 시킬 것.

중국 입장에서는 은새의 입지가 불안하면 불안할수록 이득이었다. 그런데 수습해 달라니.

은새가 작정하고 살기를 뿜어내자 황자문이 움찔거렸다.

그녀가 조목조목 따지기 시작했다.

“나는 도망치는 것처럼 떠나기 싫어요. 내가 실제로 잘못을 저지른 것도 아닌데 왜 내가 욕을 먹어야 하죠? 나는 반골 기질이 있어서 오히려 이런 식으로 자극하면 배 째라고 드러눕고 싶어지는데.”

“…….”

“치킨게임이라도 해 볼까요? 나는 내 모든 걸 다 걸고 중국을 적대할 테니, 그쪽은 이런 야비한 짓 말고 대놓고 봄이를 데려가 보시든가.”

은새는 여차하면 정말 그럴 생각도 있었다. 그녀가 가진 국제 사회에서의 지위, 영향력.

이대로 오해를 풀지 못해 한국을 떠나야 한다면 그녀를 받아 줄 곳은 많았다. 단지 그녀가 한국인으로서 죽고 싶었기에 선택하지 않았을 뿐.

더불어 늑대를 피하려고 호랑이에게 빚을 지는 것은 사양이었다. 다른 나라의 힘을 빌려 중국을 친다면 그들이 은새에게 온갖 무리한 요구를 할 게 뻔했다.

그러니 이것은 중국에서의 일이 잘 안 풀렸을 때를 대비한 최후의 수단이다.

은새의 진심을 읽은 황자문이 침음을 삼켰다. 여기서 일이 틀어진다면 문책을 피할 수 없을뿐더러 중국 전체의 재난이다.

아마도 중국은 전 세계를 대상으로 싸워야 할 테니까.

“……위에 제의해 보겠습니다. 사흘 후 제가 말한 장소로 나오시죠. 바로 출국하시게 될 겁니다.”

“저 검찰 조사받고 있는데요? 출국 허가가 안 날 텐데.”

“중국에서 공식적으로 파견 요청을 보낸 것으로 처리될 것입니다.”

그 말을 끝으로 황자문이 모습을 감췄다. 은새는 황자문이 사라진 어둠 속을 노려보다가 발길을 옮겼다. 시간이 많지 않았다.

***

출국 준비로 바쁜 와중에 문제가 생겼다. 바로 벨키오르 때문이었다.

짐을 싸던 은새가 살살 그의 눈치를 봤다. 벨키오르는 전에 없이 싸늘한 분위기를 풍겼는데, 마치 처음 봤을 때의 그를 떠올리게 했다.

결국 은새가 조심스레 그에게 다가가 말을 붙였다.

“저, 벨키오르 님……. 화나셨어요?”

“…….”

그에게선 아무런 대꾸가 없었다.

기실 화난 것보다는 삐친 것에 가까웠는데 이를 눈치챈 은새가 입술을 말아 물어 웃음을 삼켰다.

그녀가 벨키오르의 옷자락을 살짝 잡아당겼다.

“하지만 어떡해요. 저도 그게 이런 식으로 돌아올 줄 몰랐어요.”

벨키오르가 삐치게 된 사연은 이러했다. 원래 은새의 중국행에는 벨키오르가 동행하기로 했다.

그런데 예전에 만들어 놓은 ‘설정’이 발목을 잡았다. 바로 ‘홀로 아기를 키우는 외국인 마법 이능 헌터와 아기.’

외부에 드러난 벨키오르와 은새의 관계는 공동 육아를 하고 있을 뿐,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

물론 뒤에서는 사실 연인 관계다, 동거 중이다 말이 많았지만 공식적으로 인정한 것은 아니었다.

애까지 딸린 벨키오르가 은새의 중국행을 따라나서는 건 명분이 약했다. 좋은 일로 가는 것도 아닌데 애를 데리고 온다고?

그렇다고 아이 없이 벨키오르만 가는 것도 이상했다. 애는 어쩌고 여기를 따라와?

결국, 새끼 드래곤 모습의 별이만 은새와 동행하고 벨키오르는 나중에 합류하기로 결정되었다. 그러니까 은새가 비행기를 타고 최종 목적지까지 이동하는 동안만 떨어지는 셈이었다.

하지만 벨키오르는 은새와 그 잠깐도 떨어져 있는 게 못마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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