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화 – 치밀한 덫
송대건은 사람들 앞에서 ‘유은새’의 민낯을 까발릴 작정으로 고래고래 소리쳤다.
“유은새 헌터! 마수들이 가만히 있는 저를 공격했습니다. 하마터면 크게 다칠 뻔했다고요! 이 일을 어떻게 하실 겁니까?”
“누구신데요?”
“지금 그게 중요합니까? 사람을 공격했다고요. 테이밍되어 있는 마수가 이게 정상입니까? 혹시 남들이 안 볼 때 이런 일이 비일비재한 거 아니에요? 말해 보세요!”
은새가 미간을 찌푸렸다. 그녀의 질문에 대답도 안 하고, 무언가 석연찮은 점이 있는 남자였다.
인파에 섞여 있던 누군가가 은새에게 그의 정체를 말해 줬다.
“W 시사 뉴스의 송대건 기자입니다, 유은새 헌터.”
“기자요?”
은새의 눈매가 더욱 가늘어졌다. 하필 저자가 기자라는 게 의심스러웠다.
모든 기자가 그런 건 아니지만 기자라는 족속은 특종에 환장한 이들이었다. 그를 위해 서슴없이 논란을 일으키기도 했다.
억지를 쓰는 남자를 내버려 둔 채 은새는 마수들 쪽을 바라봤다.
사람들이 몰리자 도다리와 하늘이는 위협하던 걸 멈췄으나 송대건을 보는 매서운 눈빛만은 그대로였다.
무슨 일이 있었음을 직감한 은새가 별이에게 물었다.
“별이야, 무슨 일이야?”
[뉴나! 저 이상한 인간이 나를 막 만지려고 했어요!]
별이가 포르르 날아와 은새에게 안기며 씩씩거렸다. 은새가 깜짝 놀라서 되물었다.
“뭐? 정말?”
[자기 나쁜 사람 아니라고, 이리 오라고 억지로 잡아끌었어요. 뉴나가 한 말 듣고 참으려구 했는데. 씨…….]
별이가 서럽게 눈물을 글썽거렸다. 저 이상한 사람 때문에 은새가 곤란해진 것 같아 속상했다.
송대건이 몰랐던 점은 다른 마수들은 몰라도 드래곤인 별이는 의사소통이 가능하다는 것이었다.
다음 순간, 은새의 분위기가 급변했다.
전투 중이 아니고서는 대개 온화함을 유지하는 그녀가 서릿발처럼 차갑게 송대건을 응시하자 사람들이 침을 꿀꺽 삼켰다.
다른 건 몰라도 자신의 마수들을 건드린 건 참을 수 없었다. 게다가 별이는 한참 어린아이였다.
“이봐요, 송대건 씨. 당신 별이 괴롭혔어?”
“……네?”
“당신이 별이 억지로 만지려고 했냐고. 이리 오라고 하면서 팔 잡아당겼어?”
송대건은 당황했다.
‘어떻게 알았지?’
유은새가 몬스터 테이머이긴 해도 마수와 대화할 수 있는 건 아니었다.
의사 전달은 가능해도 언어 체계가 다르기 때문에 저렇게 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었다.
‘설마 저 새끼 드래곤이?’
송대건이 자신을 향해 아르르, 이를 드러내 보이는 별이를 쳐다봤다.
유은새의 새 마수, 별이에 관해서는 많은 게 비밀에 싸여 있었다. 마법을 사용하고, 태어난 지 얼마 안 된 개체라는 점 외에는 밝혀진 바가 없었다.
어떤 경로로 얻었는지, 정확한 종(種)이 무엇인지, 능력에 한계는 있는지 따위는 알려지지 않았다.
이름에 ‘드래곤’이 들어간 마수는 많다. 킹 스피노 골드드래곤이나, 스테고드래곤 같은 것들이 대표적이었다.
하지만 유은새의 마수, ‘별이’의 생김새는 그것들과 달랐다. 아직 던전에 관해서 모든 비밀이 풀린 게 아니니 발견되지 않은 종이 있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설마……. 인간과 명확한 의사소통이 가능한 마수가 존재할 리가.’
송대건은 동요한 걸 숨기고 버럭 성질을 냈다.
“지금 생사람 잡는 거예요? 제가 왜 그런 짓을 하겠어요?”
“내가 모를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보지 못했어도 알 수 있는 방법은 많으니까.”
은새가 확신을 가지고 말하자 송대건은 찔끔했다. 심증만 가지고 말하는 사람의 태도가 아니었다.
정말 뭔가를 알고 저러나? 하지만 증거가 남을 만한 게 없는데.
모인 사람들이 수군거렸다.
“역시 그렇지? 저 사람이 뭔 짓을 했을 줄 알았다니까.”
“기자 망신은 송 기자가 다 시키네. 이봐, 송 기자! 얼른 석고대죄하고 집에 가!”
“저 작고 귀여운 별이를 해코지했다니, 사람이냐? 요즘은 애들한테도 그렇게 하면 안 돼!”
“저런 사람을 보고 기레기라고 하지, 기레기……. 쯧쯧.”
송대건은 일이 틀어졌음을 직감했다. 그는 유은새가 보기보다 고단수라고 생각했다.
‘하, 이런 식으로 피해 가겠다고? 내가 당신이 한 짓들을 알고 있는데!’
송대건이 부득부득 이를 갈았다.
“유은새 헌터! 이런 식으로 상황을 모면하려고 하지 마세요. 당신의 마수가 사람을 공격한 건 팩트고, 저는 피해자입니다. 제가 이 일을 그냥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십니까?”
“송대건 기자님이야말로 사과하셔야겠네요. 기자님이 한 짓은 엄연한 범죄입니다. 헌터보호법에 의거, 길드를 통해 적법한 법적 절차를 밟겠습니다. 이 아이들이 말 못 하는 마수라고 아무런 처벌 없이 넘어갈 거라고 생각하지 마세요.”
S급 헌터의 위압감이 송대건을 짓눌렀다. 식은땀을 흘리던 그는 주먹을 꽉 움켜쥔 채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자리를 벗어났다.
“이봐요, 송대건 기자님!”
은새의 날카로운 부름에도 그는 돌아보지 않았다. 기자, 일반인 할 것 없이 다 송대건의 흉을 봤다.
“유은새 헌터, 괜찮으세요?”
“무슨 저런 사람이 다 있대요. 하필 레이드 전에…….”
“적법한 법의 심판을 보여 주세요! 말 못 하는 아이를 괴롭혔으니 아주 혼쭐이 나야 해요.”
“송 기자 저렇게 자극적인 기사만 쫓아다니다가 분명 큰일 치를 날이 올 텐데.”
한편 별이는 진심으로 화가 난 은새의 모습에 깜짝 놀란 상태였다. 아이가 주저하며 은새의 옷자락을 잡아당겼다.
[뉴나…….]
“응, 별이 괜찮아? 저 사람은 내가 반드시 혼내 줄게.”
나쁜 사람을 향해서 무서운 표정을 짓던 은새가 도로 나긋나긋한 말씨로 돌아오자 별이는 긴장이 풀어졌다.
아이가 애교 부리듯 뺨을 비벼 댔다.
[히히, 뉴나 너무 멋져요. 아빠보다 머시써.]
“정말? 우리 별이, 너무 상처받지 말고. 다음부터 절대 이런 일 없게 할게.”
은새는 별이와 새끼손가락을 걸고 꼭꼭 약속했다.
새끼 크라켄 토벌이 성공리에 마무리되었을 때는 한밤중이었다. 근처에 예약해 놓은 호텔로 들어가 씻고 나온 은새가 뒤늦게 핸드폰을 열어 봤다.
친구들에게서 부재중 전화가 여러 통 찍혀 있었다. 의아함을 느낀 은새가 마지막 발신자인 우리에게 전화를 걸었다.
통화음이 이어지다가 뚝 끊어졌다.
“응, 우리야. 왜?”
-은새야, 너 현장에서 기자랑 무슨 일 있었어?
평소라면 일은 잘 끝났는지부터 물었을 우리가 다른 말을 하자 은새는 머리를 갸웃했다.
“왜? 일이 있긴 있었는데. 무슨 기사 떴어?”
-링크 보내 줄게. 확인해 봐.
은새는 통화 화면을 잠깐 내리고 우리가 보내 준 링크를 눌렀다. 그러자 포털 화면이 떠오르고 기사가 여러 개 보였다.
[W시사뉴스] 도심 속 사람들을 위협하는 마수들…… 헌터협회는 못 잡는 건가, 안 잡는 건가?
[W시사뉴스] “테이밍되어 있는 마수가 안전하다고요? 모르는 소리.” 피해자 전격 인터뷰!
[헌터디스패치] 기자를 협박하는 S급 헌터, 명백한 언론 자유 침해
“뭐야, 이거?”
은새가 헛웃음을 흘렸다. 이름은 명시하지 않았지만 누가 봐도 그녀를 저격한 기사였다.
다시 통화 화면으로 바꾼 은새가 질문했다.
“우리야, 이거 언제 올라온 거야?”
-다섯 시간 전에. 현장에서 무슨 일이 있었던 거야?
“그게.”
은새는 송대건과 있었던 일을 하나도 빠짐없이 얘기했다. 말을 끝마쳤을 때 우리가 스산하게 중얼거렸다.
-W 시사 뉴스 송대건이라고? 조치해야겠네. 은새야, 그 건은 길드 법무팀에 맡겨.
“그런데 ‘도심 속 사람들을 위협하는 마수들’ 이건 뭐야?”
-그거, 요즘 밤중에 거리에서 일반인이 습격당하는 사건이 벌어지나 봐. 그런데 피해자들이 입은 상처나 진술이 사람이 한 것 같지는 않아서 헌협에서 조사 중이야.
“마수? 던전에서 빠져나온 마수가 있는 건가?”
은새가 심각해졌다. 도시에서 나타나는 마수는 비교적 빨리 처리되는 편이다.
이미 피해자가 발생했는데 잡히지 않았다는 건 특수 능력을 가진 마수라는 뜻이었다.
-그런데 마수라면 어떻게 그 사람들이 살아남을 수 있었는지 좀 이상해. 어쨌든 그건 신경 쓰지 마.
“알겠어…….”
-내일 돌아오지?
“응.”
-오늘 수고했어. 잘 쉬고, 별일 없을 거야. 언론이 헌터들 흠집 잡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홍보팀에 대응 방침 전달했으니까 금방 소란도 잦아들 거야. 괜히 커뮤니티 사이트 들어가지 말고.
“알겠어. 고마워, 우리야.”
잘 자라는 인사를 끝으로 은새가 통화를 끊었다. 그러자 먼저 침대에 누워 뒹굴거리고 있던 별이가 손을 번쩍 들었다.
“뉴나~ 우리 아빠한테 전화해여!”
“그럴까?”
은새는 핸드폰 화면을 터치해 벨키오르에게 영상 통화를 걸었다. 별이가 은새 무릎 사이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은새.
화면이 바뀌고, 바로 들려온 목소리에 은새가 웃음을 삼켰다.
벨키오르는 전화를 받을 때면 꼭 그녀의 이름을 불렀는데, 전화를 걸 사람이 그녀밖에 없기도 했지만 아마 그는 ‘여보세요’라는 말을 모르는 듯했다.
‘‘여보세요’라고 하는 벨키오르 님. 생각만 해도 귀여워…….’
“아빠!”
“벨키오르 님, 안 주무시고 계셨어요?”
-그래. 일은 끝났나?
멀리 떨어져 있으니 잡념이 안 떠올라 편하게 말이 나왔다. 은새가 배시시 웃었다.
“네. 저랑 마수들이랑 별이는 호텔에 왔어요.”
“아빠, 있자나요. 오늘 무슨 일이 있었냐면요, 커-다란 문어가 쿠어어! 하고 바다에서 나왔어요!”
별이는 송대건의 일은 쏙 빼놓고 새끼 크라켄을 잡은 일만 흥분해서 조잘조잘 떠들었다. 이미 그 일은 잊어버린 듯했다.
‘집에 가서 벨키오르 님께 이런 일이 있었다고 살짝 말씀드려야지.’
“다리가 꾸물꾸물하면서 바다를 철썩철썩!”
“와아. 맞아, 그랬지. 별이 잘 기억하네.”
은새는 박수를 치며 나날이 늘어가는 별이의 표현력을 칭찬했다. 그렇게 하루가 마무리되는 듯했다.
하지만 금방 소란이 잦아들 거라는 우리의 말은 틀렸다.
며칠 후, 전(前) 도천 소속 길드원이었던 B급 헌터 김유빈과 W 시사 뉴스의 송대건 기자가 마수에게 습격당하는 일이 벌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