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화 – 의심과 확증
‘W 시사 뉴스’의 기자 송대건은 최근 기묘한 소문을 들었다.
바로 밤중에 거리에서 마수에게 습격당했다는 사람들에 관한 얘기였다.
‘거대한 그림자가 뒤에서 덮쳤어요. 그리고 돌아볼 새도 없이 목덜미를 물렸어요. 여기 상처 보이세요? 사람이 어떻게 이런 상처를 내요. 마수가 분명해요!’
‘거리를 지나고 있는데, 소름 끼치는 울음소리를 들었어요. 그르렁, 하고……. 산에서 내려온 야생동물인 줄 알고 겁을 먹었는데 저 멀리서 후다닥 커다란 뭔가가 달려갔어요. 그건 절대, 야생동물이 아니었어요. 그게 만약 동물이라면…… 곰? 늑대?’
‘내가 봤어. 커다란 날개를 가진 마수였어! 아랫집 김 씨를 공격하고 하늘 위로 날아갔다니까! 김 씨 지금 골절상으로 병원에 있어.’
목격자들의 말은 일관성이 없었다. 게다가 서울이라는 공통점만 있을 뿐 지역이 다 달랐다.
그래도 신고가 들어왔으니 혹시 던전에서 탈출한 마수가 있을지 몰라서 협회에서 조사를 나갔으나 흔적은 발견되지 않았다.
별 소득 없이 사건은 미궁으로 빠져드는 듯했다. 그리고 이 소문은 송대건의 귀에까지 들어왔다.
‘분명 마수야.’
이 바닥에서 여러 해 구른 송대건의 감이 말했다. 분명 도시를 활보하는 마수가 어딘가에 있다고.
‘어떻게 헌터들의 눈에 띄지 않은 거지?’
서울은 인구가 밀집되어 있는 만큼 어디에나 헌터가 있었다. 게다가 헌터는 오감이 발달해 있어 마수들의 기척을 예민하게 감지했다.
그런 헌터들의 눈을 피할 정도면 마수에게 뭔가 있는 게 분명했다. 은신 능력이 있거나, 사람들을 현혹시킬 수 있는 능력이 있겠지.
목격자들이 마수의 생김새를 제대로 기억하지 못하는 것만 봐도 그러했다.
‘하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지.’
사실 송대건은 의심 가는 구석이 있었다. 바로 합법적으로 마수를 끌고 다니는 S급 헌터, 유은새였다.
‘유은새의 마수들은 오랫동안 인간과 공존해 왔어. 구태여 사람을 공격할 이유가 없지.’
그리고 지금껏 쌓아 온 유은새의 이미지가 너무 좋았다. 밝고, 상냥하고, 강하다는 말이 늘 그녀를 수식했다.
‘원래 그런 사람들이 뒤가 구린 법이거든.’
송대건이 음흉한 미소를 지었다. 그는 근래 유은새를 둘러싼 질 나쁜 얘기들을 수집했다.
팬들을 향한 갑질, 폭언은 기본이고 동종업계 헌터들에게 한 다양한 인성질까지.
게다가 무혐의로 종결 났지만 폭행 사건에도 연루되어 있었다.
‘슬슬 본성이 나오는 거지. 솔직히 그동안 너무 잘 포장되어 있었어.’
그리고 송대건의 의심에 확신을 더한 건 K미디어 대표 최인호였다.
얼마 전에 만난 최인호는 도천 그룹 창립 기념식에서 마주친 유은새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미디어에 나오는 유은새 모습은 다 꾸며 낸 겁니다! 그 여자가 얼마나 예의 없고 무식한지 아십니까? 도저히 얘기가 통하질 않았어요. 무엇보다 헌터면서 일반인인 내 몸에 손을 댔다고요! 그래도 되는 겁니까? 예?’
최인호는 열받는지 물을 연거푸 마셨다.
‘그리고 그날 파티장에서 벗어나 돌아가는 길에 있었던 사고, 그거 분명 유은새가 벌인 일이에요. 운전기사도, 비서도, 저도 분명 도로 한복판에서 쫓아오는 마수를 봤는데 수사 결과 아무것도 없었다는 게 말이 됩니까? 그럼 우리가 단체로 환각이라도 봤을까요? 유은새가 내게 원한을 품고 무슨 짓을 꾸민 게 확실합니다.’
확증은 더 있었다. 송대건은 손안에서 명함 하나를 굴렸다.
명함의 주인은 바로 얼마 전에 도천 길드를 나온 B급 헌터 김유빈이었다.
그녀는 말을 아꼈으나 유은새에 대한 증오가 엿보였다. 김유빈은 의미심장한 말을 남겼다.
‘테이밍된 마수가 안전하다고요? 아니요. 그것들은 유은새 씨의 시야를 벗어나면 모두 제멋대로예요. 세상에 안전한 마수가 어디 있어요? 그것만큼 모순적인 말은 또 없을 거예요. 테이밍되어 있다고 해서 그것들의 날카로운 발톱이나 이빨이 무뎌지기라도 하나요?’
송대건은 카메라를 챙겨 일어났다.
“어디 특종 잡으러 가 보실까?”
기사 헤드라인은 ‘S급 헌터의 실체! 도심에서 사람을 공격한 마수의 정체는? ……유은새 헌터의 마수로 밝혀져!’가 될 것이었다.
***
오늘 은새는 지방으로 긴급 지원을 나갔다. 바닷가에서 새끼 크라켄이 발견됐다는 신고가 들어왔기 때문이었다.
아마 심해에 생겨난 던전에서 빠져나온 모양인데, 그냥 내버려 두면 성장이 끝난 뒤에 민간에 막심한 피해를 끼칠 게 예상되므로 미리 토벌하려는 목적이었다.
은새는 도다리와 하늘이, 별이를 데리고 충청남도 태안군으로 갔다.
사실 장거리 이동을 하는 만큼 별이는 놓고 오고 싶었는데, 벨키오르가 크라켄을 상대하는 데에는 별이의 능력이 필요할 거라며 데려가라고 했다.
지상에 착륙하기 전 은새는 마수들에게 단단히 주의를 줬다.
“얘들아 절대 사람들에게 먼저 다가가서도 안 되고, 무섭게 해서도 안 돼. 헌터가 아닌 사람들은 아주 약하니까 너희가 배려를 해야 해. 알았지?”
꾸우!
그르렁.
[네!]
“고마워, 얘들아.”
김유빈의 일로 은새는 경각심을 가지고 마수들을 더욱더 단속했다. 착한 아이들이라 걱정되지는 않았지만 혹시 모를 일이었다.
지상으로 내려가자 현장과 얼마 떨어진 곳에 소집된 헌터들과 구경꾼들, 기자들이 모여 있었다.
본격적으로 새끼 크라켄 토벌이 시작되면 모두 대피시켜야 하겠으나 아직 시간적 여유가 있어서 그런지 가까이 다가오지 못하게 통제만 할 뿐 일반인이 모이는 걸 막지는 않았다.
새끼 크라켄을 유인하는 역할을 맡은 헌터들이 다가와 은새에게 인사했다.
“안녕하십니까, 유은새 헌터. 오늘 와 주셔서 감사합니다.”
“뭘요. 안녕하세요.”
헌터들이 은새를 임시로 세워 둔 천막으로 안내했다.
“오늘 작전에 대해 설명드릴 게 있는데 잠시 이쪽으로 와 주시겠어요?”
“네.”
은새와 헌터들이 이동하자 아까부터 호시탐탐 인터뷰할 기회만 노리고 있던 기자들이 아우성을 쳤다.
그것을 못 들은 척하고 지나가려는데 누군가 단전에서 끌어올린 듯한 목소리로 은새를 불렀다.
“유은새 헌터! 얼마 전 도천 길드를 나간 김유빈 헌터에 대해 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김유빈 헌터?
은새의 걸음이 멈칫했다. 그걸 기민하게 알아챈 기자가 더 큰 목소리로 외쳤다.
“김유빈 헌터한테 미안하지는 않으십니까? 김유빈 헌터는 현재 정신적인 충격으로 인해 두문불출하고 있는데요!”
김유빈 헌터가 길드를 나갔다고?
은새는 몰랐던 사실이었다.
‘우리가 김유빈 헌터를 내보냈나? 아니, 그럴 리 없어. 우리는 그런 일로 길드원을 내쫓거나 하지 않아. 그럼 왜……?’
은새의 눈동자가 정처 없이 흔들렸다. 앞서가던 헌터가 그녀를 돌아보았다.
“왜 그러십니까, 유은새 헌터?”
“아, 아니에요. 가요.”
기자, 송대건은 입꼬리를 비죽였다.
“흥, 이 정도로는 안 넘어온다 이거지.”
그는 인파에서 빠져나와 화장실에 가는 척, 반대편을 빙 돌아서 은새의 마수들이 있는 쪽으로 몰래 접근했다.
은새가 마수들을 인파에서 멀리 떨어진 해변가에 두었고, 현재 다른 헌터들은 모인 인원을 통제하느라 거기에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통상 기자들은 은새에게나 신경 쓰지, 구태여 말도 못 하는 마수들에게 다가가지 않는다.
또한 사람들은 유명 헌터의 등장에 여기저기에 메시지를 날리느라 다들 핸드폰에 코를 박고 있었다.
웬 사람이 자신들에게로 걸어오자 마수들이 그를 경계했다.
“안녕? 유은새 헌터의 마수들아.”
꾸?
도다리가 살피는 눈으로 남자를 쳐다봤다. 마수들이 반응하지 않자 송대건이 ‘이게 아닌데?’ 하는 표정을 지었다.
그는 조룡과 검은뿔표범, 그리고 새끼 드래곤에게 차례로 시선을 옮기더니 만만한 별이에게 손을 뻗었다.
“네가 별이지?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야.”
[머야, 만지지 마!]
별이가 질색하며 고개를 휙 돌렸다.
도다리와 하늘이가 별이를 괴롭히는 무례한 인간을 쫓아내려다가 은새의 당부를 상기하고 주춤했다.
그에 송대건이 더 별이에게 다가갔다.
“왜 이래, 아저씨 나쁜 사람 아니라니까? 사진 예쁘게 찍어 줄게. 이리 와 봐.”
[시러! 저리 가! 뉴나!]
크르르릉!
별이가 진심으로 싫어하자 하늘이가 이를 드러내며 목 울림 소리를 냈다. 도다리도 아까와 달리 눈초리가 매서워졌다.
‘그래, 이거지!’
흥분한 송대건은 마수들을 더 자극했다.
“뭐야, 한번 안아 보자는데! 어차피 너희 인간 친화적인 마수잖아? 이리 오라니까!”
기어코 송대건이 별이의 팔을 낚아채자 별이를 지키기 위해 도다리가 날개를 활짝 펴고 우짖었다.
꾸-!
크앙!
하늘이도 가만히 있지 않았다. 성체화한 조룡과 검은뿔표범이 성난 기세를 뿜어내자 송대건은 희열을 느끼는 동시에 덜컥 공포심이 몰려왔다.
그때 이쪽의 소란을 느낀 어떤 사람이 외쳤다.
“어! 저기 사람 있어요!”
은새가 언제 천막에서 나올까 기다리던 사람들이 다 송대건이 있는 쪽을 쳐다봤다.
송대건은 저도 모르게 마수들에게서 한 걸음 물러선 상태였고 마수들은 화난 기색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었다.
“뭐야? 저 사람 W 시사 뉴스의 송대건 기자 아니야?”
“왜 저기에 있어? 유은새 헌터 마수들이랑 뭐 한 거야?”
“가 보자, 가 보자.”
사람들이 우르르 그쪽으로 달려갔다.
다수의 인기척을 느낀 송대건이 기다렸다는 듯이 비명을 지르며 바닥에 나자빠졌다.
“사, 사람 살려! 마수가 사람을 죽인다!”
송대건이 속으로 샐쭉 조소를 지었다. 이제 제가 원한 대로 분위기가 흘러갈 터였다.
그런데.
몰려온 사람들이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뭐야, 무슨 일이야?”
“유은새 헌터 마수가 저 기자를 공격한 모양인데?”
“엥? 그럴 리가. 유은새 헌터 마수들이 얼마나 착한데. 분명 저 사람이 마수들한테 뭔가 잘못을 했겠지.”
“어이, 송 기자! 뭔 짓을 한 거야?”
‘이게 아닌데?’
송대건이 당혹감을 삼켰다.
그때 화가 난 표정을 한 은새가 뒤에서 나타났다.
“무슨 일이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