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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105)화 (105/190)

104화 – 세 번은 가르침을 주지

은새는 눈앞의 김유빈에게 미안했다.

‘테이밍되어 있다고 해도 엄연히 마수인데 밀폐된 공간에 풀어놓다뇨? 유은새 헌터 눈에나 예쁘지, 다른 사람 보기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몰라서 이래요?’

그녀가 한 말 중 유독 가슴을 찌르는 말이었다.

현대 사람들에게 던전과 마수는 익숙한 것이었다.

티브이나 너튜브 같은 매체를 통해 연일 다양한 화젯거리가 쏟아져 나오고, 초중고등학교 장래 희망 조사를 하면 1위는 단연 헌터일 만큼 새로운 문화가 보편적으로 자리 잡았다.

하지만 익숙한 것과 별개로 헌터가 아닌 일반인은 던전 브레이크라도 터지지 않는 이상 살아 있는 마수를 가까이에서 볼 일이 거의 없었다.

마수의 시체와 던전 부산물은 이미 사회 여러 곳에서 쓰이고 있으니 그렇다 쳐도 던전에 들어갈 일이 없는 그들이 마수를 접하기란 요원했다.

다만 한 가지 예외가 있었으니, 바로 은새의 마수들이었다.

몬스터 테이머.

살아 있는 마수를 테이밍해 데리고 다니는 그녀의 능력 특성상 사람들이 사는 도시에서 자유로이 다닐 수 있게 허가받은 건 그들뿐이었다.

단, 은새의 책임하에서.

은새의 마수들은 워낙 생김새가 예쁘고 사람을 먼저 공격하는 일이 없어 혹시 목격하게 되더라도 신기해하는 반응이 대다수였지만 분명 일반인 중에는 그마저도 무서워하는 사람이 있을지 몰랐다.

김유빈이 유독 예민한 게 아니었다. 헌터여도 마수가 싫을 수도 있지.

사회는 불편함을 얘기하는 사람들의 말을 묵살할 게 아니라 오히려 귀 기울여야 한다. 그래야 올바른 방향으로 발전할 수 있으니까.

“앞으로 제가 더 신경 쓸게요. 확실히, 건물 안에서 아이들을 풀어놓는 건 잘못된 행동이었어요.”

“…….”

대꾸도 없이 은새를 매섭게 노려보던 김유빈이 몸을 휙 돌려서 비상구 쪽으로 사라졌다. 서현진이 당황해서 그녀를 불렀다.

“야, 김유빈! 유은새 헌터, 죄송합니다. 먼저 가 볼게요!”

은새가 한숨을 쉬었다.

‘왠지 마음이 무겁네.’

그런데 상황을 지켜보던 별이가 씩씩거리며 은새에게 전음을 보냈다.

[뉴나, 저 사람 왜 뉴나한테 나쁜 말 해요?]

“이번에는 우리가 잘못한 거야. 앞으로 건물 안에서는 내 옆에 딱 붙어 있어. 봄이 너도. 알았지?”

삐?

은새는 별이와 봄이를 옆구리에 끼고 간부용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이 일이 길드장인 우리한테도 전해졌을 테니 얘기를 나눠 볼 생각이었다.

***

강원도 은새의 집.

벨키오르는 불편한 이의 방문을 받았다.

“안녕하세요, 스승님!”

“…….”

함박웃음을 지은 유하가 싹싹하게 인사를 했다. 정작 그 인사를 받은 벨키오르는 불쾌한 낯이었다.

‘예비 스승님’에서 예비를 뺀, 그냥 ‘스승님’이라는 호칭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생각해 본다고만 답한 것 같은데, 하여튼 뻔뻔하기 이를 데 없는 인간이었다.

그나저나.

‘은새는 일한다고 나갔는데 이자는 왜 여기서 태만을 부리고 있는 거지?’

벨키오르의 눈매가 의심으로 가늘어졌다. 안 그래도 요 며칠, 은새가 묘하게 자신의 손길을 피하는 듯해 신경 쓰이던 차였다.

그녀의 생각을 알 수 없었다. 무언가 말 못 할 고민이라도 있는 건가?

벨키오르는 그게 자신 때문인 줄은 전혀 짐작도 못 하고 헛발질만 했다. 연애가 처음인 드래곤은 아직 배워야 할 게 많았다.

“따라 나와라.”

차가운 눈빛으로 유하를 응시하던 벨키오르가 그를 지나쳐 현관으로 나갔다.

몬텔라의 파렴치한 행각에 익숙한 그는 이런 유형을 다루는 법을 알고 있었다.

빨리 원하는 걸 들어주고 떨쳐 내는 게 상책이었다.

벨키오르의 태도가 변한 걸 기민하게 눈치챈 유하가 재빨리 따라나섰다.

“……! 네!”

벨키오르가 드물게 집을 나서자 마당에서 쉬고 있던 은새의 마수들이 관심을 가졌다.

크르릉?

그르렁.

영호 민들레와 검은뿔표범 하늘이가 벨키오르에게 다가와 머리를 비비며 치댔다.

그들의 목을 한 번씩 쓰다듬어 준 그는 마수들에게 당부를 남겼다.

“잠시 외출하고 돌아오마. 집 잘 지키고 있도록.”

벨키오르가 유하를 데려간 곳은 이전에 와 본 적 있는 공터였다.

이곳에서 이세계의 드래곤이라는 초월종에게 무참히 패배했던 기억이 떠올라 유하가 착잡한 표정을 지었다.

그의 상념을 깨고 벨키오르가 말했다.

“스승이 되어 달라는 네 요청은 거절하겠다.”

“……네?”

저도 모르게 유하가 반문했다.

아니, 거절할 거면서 여기는 왜 데려오신 거지. 설마…… 그동안 귀찮게 한 대가를 치르게 하겠다는 뜻인가.

침을 꼴깍 삼키는 유하에게 벨키오르가 무감한 낯을 했다.

“세 번은 가르침을 주지. 그것을 소화하느냐, 못 하느냐는 네 기량에 달렸다. 또한 언제가 될지는 몰라도 대가는 받겠다.”

“세 번…….”

유하는 그 숫자가 많은 건지, 적은 건지 감이 오지 않았다.

하지만 끈질긴 애걸 끝에 얻어 낸 기회를 걷어찰 만큼 여유롭지도 않았다.

그는 벨키오르가 제시한 조건을 넙죽 받아들였다.

“감사합니다, 벨키오르 님! 성심을 다해 배우도록 하겠습니다.”

“성심을 다하든 어쩌든 네가 알아서 하고. 내 가르침은 녹록지 않을 것이다. 네 이능을 사용해 봐라.”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힌 유하가 이능을 끌어올렸다. 그의 주무기인 빛의 화살이 그가 아공간에 꺼낸 활에 걸렸다.

“저 나무를 향해 쏴라.”

쐐액!

바람을 가르고 날아간 화살은 나무 기둥을 정확히 꿰뚫었다. 우지끈 나무가 넘어갔다.

“그 화살은 네 이능을 담는 틀이다. 말하자면 네가 가장 쉽게 다룰 수 있는 형태로 빚어낸 것이지. 네가 ‘빛’의 속성을 제대로 활용하고 있지 않다는 증거다.”

“네? 속성…… 이요?”

“네가 아니어도 누구나 할 수 있다는 뜻이다.”

벨키오르의 뼈아픈 지적은 거기서 멈추지 않았다.

“지난번에 봤을 때 목표물을 동시에 여럿 저격하는 네 실력은 쓸 만하다. 하지만 그게 다야. 이대로라면 언제든 너를 추월할 자가 나올 것이다.”

“…….”

유하는 큰 충격을 받았다. 그는 대한민국을 대표하는 S급 헌터 중 하나로서 저런 식의 폭언은 들어 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마냥 폭언이라기엔, 그 속에 불편한 진실이 담겨 있었다.

그동안 알고 있던 상식이 무너져 내리는 기분이었다.

다급해진 유하가 벨키오르에게 달려들었다.

“그, 그럼 어떻게 해야 합니까?”

“빛의 특성을 알고 있나?”

“특성이요? ……굴절이나 반사, 산란 이런 거요?”

“그래. 이론은 알고 있는 듯하니 적용만 하면 되겠군.”

벨키오르는 귀찮은 설명을 하지 않아도 되는 것에 흡족해했다.

은새를 봤을 때, 이 세계의 교육 수준은 상당했다.

‘의무 교육이라는 게 있다고 했지.’

놀랄 만큼 진보한 사회였다. 덕분에, 무지렁이에게 기초부터 가르쳐야 할 상황은 면했다.

“하, 하지만. 제가 알기로 빛은 직진하고 어떤 현상이 일어나기 위해서는 매질이 필요할 텐데요.”

“그건 자연 상태일 때의 빛이고. 네가 다루는 빛은 결국 네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닌가?”

“…….”

“시범을 보여 주지.”

백 마디 떠드는 것보다 한 번 보는 게 낫다. 벨키오르가 마력으로 유하의 화살과 똑같은 것을 만들어 냈다.

그는 손짓으로 화살을 날려 보냈다. 유하가 훼손한 나무 바로 옆에 있는 나무를 향해서.

쐐액!

빠르게 날아가던 화살이 벨키오르가 손을 까딱하자 방향을 꺾어 목표와 다른 나무를 꿰뚫었다.

우지끈, 같은 귀여운 소리가 아니었다. 콰광, 하고 나무가 폭발했다.

나무 파편이 우수수 떨어지는 광경을 보며 유하는 할 말을 잃었다.

‘쏘아진 화살의 궤도를 바꾼다고……?’

“다음.”

하지만 유하가 혼란을 채 갈무리하기도 전에 벨키오르가 재차 화살을 쏘았다.

이번에는 잘 날아가던 화살이 목표물에 닿자마자 흡수되듯이 사라졌다가 그 뒤에 있는 나무를 작살냈다.

꽈광!

‘저건 또 뭐야?! ……투과? 저런 게 가능하다고?’

“다음.”

벨키오르는 거침이 없었다. 또다시 날아간 화살이 이번에는 산개하듯이 쪼개지더니 동시에 여러 개의 화살이 생겨났다.

조금 전보다 더 큰 폭음이 산중에 울려 퍼졌다.

유하는 벌어진 입을 다물지 못하고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그러니까 저게 대체 뭐냐고!’

별 힘 들이지 않고 그 모든 걸 해낸 벨키오르가 무심하게 유하를 돌아봤다.

“잘 봤겠지?”

“……방금 보여 주신 기술을 인간인 제가 할 수 있겠습니까?”

“네가 빛의 특성을 잘 이용만 한다면 얼마든지.”

그쪽이 드래곤이라서 가능한 거 아니냐는 의심 어린 질문에 벨키오르가 선뜻 긍정의 대답을 내놓았다.

창백하게 질린 얼굴로 유하가 중얼거렸다.

“아니잖아요, 저건 특성을 이용한 것이라기보단…….”

굴절이니, 투과니, 산란이니 복잡한 소리를 늘어놓았지만 결국 세심한 컨트롤 능력을 키우라는 소리였다.

이능의 입자 단위까지 제어할 수 있는.

……그런 게 가능하겠냐고!

속이 복잡해진 유하를 내버려 둔 채 벨키오르는 집으로 돌아가기 위해 걸음을 옮겼다.

“첫 번째 가르침은 이걸로 끝이다. 체득하지 못하면 다음 단계로 넘어갈 생각은 마라.”

“네?! 설명은 더 해 주시지 않는 건가요? 힘을 어떻게 다뤄야 하는지, 원리가 무엇인지 그런 뼈와 살이 되는 조언 같은 건……! 특히 나무를 통과한 그건 어떻게 하는 겁니까?”

“그런 건 스스로 깨우쳐야 하지 않겠나? 이미 경지를 보여 줬으니 나머지는 네 몫이다.”

“…….”

그 말만 남긴 채 벨키오르는 뒤도 돌아보지 않고 떠나갔다.

속이 시커먼 검은 머리 짐승은 제 꾀에 제가 넘어가 거대한 난관에 부딪혔다.

차라리 안 봤으면 모를까, 이미 까마득한 경지를 봐 버렸으니 욕심이 났다.

저걸 자신이 해낸다면?

“망했다…….”

유하가 좌절하며 흙바닥에 주저앉았다.

자신은 실로 망한 듯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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