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3화 – 고작 B급
[속보] 골드스타 길드, 원주에서 발생한 히든 던전 공략 성공! ‘사상자 0명’의 기적
골드스타 길드의 S급 히든 던전 공략 소식이 전해진 사이, 너튜브에는 은새와 봄의 추석 인사 영상이 올라왔다.
은새는 아침에 눈 뜨자마자 우리가 보내 준 링크로 들어갔다. 그러자 한복을 곱게 차려입은 자신과 봄이가 뿅 나왔다.
영상이 자동으로 재생되며 그녀의 목소리가 스피커를 통해 흘러나왔다.
[안녕하세요, 대한민국 소속 헌터 유은새입니다.]
이거 우리가 반드시 강조해야 한다고 한 건데…….
이불에 파묻힌 은새가 작게 키득거렸다.
[민족 대명절 추석이 왔습니다. 국민 여러분 즐거운 한가위 보내고 계신가요? 먼저, 명절에도 수고해 주시는 모든 분께 감사의 인사를 전합니다. ……해서, 머무시는 곳 가까운 위치에 던전이 발생할 경우 당황하지 마시고 관련 부서로 속히 신고 부탁드립니다.]
거의 공익 광고 같은 멘트였다.
[그럼, 보름달처럼 마음마저 가득 찬 풍요로운 추석 보내세요. 우리 봄이도 인사~]
[삐삐!]
화면 안, 은새에게 인형처럼 안겨 있던 봄이 깡충 뛰어오르며 꽃비를 뿌려 댔다. 예쁜 옷을 입어 기분이 좋아진 봄이는 제 능력을 마음껏 뽐냈다.
덕분에 마지막에 이르러서는 거의 사람이 화면에 안 보일 정도였다.
‘이날 치우느라 스태프들이 고생 많이 했지.’
당연히 댓글은 보지 않았다. 온갖 언어로 도배된 댓글창에는 중국어가 유독 많이 보였는데, 보지 않는 게 심신에 이로울 것이라는 판단이 들었다.
침대에서 일어난 은새는 이불을 잘 정리하고 거실로 나갔다. 일찍 일어난 별이와 봄이, 마수들이 벨키오르와 함께 티브이를 보고 있었다.
아이들이 가장 좋아하는 어린이 프로그램이었다.
“다들 좋은 아침.”
“뉴나!”
별이가 손을 번쩍 들어 인사했고 마수들도 저마다 울음소리를 내며 알은체를 해 왔다.
“잘 잤나.”
“네. 벨키오르 님도 안녕히 주무셨어요?”
“음. 어제 늦게까지 못 자는 것 같던데.”
스르륵 몸을 일으킨 벨키오르가 소리도 없이 은새 앞으로 다가왔다. 그는 은새의 안색을 물끄러미 들여다보다가 크고 매끈한 손을 뻗어 충혈된 눈가를 매만졌다.
“잠자리가 불편했나?”
“아, 아니요…….”
얼굴에 열이 몰리는 느낌에 은새가 시선을 부자연스럽게 피했다.
또다.
키스를 한 그날부터 벨키오르는 이렇듯 아무렇지 않게 은새에게 닿아 왔다. 아니, 그는 원래 다정했으니 그녀가 괜히 의식하는 것일지 몰랐다.
달라진 것은 그녀의 마음 하나였다. 은새는 이전처럼 아무렇지 않게 벨키오르의 손길을 받을 수 없었다.
“……은새?”
“아, 내 정신 좀 봐. 저 오늘 길드 나가 봐야 해요. 씻고 나올게요!”
은새는 그의 대답을 듣지도 않고 욕실로 쏙 들어갔다. 허겁지겁 틀어놓은 물이 쏴아아 쏟아져 내리는 동안 그녀는 잠시 달아오른 얼굴을 식혀야 했다.
흡입하듯이 아침을 입에 털어 넣은 은새가 다급하게 식탁에서 일어났다. 같이 밥을 먹던 별이와 봄이가 눈을 휘둥그렇게 떴다.
“저 늦어서 이만 나가 볼게요. 봄이랑 별이, 오늘은 집에 있을래?”
“시러어! 뉴나, 나 데리구 가요.”
삐빗!
별이는 은새가 그랬던 것처럼 소시지와 빵, 계란 프라이를 호로록 작은 입에 밀어 넣었고 봄이도 샐러드로 장난치는 걸 그만두고 먹는 데 집중했다.
결국, 조급해진 별이가 사레에 들리고 말았다.
“콜록, 콜록!”
“아이고, 천천히 먹지…….”
은새가 안타까워하며 별이의 등을 두드렸다. 아이는 행여 그녀가 홀로 가 버릴까 봐 옷자락을 꼭 움켜쥐었다.
“안 가, 별이야. 기다릴게. 꼭꼭 씹어 먹자.”
“네에…….”
매캐한 느낌에 눈물이 찔끔 맺힌 별이는 은새가 도로 자리에 앉아도 급하게 식사를 마무리했다.
아기 드래곤의 모습으로 퐁 변한 별이가 현관을 나서는 은새의 어깨에 내려앉았다.
봄이까지 살뜰하게 챙긴 은새가 배웅하러 나온 벨키오르를 쳐다봤다. 여전히 시선 맞추기가 어려워 그의 턱 부근에 대고 말했다.
“그럼 다녀올게요.”
“그래.”
나가려던 은새가 ‘참.’ 하고 고개를 돌렸다.
“벨키오르 님, 오늘 유하 오기로 했어요.”
“…….”
“그럼 고생하세요!”
급속도로 표정이 안 좋아지는 벨키오르를 모른 척, 은새가 집을 나섰다.
도천 길드 빌딩으로 온 은새는 도다리를 소속 직원에게 맡기고 로비를 걸었다. 봄이가 호기심이 가득한 눈으로 이곳저곳을 기웃거렸다.
“아이 참, 봄이야. 건물 안에서는 함부로 날아다니면 안 된다니까.”
삐-
은새가 봄이에게 신경이 쏠린 사이, 코너 반대편에서 오던 사람이 핸드폰에 대고 빽 소리를 지르는 소리가 들렸다.
“글쎄, 나도 돈 없다니까!”
“앗!”
피할 새도 없이 은새와 여자가 그만 부딪쳤다. 은새는 멀쩡한데, 되레 상대가 엉덩방아를 찧었다.
“악!”
“헉, 괜찮으세요?”
은새가 얼른 넘어진 사람을 일으켜 줬다. 여자, 김유빈은 사람들 다 보는 곳에서 넘어진 게 화나고 창피해 고개를 들지 못했다.
안 그래도 집에서 자꾸 손을 벌려 와 짜증 나 죽겠는데 이제는 별꼴을 다 당한다.
상대에게 앞 좀 잘 보고 다니라고 경고하려고 사박스레 눈을 치뜬 순간, 김유빈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유은새 헌터?”
“네. 어디 다치신 곳은 없으세요?”
팔자 눈썹을 한 은새가 김유빈의 몸 곳곳을 살폈다. B급 헌터인지라 생채기 하나 안 났음에도 그러했다.
평소 은새를 안 좋게 말하고 다니던 김유빈은 막상 그녀가 눈앞에 나타나자 엿가락을 문 것처럼 아무 말도 못 했다.
그런데 그녀의 눈에 천진난만하게 눈을 끔벅이는 새끼 드래곤과 춘티엔더야오칭이 들어왔다. 김유빈의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하! 설마 저것들 때문에 나를 넘어뜨린 거야?’
상식적으로 S급 헌터가 사람이 오는 것을 몰랐을 리 없었다. 분명 저것들한테 정신이 팔려 사람은 뒷전이었겠지. 많은 이들이 오가는 로비인데도.
‘나는 마수가 정말 싫어.’
김유빈은 과거, 던전에서 부상당한 일 때문에 마수가 싫었다. 그때 일로 공략팀에서 쫓겨나 지원팀으로 가야 했으니까.
그리고 S급이라는 이유만으로 모든 걸 용인받는 유은새도 싫었다.
S급이면 뭐. 길드 에이스면 뭐? 이런 식으로 사람을 무시해도 돼?
당신도 내가 만만해?
“유은새 헌터, 설마 건물 안에서 마수 풀어놓으셨어요?”
“네? 어…….”
은새는 당혹감에 말끝을 흐렸다. 한 번도 당해 본 적 없는 지적이라 뭐라고 대답해야 할지 낯설었다.
이참에 할 말은 해야겠다는 듯, 김유빈이 매섭게 따져 댔다.
“그러면 안 되죠. 테이밍되어 있다고 해도 엄연히 마수인데 밀폐된 공간에 풀어놓다뇨? 유은새 헌터 눈에나 예쁘지, 다른 사람 보기에 얼마나 위협적인지 몰라서 이래요?”
“어…… 미안해요. 조심할게요.”
“말만 그렇게 하지 말고 신경 좀 써 주세요. 어쩌다 이렇게 마주치는 것도 불쾌하니까.”
마치 혐오스러운 걸 보듯이 김유빈이 새끼 드래곤과 춘티엔더야오칭을 노려봤다.
적개심을 느낀 별이가 으르렁거리는 걸 은새가 황급히 달랬다. 하지만 여전히 어안이 벙벙한 상태였다.
소란을 지켜보던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김유빈 쟤 왜 저래? 유은새 헌터가 마수들 데리고 다니는 거 하루 이틀 일도 아니고…….”
“지금 저 사람 유은새 헌터랑 부딪혔다고 저러는 거야? 자기가 앞을 제대로 못 본 탓도 있으면서 웬 내로남불?”
“와, 별이랑 봄이가 이 길드 복지인데 저걸 지적한다고? 쟤는 심장이 없나? 저 귀여운 애들한테 못 하는 소리가 없네.”
“미쳤나 봐. 저러면 자기가 뭐라도 될 줄 아나. 고작 B급 주제에…….”
고작 B급이라는 말에 김유빈이 정신을 차렸다. 그녀가 서둘러 주위를 둘러보자 사람들이 빼곡히 그들을 둘러싸고 있었다.
‘뭐야……? 왜 나를 저런 눈으로 보는 거야, 왜!’
자신은 남들이 못 하는 말을 대신했을 뿐이었다. 모두가 유은새의 마수를 좋아해야 하나? 왜?
그녀가 S급 헌터라는 이유로?
그건 부당했다.
‘그리고 분명 나와 같은 이유로 유은새 헌터를 싫어하는 이들이 있었…….’
그때 사람들 틈에서 누군가와 눈이 마주쳤다. 가끔 김유빈과 말을 섞으며 그녀의 말에 동조해 주던 이들이었다.
그들은 김유빈이 자신들 쪽을 쳐다보자 화들짝 놀라며 모습을 감췄다. 김유빈은 멍해졌다. 왜 자리를 피해? 당신들도 나서서 한마디 해야지. 그래야 유은새 헌터도 반성하고…….
그런데 누군가 툭, 가시 박힌 말을 내뱉었다.
“마수가 돌아다니는 게 불만이면 본인이 나가야지.”
김유빈의 사고가 정지했다. ‘그’ 유은새한테 한마디 쏴붙였다는 우월감이 한순간에 씻겨 나가고 그제야 현실이 보였다.
이곳, 도천 길드에서 자신은 ‘모난 돌’이었다. 정에 맞아 사라져야 할.
“김유빈!”
그때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서현진이 나타났다. 같이 지원팀에서 일하는 그녀는 김유빈에게 유일하게 마음 좀 곱게 먹으라며 충고하던 사람이었다.
서현진이 김유빈을 자신의 뒤로 보내고 은새를 향해 머리를 숙였다.
“유은새 헌터, 죄송합니다! 이 친구가 근래 집에 우환이 있어서 감정이 격해졌습니다. 절대 진심으로 한 말은 아니니…….”
“아! 아니에요. 잠깐 너무 당황스러워서 말을 못 한 것뿐이에요. 그러니까…… 김유빈 헌터라고요?”
무거운 한숨을 내쉰 은새가 애석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녀는 어떻게 말을 꺼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 입을 달싹이다가 진정성 어린 사과를 했다.
“미안해요. 내가 너무 부주의했어요. 많이 놀랐나요?”
“…….”
김유빈에게는 그 모습마저 가증스러워 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