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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95)화 (95/190)

94화 - 금방 데리러 올게

“이…… 이게 뭐야! 왜 이렇게 바글거려?”

숨통을 조르듯 후끈하게 덮쳐 오는 열기. 그리고 나무줄기처럼 뻗어 있는 작열하는 용암. 코가 썩을 것 같은 매캐한 냄새를 인식하자마자 그들은 전투태세에 돌입했다.

솔이 이능을 끌어 올려 불로 만들어진 창을 손에 쥐며 경악했다. 코앞까지 닥친 마수를 보고 은새가 도다리를 타고 날아올랐고 인찬이 방패를 앞세워 막아섰다.

그으으으!

“숨 돌릴 틈은 주라고!”

솔이 마그마모스의 가슴팍에 창을 찔러 넣었다. 그대로 뽑아낸 창을 크게 휘두르며 뒤에서 덮쳐 오던 마수의 날개를 찢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바닥에 나동그라져 애벌레처럼 기는 마수의 등을 창으로 찍었다. 솔이 불길을 일으켜 마그마모스들을 견제했으나 애당초 뜨거운 지역에 사는 마수라 위협이 되지 않았다.

솔의 표정에 숨길 수 없는 짜증이 드러났다. 용암 지대라고 듣기는 했지만 자신과 상성이 더럽게 안 좋았다.

“여기 거의 공략 끝난 거 아니었어? 설마 던전 이상 현상이 발생하면서 마수도 초기화된 거야?”

“이 정도면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겠는데.”

“바로 들어오길 잘했다.”

우리가 팔을 길게 베어 내 암혈로 독 안개를 만들었다. 그를 흡입한 마수들이 픽픽 쓰러졌다.

“일단 다들 쿨러드링크부터 마셔!”

“이게 뭔 난리냐. 가만히 있어도 체력이 뚝뚝 떨어지네.”

미리내의 외침에 유하가 아공간에서 준비해 온 포션을 꺼내 꿀꺽꿀꺽 들이켰다.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잊지 말고 30분마다 마셔.”

“맵 자체가 디버프 적용 지역이라니. 최악이야.”

쿨러드링크의 밍밍한 맛에 우리가 콧잔등을 찡그렸다.

“솔이는 괜찮아?”

“이 던전은 솔이보다 빙 속성이나 물 속성 헌터가 더 도움됐겠다.”

“나를 무시하지 마라!”

솔이 헬리오스의 창을 뽑아 들었다. 아이템 경매에서 사 놓고 묵혀 놨던 무기가 진가를 발휘하는 순간이었다.

확실히, 이 상황에서는 이능의 비효율적인 사용을 막는 데 도움이 될 터였다. 친구들이 놀란 듯 눈을 크게 떴다가 ‘흐응.’ 하고 얄궂은 눈웃음을 지었다.

“그래, 저게 있었네. 이제 아무도 솔이 도와주지 않기~”

“자기의 일은 스스로 하기~”

“너희가 친구야? 이 빌어먹을 원수들아.”

“너희 솔이 그만 놀려.”

미리내가 우리와 유하를 제지했다. 그들은 어깨를 으쓱하고 마수들을 하나씩 처리했다.

유하가 다중 타겟팅으로 화살을 날리는 걸 지켜보던 미리내가 적들을 향해 디버프를 걸었다.

그사이, 도다리를 타고 던전을 돌아보고 온 은새가 땅으로 내려왔다. 우리가 소리쳐 질문했다.

“은새야, 어때?”

“히든 보스는 북동쪽에 있어! 라바 골렘. 그리고 마수의 수가 너무 많아. 힘 분배 잘해야 해!”

“쉽게 넘어가는 법이 없네.”

30분이 지나 쿨러드링크를 한 번 더 마신 우리가 오러를 최대로 개방했다. 스킬 만유인력으로 적들의 발을 묶은 그가 오러로 확장한 검을 사선으로 길게 휘둘렀다.

콰과과광!

대지가 흔들리며 쩌저적 갈라졌다. 동시에 사지가 찢긴 마수의 잔해가 흩어졌다. 솔이 휘파람을 불었다.

“휘유. 우리 길짱 멋지다잉.”

“솔이 너도 분발하지 그래? 들고 있는 거 장식은 아니겠지?”

“아니거든! 안 그래도 지금부터 내 무시무시한 힘을 보여 줄 거거든!”

솔이 헬리오스의 창에 걸린 옵션, ‘태양신의 심판’을 발동했다. 그러자 거대한 힘이 응축되며 충격파가 쏘아져 나갔다.

그녀 주위로 동그란 원이 생겼다. 다가오던 마수들이 그대로 몸이 타 들어가 재도 남기지 않고 사라졌다.

얄미울 정도로 의기양양한 표정을 지은 솔이 우리를 향해 어떠냐는 듯 고개를 돌렸다가 그가 자신을 보고 있지 않다는 걸 깨닫고 부들부들 떨었다. 솔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야, 안 봤냐고!”

“쟤 관종기 어쩌면 좋냐?”

“내버려 둬. 저건 불치병이야.”

뒤에서 발악하는 솔을 보며 우리와 유하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 그들의 태도에 솔이 분풀이하듯 헬리오스의 창을 휘두르며 몇 번 더 ‘태양신의 심판’을 발동했다.

그러거나 말거나 우리와 유하는 개미 떼처럼 몰려드는 마수를 처리하기 바빴다.

꾸꾸-!

도다리가 ‘도발’ 스킬로 인해 인찬에게 과하게 몰린 마그마모스를 날카로운 부리와 발톱을 이용해 거칠게 짓이겼다.

은새도 도다리의 등 위에서 베일 카라스의 봉을 자유자재로 휘두르며 공격에서 빗겨 나간 마수들을 제거했다.

멀지 않은 곳에서 또 다른 마수가 접근하는 게 느껴졌다. 은새가 시선을 들어 먼 곳을 쳐다보자 이곳에서 벌어진 소란을 듣고 헬빌의 무리가 몰려오는 게 보였다.

으르륵! 아르륵!

기분 나쁜 울음소리가 신경을 자극했다. 지옥에서 온 사자라고 불리는 헬빌은 독소가 섞인 불꽃을 입으로 뿜어내며 사나운 기세로 땅을 박차고 달려왔다.

그것들과의 거리를 눈대중으로 살피며 은새가 도다리의 등을 두드렸다.

“도다리야, 쟤네들 쓸 데가 있으니 다 죽이지는 말고 적당히 전투 불능으로 만들자.”

꾸꾸!

은새의 말을 이해한 도다리가 날개를 활짝 펴서 고도로 비상했다. 쏜살같이 바람을 가르며 날아간 조룡이 피어를 내질렀다.

끼에엑!

정신을 뒤흔드는 공격에 헬빌 무리가 비틀거렸다. 그 틈을 노려 은새가 스킬, 테이밍 마스터를 발동했다.

무리에 속한 헬빌 몇 마리의 눈동자가 흰색으로 물들었다. 스킬에 지배당한 마수들은 곧장 시선을 들어 은새를 바라봤다.

그녀가 가볍게 고개를 끄덕여 명령을 내렸다.

“싸워.”

으르륵! 아르륵!

헬빌이 동족을 향해 달려들었다. 갑작스레 아군의 공격을 받은 우두머리가 당혹스러워하며 사납게 짖었다.

하지만 은새의 스킬에 정신을 완전히 지배당한 헬빌들은 맹공을 멈추지 않았다.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되어 서로를 물어뜯고 죽이기 시작했다.

검은 불꽃이 작열하고 고통에 찬 비명 소리가 깨갱깨갱 울려 퍼졌다.

은새는 그 광경을 도다리와 함께 지켜봤다.

최후까지 살아남아 접전을 벌이던 마수 두 마리가 끝내 쿵, 쓰러지고 헬빌 무리가 전멸했다.

후방에서 은새가 하는 걸 지켜보고 있던 미리내가 벌어진 입을 손으로 가리며 감탄했다.

“은새야, 스킬 사용하는 게 많이 능숙해졌는데?”

“그래 보여?”

미리내의 칭찬에 은새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녀는 친구들이 있는 곳으로 돌아가 착륙하며 쿨러드링크를 마셨다.

그사이 마그마모스도 얼추 정리가 끝나 있었다. 미리내가 친구들에게 힐을 해서 원기를 회복시켜 줬다.

아무리 포션을 복용했어도 환경적인 요인 때문에 지속적으로 깎여 나가던 체력이 풀충전이 되자 친구들의 표정이 한결 느슨하게 풀렸다.

솔이 배부른 고양이처럼 나른한 숨을 내쉬었다.

“으어, 살맛 난다.”

“사우나 하고 찬물 들어간 기분이야. 역시 각성석은 미리내가 사용하는 게 좋지 않을까?”

“찬성. 이게 극락이지…….”

“너희 별소리를 다 한다.”

간단한 원기 회복일 뿐인데 친구들이 호들갑을 떨자 미리내가 쿡쿡 웃었다.

잠시 재정비 시간을 가진 뒤 우리가 친구들에게 말했다.

“멈추지 말고 계속 전진하자.”

이동하면서 그들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는 마그마모스와 헬빌을 처치했다. 그 과정에서 크고 작은 부상을 입었으나 그들의 기세는 꺾이지 않았다.

“던전이 굉장히 넓네.”

“아무래도 등급 상승된 것 같지?”

“이건 거의 뭐 아예 다른 던전 들어온 것 같은데?”

그러던 중, 무언가 인찬의 눈에 띄었다.

“얘들아, 저거!”

마그마모스 무리가 한곳에 바글바글 모여 있었다. 그들이 가까이 접근해도 반응하지 않는 게 이상해 자세히 살펴본 은새가 사람 팔 같은 걸 발견하고 새파랗게 질렸다.

솔도 마침 같은 걸 봤는지 험악한 표정으로 달려가 헬리오스의 창을 휘둘렀다.

“꺼져! 안 꺼져?”

순순히 물러날 기미가 아니라 일행은 이를 악물고 마수들을 도륙했다. 반항이 거셌으나 전에 없이 전력으로 달려들어서 빠르게 해치웠다.

마그마모스의 시체들 틈에 있는 건 사람이 맞았다.

“……공략 4팀이야.”

오는 길에 발견하지 못했던 공략 4팀의 시신들이었다. 서연진을 비롯한 다른 팀원들 전부 힘든 전투를 겪었는지 상태가 썩 좋지 않아 보였다.

혹시나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는 일말의 희망이 산산이 부서졌다. 침울하게 시신들을 바라보던 은새가 힘겹게 말을 꺼냈다.

“데리고 나갈 수 있을까?”

“히든 보스를 처리하지 않았는데 들고 이동할 수도 없고.”

“그렇다고 여기 내버려 둘 수도 없잖아. 저 미친 것들이 또 달려들면 어떡해.”

일행의 분위기가 점점 더 가라앉았다. 이미 고생한 길드원들을 두 번 버리는 짓은 하고 싶지 않았다.

그때 유하가 나서서 아공간을 열었다.

“나 얼마 전에 새로 산 아이템 있어. 마침 쓸 만하겠네.”

그가 주먹만 한 마석이 박힌 롯드를 꺼내 들었다. 그것의 정체를 알아본 미리내가 반색했다.

“그거 ‘성역’ 아니야?”

“맞아.”

실드 아이템, ‘성역’.

유하는 시신들 사이에 롯드를 꼽고는 마석에 이능을 강하게 불어넣었다. 그러자 돔 형태로 투명한 보호막이 펼쳐졌다.

“당장 데려갈 수 없으니 이렇게라도 지켜야지.”

은새와 친구들이 한 발짝 떨어져서 묵념했다. 눈을 길게 감았다 뜬 우리가 강한 어조로 말했다.

“가자. 장례식을 하루라도 빨리 치르고 싶으면.”

친구들의 뒤를 따르며 은새가 눈에 새길 듯 남은 자들을 바라봤다.

“……금방 데리러 올게, 얘들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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