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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94)화 (94/190)

93화 – 인천 부평구 던전

공략팀 전멸 소식에 긴급하게 회의가 소집되었다. 사안이 사안인 만큼 회의실로 들어서는 도천 길드 S급들의 표정이 가히 좋지 않았다.

이미 다른 공략팀의 팀장들과 헌터지원팀 팀장, 상황보고실 실장, 홍보팀 팀장 등 관련자들이 기다리고 있었다.

가장 상석에 앉은 우리가 바로 본론을 꺼내 들었다.

“어떻게 된 일입니까?”

“어제, 인천 부평구에 발생한 A-급 던전에 공략 4팀이 투입됐습니다. 그런데 예상 공략 완료 시간이 한참을 지나도 돌아오지 않아 정찰 팀원이 사태 파악을 위해 던전에 입장했으나, 몇몇 팀원들의 시신이 발견됨과 동시에 강한 마수와 조우해 도망쳤다고 합니다.”

“A-면 공략 4팀의 인원으로 충분히 감당할 만한 수준 아닙니까?”

“그게…… 히든 보스가 나타났습니다. 추정 S급으로, 던전 지형 또한 달라졌습니다.”

“히든 보스…….”

솔이 다급하게 질문했다.

“던전 지형이 어떻게 바뀌었는데요?”

“정찰 당시에는 묘지였습니다만 용암 지대로 확인되었습니다.”

인천 부평구의 던전 이름은 ‘낮이 오지 않는 도시의 공동묘지’였다. 그러니 용암 지대로 바뀌었다면 이변이 생긴 게 맞았다.

공략 4팀은 A급 헌터 두 명에 B급 다섯 명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절대 약하다고 할 수 없는 전력이 괴멸했다면 새로 바뀐 지형과 히든 보스가 원인일 터.

냉정하게 여러 가지를 따져 본 미리내가 홍보팀 팀장에게 질문했다.

“매스컴에 알렸습니까?”

“보도 자료가 나오는 건 막았으나 엉망이 되어 던전을 빠져나온 정찰 팀원을 목격한 사람이 많아 말이 퍼지는 건 막지 못했습니다.”

“비슷한 일이 한국에서 일어난 적이 또 있습니까?”

“협회에 보고된 바는 없습니다.”

얼굴을 잔뜩 찌푸린 솔이 머리를 벅벅 긁었다.

“어째 불안하더라니. 근데 왜 우리 던전에서 첫 스타트를 끊고 난리지?”

“공략 팀원 전원이 사망한 것 맞습니까?”

“확인된 건 일부뿐이지만 만약 다른 이들이 살아남았다면 어떻게든 던전을 빠져나오지 않았겠습니까?”

“…….”

헌터지원팀 팀장의 말이 맞았다. 우리의 표정이 고통스럽게 일그러졌다.

길드원들의 죽음에 책임감을 느끼는 그를 대신해 미리내가 회의를 마무리했다.

“일단 공식 발표는 나중에. 던전 공략과 길드원들 시신 수습부터 먼저 진행합니다.”

“길짱, 우리가 가?”

“가야지. 전례 없는 일인데 다른 공략팀을 어떻게 보내. 오늘 힘 좀 써라.”

“라져. 철저히 복수해 주지.”

이후 침착하게 대응 매뉴얼을 설명하던 우리가 생각났다는 듯 은새를 돌아보았다.

“은새야, 너는 어떡할래?”

“나?”

오늘 만남은 각성석을 전해 주러 온 게 목적이라 은새가 데려온 마수는 도다리뿐이었다. 은새의 진가는 마수들과 있을 때 드러났으므로 의견을 묻는 게 이상한 일은 아니었다.

“갈게. 그런데 나 전화 한 통화만.”

“그래. 다 하고 지원팀으로 내려와.”

은새는 빈 회의실로 가 벨키오르에게 전화를 걸었다. 단조로운 신호음이 이어지다가 뚝 끊기고 기다리던 목소리가 들려왔다.

-……은새?

“벨키오르 님, 저예요.”

은새는 상황에 맞지 않게 조금 웃음이 새어 나왔다. 그녀가 사 준 핸드폰을 아직 어색해하면서도 벨키오르는 전화를 걸면 꼬박꼬박 잘 받았다.

그게 어쩐지 그녀에게 맞춰 주려고 노력하는 것 같아 노곤노곤 마음이 녹아내렸다.

-무슨 일이지?

“저, 길드에 일이 생겼어요. 급히 던전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제 마수들과 아이들 좀 부탁드려도 될까요? 혹시 모르니까 박도윤 팀장과 팀원들을 보낼게요.”

은새의 경호를 맡고 있는 박도윤 팀은 그녀가 휴가에 들어가자 그들도 잠시 휴식기를 가졌다.

쉬는데 불러내기 미안했지만 너무 벨키오르에게만 가사와 육아를 떠맡기는 것 같아 양심에 찔렸다.

그는 지고하기 이를 데 없는 드래곤인데 너무 보모처럼 부려 먹는 것 같았다.

-알았다. 오래 걸릴 것 같나?

“모르겠어요. 처음 있는 일이라……. 나오면 바로 전화할게요.”

-다치지 않게 조심해라.

“네, 걱정 마세요. 음, 식사 잘 챙기시고요.”

뺨이 살짝 달아오른 은새가 서둘러 전화를 끊었다. 낯간지러운 말을 나눈 것도 아닌데 나직하게 떨어지는 그의 목소리 때문에 귀가 간지러웠다.

“이럴 때가 아니지.”

볼을 탁탁 때려 입가에 떠오른 미소를 걷어 낸 은새가 회의실을 벗어나며 뒤이어 박도윤에게 연락했다.

“도윤 팀장, 나예요. 인천 부평구 소식 들었어요?”

-네, 유은새 헌터.

핸드폰 너머에서 들려오는 박도윤의 목소리가 무거웠다. 덩달아 은새의 기분도 나락으로 떨어졌다.

“저와 제 친구들이 던전 공략에 들어가야 할 것 같은데 강원도 집 좀 살펴 줄 수 있을까요?”

-물론입니다. 조심하십시오, 유은새 헌터.

“쉬는데 미안해요. 돌아와서 보답할게요.”

-아닙니다.

은새는 엘리베이터를 타고 헌터지원팀이 있는 층으로 갔다. 거기서 나눠 주는 공략용 아이템들을 챙기며 지금부터 갈 인천 던전을 생각했다.

‘용암 지대라…….’

용암 지대라고 하니 불현듯 떠오르는 얼굴이 있었다.

산체스. 밤하늘 같은 쪽빛의 아름다운 머리카락과 루비처럼 빛나는 붉은 눈을 가진 드래곤. 그녀의 레어도 용암이 들끓는 화산 지대에 있었다.

‘그때 벨키오르 님이 영약을 챙겨 주셨었는데.’

산체스의 레어를 방문하기 전, 벨키오르는 풀 향이 나는 영약을 제게 직접 먹여 주고 마법까지 걸어 줬었다. 세심하게 챙겨 주는 그의 행동에 감동하면서도 의외의 면모에 놀랐었다.

자연스럽게 사고가 벨키오르에게로 흐르자 은새가 깜짝 놀라며 이마를 퍽퍽 때렸다.

‘유또! 유은새가 또!’

왜 뭐만 하면 기승전 벨키오르 님이지? 은새가 끙끙거리며 머리를 감싸 안았다. 스스로가 느끼기에도 중증이었다.

옆에 서 있던 인찬이 당황해서 그녀의 어깨를 붙잡았다.

“은새야, 왜 그래?”

“아니야……. 아무것도.”

“머리 아픈 거야?”

“으응, 아니야. 괜찮아.”

은새가 민망한 표정을 지으며 인찬의 시선을 피했다. 어쩐지 조금 자괴감이 들었다.

하지만 그것과 별개로 그때 그 영약을 얻을 수 있었더라면 친구들이 더 안전할 수 있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최종 점검을 끝낸 우리가 딱딱하게 굳은 얼굴로 친구들을 돌아보았다.

“준비 끝났어? 지체할 시간 없으니까 빠르게 이동한다.”

“OK.”

***

친구들은 차를 타고 이동하고 은새는 도다리와 함께 인천으로 갔다.

친구들보다 먼저 도착한 은새가 도다리와 함께 땅으로 착지하자 SNS 등을 타고 퍼진 소문을 듣고 모여든 사람들이 웅성거렸다.

“뭐야, 유은새 헌터잖아? 여긴 왜 왔지?”

“도천 길드에서 공략 실패했다는 게 진짜인가?”

“여기 서연진 팀 들어간 거 아니었어? 그 무도의 집정관.”

“헐. 여기 A-라며. 뭔 일임?”

사람들의 수군거림을 흘려들으며 은새가 눈으로 담당자를 찾았다.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도록 막고 있던 도천 길드 소속 헌터가 그녀의 시선을 눈치채고 살짝 빠져나왔다.

그의 얼굴에 언뜻 참담함과 피로감이 스쳐 지나갔다.

“오셨습니까, 유은새 헌터.”

“네. 특이사항 없죠?”

“아직 없습니다.”

은새가 고개를 끄덕이며 던전 입구를 살폈다. 환한 빛이 새어 나오는 포털은 공략팀을 무자비하게 잡아먹었다는 게 무색할 정도로 잠잠했다.

‘던전 이상 현상이 처음 나타난 건 몇 달 전……. 그때 뭔가 조치를 취했으면 결과가 달랐을까?’

은새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 미래를 아는 것도 아니고, 그럴 수 없었다는 걸 알면서 괜히 그런 생각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곳에서 희생된 헌터들은 그녀도 아는 이들이었다. 아는 사람의 죽음은 언제나 많은 감상을 불러일으킨다.

은새가 하염없이 포털을 보고 있을 때 그녀가 나타났을 때보다 더 큰 소란이 들려왔다. 친구들이 도착했다는 걸 직감적으로 알아챈 은새가 뒤를 돌아봤다.

“은새야, 빨리 도착했네.”

“어서 와.”

고작 A- 던전에 도천 길드를 대표하는 S급들이 전부 모이자 사람들의 당혹감은 커져 갔다. 핸드폰을 쥔 그들의 손이 바빠졌다.

사람들은 아무리 도천 길드 헌터들이 ‘사진 찍지 마세요, 글 올리지 마세요!’ 하고 외쳐도 현재 상황을 실시간으로 외부에 알렸다. 사진을 찍고 SNS에 올리고 통화를 했다.

솔이 스트레칭을 하며 이기죽거렸다.

“빼박 공략 끝나면 기자 회견해야겠네, 길짱.”

“숨긴다고 숨겨질 일도 아니었지.”

“한도준 회장님보다 언론에 얼굴을 더 자주 비추네.”

“이쯤 되면 진로를 잘못 선택한 게 아닌가 싶다.”

포털 위로 올라서기 전, 우리가 친구들에게 목표를 주지시켰다.

“첫째, 공략 4팀의 시신을 발견하면 회수할 것. 둘째, 던전에 어떤 이변이 일어났는지 자세히 확인할 것. 셋째, 안전에 유의할 것. 다들 숙지했지?”

“OK.”

우리와 인찬을 필두로 솔과 미리내가 중간에, 유하와 은새, 도다리가 마지막으로 던전에 입장했다.

그리고…… 그들은 예상하지 못한 상황에 직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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