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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92)화 (92/190)

91화 – 첫 조우

미간을 좁힌 벨키오르가 은새 앞을 막아섰다. 갑작스러운 그의 행동에 은새가 의아하게 그를 쳐다봤다.

“벨키오르 님?”

“누군가 있군.”

“네? 여기 저희 말고 누가…….”

그때 은새의 감각에 무언가 이질적인 게 잡혔다. 은새가 즉시 경계하며 베일 카라스의 봉을 소환해 손에 쥐었다.

아무리 방심하고 있었다고 해도 S급의 눈을 속일 정도면 아마도 상대는 고등급 헌터. 예전에 그녀의 집까지 찾아와 사진을 찍어 유포한 은신 능력자가 떠오르는 건 당연했다.

“뉴나?”

“별이, 봄이 챙겨서 하늘이 곁에 가 있어.”

크르릉!

푸릉.

영호 민들레와 일각수 쿠키가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공간을 향해 적개심을 드러냈다.

눈치 빠른 별이가 상황 파악이 덜 돼 천진하게 눈을 끔뻑이는 봄이를 잡아다가 검은뿔표범 하늘이 곁으로 갔다.

이쪽의 분위기가 이상한 걸 감지했는지, 멀리 떨어진 상공에 있던 도다리와 황새, 백합이까지 모여들었다.

벨키오르가 낮은 목소리로 상대에게 경고했다.

“모습을 드러내라. 아니면 강제로 끌고 와야겠나?”

“…….”

천창현은 정확히 자신을 꿰뚫어 보는 금색 눈동자에 은신 스킬이 제대로 발동되고 있는지 확인해야만 했다.

유은새도 뒤늦게 눈치챘는데 어떻게 저자가. 천창현은 기억에 없는 남자의 얼굴을 날카로운 시선으로 훑었다.

‘변수’는 유은새뿐만 아니라 저자도 포함되었다.

‘국적 불명의 불의 마법사……. 최소 S급.’

상황이 전적으로 천창현에게 불리했다. 달아난다고 해도 붙잡힐 거라 판단한 그는 순순히 은신 스킬을 풀고 모습을 드러냈다.

은새가 눈을 가늘게 떴다.

“누구시죠?”

“처음 뵙겠습니다, 유은새 헌터. 골드스타 길드의 천창현이라고 합니다.”

“천창현 씨?”

은새가 그 이름을 곱씹었다. 얼굴은 초면인 것처럼 낯설었으나 이름은 어디서 들어본 것 같았다.

‘그러고 보니 우리가 골드스타 길드에 주의해야 할 사람이 있다고 했는데.’

우리는 도천 크루에게는 길드 운영에 관련된 복잡한 문제를 제외하고는 모든 정보를 공유했다.

기억 끄트머리에서 어렵지 않게 그의 이름을 떠올린 은새가 경계를 늦추지 않으며 그에게 물었다.

“대전 미로 던전 공략에 참가했던 그 천창현 씨가 맞나요?”

“저를 기억해 주시다니 영광입니다.”

“왜 여기 계신 거죠? 이 던전은 사정이 있어 현재 개방이 안 되어 있을 텐데요.”

날카로운 질문에 천창현이 입을 다물었다. 똑같이 되묻고 싶었다. 왜 당신이 마수들까지 이끌고 이곳에 와 있느냐고.

하지만 어디로 보나 수상한 것은 천창현, 자신이었으므로 일단 생각해 두었던 변명을 댔다.

“……원래 이 던전을 소유하고 있던 신해 길드의 부길드장님과 아는 사이라 부탁받은 물건을 가지러 왔습니다. 여기서 유은새 헌터를 만나게 될 줄은 저도 몰랐습니다.”

“신해 길드의 부길드장님이요? 이 바다에서요? 무슨 물건인지 물어도 될까요?”

“비밀을 요하는 일이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유은새 헌터는 어떻게 들어오신 겁니까?”

“도천 길드에서 정부와 교섭해 오늘 하루 동안 대여했어요. 그런데 신해 길드 부길드장님께서 골드스타 길드원인 당신에게 부탁할 일이 뭐가 있을까요?”

“…….”

대답할 말이 궁색해진 천창현이 입을 다물었다. 유은새의 말은 지극히 타당했고, 만에 하나 그녀가 사실 확인을 하겠다고 나서면 거짓일 게 바로 들통날 터였다.

천창현의 시선이 은새가 들고 있는 각성석으로 향했다. 그가 찾으러 온 각성석은 이미 유은새 손에 들어갔으므로 더 이상 이곳에 있을 이유가 없었다.

‘각성석을 빼앗아 들고 튄다면…….’

무표정한 얼굴 아래로 천창현은 계획이 또 틀어진 것에 대해 서늘히 분노했다.

유은새는 아직 저것이 무엇인지 눈치채지 못한 눈치였다. 그런 와중에 괜히 나서서 흥미를 끌어 봐야 좋을 게 없었다.

그렇다고 생각한 대로 힘으로 빼앗을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이곳엔 유은새 혼자만 있는 게 아니라 그녀의 전력이라고 할 수 있는 모든 마수가 모여 있으니.

정체를 알 수 없는 저 마법사도 위험했다.

‘쯧.’

외통수였다. 속에서 천불이 나지만, 물러나야 했다.

정체는 들켰으나 아직 그의 목적이 뭔지는 밝혀지지 않은 상황이었다. 만약 천창현이 각성석을 노리고 이 던전에 들어왔다는 걸 도천 길드 측에서 알게 되면 곤란했다.

여기서 도주하면 수상해 보일지언정 그의 비밀은 지킬 수 있었다.

빠져나갈 궁리를 하는 천창현을 벨키오르가 빤히 응시했다.

‘그때 그자군.’

그는 천창현이라는 이름은 몰라도 그를 보았던 기억이 있었다. 언젠가 참여했던 도천 길드 주최의 ‘헌터의 밤’ 파티에서 벨키오르는 묘한 기운을 두른 자를 발견했다.

그때도 기이하다고 생각했는데 가까이에서 보니 확연히 느껴졌다. 주변과의 괴리감. 안 맞는 부품을 끼워 넣은 듯 삐걱거리는 이질감.

드래곤인 벨키오르에게도 낯선 감각이었다.

속내를 파헤치는 듯한 벨키오르의 날카로운 시선을 느낀 천창현이 굳은 얼굴을 하고 은신 스킬을 발동하며 말했다.

“상황이 이렇게 됐으니 저는 다음에 다시 찾아오겠습니다.”

“이봐요! 천창현 헌터!”

모습을 감춘 그의 기척이 멀어져 갔다. 은새는 붙잡을 수도 있었지만 이곳에 온 목적이 목적인지라 일단 천창현을 보내 줬다.

그녀가 움직이지 않으니 벨키오르도 아무 행동 없이 멀어져 가는 천창현의 기척을 살피기만 했다.

“찝찝한데…….”

“이상한 기운을 풍기고 다니는 자군.”

“네?”

눈살을 찌푸리는 은새에게 벨키오르가 설명했다.

“대단한 능력을 지니지는 않았지만 불길하니 엮이지 않는 걸 권한다.”

“그래요? 흠.”

우리에 더해 벨키오르까지 천창현에 대해 부정적으로 말하니 은새는 ‘정말 그런가?’ 하고 턱을 매만졌다.

조금 독특한 분위기를 가졌다는 것 말고는 잘 모르겠는데.

생각에 잠긴 은새를 보고 벨키오르가 그녀의 손등을 톡톡 두드려 주의를 환기했다.

“아까 저자가 노린 게 그대가 들고 있는 이 돌 같은데.”

“이 돌멩이요? 이걸 왜…….”

은새는 별이가 주워다 준 돌멩이를 자세히 들여다봤다. 일반 돌멩이와 달리 햇빛에 비추니 표면에 파란빛이 돌면서 반짝거린다. 그리고 보이는 이상한 문양.

“으응? 설마 이거 각성석인가?”

그렇게 말한 은새가 푸핫, 웃음을 터트렸다. 자기가 말하고도 웃겼다.

전 세계 사람들이 눈에 불을 켜고 찾아다니는 각성석이 왜 이런 C급 던전에 있어. 그저 별이가 예뻐서 주워온 돌멩이인데.

“벨키오르 님, 이 돌멩이에서 이상한 힘이 느껴지나요?”

“그렇군.”

“……네? 맞다고요? 그냥 돌이 아니에요?”

은새가 다시 한번 돌멩이를 자세히 살폈다. 얘기를 듣고 보니 아침에 대충 보고 넘겼던 기사 내용이 생각났다.

큰일 났다.

각성석을 손에 쥔 은새의 얼굴이 하얗게 질려 갔다.

***

“유은새가 또. 유또.”

“야~ 유은새. 또 사고 쳤다며?”

길드장 사무실에 들어오며 도천 길드 S급들이 낄낄댔다. 짓궂은 그들의 놀림에 먼저 와 있던 은새가 소파에 기대 부루퉁하게 반박했다.

“이게 어떻게 사고야. 나도 이럴 줄은 몰랐거든?”

“역시 뭘 해도 될 사람은 되나 보다. 남들은 기를 쓰고 찾아도 못 찾는 각성석을 놀러 간 던전에서 발견해?”

“그래, 우리 은새 대단해. 천재, 만재야.”

“놀리지 마…….”

우리와 인찬까지 가세하자 은새는 결국 두 손에 얼굴을 묻었다. 우리는 장난스럽게 씩 웃어 보였고 인찬은 당황하며 놀리는 게 아니라고 은새를 달랬다.

“그나저나 어떻게 발견한 거야? 던전 지형이 바다였으면 찾는 것도 힘들었을 텐데.”

“별이가 놀다가 찾아 줬어. 등대 밑 계단 쪽에 있었다고 하더라고. 나랑 다른 마수들은 보지도 못했는데 말이야.”

우리 애가 이렇게 똑똑하다는 듯 은새가 뿌듯해하며 자랑했다.

시무룩해 있을 때는 언제고 눈을 반짝이며 별이 얘기를 하는 은새를 보고 미리내와 인찬이 알 만하다는 얼굴을 했다.

“그래, 그래. 별이 참 대단하네.”

“아이들이 그런 거 잘 찾긴 하지. 반짝반짝해서 눈에 띄었나 보다.”

“나도 처음엔 그냥 돌멩이인 줄 알았거든? 예쁜 돌멩이.”

쿠션을 끌어안고 있던 은새가 당시를 회상하며 말을 이었다.

“별이가 나 주겠다고 가져왔는데 씨글라스 같은 건 줄 알았어. 그런데 제법 단단하고 모양도 매끈해서 예쁘네, 집에 장식해 놓으면 좋겠다, 하고 생각했지.”

맞다.

천창현이 도중에 나타나지 않고, 벨키오르가 돌멩이에 관해 말해 주지 않았더라면 그대로 장식품이 됐을 것이다.

그리고 좋은 추억으로 남긴 채 잊어버렸겠지.

“그런데 자세히 보니까 이상한 문양도 있고. 설마 했지, 나는. 말이 안 되잖아. 공략 완료된 지 한참 지난 던전에서 각성석이 발견된다는 게.”

“그러니까 말이다. 엄청나게 운이 좋았네.”

“이걸 과연 운이라고 할 수 있을까?”

“진짜 유은새 가끔 이럴 때마다 뽀뽀해 주고 싶어. 이리 와, 내가 예뻐해 줄게.”

“하지 마.”

우리와 유하가 부러운 듯이 은새의 놀라운 운을 칭찬했다.

그리고 솔은 금붕어처럼 입술을 쭈압쭈압 하며 은새에게 달려들었다. 은새가 웃음을 터트리며 솔을 밀어 냈다.

정도를 모르고 덤비는 솔의 뒷덜미를 잡아챈 미리내가 우리에게 질문했다.

“그래서 각성석 어디 있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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