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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91)화 (91/190)

90화 – 그게 왜 당신 손에 있어?

[속보] 미국, 세계 최초 SS급 헌터 등장!

갑작스럽게 강타한 소식에 전 세계가 들썩였다. 어딜 가나, 어느 매체에서나 새롭게 등장한 SS급 헌터에 대해 떠들어 댔다.

화제의 주인공은 미국인 헌터, 아나이스 벨.

S급 전투계 헌터인 그는 미국 콜로라도 주에 생겨난 ‘무명의 설산’ 던전에서 우연하게 아이템을 하나 얻었다.

그것은 기이한 문양이 새겨진 돌로, 확인 결과 이론으로만 존재하던 ‘각성석’임이 밝혀졌다.

던전에서 공략팀원들을 모두 잃고 홀로 방황하던 아나이스 벨은 절체절명의 순간, 낯선 아이템을 발견했다.

던전 탈출 아이템으로 착각한 그는 그 자리에서 그것을 즉시 사용했다. 그런데 예상과 달리 그는 던전을 벗어나는 대신 신체의 급격한 변화를 느꼈다.

‘무명의 설산’ 던전을 간신히 빠져나온 아나이스 벨은 미국 헌터 협회에 이 사실을 알리고 등급 재평가를 요청했다.

그 결과, 아나이스 벨은 평균 S급을 크게 상회하는 능력치를 보였고 국제 헌터 연합에서는 정밀 검사 후 그를 SS급으로 최종 결론 냈다.

이로써 S급 이상의 최고 등급이 생겨났고 전 세계는 ‘각성석 찾기’ 열풍에 휩싸였다.

천창현은 지하철을 타고 이동하며 각성석에 대한 기사를 읽었다. 이미 알고 있는 내용이라 새로울 건 없었지만 혹시 모르니 살펴보는 중이었다.

‘유은새 같은 변수가 또 생길지 모르니.’

진즉 죽었어야 할 그녀가 살아 있어 계획이 일부 틀어졌다. 그러니 신중해지는 건 어쩔 수 없었다.

기사는 대개 동일한 내용을 담고 있었다. 연구 결과 밝혀진 각성석의 형태, 발견 위치, 사용법…….

헌터라면 누구나 흥미를 가질 법한 사안이었으나 천창현의 눈동자는 싸늘하기 그지없었다.

‘달라지지 않았군.’

천창현이 핸드폰을 겉옷 주머니에 넣었다. 그는 지하철 창문으로 빠르게 움직이는 풍경에 시선을 고정한 채 생각에 잠겼다.

‘역시 미국에 갔어야 했나?’

천창현은 이 무렵, 미국에서 첫 각성석이 등장하리라는 걸 알고 있었다.

아나이스 벨은 굉장히 운이 좋은 자였다. 조각이나 파편이 아닌 온전한 형태의 각성석을 손에 넣었으니.

천창현이 이러한 사실을 알고 있음에도 미국에 가지 않은 건 몇 가지 이유 때문이었다.

우선 골드 스타 길드에 속해 있는 그는 함부로 해외에 나갈 수 없었고, 나가더라도 목적을 명확히 밝혀야 했다.

또한 각성석이 나온 던전이 미국 소유인 이상 한국인인 그는 공략에 참여할 수 없었다.

설령 용병으로 투입된다고 하더라도 던전에서 나온 부산물과 아이템은 다 내놓아야 할 테지.

‘그래도 괜찮아. 아직 각성석 하나가 한국에 있다는 걸 아무도 모르니까.’

지금 그가 향하는 곳은 C급 던전 ‘소용돌이치는 바다’였다.

본디 신해 길드에서 관리하던 그 던전은 얼마 전 길드가 운영 부실로 파산하면서 정부로 귀속되었다.

아직 정식 관리자가 배정되지 않은 지금이야말로 방문하기 적기였다. 이를 위해 몇 주 전부터 일정도 다 빼고 숨죽여 기다리고 있었다.

지하철에서 내린 천창현은 모자를 깊게 눌러쓰고 사람들 사이로 섞여들었다. 최근 들어 백찬민이 그를 감시하는 낌새를 보였다.

그야 골드스타 길드 내에서 천창현의 영향력이 하루가 다르게 커져 가니 어쩔 수 없을 것이다.

백찬민은 권력을 나누는 것에 예민했고 아직 천창현이 자신에게 위협이 되는 수준은 아니라 내버려 두고 있었지만 언젠가 그날이 오면 가차 없이 천창현을 제거하려 들 것이었다.

‘그 전에 이용할 수 있는 건 다 이용해야 해.’

같잖은 견제를 받는 게 거슬려도 아직 골드스타 길드에서 얻어 내야 할 게 많으니 참아야 했다.

뒤쫓는 사람이 없다는 걸 확인한 천창현은 ‘소용돌이치는 바다’ 던전이 있는 장소로 갔다.

은신 스킬을 사용한 채로 살펴보니 임시로 발령받은 E급 공무원 헌터 두 명이 던전 앞을 지키고 있었다.

일반인이 접근하지 못하게 막는 역할일 뿐이라 등급이 낮아도 상관없었다.

“오늘 퇴근하고 롤 한 판, 고?”

“허접 주제에. 어제도 나한테 발렸죠? 빡치죠? 약 오르죠?”

“안 닥쳐? 그때는 손 안 풀려서 그랬다니까? 오늘 리벤지 매치 간다. 참, 김준오가 주선한다는 미팅 언제냐?”

“토요일. 너 가냐?”

“그럼 안 가냐?”

공무원 헌터 둘은 시답잖은 얘기를 나누며 하품을 쩍쩍 해 댔다.

천창현은 은밀하게 아공간에서 원통을 꺼내 공무원 헌터들을 향해 수면 침을 발사했다.

“윽!”

“뭐야, 너 왜 그래? 악!”

그들은 E급답게 내성이 없어 반항 한 번 못 해 보고 쓰러졌다.

곯아떨어진 이들에게 다가가 암시 스킬로 기억 조작까지 한 천창현은 망설임 없이 던전 포털 위로 올라섰다.

곧 시야가 흔들리고 풍경이 뒤바뀌었다.

방금 전까지만 하더라도 한적한 도로였는데, 지금 천창현의 눈앞에는 하얀 모래사장과 푸른 바다가 펼쳐져 있었다.

사람 한 명 보이지 않는 바다는 잔잔한 파도가 넘실거리며 그 푸르름을 빛냈다.

적막함과 안정감이 공존하는 공간을 둘러본 천창현은 조개껍질이 널린 백사장을 가로질러 등대가 있는 곳까지 갔다.

그런데 아무도 없을 거라는 그의 예상과 달리 다수의 인기척이 느껴졌다. 천창현이 다급히 모습을 숨겼다.

‘사람? 누구지?’

조금 떨어진 거리에서 그가 유심히 사람들을 살폈다.

“뉴나, 이거 봐요! 예쁜 돌멩이 주웠어요~”

“와. 어디서 주웠어?”

“저어기 계단에서!”

하늘색 곱슬머리를 가진 세 살 정도 되어 보이는 아이가 한 여성의 품에 쏙 안겨 들었다.

여성의 옆얼굴을 본 천창현이 눈살을 찌푸렸다.

‘유은새? 유은새가 여기를 어떻게…….’

그녀의 곁에는 함께 다니는 마수들도 있었다.

“아빠!”

그리고 유은새의 품을 벗어난 아이가 달려간 곳에는 아이의 친부이자, 마법 이능 헌터로 알려진 남자가 있었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아직 아무도 못 들어올 텐데.’

순간 당혹감으로 물들었던 천창현의 눈이 커졌다. 그의 시선이 은새의 손에 들린 물건에 꽂혔다.

“돌에 이상한 문양이 있네?”

그게 왜 당신 손에 있어?

그건, 천창현이 찾으러 온 각성석이었다.

***

은새는 우리와 통화 중이었다.

“그럼 어제 말한 그 C급 던전 출입 허가받은 거야?”

-어. 강원도에서 가깝기도 하고, 벨키오르 님이랑 마수들까지 데려가려면 인적 없는 곳이 좋잖아.

“그렇긴 하지.”

은새는 모처럼 얻은 휴가에 바다에 놀러 갈 계획을 세웠다.

이제 여름이 다 지나고 가을이 코앞이었지만 S급 헌터인 은새나 마수들은 걱정 없었다.

별이와 봄이도 너무 물속에 오래 있는 게 아니라면 괜찮다고 벨키오르의 확인을 받았다.

하지만 현실의 바다는 여러 문제점이 있어서 고민하던 차였다.

육지와 달리 해저에 생겨난 던전은 공략이 불가능했기에 던전 브레이크가 일어나도 막을 도리가 없었다.

언제, 어떤 마수가 덮쳐올지 모르는 곳에 아이들을 데려가는 게 꺼려졌던 은새는 때맞춰 걸려온 우리의 전화에 이 일을 상담했다.

‘그래? 때마침 괜찮은 곳이 있어.’

그렇게 말한 우리는 정부와 협상해 C급 던전 ‘소용돌이치는 바다’를 하루 동안 대여하는 데 성공했다.

덕분에 은새는 마음 놓고 아이들과 함께 놀러 갈 수 있게 되었다.

핸드폰 너머로 우리가 한숨을 푹 쉬었다.

-마음 같아서는 다 때려치우고 나도 가고 싶다.

“일 많이 바빠?”

-아무래도 그렇지……. 이번에 발표된 각성석 때문에 다들 난리야. 길드장 회의 잡혔어.

“고생이네.”

은새가 진심으로 안쓰럽다는 듯 우리를 다독였다.

-조만간 길드로 와, 은새야. 얼굴 좀 보자.

“응. 고마워.”

-뭘. 나 대신 잘 놀고 와.

은새가 통화를 끝내기를 기다리고 있던 별이 상기된 표정으로 달려와 매달렸다.

“뉴나! 우리 바다 보러 가요?”

“그래. 기대되지?”

“네!”

“재밌게 놀다 오자. 벨키오르 님도 준비하세요.”

신이 난 별이가 봄이를 끌어안고 거실을 폴짝폴짝 뛰어다녔다. 은새는 들뜬 아이들과 함께 짐을 싸고 마수들을 챙겨 집을 나섰다.

도다리를 타고 40분 정도 이동한 그들은 목적지에 도착했다. 미리 연락받고 기다리고 있던 공무원 헌터들이 일행을 맞이했다.

“안녕하세요, 유은새 헌터. 안에 계신 동안 아무도 출입할 수 없으니 걱정하지 마시고 좋은 시간 되세요.”

“네, 감사합니다.”

그들을 일별하고 입장한 던전 안.

예상외의 평화로운 풍경에 벨키오르가 고개를 기울였다.

“은새. 왜 이곳 이름이 ‘소용돌이치는 바다’지?”

“아, 여기 던전 보스 때문에요. 지금은 공략 완료된 상태라 이렇지만 원래는 제법 환경이 험난했다고 들었어요.”

“와아, 바다다!”

꾸꾸!

매애-

쉭쉭.

고삐가 풀린 듯 별이와 마수들이 모래사장을 향해 달려갔다. 남들 눈치 보지 않고 마음껏 활개 칠 수 있으니 더없이 자유로웠다.

은새와 벨키오르는 입가에 옅은 미소를 띤 채 그들의 뒤를 따랐다.

“앗, 차거.”

“별이야, 깊은 곳에 들어가지 않게 조심해!”

“네!”

“얘들아, 너무 멀리 가지 마!”

푸르릉.

크앙!

은새가 보는 앞에서 쪼쪼와 함께 한참을 발장구치던 별이가 문득 무언가를 발견했다.

“뉴나, 이거 봐요! 예쁜 돌멩이 주웠어요~”

“와. 어디서 주웠어?”

“저어기 계단 아래에서!”

별이가 넘겨준 돌멩이를 은새가 받았다.

그때 어디선가 불쾌감을 자극하는 진득한 시선이 느껴져 벨키오르가 티 나지 않게 눈동자를 굴렸다.

멀지 않은 곳, 모습을 감춘 천창현과 눈이 마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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