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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82)화 (82/190)

81화 – 물어 와!

“센도라, 이 마수를 살려라! 절대로 곱게 죽이지 않을 것이다!”

쿨럭.

물러나 있던 인간 중 한 명이 다가오는 것을 보며 마르모르는 끝을 예감했다. 이제 구천을 떠돌고 있을 타데아 님을 만나러 갈 수 있을 것이다.

[이 땅 어디에도 네놈을 환영할 곳은 없겠지.]

그 말을 끝으로 마르모르는 스스로 가슴에 손톱을 박아 넣었다. 하야트가 눈살을 찌푸리며 소리쳤다.

“멈춰!”

마르모르는 그대로 힘을 주어 주저하지 않고 심장을 뽑아냈다.

빠르게 빠져나가는 생명력을 선연히 느끼면서도 마르모르는 만족스럽게 웃었다.

‘이걸로 듀는 당분간 안전할 거야.’

하야트는 마수들 사이에 지킬 의리가 어디 있냐고 했지만 모르는 소리였다. 적어도 마르모르와 듀는 안위를 위해 서로를 팔아넘길 관계가 아니었다.

‘타데아 님. 이런 선택을 한 저를 책망하지는 않으시겠죠?’

생명의 원천을 잃은 마르모르의 거대한 몸이 쿵, 쓰러졌다. 피범벅이 된 마르모르의 눈이 서서히 감겼다.

“…….”

하야트가 굳은 얼굴로 눈밭에 누운 마르모르의 시체를 내려다봤다. 마르모르가 했던 말이 저주처럼 뇌리에 박혔다.

‘가장 비참한 말로를 맞이할 거라고?’

웃기는 소리. 하야트의 입가에 섬뜩한 비웃음이 자리했다.

아니, 그런 운명이라면 자신이 산산이 깨부술 것이다.

지금까지도 그래 왔지 않은가. 빌어먹을 운명 따위 그의 장애물이 될 수 없었다.

하야트가 뒤돌아서서 걷기 시작했다.

“다음 사냥감을 찾아 떠난다.”

***

은새는 박도윤 팀과 A급 던전에 들어와 있었다.

죽은 잔디가 듬성듬성 보이는 고대 유적지. 부식된 돌기둥들이 무질서하게 늘어서 있고, 반쯤 무너진 건물과 얼굴 없는 석상이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만들었다.

파괴된 벽에는 읽을 수 없는 문자로 글이 쓰여 있었다.

일행은 마수들을 처리하며 내부로 파고들었다. 거미줄이 길게 늘어진 복도에는 부연 먼지가 떠다녔다.

그들은 제단까지 도달했다. 은새가 베일 카라스의 봉을 휘두르며 던전 보스와 대치했다.

평소와 다르게 그녀는 바로 마수를 때려잡는 게 아닌, 이능을 개방해 마수를 테이밍하는 연습을 했다.

일전에 친구들과 나눴던 대화를 곧장 실천하는 중이었다. 하지만 아직 감을 잡지 못하고 있었다.

던전 보스를 눈앞에 두고 은새가 생각했다.

‘테이밍에 필요한 것은 친밀도.’

그녀가 아무리 S급 헌터라고 해도 던전의 모든 마수를 테이밍할 수 있는 건 아니다. 성체인 마수들은 자아가 강한 만큼 속박하기 힘들었다.

그래서 보통 새끼 때 데려와 키우며 길들였다. 도다리나 민들레, 하늘이, 쿠키 등도 전부 그런 식으로 테이밍한 것이다.

‘B급 던전 보스는 그래도 수월했는데 A급은 어렵네.’

“핫!”

키야악!

마수의 공격을 피해 은새가 훌쩍 뛰어올랐다. 엘레나 킴의 이능과 오종환의 스킬이 은새를 보조했다.

‘친밀도가 낮은 마수를 테이밍하려면 전투 불능 상태로 만드는 것밖에 방법이 없을까?’

그건 쉬웠다. 하지만 은새가 원하는 건 ‘등급에 상관없이’, ‘원하는 때에’, ‘다수를 동시에’ 테이밍하는 것이었다.

만약 던전 보스가 어려운 상대라면 중간 보스들을 테이밍해서 끌고 가 전투에 이용한다든지.

‘생각해 보면 내가 현재 스킬을 사용하는 방식은 가장 기초적인 거라고 할 수 있어.’

스킬, ‘테이밍 마스터’.

전 세계에서 오직 은새만이 보유한 유니크 스킬.

일반적으로 헌터들은 중복된 스킬이나 비슷한 유형의 스킬을 가지고 있다.

‘그림자밟기’, ‘나비의 춤’, ‘술래는 내가 할게, 누가 숨을래?’와 같은 스킬들은 이름은 달라도 비슷한 효과를 발휘했다.

그래서 스킬을 활용하기 위한 참고 자료가 많았다. 그만큼 스킬을 발전시키는 데 시간이 적게 걸린다는 뜻이었다.

그러나 유니크 스킬의 경우, 보유자가 오직 한 명뿐이라 정보 제공자 역시 단 한 명이었다.

이 말은 다시 말해 스킬의 해석과 응용, 개발 모두 보유자 한 사람에 의해 이루어져야 한다는 것이다.

운이 나쁘면 평생 스킬의 비밀을 다 알지 못하고 죽을 수도 있었다.

은새는 지금껏 한 가지 방식으로만 테이밍을 해 왔다. 성장할 실마리가 보이자 그녀는 의욕적이었다.

‘테이밍을 정신 지배 능력의 일종이라고 생각한다면.’

은새가 베일 카라스의 봉을 꽉 쥔 채로 던전 보스를 노려봤다.

‘정신 장벽을 무너뜨리는 게 먼저인가?’

그녀가 엘레나 킴에게 외쳤다.

“엘레나 킴 헌터! 스킬 ‘한단몽’을 발동해 주세요!”

“네!”

한단몽은 잠시 상대의 정신을 흩트려 잠에 빠지게 하는 기술이었다.

엘레나 킴이 손으로 총 모양을 해 던전 보스를 향해 이능을 쏘았다.

키야악!

본능적으로 위협을 느낀 마수가 스킬에 저항했다.

몸을 비틀면서 흐트러지는 정신을 잡으려 애를 썼다. 그런 마수를 보고 엘레나 킴이 스킬을 더욱 강하게 발동했다.

괜히 던전 보스가 아닌지 마수는 끈질기게 버텼다. 그 순간, 마수가 멈칫했다.

‘지금!’

그때를 노려 은새가 ‘테이밍 마스터’를 발동했다. 백색 이능이 마수의 머리를 휘감았다.

일순 마수의 눈 색깔이 희게 물드는 듯하더니 원래대로 돌아갔다. 동시에 ‘한단몽’도 풀렸다.

키엑!

“칫, 안 되나.”

스킬이 풀려 아까보다 더 날뛰기 시작한 던전 보스에게서 은새가 멀리 떨어졌다.

테이밍이 일순 먹히는 듯했으나 튕겨 나온 느낌이었다.

은새는 달려드는 마수를 요리조리 피해 적절한 반격을 했다.

‘정신 장벽을 무너뜨리는 건 맞아. 그렇다면 이능을 좀 더 정교하게 가다듬어서…….’

그때 은새의 머릿속에 섬광이 스쳐 갔다.

‘정신 지배 스킬을 가진 헌터 중에 스펠을 사용하는 경우가 가끔 있었지!’

스펠(spell). 다른 말로 발동어였다.

보다 이능이 효율적으로 구성되도록 틀을 잡아 주는 역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스펠은 길이부터 내용까지 다양했다.

은새가 아는 것만 해도 ‘일현의 대신사여…….’ 하면서 구구절절하게 외는 부류와 ‘마인드컨트롤’, ‘꿇어!’와 같이 간단하게 외치는 부류가 있었다.

그렇다면 자신도 뭐 하나 외치면 되지 않을까?

‘음……. 앉아? 손? 기다려?’

어째 죄 강아지들한테 할 법한 말이었다.

자신의 속성을 생각해 봤을 때 가장 적절한 건…….

결정을 내린 은새가 다시 외쳤다.

“엘레나 킴 헌터, 스킬 ‘한단몽’ 다시 한번 부탁해요!”

“맡겨 주세요!”

기다렸다는 듯이 엘레나 킴의 스킬이 발동되었다.

키에엑!

저항하는 마수와 약간의 힘겨루기가 있고 나서 아까보다 조금 길게, 그래 봐야 2초 정도 틈이 생겼다.

그때를 노려 은새가 이능을 강하게 방출하며 울림을 담아 소리쳤다.

“물어 와!”

그녀가 자신의 마수들과 놀아줄 때 자주 하는 말이었다.

사실 ‘이리 와’랑 ‘물어 와’ 중에 고민했는데 좀 더 명확한 뜻이 담겼으면 해서 후자를 골랐다.

“엥, 유은새 헌터?”

“누구한테 하는 말이에요?”

박도윤과 팀원들이 황당해했다. 갑자기요? 여기서요? 뭘 물어 와요? 그들의 표정이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

팀원들의 반응에도 은새의 시선은 줄곧 던전 보스에게 고정되어 있었다.

집중, 또 집중해야 한다. 조금이라도 느슨해지면 스킬이 풀릴 테니까.

은새가 이능의 강도를 조금씩 높였다. 그 순간, 마수의 눈동자가 은새의 이능 색으로 완전히 물들었다.

“통했나?!”

은새가 눈을 크게 떴다. 던전 보스가 시선을 들어 은새를 쳐다봤다.

아무리 기다려도 마수는 공격해 오지 않았다. 마치 명령을 기다리는 것처럼.

은새의 앞으로 와 둥글게 몸을 굽히는 마수를 보고 엘레나 킴과 팀원들이 입을 벌렸다.

“유은새 헌터, 성공이에요?”

“오! 명령 내려 봐요!”

“설마 아까 그게 스펠이었어요? 너무나 유은새 헌터다운 스펠이네요.”

박도윤과 팀원들이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은새는 들뜬 표정으로 마수에게 명령을 내렸다.

“자, 엎드려.”

은새가 바닥을 가리키자 마수가 땅에 바짝 엎드렸다. 흉악한 생김새와 다르게 올려다보는 눈빛이 순했다.

은새는 웃음을 꾹 참고 다음 명령을 내렸다.

“일어나서 한 바퀴 돌아!”

은새의 말에 반응한 마수가 벌떡 일어나 제자리에서 한 바퀴 돌았다. 휙휙 프로펠러처럼 돌아가는 꼬리가 나름대로 귀여웠다.

“오, 그럼 이번엔.”

주위를 돌아본 은새가 돌 조각을 주워 있는 힘껏 멀리 던졌다.

“물어 와!”

크릉!

총알처럼 달려 나간 마수가 겅중 뛰어 돌 조각을 콱 물었다.

파삭!

비록 돌 조각은 산산이 부서졌지만 그걸 입에 문 채로 마수가 헐레벌떡 돌아왔다.

그걸 은새 앞에 퉤퉤 뱉어 내고는 머리를 조아렸다. 그게 마치 칭찬을 기다리는 강아지처럼 보여 은새가 푸스스 웃으며 마수의 이마를 문질러 줬다.

그 이후에도 몇 가지 실험을 해 봤다. 결과만 말하자면 테이밍은 약 10분간만 유효했다.

타임 리미트가 지나자 마수는 선잠에서 깨어난 것처럼 포효하며 일행을 공격했다.

원하는 결과를 얻었으니 은새는 물러나고 박도윤 팀이 던전 보스를 순식간에 해치웠다.

던전을 나오며 은새는 생각했다.

‘이 정도면 꽤 괜찮은 성과야. 내 생각이 맞다는 걸 증명했으니까.’

은새는 주먹을 움켜쥐었다. 감을 잡았으니 이제 죽도록 연습하는 일만 남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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