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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79)화 (79/190)

78화 - 신애의 비르투오소

미리내와 은새를 번갈아 보던 인찬이 혀를 내둘렀다.

“S급이 지금보다 더 강해져서 뭐 하게?”

“으음. 만약에 우리 힘만으로 공략 불가능한 던전이 나타나면 어떡해?”

“그도 그렇네. 드물지만 SS급 던전도 있으니까.”

“현존하는 던전 중 최고 등급이 소말리아에 나타난 SSS급 ‘멸망의 서사시’ 던전이지?”

“거기는 나라 자체가 이계화 됐다며. 거의 지옥도나 다름없다고…….”

친구들은 잠시 말이 없어졌다. 다들 극복 불가능한 난도의 던전이 터졌을 때를 상상해 보고 있었다.

“한국에서 설마 SSS급 던전이 터지겠어?”

“가능성이 아예 없지는 않지. 어쩌면 지금까지는 운이 좋았을 수도 있고.”

솔과 인찬이 몸을 부르르 떨었다. 얼굴을 쓸어내린 우리가 입을 뗐다.

“그래, 긍정적인 사고 흐름인 것 같네. 사실 S급이 된 이후에 발전 의식이라고 할까, 지금보다 더 강해져야 한다는 욕구가 없었잖아. 동기 부여도 되고 딱이다.”

“미리내는 모다온 씨를 만나러 간다고 했고, 은새 너는 어떻게 할 거야?”

“잘 모르겠어. 몬스터 테이밍이랑 비슷한 이능을 가진 사람은 없어서.”

“네 능력이 특이하기는 하지. 그럼 은새는 던전 마수들을 등급 상관없이 테이밍 가능하도록 노력해 보면 되지 않을까?”

“그거 괜찮다!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은새가 활짝 웃으며 손뼉을 쳤다. 그녀는 당장이라도 던전으로 뛰어갈 것처럼 벌떡 일어났다.

우리가 그런 은새를 만류하며 말했다.

“나도 연구팀이랑 합작해서 기술 연구를 더 해 봐야겠다. 암중봉연도 연구팀 성과거든.”

“나도 가만있을 수 없지! 내 목표는 길짱을 때려눕히고 이 길드를 먹는 거니까!”

“솔이 너 아직도 포기 안 했냐…….”

미리내와 은새에 이어 우리와 솔도 능력 발전의 의지를 자아냈다.

유하는 속을 알 수 없는 눈빛을 했다.

“나는…….”

가만히 있던 인찬이 말끝을 흐렸다. 친구들의 시선이 그를 향했다.

“왜? 무슨 문제 있어?”

“아니. 나도 한번 생각해 볼게.”

인찬의 반응이 이상했지만 친구들은 그도 생각이 있겠거니, 하고 넘어갔다.

“그래. 도움 필요하면 말하고.”

“응.”

***

“모다온 씨, 이쪽 한번 봐 주세요!”

“손 흔들어 주세요!”

인천 공항이 시끄러웠다. 이능 플루터니스트 모다온의 입국 현장에 수많은 팬들과 기자들이 몰렸다.

모다온은 능숙하게 팬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며 기자들의 카메라에도 포즈를 취했다.

“모다온 씨, 간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심정은 어떻습니까?”

“얼마나 체류하실 예정입니까?”

“해외 활동에서 어려운 점은 없으셨나요!”

모다온이 금발을 쓸어 넘겼다. 그녀는 입꼬리를 올려 생긋 웃으며 기자들의 질문에 답했다.

“모처럼 한국으로 돌아와서 좋네요. 팬 여러분을 만날 생각에 기뻐요. 음악회 많이 와 주세요.”

모다온은 팬들과 더 아이컨택을 하고 그만 공항을 떠났다.

매니저와 함께 예약한 호텔로 이동한 그녀는 짐을 풀고 식사를 하며 휴식을 취했다.

매니저가 모다온에게 주의할 사항을 늘어놓았다. 매일 듣는 똑같은 말이었다.

“다온아, 3일 후부터 연주회니까 컨디션 관리 잘하고, 혼자서 절대 돌아다니지 말고. 기자들 따라붙으면 나한테 연락해. 저번처럼 플루트로 때려눕히지 말고.”

“응.”

“너는 얌전한 얼굴을 하고 왜 그러는지 정말 걱정이다. 이따 소속사로 온 팬들 선물 가져다줄게. 절대 개인적으로 선물 받지 마. 그리고 팬들 앞에서 입 열지 마. 그냥 예쁘게 웃어 줘. 너는 입 열면 깨니까…….”

“알았다니까.”

폭풍처럼 쏟아지는 잔소리에 모다온이 헤실거렸다. 매니저는 그 얼굴을 걱정스럽게 바라봤다. 대답은 잘하지, 대답만.

“그리고 만남 요청이 몇 개 들어왔는데. 적당히 내 선에서 거를게. 그런데 좀 특이한 사람이 있어.”

“누군데?”

“도천 길드 최미리내 헌터. 너처럼 공인에 가까운 사람이니까 괜찮을 것 같긴 한데.”

“최미리내 헌터? 그, S급 힐러?”

“맞아.”

“내 팬이래?”

“그건 모르겠는데, 소문이 나쁜 사람은 아니야.”

한국 1위 길드의 부길드장. 국내 힐러 중 최상위 S급 힐러. 최미리내의 명성과 인성은 매니저도 잘 알고 있었다.

해외에서 활동하는 모다온 또한 최미리내에 대해서 자주 들었다. 국내 힐러들의 정점에 있는 사람.

언젠가 만나 보고 싶었는데 잘됐다. 그녀가 한껏 기분 좋은 얼굴을 했다.

“좋아, 만날래. 기대된다.”

“너…….”

선선히 대답하는 모다온을 보고 매니저는 불안감을 감추지 못했다.

어디로 튈지 알 수 없는 그녀의 성격을 잘 아는 매니저는 노파심에 잔소리 2절을 시작했다.

“그런 사람은 아닌 것 같지만 이상한 사업 제안받고서 선뜻하겠노라 대답하지 마. 종교 권유는 무조건 거절해. 지난번에 너 사이비에 끌려가서…….”

“알았어, 알았어.”

“제대로 새겨들어. 참 걱정된다. 하아…….”

물가에 애 내놓는 심정인 걸 아는지 모르는지 그저 방긋 웃기만 하는 모다온을 보고 매니저가 한숨을 내쉬었다.

화요일 저녁, 미리내는 모다온의 연주회에 참석했다. 2년 만에 한국에서 여는 연주회라 그런지 제법 큰 규모의 공연이었다.

자리에 앉자 낯익은 얼굴들이 보였다. 동종업계 헌터들과 정, 재계의 인사들. 그녀가 모르는 일반인들도 많았다.

‘팬층이 다양하네.’

저들이 다 진정한 팬이라고는 할 수 없겠지만 저만한 사람들을 불러 모은 건 모다온의 명성이 대단하다는 방증이었다.

하긴 이 정도 규모의 콘서트홀에서 연주회를 할 정도인데 당연한 걸 수도.

7시 정각이 되자 커튼 뒤에서 오케스트라 악단과 모다온이 걸어 나왔다.

짙은 남색의 드레스를 입은 모다온이 활짝 웃으며 관객들에게 인사했다. 스포트라이트에 드레스의 반짝이가 반사됐다.

한쪽으로 넘긴 금발이 그림같이 잘 어울렸다. 사람들이 박수로 그녀를 맞이했다.

지휘자의 신호와 함께 연주가 시작되었다. 부드럽게 흐르는 바이올린과 첼로의 선율.

그 위로 모다온의 이능을 담은 플루트 소리가 얹어졌다.

‘오, 이능을 저런 식으로도 발휘하는구나.’

미리내는 속으로 감탄했다. 톡톡 튀는 경쾌한 연주.

모다온의 이능은 마치 이곳이 연주회장이 아닌 다른 공간인 것처럼 느껴지게 했다.

맑은 음색에 맞춰 상쾌한 바람이 밀려왔다. 싱그러운 풀꽃 냄새와 보글보글 생명이 움트는 소리.

부드럽고 감미로운 가락이 관객들을 다독였다. 그에 더해 연주자에게서 눈을 뗄 수 없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미리내는 점차 연주에 빠져들어 갔다. 원래 이곳에 온 목적을 잠시 잊을 정도였다.

‘명성이 과장된 게 아니었구나.’

모다온의 연주를 한번 듣게 되면 정신없이 빠져든다는 말이 사실이었다. 마치 진한 유혹과도 같았다.

연주는 점차 절정에 다다랐다. 확 하고 시야가 밝아졌다.

주변의 사람들이 지워지고 연주자인 모다온과 자신만 남겨진 듯한 착각이 들었다.

모다온이 싱긋 웃었다. 오직 그녀가 자신만을 위해 연주하는 것 같은 기분이 들었다.

‘……모다온에게 목을 매는 팬들이 그렇게 많다던데.’

이런 걸 보여 주는데 과연 그러지 않을 수 없겠어. 미리내는 자리를 떠나지 않고 마지막 곡까지 감상했다.

‘대단한 연주였어.’

우레와 같은 박수가 쏟아졌다. 같이 박수를 치며 미리내는 친구들과 함께 오지 못한 것을 아쉬워했다.

“감사합니다.”

밝은 표정을 한 모다온이 손을 흔들며 퇴장했다. 밖으로 나온 미리내는 연주 홀 근처에서 잠시 대기했다.

시간이 꽤 흐른 뒤에 모다온 담당 매니저에게서 연락이 왔다. 미리내는 그녀가 알려 준 곳으로 갔다.

“어서 오세요, 최미리내 헌터. 오래 기다리셨나요?”

“안녕하세요. 오경애 매니저님이신가요?”

“네. 다온 씨가 안에서 기다리고 있어요.”

매니저가 대기실 문을 손수 열어 줬다. 미리내는 기대 반, 걱정 반으로 천천히 발을 들여놓았다.

모다온은 소파에 앉아 쉬고 있었다. 그녀가 미리내를 발견하자 눈을 반짝였다.

호의가 깃든 눈빛에 미리내가 의아함을 느끼려는 찰나 모다온이 먼저 다가와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세요. 모다온이라고 합니다.”

“연주 잘 들었습니다. 최미리내라고 해요.”

“오늘 어떠셨나요? 들을 만하던가요?”

“훌륭한 연주였어요. 가히 ‘신애의 비르투오소’라고 불릴 만해요.”

진심을 담은 미리내의 말에 모다온이 싱긋 웃었다.

“과분한 칭찬이에요. 앉으세요. 커피 드시겠어요? 아니면 차?”

“차로 부탁드릴게요.”

두 사람은 차가 담긴 머그잔을 앞에 두고 마주 앉았다. 모다온은 기분이 좋은 듯 연신 생글거렸다.

“저를 보자고 한 이유를 물어도 될까요?”

“모다온 씨께서는 유능한 연주자인 동시에 헌터시죠.”

모다온이 의외라는 표정을 했다.

“저에게 헌터라고 말해 주신 분은 오랜만에요. 저는 특별한 경우가 아니고서는 레이드에 참가하지 않으니까요.”

“할 줄 아는데 안 하는 것과 못 하는 것에는 큰 차이가 있으니까요.”

“와, 그런 말씀 감사드려요. 저 그거 때문에 욕 엄청나게 먹거든요. 헌터인데 던전 공략은 안 하고 쓸데없는 짓이나 한다고요.”

직설적으로 말하는 모다온의 모습에 미리내는 살짝 얼떨떨했다. 그녀가 보이는 반응이 예상과 많이 달랐다.

생각보다…… 꾸밈이 없고 수더분한? 진솔한 느낌이었다.

들뜬 기색을 감추지 않으며 모다온이 미리내의 말을 재촉했다.

“하여튼 그래서요?”

“제가 힐러인 건 아시죠?”

“네. 알고 있어요. 대한민국 최초의 S급 힐러.”

“저는 모다온 씨에게 이능 활용법에 대해 조언을 얻고자 왔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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