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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73)화 (73/190)

72화 - 아무한테나 이런 호의 안 베풀어요

은새가 경찰서에 출두하자 많은 이들이 몰렸다. 기자부터 팬들, 구경꾼들까지 은새를 보겠다고 한달음에 달려왔다.

차에서 내리는 은새에게 카메라 플래시와 함께 기자들의 질문이 쏟아졌다.

“유은새 헌터! 지금 심경이 어떻습니까? 폭행 사실을 인정합니까?”

“왜 그런 일을 벌이셨나요! 개인적인 원한입니까?”

“피해자들에게 미안한 마음은 없습니까?”

아직 은새가 경찰서에 들어가지도 않았건만 기자들은 이미 사건이 그녀의 잘못인 양 몰아갔다. 깜짝 놀라 달려온 팬들이 가만있지 않았다.

“언니, 전 언니의 결백을 믿어요! 언니가 그럴 리 없어요!”

“피해자라는 사람들이 거짓말하는 거죠? 돈 뜯어내려고!”

“유은새 헌터! 사실이 아니라고 딱 한 마디만 해 줘요. 목숨 걸고 믿을게!”

팬들에게 부드럽게 웃어 준 은새가 기자들을 향해 또박또박 답했다.

“뭔가 오해가 있는 것 같은데 잘 풀고 나오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경찰서로 들어가는 은새의 뒷모습을 기자들이 쉴 새 없이 카메라로 찍었다.

경찰서 안에는 우리와 미리내가 먼저 와 있었다. 그들과 눈인사를 나눈 뒤 그녀는 담당 형사에게로 갔다.

의자에서 일어난 형사가 담담한 얼굴로 손을 내밀었다.

“안녕하십니까, 형사 2팀 이승훈 형사라고 합니다.”

“안녕하세요, 형사님. 혹시 이분들이?”

“예. 피해자분들이십니다.”

노트북과 서류들이 놓인 테이블 앞에 남녀 두 명씩 네 명이 나란히 앉아 있었다.

은새는 그들을 빤히 쳐다봤다. 그들은 맞아서 얼굴이 얼룩덜룩했고 팔과 목에 깁스를 한 이도 있었다.

‘생각보다 상태가 심각하네…….’

그들 중에는 은새를 힐끔힐끔 보면서도 눈이 마주치면 화들짝 놀라며 피하는 사람도 있었고, 아예 몸을 돌린 사람도 있었다. 은새는 일단 인사를 건넸다.

“어…… 안녕하세요? 유은새라고 합니다.”

“…….”

“합의는 없습니다.”

나머지는 침묵을 고수했고 유독 한 명만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은새는 ‘음.’ 하고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그 전에 정말 제게 폭행을 당한 게 맞나요?”

“그렇다니까요, 몇 번을 말해요!”

이미 여러 번 같은 질문을 받았는지 그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하기야 형사한테도 그렇고 밖의 기자들과 우리, 미리내한테도 추궁당했겠지.

이해는 됐지만 은새에게는 명백한 알리바이가 있었다. 그녀가 손바닥을 펼쳐 그들을 말렸다.

“진정하시고요. 폭행 시간이 저녁 10시 30분경이라고 들었는데 맞나요?”

“예!”

“그런데 제가 그 시각에 도천 그룹 창립 기념식에 참석 중이었거든요.”

“……예?”

“아마 어제 도천 그룹 측에서 낸 보도 자료가 있을 거예요.”

“저, 정말요?”

“네. 다시 한번 물을게요. 정말 제가 맞나요?”

“어…….”

피해자들이 멍한 얼굴을 했다. 그들은 버벅거리며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하, 하지만 유은새 헌터가 맞았어요. 어깨를 부딪혔는데…… 그때 분명 얼굴을 봤다고요. 저희가 쫓아가니까 골목으로 데려가서 주먹을 휘둘렀어요.”

“그래, CCTV! CCTV를 확인하면 되겠네요!”

여자 한 명이 형사에게 고개를 휙 돌렸다. 기다렸다는 듯이 이승훈 형사가 노트북 화면을 돌렸다.

“유은새 헌터, 이 영상을 확인해 보시죠.”

은새가 멈춰 있는 영상의 재생 버튼을 눌렀다. 주변 가게에 설치된 CCTV 영상인 듯했다.

“음…….”

피해자로 보이는 헌터들이 보이고 반대편에서 한 인영이 걸어왔다. 은새는 눈을 크게 뜨고 인영을 뚫어지게 봤다.

“잘 모르겠는데요?”

“이 각도에서는 얼굴이 잘 안 보이는데 다른 영상을 보시면.”

이승훈 형사가 다음 영상을 재생했다. 이번에는 옆얼굴이 슬쩍 지나갔다.

은새의 눈이 커졌다.

“어라? 나…… 인가?”

CCTV 영상이라 화질이 그리 좋은 게 아니라 모호했다. 일단 실루엣은 그녀와 굉장히 흡사했다.

은새가 노트북에 들어갈 듯이 얼굴을 들이밀었다.

“다른 영상은 없어요? 이것만으로는 판별이 어려울 것 같은데.”

“예. 이게 그나마 가장 잘 나온 겁니다.”

“흠…….”

영상을 몇 번을 돌려봐도 잘 모르겠다. 그녀 같기도 하고, 아닌 것 같기도 했다.

뭐지, 대체. 은새는 아리송해졌다.

그때 가만히 옆에서 지켜보던 우리가 나섰다.

“아무튼 유은새 헌터는 알리바이가 확실합니다. 그러니 생사람 잡는 건 그만두시죠.”

“저희는 분명 유은새 헌터를 봤다고요!”

“네, 그렇게 믿고 싶으신 거겠죠.”

그들을 보는 우리의 눈빛이 서늘했다. 비아냥이 섞인 말투에 은새가 우리와 헌터들 사이를 가로막았다.

“우리야, 그렇게 말하지 마. 저기, 상황은 안타깝게 됐어요. 제가 어떻게 해 드릴까요? 치료비라도 지원해 드릴까요?”

“네가 그럴 필요 없어!”

우리가 눈살을 찌푸리며 그녀를 만류했다. 은새가 고개를 저었다.

“하지만 이대로라면 이분들은 내게 오명을 씌웠다고 안 좋은 소리를 들을 게 뻔해. 나는 그런 걸 바라지 않아.”

은새가 헌터들을 돌아봤다. 동종업계 사람들이니 나쁘게 대하고 싶지 않았다.

“적어도 이분들은 내게 악감정이 있는 것 같지는 않아.”

그녀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그들을 바라봤다. 시선을 마주친 그들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마, 맞아요! 저희는 유은새 헌터를 존경해요. 그런데 그런 일을 당해서…….”

“처음에는 거리에서 마주친 김에 악수나 하고 사인이나 받을 생각이었는데.”

은새의 다정함에 감화된 피해자들이 울먹거렸다. 그들은 내내 형사와 주변인들에게 거짓말하지 마라, 돈 노리고 꾸민 일 아니냐 하는 소리만 듣다가 막상 은새에게 위로받자 흔들렸다.

목에 깁스한 헌터가 긴가민가한 얼굴로 물었다.

“정말 유은새 헌터가 아니에요?”

“네. 그럴 이유도 없고요.”

“허…… 그럼 저희가 본 사람은 누구예요?”

정적이 내려앉았다. 누구도 그 질문에 대한 답을 해 줄 수 없었다.

은새와 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이승훈 형사가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했다.

“자, 유은새 헌터가 아닌 걸로 결론 났으니 이만 정리하시죠.”

“그럼 이 사건은 어떻게 되는 거예요?”

“주변을 탐문 수색해 용의자를 찾아야지요. 동선만 파악하면 아마 쉽게 찾을 수 있을 겁니다.”

“하긴, 요새는 CCTV랑 블랙박스가 잘 되어 있으니까요.”

고개를 끄덕인 은새가 피해자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었다. 헌터들이 화들짝 놀라서 눈을 크게 떴다.

“제가 뭐 해 드릴 수 있는 건 없고 나쁜 분들은 아니신 것 같으니 범인 잡기 전까지 치료비만이라도 지원해 드릴게요.”

“아, 아니요. 그러실 필요 없습니다.”

“맞아요, 저희가 뭔가 착각을 했나 봐요…….”

은새의 말에 그들이 손을 내저었다. 미안한 표정으로 주눅이 든 모습을 보고 은새가 웃으며 말했다.

“사양하지 마세요. 저도 아무한테나 이런 호의 안 베풀어요. 저를 존경하신다고도 했고, 만약 이런 일로 만나지 않았더라면 더 좋은 관계가 됐을 거예요.”

“유은새 헌터…….”

헌터들이 눈물을 글썽였다. 그들은 거룩한 의인을 만난 것처럼 방방 뛰고 싶은 심정을 꾹 내리눌렀다.

맞다, 그들이 상상 속으로만 생각했던 유은새는 이런 이미지였다. 그런데 어제 골목에서 마주친 이는 까칠했고 사나웠으며 손속이 잔인했다.

그래. 그 사람이 유은새 헌터일 리 없어. 어두워서 우리가 분명 뭔가를 잘못 본 거야.

급기야 스스로를 세뇌하기 시작한 그들은 은새의 손을 냅다 잡아 흔들었다.

“저! 그럼 염치 불고하지만, 사인해 주실 수 있나요?”

“같이 사진 찍어도 돼요? 한우리 헌터와 최미리내 헌터도요.”

언제 불편해했냐는 듯 그들이 은새와 우리, 미리내를 선망의 눈길로 바라봤다.

은새가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물론이죠. 우리야, 미리내야. 잠깐 이리로 와 줘.”

“은새, 너는 참…….”

속도 좋다. 우리가 뒷말을 삼키고 미리내와 함께 그쪽으로 갔다.

그들은 경찰서 내부를 배경으로 포토타임을 가졌다. 이 사건이 어떻게 해결될지 지켜보던 형사들도 슬금슬금 모여들었다.

“하하하! 오해가 풀려서 다행입니다.”

“저는 유은새 헌터를 믿었습니다. 아, 이분들을 의심한 건 아니고요. 뭔가 착오가 있을 거라고 생각했습니다.”

형사들의 너스레에 은새가 웃으며 말했다.

“수사 잘 좀 부탁드릴게요.”

“네, 아무 걱정 하지 마십시오!”

형사들의 배웅을 받으며 은새는 친구들과 함께 경찰서를 나섰다.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이 우르르 달려들었다.

마이크 여러 대가 은새의 얼굴을 찌를 듯이 내밀어졌다. 그녀는 요령 좋게 적정거리를 만들었다.

“어떻게 됐습니까, 유은새 헌터! 혐의를 인정하십니까?”

“피해자들에게 보상을 어떻게 하실 생각입니까!”

은새를 무조건 가해자로 몰고 가는 기자들의 화법에 우리가 인상을 찌푸렸다. 은새가 차분히 대답했다.

“음……. 일단 피해자분들과 오해는 잘 풀었습니다. 저는 사건이 벌어진 그 시각 도천 그룹 창립 기념식에 참석 중이었습니다. 이는 공식 보도 자료로 확인하면 될 것입니다.”

헉. 기자들이 숨을 들이켰다. 야, 야. 진짜? 그럼 알리바이가 확실한 거잖아. 너는 왜 그런 것도 확인 안 했어!

기자들의 속삭임이 은새와 친구들의 귀에는 다 들렸다. 기자들이 곧 태세를 전환했다.

“그럼 피해자들이 거짓말을 한 것입니까?”

“피해자들에게 무고죄를 물으실 겁니까?”

“범인이 누구라고 생각하십니까!”

이번에는 피해자들을 몰아가는 분위기에 내내 침착했던 은새가 불쾌감을 드러냈다. 그녀는 한 자, 한 자 힘주어 말했다. 마치 새겨들으라는 듯이.

“그분들과는 원활하게 대화로 풀었습니다. 섣부른 추측으로 안 그래도 다친 피해자분들의 마음에 상처를 주지 않으셨으면 합니다. 하루빨리 범인이 잡히길 진심으로 기원합니다. 시민분들의 협조 부탁드리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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