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0화 – 눌린 호떡처럼 생긴 게
은새의 흑요석처럼 검은 눈동자가 순간 시린 빛을 띠었다. 소원대로 눈을 맞췄는데 최인호는 목이 선뜩해졌다.
‘뭐지?’
그는 손바닥으로 뒷덜미를 문지르며 태연한 척을 했다.
“이제 겨우 절 보는군요. 아닌 게 아니라 S급 헌터 유은새 양과는 단둘이 긴밀한 대화를 나누고 싶었습니다.”
“왜죠?”
“세계 유일의 몬스터 테이머. 헌터들도 애먹는 그 무시무시한 괴물들을 길들이고 부리는 분이시잖아요. 저는 그 희소성을 높게 평가합니다.”
은새의 눈썹이 올라갔다. 묘한 말이었다. 욕은 아닌데 왠지 모르게 불쾌하게 만드는.
그녀는 조금 더 들어 보기로 했다.
“사실 헌터들이 이 시대의 신흥 귀족이라고 불리는데 어불성설이죠. 기존 권력층을 무시하는 말이에요. 아무리 그들이 던전을 공략하고 세계 평화에 일조한다고 해도 이 나라를 지탱하는 건 결국 저희 기업가들이 아닙니까.”
최인호가 과장스러운 제스처를 취했다. 은새가 자신에게 집중하는 것처럼 보이자 신이 난 듯 떠들었다.
“극단적인 예로 저희가 헌터들을 고용해 주지 않으면 그들은 그저 ‘기이한 힘을 가진 살육 병기’가 되겠죠. 평화가 왔을 때를 상상해 볼까요? 던전도 없고 마수도 없는 세상 말입니다.”
“…….”
“그러면 저 같은 일반인들은 헌터들을 어떻게 생각할까요? 도축업자, 살인마. 그런 사람들과 같은 하늘 아래 살아간다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칩니다. 아, 유은새 양한테 하는 말은 아닙니다. 유은새 양은 어디까지나 예외예요.”
“어째서요? 저도 그 도축업자, 살인마인데요.”
실없는 논리에 은새가 날카롭게 대답했다. 최인호는 느물느물한 미소를 지었다.
“유은새 양은 돈으로 움직이지 않으니까요. 어차피 헌터들이야 돈을 좇는 족속들이고 돈을 위해서라면 뭐든지 하니까.”
“하.”
은새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뭔 소리를 하나 했더니.
은새는 최인호 같은 인간들을 자주 만나 보았다. 격변의 시대가 도래하고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그때는 헌터가 구세주로 불리기도 했지만 동시에 기피 대상이었다. 그들은 기이한 힘을 사용했고 괴물들을 손쉽게 쓸어 버렸으니까.
사회적 인프라가 무너진 상태에서 평범한 사람들에게 그들은 괴물들과 마찬가지로 공포의 대상이었다. 그에 더해 헌터 범죄율이 급증했다.
그러다 보니 당시 헌터는 마치 칼을 든 괴한이 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처럼 여겨졌다.
두려움은 ‘혐오’라는 잘못된 형태로 변질되었다. 헌터를 배척하고 무시하는 ‘헌터포비아’가 생겨났다.
그들은 상대적 박탈감을 느끼는 동시에 헌터들이 던전과 함께 나타난 변이종이라고 헐뜯었다. 그로 인해 헌터와 일반인들 사이에 갈등이 생겨났고 이것은 곧 사회 문제가 됐다.
나중에 시일이 지나 헌터들의 위상이 높아지고 체계가 잡히면서 헌터포비아는 점차 사라졌다. 적어도 겉으로 보기에는.
현재의 헌터들은 연예인과 같은 인기를 누렸고 없어서는 안 될 존재로 자리매김했다.
최인호를 보니 그때 그 헌터포비아들이 떠올랐다. 그는 헌터들을 무시했고, 돈만 주면 부릴 수 있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게다가 살육 병기라든가 도축업자, 살인마라는 멸칭까지. 아마 그건 그가 가진 배경 때문일 것이다.
K그룹을 모그룹으로 둔, K미디어의 대표니까.
‘우습네.’
은새는 빤히 그를 쳐다봤다. 그녀 역시 헌터인데, 헌터를 헐뜯어서 무슨 대답을 바란단 말인가.
자신만 예외라고 하면 자신이 고마워할 줄 알았나? 남을 후려치고 그녀를 치켜세워 주는 건 은새가 제일 싫어하는 화법이었다.
그녀의 기운이 날카로워지자 별이가 으르렁거렸다.
[뉴나, 이 사람 머예여? 치워두 대여?]
“안 돼, 별아.”
은새가 별의 둥근 머리를 쓰다듬었다. 별이 불만스러워했다.
[왜요? 뉴나도 화나짜나요.]
삐빗?
은새와 별이가 날카로운 기운을 뿜어내자 봄이 불안하게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방금 전까지 즐거웠는데 별이도 그렇고 은새도 이상했다.
핑거푸드 테이블 근처만 싸한 분위기가 감돌았다. 이를 눈치채지 못한 최인호가 말했다.
“사족이 길었네요. 어쨌든 이렇게 만난 것도 인연인데 저랑 식사 한번 하시죠.”
“사양하죠.”
“……네?”
망설임 없이 튀어나온 거절에 최인호가 귀를 의심했다. 이 나를 거절한다고?
은새가 얼굴에서 웃음기를 지웠다. 항상 웃는 낯이어서 몰랐는데 무표정한 그녀는 위압감이 넘쳤다.
은새와 던전을 도는 이들에게는 이 모습이 더 익숙했다. 그녀는 찔러도 바늘 하나 안 들어갈 것 같이 단호하게 말했다.
“상대방에 대한 존중이 없는 사람과는 겸상하지 말라고 돌아가신 부모님께 배워서요. 최인호 대표님과의 인연은 여기까지인 듯하네요.”
“유은새 양. 도천 그룹 한민혁 이사님과 친분이 있고, K그룹의 차남인 제 식사 제안을 거절한다고요?”
“네. 제가 대표님 같은 사람과 어떻게 어울려야 하는지 그런 예절은 배워 먹지 못해서.”
조금 전 그가 ‘던전 공략만 다녀서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하신 모양입니다.’라고 말한 것을 비꼬는 것이었다.
은새는 똑바로 그를 쳐다봤다. 유순했던 얼굴이 지금은 얼음장처럼 냉랭했다.
“최인호 대표님과의 자리가 그다지 즐거울 것 같지 않네요. 격이 맞는 다른 분을 알아보시죠.”
“이, 무슨, 유은새 양!”
자존심이 상한 최인호가 버럭 소리를 쳤다. 그가 손을 뻗어 은새의 어깨를 잡았다.
아니, 그럴 뻔했다.
탁!
“악!”
은새에게 손목이 붙잡힌 최인호가 비명을 질렀다. 은새 입장에서는 별 힘 들이지 않았는데 일반인에게는 치명적이었다.
고통스러워하는 그를 은새가 무감각하게 바라봤다.
“함부로 헌터의 몸에 손대지 말라고 주변에서 말해 주지 않던가요?”
“……으으! 당장 놓으세요! 헌터가 일반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몰라서 이러십니까?”
“알죠. 그런데 헌터 앞에서 헌터 흉을 보니 저는 최인호 대표님이 일부러 도발하신 줄 알았는데요.”
“아니, 그! 무슨 말도 안 되는!”
어느새 그들에게로 시선이 몰렸다. 최인호의 얼굴이 점점 새빨개졌다. 이런 굴욕은 처음이었다.
소란을 듣고 한재이가 다가왔다.
“무슨 일이야? 유은새 헌터.”
“한재이 본부장님! 유은새 양에게 당장 제 손을 놓으라고 하세요. 이런 공적인 자리에서 폭력 행사라니!”
은새는 그저 최인호의 손목을 잡고 있을 뿐이었다. 그다지 폭력 행사는 아닌데. 한재이가 어깨를 으쓱했다.
“글쎄요. 유은새 헌터는 제 아랫사람이 아니어서요.”
“네……? 하지만 주최 측 오너 중 한 사람으로서!”
“제 눈에는 최인호 대표가 엄살을 피우는 걸로 보이네요. 유은새 헌터는 그리 힘을 준 것 같지 않은데.”
그때 은새가 스르륵 손에서 힘을 풀었다. 풀려난 손목은 조금 벌게졌을 뿐 생채기 하나 없었다.
어디가 폭력 행사를 했다는 건지 의문스럽게 보는 한재이의 시선에 최인호가 당황하며 눈을 굴렸다.
소란이 커지자 주변에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뭐야? 저 사람 K미디어 최인호 대표 아니야? 왜 저러고 있어?”
“글쎄. 유은새 헌터와 말다툼이라도 한 거 아니야? 근데 두 사람, 아는 사이였던가?”
“아닐걸. 그런데 의외다. 무슨 얘기를 어떻게 했길래 유은새 헌터 표정이 저렇지?”
“그러게. 아까 유은새 헌터랑 얘기해 봤는데 되게 친절하던데.”
수군거리던 사람들이 은새와 맞서 있는 최인호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최인호 대표라면 그…… 맞지? 왜, 연예인들 스폰서 찌라시…….”
“아, 그 방송국 대표라는 직함으로 갑질…….”
“분명 최인호 대표가 유은새 헌터한테 실례되는 말을 했겠지.”
“맞아. 내가 저 사람을 좀 아는데…….”
이래서 사람은 평소 이미지가 중요했다. 최인호는 원래 그다지 주변의 평가가 좋지 않은 인물이었는지 온갖 말들이 튀어나왔다.
“지금 무슨 말들을 하는 겁니까! 유은새 헌터한테 호되게 당한 건 접니다!”
“최, 최 대표님 진정하세요.”
“대표님 여기서 이러시면…….”
수군거림을 들은 최인호가 길길이 날뛰었다. 그의 수행원들이 곤란해할 정도였다.
사람들의 이목이 더욱 집중되자 결국 수행원들이 최인호를 이끌고 파티장을 나섰다.
“절대 이 일을 그냥 넘어가지 않을 겁니다! 유은새 양! 한재이 본부장!”
수행원들에게 끌려 회장을 나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한재이가 혀를 찼다.
“나는 왜.”
“죄송해요, 끼어들게 해서.”
은새가 미안한 얼굴로 한재이에게 사과했다. 그는 머리를 살래살래 흔들었다.
“아니야, 분명 최 대표가 잘못했겠지. 우리야말로 미안해. 사업하다 보면 저런 인간하고도 알고 지내야 해서.”
“고충이 많으시겠네요.”
“알아줘서 고마워.”
우리와 친구들이 우르르 은새한테 몰려왔다. 멀리 떨어져 있었어도 그들은 뛰어난 기감으로 최인호와 은새의 대화를 전부 들었다.
우리와 친구들이 흉흉한 기세를 내뿜었다.
“은새야, 손목을 아주 비틀어 버리지 그랬어.”
“야, 그걸로 되겠냐? 화장실로 불러내서 세상의 쓴맛을 보여 줬어야지.”
“생긴 것도 눌린 호떡처럼 생긴 게…….”
“유하야, 호떡은 원래 눌렸어.”
“지금 그게 중요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