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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70)화 (70/190)

69화 - 너는 감이 좋은 편이지

정부는 우리뿐만 아니라 한 씨 일가를 다 쪼아 댔다. 은새와 인연이 깊은 그들이니 혹시 뭐라도 알까 싶어서였다.

하지만 도천 길드 S급들 사이에서도 쉬쉬하는 벨키오르와 별이의 정체를 친족이라고 하더라도 그들이 알 리 없었다.

우리가 심각한 얼굴을 했다.

“그래서 뭐라고 대답하셨어요?”

“뭘 뭐라고 대답해. 당연히 모른다고 했지. 그나저나 그 남자는 진짜 누구냐? 어느 나라 사람이야?”

“내부 비밀이에요.”

“이 아비한테도 비밀로 할 거야!”

짝!

한도준 회장이 우리의 등짝을 또 내리쳤다. 아까보다 아픈 느낌에 우리가 오만상을 구겼다.

“아, 아파요. 그만 때려요. 다 큰 아들을 왜 이렇게 못살게 굴어요.”

“못살게 굴기는. 이래서 아들놈은 키워 봐야 소용없다더니……. 너, 은새는 포기한 거냐?”

“무, 무슨. 이런 자리에서 그런 말을……!”

한도준 회장의 갑작스러운 말에 우리가 깜짝 놀라 주변을 살폈다. 빨개진 우리의 얼굴을 보고 한도준 회장이 새삼스럽다는 듯 말했다.

“네가 은새 좋아하는 건 세상 사람들이 다 알 거다. 은새 빼고.”

“아버지!”

우리가 당황해서 그의 입을 막으려 들었다. 한도준 회장이 눈을 부릅뜨고 ‘어허!’ 했다.

“어디 아비가 말하는데 버릇없이.”

“아버지가 먼저 이상한 말을 했잖아요.”

“에잉, 귀여운 맛이 없어. 그래서, 포기한 거야?”

우리가 은새와 친구들이 있는 쪽을 힐끔 보았다. 이쪽의 대화가 들린 것 같지는 않았다.

묘하게 기가 죽은 기색으로 우리가 질문했다.

“아버지가 보기에도 그분…… 아니, 그 사람이랑 은새 사이가 심상치 않아 보여요?”

“그야 애도 키우고 있다며. 그게 보통 호감으로 되는 일이냐?”

“그게 말하자면 긴데……. 아무튼 저 아직 포기 안 했어요. 아니, 안 할 거예요.”

“호오?”

하지만 그렇다고 지금 같은 관계를 깨고 싶은 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아랫입술을 지그시 깨물었다.

한도준 회장이 혀를 쯧쯧 찼다.

“사내놈이 이리 패기가 없어서야……. 너 인마, 젊을 때 불같은 사랑도 해 보고 깨지고 굴러야 사람 되는 거야. 혹시 너 어디 모자라냐?”

“아니거든요. 괜한 참견 마세요. 은새한테 친한 척도 하지 마시고요.”

“너보다 은새가 더 친딸 같아서 그런다, 왜. 너도 살갑게 굴어 보지 그러냐, 응?”

이후로도 한도준 회장의 잔소리는 이어졌다.

우리가 남자의 정체에 대해 말해 주지 않을 것 같자 이런 식으로 갈구는 것이었다.

우리의 표정에 진심으로 짜증이 스밀 때까지 계속하던 한도준 회장이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 본론으로 들어갔다.

“금성 그룹에서 상급 제조 포션의 수출을 도맡는다는구나. 그거 진짜 효과 있는 거냐?”

“……네. 그런 것 같더라고요.”

골드 스타 길드에서 만들어 낸 상급 제조 포션.

우리는 시범 단계의 제조 포션이 만들어지자마자 갖은 인맥을 동원해 손에 넣었다. 그리고 몸에 상처를 내어 몸소 실험해 봤다.

그 결과.

‘제조 포션은 진짜였어.’

시중에서 구할 수 있는 던전 드롭 포션과 섞어 놓으면 구분이 가지 않았다.

미묘한 차이는 있을지언정 S급처럼 감각이 예민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느끼지 못할 터였다.

우리가 미간을 찌푸렸다.

한도준 회장이 ‘크으.’ 하고 아쉽다는 얼굴을 했다.

“사촌이 땅을 사도 배가 아픈데 하물며 경쟁자가 잘나가는 꼴을 어떻게 봐? 제길, 엄 회장이 으스대는 걸 볼 생각에 벌써 위가 쓰리구만. 너는 투자를 그렇게 많이 받고 왜 성과를 못 냈냐? 백찬민 헌터도 하는 것을.”

“그게 좀 이상해요.”

“뭐가?”

우리가 묘한 표정으로 턱을 매만지며 말했다.

“중간 과정 없이 결과만 나온 느낌이에요. 마치…….”

제조법이 하늘에서 뚝 떨어진 것처럼.

우리가 그냥 하는 말 같지 않자 한도준 회장은 귀를 기울였다.

“너는 감이 좋은 편이지. 짐작 가는 건 있냐?”

“골드 스타 길드에 최근 새로 영입된 천창현이라는 헌터가 있어요. 그자가 의심스러워요.”

“어떤 의미로 의심스럽다는 거지?”

“연구팀도 아닌데 연구에 개입했다는 점. 그리고 골드 스타 길드 내에서 그가 보이는 행보.”

우리가 조사해 본바 천창현은 길드에 들어간 지 얼마 되지 않아 실세로 우뚝 올라섰다.

백찬민의 전폭적인 지원도 있었지만 천창현 본인이 무섭게 실권을 다잡아 가고 있었다.

노련하게, 저돌적으로. 골드 스타 이전에 길드 생활을 한 기록이 없는데 어떻게 그럴 수 있는지 궁금했다.

박도윤이 보고했던 대로 주시할 만한, 타고난 머리가 좋은 자였다.

“흐음.”

“뭣보다 지난번 중국에 갔을 때 청화 길드의 유길선 길드장이 포션 연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말했거든요. 그는 절대 확신 없이는 그런 말을 꺼내지 않아요. 그런데 골드 스타 길드의 발표가 있고 나서 청화 길드 측이 잠잠하잖아요.”

한도준 회장이 머리를 기울였다.

“흠…… 산업 스파이인가?”

“그게 제일 의심스럽기는 한데 천창현이 중국으로 출국했다는 기록이 없어서…….”

“어디까지나 가정이라는 얘기군.”

부자는 잠시 말이 없었다. 파티의 흥겨운 분위기 속에서 그들만 외딴섬처럼 심각했다.

“일단 알았다. 비서팀에 시켜 주시하라고 하마.”

“그러지 마세요. 눈치가 대단히 빠른 자예요. 저희가 알아서 할게요.”

“너는 인마, 아비가 도와준다는데 꼭 튕김질이냐?”

“헌터의 상태는 헌터여야죠. 어쨌든 포션 연구는 글렀고 다음 연구 항목이 바이오로지컬 영역인데…….”

어쩔 수 없는 부분은 뒤로하고 우리가 다른 쪽으로 화제를 돌렸다. 그와 한도준 회장은 상당히 오랜 시간 동안 긴 대화를 나누었다.

몰려들었던 사람들한테서 가까스로 해방된 은새와 친구들이 멀리서 그 모습을 보고 한마디씩 했다.

“길짱 아버지랑 오랜만에 만났다고 방언 터졌나 보네.”

“보고할 게 얼마나 많겠어.”

솔이 툴툴거리자 미리내가 웃으며 답했다. 인찬은 P제약 회사 딸내미의 손에 끌려갔고 유하는 익스트림 스포츠가 취미라는 사람들과 어울려 얘기하고 있었다.

한편 은새는 별과 봄이에게 간식을 먹이느라 바빴다. 다들 사교 활동에 바빠서 핑거푸드 테이블은 한산했다.

“별이, 봄이 맛있어?”

[네, 뉴나!]

삐삐!

“그래, 많이 먹어.”

별과 봄이 잘 먹는 모습에 은새가 흐뭇한 표정을 지으며 간식을 먹였다.

그때 어떤 남성이 은새에게 다가섰다. 안 그런 척, 친구들이 그쪽에 신경을 곤두세웠다.

“유은새 양.”

“네?”

은새는 봄이에게 단호박퓨레 카나페를 먹여 주다가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다. 아까 인사를 나눈 사람 중 한 명이었다.

파스텔 블루 패턴이 들어간 H사의 남색 정장. 그의 손목에는 R사의 명품 시계가 걸려 있었고 구두는 G사의 것이었다.

은새는 ‘보는 눈’이 없지는 않아서 단박에 그가 걸치고 있는 것들의 가치를 알아보았다. 과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그만큼 중요한 자리였고 ‘이쪽 세계’는 보이는 것이 중요했으니까.

그녀가 기억을 더듬어 남자의 이름을 말했다.

“그러니까…… 최인호 대표님?”

“정 없네요. 대표님이라는 딱딱한 호칭으로 부르고.”

“네?”

은새가 눈을 깜박였고 친구들은 기막혀했다. 대표를 대표라고 부르지 그럼 뭐라고 불러?

근데 저 자식 은새한테 작업 거는 거 아냐? 다른 사람도 아니고 유은새한테.

유난히 끈적끈적한 눈빛부터가 마음에 안 들었다. 은새가 뭐라고 대답할지 지켜보는데 그녀는 그들의 기대를 배반하지 않았다.

“어…… K미디어 최인호 대표님. 왜 부르셨어요?”

“…….”

최인호는 순간 말문이 막혔다. 그가 원하던 호칭이 아니었다. 그는 약간 자존심이 상했다.

“하, 하, 하. 유은새 양. 너무 어려워할 것 없어요. 저 그렇게 어려운 남자 아닙니다.”

“네…….”

“그렇게 딱딱한 호칭 말고 평범하고 부드러운 게 있지 않습니까.”

“음…….”

최인호의 말에 답을 하지 않은 은새가 나쵸를 치즈 소스에 찍어 별이의 입에 넣어 줬다. 바삭바삭 과자 부스러지는 소리가 공허하게 울렸다.

완벽한 무시였다.

입술을 말아 문 최인호가 테이블을 톡톡 두드렸다.

“유은새 양, 유은새 헌터? 제게 집중 좀 해 주시겠습니까?”

“말씀하세요. 듣고 있어요.”

“아니, 적어도 시선은 맞추셔야죠.”

“죄송해요. 아이들이 이곳 음식을 마음에 들어 해서요. 손이 두 개라도 부족하네요.”

그녀는 핑거푸드를 열심히 날라 아이들에게 먹였다. 간간이 ‘맛있어?’, ‘이거 또 가져다줄까?’ 하고 질문하기도 했다.

자신은 전혀 상관하지 않는 모습에 최인호의 얼굴이 점점 붉게 달아올랐다. 친구들은 폭소 직전이었다.

‘푸흐흡! 유은새 철벽 오진다.’

‘잘한다, 유은새~ 역시 내가 잘 키웠어.’

‘네가 키우긴 뭘 키워. 그런데 은새 저 남자가 작업 거는 거 눈치 못 챘나?’

‘아니. 알고 있을걸. 그래서 더 대충 대답하는 거고.’

그때 입가를 파르르 떤 최인호가 무리수를 던졌다.

“하, 던전 공략만 다녀서 이런 자리에서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지 배우지 못하신 모양입니다.”

대놓고 비아냥거리는 목소리에 은새의 고개가 서서히 돌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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