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8화 – 도천 그룹 창립 기념식
도천 그룹 회장이자 우리의 아버지인 한도준은 창립 기념식에 참석한 이들과 인사를 나누고 있었다. 그의 곁에는 장남인 한민혁과 차남 한재이가 자리했다.
그들은 그린 듯한 미소를 지으며 재계의 인물들을 상대했다. 특히 한도준 회장의 곁에 사람들이 많이 몰렸다.
조금 틈이 났을 때 한민혁과 한재이가 인파에서 떨어져 나왔다. 그들은 칵테일을 홀짝이며 대화를 나눴다.
“오늘 막내가 유은새 헌터를 데리고 온다고 했지?”
“엉. 도천 길드 S급들 다 온다는 모양.”
“우리 막내, 걔네한테 쥐어 뜯겼겠네.”
한민혁과 한재이가 낄낄거렸다. 은새만 불렀으나 다른 녀석들이 따라오리란 걸 예상하고 있었다.
S급들의 과보호가 어지간해야 말이지. 물론 친구 녀석들의 불평, 불만을 듣는 건 우리의 몫이다.
우리는 한국 1위 길드의 수장이었으나 그들 눈에는 귀여운 막내로 보일 뿐이었다.
“드래곤과 춘티엔더야오칭이라. 실제로 보면 어떤 느낌일까?”
“사진으로는 귀엽던데. 이야, 유은새 헌터가 큰일 했어. 덕분에 우리나라 위상이 엄청 올라갔잖아.”
“나는 죽겠어. 걸핏하면 중국이 트집 잡아서 공장 못 돌리게 한다고.”
한민혁이 머리를 부여잡았다. 중국 내에 생산 설비 공장이 있어서 이런 일이 종종 발생했다.
도천 길드의 일이지만 도천 그룹까지 영향을 받고 있었다. 그래도 아직은 버틸 만한 수준이었다.
드래곤과 춘티엔더야오칭을 생각하면 감수할 만한 시련이지.
애써 한숨을 내뱉는 한민혁의 어깨를 토닥이던 한재이가 씩 웃으며 입구를 고갯짓했다.
“저기, 왔다.”
도천 길드 S급들의 등장이었다. 예상치 못한 참석자들의 모습에 회장이 술렁였다.
한우리야 도천 그룹 셋째라지만 다른 S급들까지? 미디어를 통해 얼굴이 많이 알려져서 그들을 모르는 사람이 없었다.
한도준 회장이 껄껄 웃으며 우리와 친구들을 반겼다.
“어서 오게. 다들 오랜만이군.”
“안녕하세요, 우리 아버님.”
“안녕하세요~”
인사를 받은 한도준 회장이 한 명씩 얼굴을 보며 얘기를 건넸다.
“오, 최미리내 헌터. 부덕한 내 아들 때문에 늘 고생이 많아. 남궁솔 헌터는 활약 잘 보고 있네. 이번에 공개 경매에서 헬리오스의 창을 구매했다지? 왜?”
“네?! 그, 이능에만 의존하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하하하…….”
대전 미로 던전에서의 일을 떠올리고 솔이 민망해했다.
이능이 봉인당했을 경우를 대비해 마침 경매에 좋은 무기가 나왔길래 구매했는데 어떻게 아셨지.
유하가 끼어들었다.
“회장님은 그런 걸 다 아시네요?”
“김유하 헌터는 여전히 날카롭군. 나는 자네의 그런 점이 싫지 않아. 서인찬 헌터, 요새 불편한 점은 없나?”
“네. 살펴 주신 덕택에 잘 지내고 있습니다.”
과거, 은새를 노린 미국과 중국의 수마에서 인찬과 미리내를 구해 준 게 한도준 회장이었다.
인찬은 그때 입은 은혜를 잊지 않고 여태 고마워하고 있었다.
그 후로도 한도준 회장은 법률문제를 해결해 준다든지 종종 인찬에게 호의를 베풀었다.
인찬이 꾸벅 머리를 숙이자 한도준 회장은 기분 좋게 웃었다.
“그래. 또 도움이 필요하면 언제든 말하게.”
그의 시선이 마지막으로 은새에게 닿았다. 미소 띤 얼굴이지만 언뜻 속을 알 수 없는 기색이 스쳐 지나갔다.
“유은새 헌터.”
“네. 안녕하셨어요?”
한도준 회장이 돌연 근엄한 표정을 지우고 친근한 낯을 했다. 누가 보면 친손녀딸을 만났다고 착각할 법했다.
“왜 연락 자주 안 하고. 응? 전에는 본가에도 자주 들르더니.”
“하하, 죄송해요.”
“아버지, 은새 부담스럽게 왜 그래요.”
우리가 은새 앞을 가로막았다. 단박에 한도준 회장의 얼굴이 흉흉해졌다.
“너도 인마, 불러야지만 얼굴을 비춰? 고얀 놈. 네가 나보다 바빠?”
“아니, 저도 이제 한 길드의 수장이라고요.”
“오냐, 이제 다 컸다 이거지? 막내면 막내답게 살가운 구석이 있어야지!”
“저에게도 사회적 체면이라는 게 있어요.”
“실없는 소리……. 잘나간다고 이제 가족들은 나 몰라라 한다 이거야?”
“제가 언제 나 몰라라 했어요.”
한도준 회장과 우리의 공방을 은새와 친구들은 즐겁게 지켜봤다. 두 사람이 만나면 늘 하는 대화였다.
한도준 회장에게 쪼이는 우리를 보고 낄낄거리던 한민혁과 한재이가 은새와 친구들에게 다가왔다.
“다들 오랜만.”
“얼굴 좋아 보이네~”
“한민혁 이사님, 한재이 본부장님. 기사 챙겨 보고 있어요. 이번에 던전 부산물을 이용한 식품 관련 사업에서 큰 성과를 얻으셨다면서요?”
두 사람을 반갑게 맞으며 미리내가 말했다. 한민혁이 너스레를 떨었다.
“이야, 영광인데? 역시 미리내야. 소식도 빠르지. 개발팀 성과지 우리가 뭐 한 게 있나.”
“우리도 도천 길드 소식지는 따로 챙겨 봐. 한우리 저게 제대로 하고 있나……. 부길드장이 어련히 알아서 잘 컨트롤하겠지만.”
“우리도 이제 제법 길드장 티가 나요. 걱정하지 않으셔도 될 것 같아요.”
“걱정은 무슨. 오, 이쪽이…….”
한민혁과 한재이의 시선이 은새에게로 향했다. 정확히는 그녀가 안고 있는 아이들에게로.
“드래곤이랑 춘티엔더야오칭?”
“이렇게 작아?”
살아 있는 마수를 가까이에서 볼 일이 거의 없는 그들이 눈동자를 반짝였다. 낯선 인간이 쳐다보자 별이 불편해했고 봄은 좋아했다.
우리와 티격태격하던 한도준 회장도 슬쩍 관심을 기울였다. 은새가 아이들을 부드럽게 다독였다.
“별이랑 봄이, 어른들께 인사하자.”
[……안뇽하세여.]
삐빗!
별은 어차피 전음이라 그들에게는 들리지 않을 테지만 은새가 시켰으니 대강 인사하는 척을 했고 봄은 해맑게 꼬리를 흔들었다.
은새의 품에서 벗어난 봄이가 한도준 회장과 한민혁, 한재이의 냄새를 킁킁 맡았다.
좋아! 보글거리는 거품 냄새가 나!
봄이가 만들어 낸 색색의 꽃잎이 그들 머리 위로 소복이 떨어졌다. 한도준 회장과 한 씨 형제는 놀란 표정을 했다.
“이게 춘티엔더야오칭의 능력…….”
“봄이? 이름이 봄이야? 봄이는 낯을 안 가리는구나.”
“분홍색 털 귀여워! 복슬복슬해~”
봄이는 한민혁의 어깨에 내려앉아 그의 얼굴에 코를 비볐다.
깨물어 주고 싶을 만큼 귀여운 모습에 한도준 회장과 한재이가 부러워 죽으려고 했다. 한민혁이 으스댔다.
“봄이는 내가 마음에 드나 봐.”
“분하다……!”
봄이가 한민혁에게 붙어 있는 걸 보고 한재이는 타깃을 별이로 바꿨다. 은새의 품에 안겨 있는 별이에게 그가 살며시 다가갔다.
“별이 안녕? 우리 별이 귀엽네~”
눈웃음 지으며 사근사근하게 말을 거는 그를 보고 우리가 질색했다.
“별이 너무 귀여워서 형이 안아 보고 싶은데. 별이 형한테 한번 와 볼래?”
“형은 무슨 아저씨지. 양심 없네.”
“닥쳐 줄래, 막내야.”
우리의 지적을 무시하고 별에게 활짝 웃어 주며 손을 뻗었지만 별은 한재이에게 관심이 없었다. 조금 들어 주는 척하다가 자꾸 귀찮게 하자 고개를 홱 돌려 버렸다.
그 모습에 한재이가 좌절했다. 봄을 안고 있던 한민혁이 얄밉게 비웃었다.
“안됐네, 한재이.”
“이럴 수가……. 내가 마수들한테 인기가 없다니.”
시무룩해하는 한재이의 옆에서 한민혁이 약 올렸다.
봄이가 능력을 사용했을 때부터 이쪽을 쳐다보고 있던 사람들이 슬금슬금 다가왔다. 그들은 S급 헌터들과 친해질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재계 유수 기업들의 자제들이 은새와 친구들에게 악수를 청했다.
“어머, 안녕하세요. 도천 길드 분들이시죠? 저는 M전자 오윤식 회장님의 첫째 딸 오인아라고 해요.”
“남궁솔 헌터, 팬입니다! T호텔 경영전략담당 상무인 이백호라고 합니다.”
“최미리내 헌터, 학회에 제출한 던전 내 수송 설비 설치와 적합적 응용 탐색에 관한 논문을 읽었는데요. 아, 저는 O중공업 김서일 전무라고 해요. 여기 명함입니다.”
여러 사람이 몰려오는 바람에 은새와 친구들은 잠시간 그들의 말 상대가 되어 주어야 했다.
계기야 어쨌든 이왕 파티에 참석한 거, 재계 사람들과 인맥을 다져 둬서 나쁠 건 없었다.
게다가 이곳에 모인 사람들은 도천 친화적인 기업인들뿐이었으니.
한도준 회장에게 붙잡힌 우리가 친구들을 안타까운 눈길로 바라봤다.
길드 운영으로 정치적인 화법에 익숙한 미리내나 뭐든지 유야무야 넘기는 유하가 아니고서는 저런 거 성미에 안 맞을 텐데.
그런 우리를 힐끔 본 한도준 회장이 말했다.
“왜. 저들이 친구들을 잡아먹기라도 할 것 같으냐?”
“그러게, 저희는 도천 그룹 소속도 아닌데 왜 부르셨어요.”
“길드 이름에 ‘도천’을 달아 놓고 말은 잘한다. 그럴 거면 독립해, 이놈아!”
“알겠어요. 경영팀에 말해서 기가 막힌 이름으로 뽑을 거예요. 서운해하지 마세요.”
“이놈이 내뱉으면 다 말인 줄 아나. 예끼! 불효자 같으니.”
한도준 회장이 우리의 등짝을 내려쳤다. S급의 신체에는 간지러운 수준이었으나 우리는 아파 죽는다는 시늉을 했다.
집안의 막내답게 입이 댓 발 튀어나와 투덜거리기도 했다.
한심한 모습에 혀를 차던 한도준 회장이 잠시 주변을 둘러보고 목소리를 낮췄다.
“청와대에서 유은새 헌터와 친한 그 퍼런 장발의 남자가 누구냐고 자꾸 묻는다. 외국인이면 이주 권유라도 할 모양인데.”
“…….”
“드래곤은 어느 던전에서 테이밍했냐고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