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68)화 (68/190)

67화 - 냄새가 달라졌군

‘한우리, 이 불쌍한 놈.’

유하가 한창 서류 삼매경에 빠져 있을 우리에게 심심한 위로를 보냈다. 너 인마, 그러게 아끼고 보듬는 것도 정도껏 했어야지.

묘한 표정이 된 유하에게 은새가 질문했다.

“왜 그래?”

“아니야. 이유야 어쨌든 결론적으로 강해지고 싶다는 거잖아?”

“응. 방법이 있을까?”

“너나 나나 이미 S급인 주제에 더 높은 곳에 올라가겠다고 발버둥 치는 게 참……. 남들 들으면 욕하겠다.”

유하는 헛웃음을 지었다. 자신도 그렇고, 미리내나 솔, 우리, 인찬, 이제는 은새까지.

어쩔 수 없지. 머리를 쓸어올리며 유하가 말했다.

“아직은 몰라. 그래도 우리도 같은 고민을 안고 있으니까 아까처럼 몸 혹사시키지 마.”

“알겠어…….”

은새가 시무룩해졌다. 자신도 의욕이 앞서서 무모했다는 걸 인정하는 바였다.

띠링!

그때 은새 핸드폰에 알림이 울렸다. 별과 봄을 돌봐 주고 있던 헌터가 아이들이 깨서 그녀를 찾는다고 전해 왔다.

은새가 핸드폰을 들고 다급히 자리에서 일어났다.

“길드로 돌아가야겠다. 별이랑 봄이가 기다린대.”

“그래. 가자.”

식당을 나선 유하가 차에 시동을 걸었다. 조수석에 올라탄 은새가 마침 생각난 것을 말했다.

“참, 유하야. 너 도천 그룹 창립 기념식에 참석해?”

“아니? 너 거기 가?”

유하가 놀라서 되물었다. 은새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우리가 부탁해서. 우리네 아버지랑 형님들이 길드 세울 때 도움 많이 주셨잖아.”

“허. 그건 본인들 돈 벌려고 그런 거고.”

낚였네. 유하가 미간을 찌푸렸다.

은새가 창립 기념식에 참석한다는 소식이 알려지면 미리내와 솔도 간다고 할 테고, 자신과 인찬도 끌려갈 것이다.

‘한우리 이 자식, 알면서 은새부터 낚아?’

기업인들이 모이는 자리에 도천 그룹이랑은 상관도 없는 그들이 가서 뭘 하겠는가. 얼굴마담이나 하겠지.

유하는 속이 부글부글 끓었다. 그것도 모르고 은새는 해맑게 웃었다.

“예전에 나나 친구들 힘들 때 많이 신경 써 주셨잖아.”

“그야 S급은 중요한 자산이니까…….”

“유하 너는 늘 삐딱하게 생각하는 게 문제야.”

“내가 삐딱한 게 아니라 다들 그렇게 생각한다고.”

은새가 문제아를 보는 시선으로 그를 쳐다봤다. 유하는 속 시원히 말도 못 하고 가슴만 쳤다.

길드로 돌아오자 은새만 기다리고 있던 별과 봄이 포르르 날아와 덥석 안겼다.

[뉴나! 어디 갔다 왔어요.]

삐빗!

“미안, 미안. 유하랑 식사하고 왔어. 이제 집으로 돌아갈까?”

[네!]

은새가 품에 머리를 비벼 오는 별과 봄을 웃으며 꼭 안았다.

그들은 도다리를 타고 강원도 집으로 돌아왔다. 현관에서부터 요란한 인사 행렬이 이어졌다.

“다녀왔습니다, 벨키오르 님!”

“다녀와쪄요.”

삐삐!

거실에 있던 벨키오르가 슥 나와서 그들의 면면을 살폈다.

“어서 와라.”

“오늘은 좀 늦었죠?”

은새가 웃으며 다가가자 벨키오르의 표정이 미미하게 변했다.

“냄새가 달라졌군.”

“네? 아…… 길드에서 씻고 와서 그런가?”

은새가 자신의 냄새를 맡았다. 훈련실 샤워실에 비치된 샴푸와 바디워시가 원래 그녀가 쓰던 것과 달라 벨키오르가 눈치챈 모양이었다.

그녀가 멋쩍은 얼굴을 했다.

“훈련을 좀 했거든요.”

“어째서?”

“음, 향상심을 기르기 위해…….”

유하에게 한 것처럼 벨키오르에게 터놓고 얘기할 수 없었기에 은새가 어색하게 웃으며 얼버무렸다.

벨키오르는 은새가 말하지 않은 게 있다는 걸 어렴풋이 짐작했으나 묻지 않았다. 단지 그녀의 지친 기색이 신경 쓰일 따름이었다.

마수들의 식사를 챙겨 준 뒤 그들도 저녁을 먹었다. 은새의 상태를 살핀 벨키오르가 오늘은 한층 더 신경 써서 음식을 만들었다.

벨키오르가 차려 준 음식을 행복하게 먹고 있던 은새가 ‘참.’ 하고 말했다.

“저 행사에 초대받았어요. 별이랑 봄이도요.”

“그런가.”

“벨키오르 님도 가실래요?”

은새의 물음에 벨키오르가 뜸 들이며 입안의 음식물을 삼켰다.

“다른 마수들도 데려가나?”

“아니요. 헌터가 아닌 일반인들이 모이는 자리라 그러긴 힘들 것 같아요. 그게, 우리의 아버지와 형님들이 오시거든요. 그룹 창립 기념식이에요.”

“그러면 위험하지는 않겠군.”

위험 요소가 적다는 걸 알자마자 벨키오르는 거절의 뜻을 내비쳤다.

전에 헌터의 밤에 그가 따라갔던 건 이능을 가진 이들이 모인 자리라 충돌이 일어났을 경우를 우려했기 때문이었다.

“나는 됐으니 잘 다녀와라.”

“에이, 아쉽다.”

젓가락을 입에 문 은새의 눈썹이 아래로 휘어졌다. 그녀는 진심으로 아쉬워했다. 그 반응에 벨키오르는 궁금해졌다.

“뭐가 아쉽지?”

“기회가 되면 벨키오르 님께 이 세계에 대해 많은 걸 알려 드리고 싶거든요. 분명 볼거리가 많을 텐데.”

그 말을 하는 은새는 기대감으로 뺨이 불그스름했다. 벨키오르의 눈이 일순 가늘어졌다가 원래대로 돌아왔다.

외부 세계라고 하더라도 딱히 벨키오르의 흥미를 일으킬 만한 것은 없었다. 문화와 환경, 기술 발전 정도가 달라도 애초에 벨키오르는 인간 세계에 관심이 없었다.

게다가 인간의 역사는 대개 비슷하게 흘러간다. 멸망과 부흥, 전쟁과 평화. 벨키오르는 수천 년을 살아오면서 그 변화를 무심히 지켜보았다.

그래서 굳이 이 세계에 대해 알지 않아도 된다고 말하려 했지만 기대감으로 물든 은새의 뺨과 눈빛 때문에 벨키오르는 입을 다물었다.

그런 말을 꺼내면 그녀가 실망할 게 뻔히 보였다. 속으로 한숨을 내쉰 그가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다음에.”

“네. 다음에, 꼭.”

은새가 젓가락을 쥐고 희맑게 웃었다.

***

도천 그룹 창립 기념식 날.

기념식에 참석하기 전 은새가 길드에 도착했다. 오늘도 은새 전담 코디 팀장인 여나희가 출동했다.

여나희는 메이크업 브러시를 손가락에 잔뜩 낀 채로 은새에게 잔소리했다.

“유은새 헌터, 드레스 입기 전에 과자 드시지 마세요!”

“응, 미안.”

은새가 민망한 얼굴로 과자 껍질을 슬그머니 내려놓았다. 그러다 곧 이상하단 눈빛을 했다.

‘어라, 예전에는 간식 같은 거 잘 안 먹었는데.’

그새 입맛이 바뀌었나? 아이들과 함께 지내다 보니 단것에 길든 그녀였다.

은새의 눈빛을 오해한 여나희가 과자를 압수했다.

“그렇게 쳐다봐도 안 돼요.”

“안 먹어, 안 먹어.”

그녀는 아랫입술을 불퉁하게 내밀었다. 과자를 뺏겼기 때문은 아니고 원인을 찾다 보니 벨키오르한테 생각이 미쳐서였다.

‘이게 다 벨키오르 님이 자꾸 맛있는 걸 먹여서 그래.’

벨키오르가 해 주는 식사, 디저트. 하나같이 안 맛있는 게 없었다.

가끔 조금은 생소한 음식이 나와도 먹어 보면 또 이국적인 요리를 먹는 것 같아 즐거웠다.

그러다 보니 식사 시간이 기다려지고.

예전에는 밥을 잘 먹지 않아 꼭 남기곤 했었는데 요즘에는 그릇을 싹싹 비웠다.

‘나 좀 살찌지 않았나?’

거울로 얼굴을 보던 은새가 허리를 만지작거렸다. 불안감이 엄습했다. 그녀가 다급하게 여나희에게 물었다.

“나희야, 나 살쪘어?”

“네? 으으음……. 아뇨, 그런 것 같지는 않은데요? 왜요, 체중 느셨어요?”

“몰라. 체중계에 안 올라간 지 오래돼서.”

여나희가 속눈썹을 파르르 떨었다.

“부러운 사람…….”

생각해 보니 S급 헌터는 활동량이 많고 신진대사도 활발해서 살이 찔 리 없었다. 게다가 다들 타고난 것처럼 예쁘고 잘생겼지.

그건 은새도 마찬가지였다. 현실을 자각한 여나희는 자기 할 일이나 하기로 했다.

“자, 시간 없어요. 눈 감으세요.”

“응.”

화장품을 묻힌 브러시가 살살 은새의 얼굴을 오갔다. 시간이 지날수록 은새의 얼굴에 색감이 더해 갔다.

여나희의 빠른 손놀림으로 메이크업이 끝나고, 코디 팀원들의 도움을 받아 의상을 갈아입고 나온 은새가 거울 앞에 섰다.

파스텔블루 색상의 드레스와 하나로 땋은 검은색 머리카락, 목과 귀를 장식한 물방울 다이아몬드. 은은한 빛이 감도는 은색 구두.

눈가는 그윽하게 음영이 졌고 입술은 분홍빛으로 사랑스럽게 반짝였다.

“좋아요, 완벽해!”

“유은새 헌터, 너무 예뻐요.”

여나희와 코디팀의 얼굴에 만족스러움이 어렸다. 자신의 모습을 확인한 은새도 고개를 끄덕이며 그들에게 인사했다.

“다들 고마워. 수고했어.”

조금 뒤 기다렸다는 듯이 노크 소리가 들렸다. 한껏 단장한 미리내와 솔, 우리, 유하, 인찬이 들어왔다.

일부러 맞춘 듯 그들 모두 의상 한 군데에 파스텔블루 컬러를 배치했다. 은새가 친구들을 보고 방긋 웃었다.

“은새야. 다 했어?”

“응, 방금 끝났어.”

“아~ 유은새 왜 이렇게 오래 걸린 거야. 네가 꼴찌야, 꼴찌.”

“미안. 미리내랑 솔이 오늘 예쁘네.”

“고마워. 너도 잘 어울린다.”

미리내가 은새의 드레스를 칭찬했다. 그런 그녀도 소매가 레이스로 장식된 머메이드 드레스를 입고 있었다.

은새가 고개를 돌렸다가 어딘가 넋을 놓고 있는 우리를 발견했다. 그녀의 눈동자에 의아한 빛이 어렸다.

“우리야, 왜 그래? 괜찮아?”

“어, 어…… 은새야. 정말 예쁘다.”

멍하니 은새를 바라보던 우리가 깜짝 놀라며 얼굴을 붉혔다.

“그거 아까 우리가 말했거든?”

눈에 보이는 우리의 반응에 솔이 태클을 걸었다. 우리가 발끈했다.

“잘 어울린다고 했지, 예쁘다고는 안 했잖아.”

“그게 그 말이지!”

“그게 어떻게 같냐?”

질리지도 않는지 우리와 솔이 으르렁댔다. 그런 두 사람을 보고 인찬과 유하가 고개를 저었다.

“그래, 그래. 말싸움은 그만하고, 이제 이동하자.”

지켜보던 미리내가 일행을 이끌었다. 은새도 옆방에서 박도윤 팀과 같이 있던 별과 봄이를 챙겨 나왔다.

아이들은 목에 파스텔블루 컬러의 예쁜 레이스 리본을 메고 있었다.

“가자.”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