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5화 – 강해지고 싶어
길드장실로 온 은새는 우리가 한 말을 듣고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의외의 제안을 들은 탓이었다.
“나더러 도천 그룹 창립식에 참석하라고?”
“어. 아버지랑 형들이…… 부탁해서.”
우리가 머리를 쥐어뜯으며 곤란한 낯을 했다. 은새에게 이런 말을 하는 게 미안해 죽겠다는 표정이었다.
그가 은새 옆에 나란히 앉은 별과 봄에게 힐끗 시선을 주며 그녀의 눈치를 봤다.
“그, 별이랑 봄이랑 같이.”
“아.”
우리의 시선을 알아챈 은새가 깨달았다. 드래곤과 춘티엔더야오칭을 직접 보고 싶으신 거구나.
대충 상황을 이해한 은새가 선뜻 고개를 끄덕였다.
“길드가 자리 잡을 수 있게 많은 도움을 주신 분들이지. 개인적으로 신세도 졌고. 알았어, 갈게.”
“정말 괜찮겠어? 불편하면 거절해도 돼.”
“아니야. 다른 사람도 아니고 너희 아버님과 형님들인걸.”
“하아, 진짜 미안해. 다들 나이 먹고 왜 주책인지…….”
우리가 한숨을 쉬었다. 은새가 간다면 솔과 미리내도 따라갈 테고, 결국 도천의 S급들이 전부 움직일 것이다.
‘이걸 노렸겠지.’
우리는 이가 갈렸다. 막내라고 형들과 아버지의 뜻대로 끌려다닌 게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힘없는 게 죄지, 죄야.’
우리는 자신의 상황이 씁쓸했다. 무엇보다 은새의 앞에서 체면을 차릴 수 없는 게 더 그를 괴롭게 했다.
우리의 표정이 쉽게 풀리지 않는 것을 보고 은새가 분위기를 전환하려 가볍게 손을 저었다.
“진짜 괜찮아. 너무 속 끓이지 마.”
“후…… 미안해. 의상이랑 헤어는 우리 측에서 준비할게. 너는 몸만 와.”
“원래 그렇게 했으면서 뭘. 아, 우리 별이랑 봄이도 예쁘게 단장할 수 있을까?”
은새가 간식을 먹는 아이들을 돌아보며 말했다. 우리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울 건 없었다.
“당연하지. 별이와 봄이 것도 준비할게.”
“좋다. 별아, 봄아. 그날 같이 예쁘게 꾸미자.”
[또 파티 가는 거예요? 뉴나랑 같이 가면 조아요!]
삐빗!
일전에 도천 길드가 주최했던 파티에서의 기억이 좋았는지 별과 봄이 한껏 눈을 빛내며 좋아했다. 은새가 기뻐하는 아이들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훈훈해진 분위기에 우리의 표정도 한결 나아졌다. 은새와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던 우리가 생각났다는 듯 말했다.
“아, 은새야. 요새 하급 헌터들 사이에서 너에 관한 이상한 소문이 돌더라?”
“무슨 소문?”
“네가 갑질한다는 소문.”
“엥? 갑질?”
은새가 그게 무슨 소리냐는 듯 되물었다. 그녀의 성격상 그런 짓을 하는 건 불가능했다.
우리도 말도 안 된다고 생각했기에 여과 없이 전달했다.
“너 근래 종로에 간 적 있어?”
“아니. 알잖아, 나 집, 길드, 집, 길드인 거.”
“그렇지? 그런데 종로에서 네 목격담이 떴는데 사인해 달라고 다가온 헌터들한테 욕하고 소리쳤대.”
“내가?”
은새는 전혀 모르겠다는 표정을 지었다. 일단 종로에 간 적도 없었고 그녀는 사인 요청을 거절한 일도 없었다.
“그리고 S호텔에 들어가서 내가 누군지 모르냐고 가장 좋은 방을 달라고 그랬대. 그건 어렵지 않은데, 무리하게 디씨를 해 달라고 했나 봐.”
“나는 마수들 먹을 고기 가격도 깎아 본 적 없어.”
한 달에 들어가는 마수들 고깃값만 해도 몇 백이 깨졌다. 하도 많이 사서 덤을 받을지언정 가격을 깎아 본 적은 단 한 번도 없었다.
“알아. 공식 입장 낼 정도는 아니라서 그냥 뒀는데 일단 알고 있어.”
“응. 별일이네.”
S급 헌터로서 온갖 소문을 달고 다니는 그녀였기에 이번에도 그런 게 있구나, 하고 넘어갔다. 배가 부른 아이들이 끔뻑끔뻑 졸자 은새는 별과 봄을 안고 자리에서 일어났다.
“빈 사무실에서 애들 좀 재워야겠다. 나가 볼게. 할 말 있으면 문자 해, 우리야.”
“그래.”
조금 더 대화하고 싶은데. 우리는 오랜만에 가진 은새와의 시간이 즐거웠다.
그녀를 잡고 싶었지만 뒷말을 꺼내지 못한 그는 아쉬운 얼굴로 은새를 배웅했다.
“참, 훈련실 비었지?”
“훈련하게? 어쩐 일로?”
우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마수들과 함께가 아니면 개인 훈련은 잘 하지 않는 은새였다.
우리의 의아한 시선에 은새가 순간적으로 묘한 표정을 지었다.
“좀, 그래야 할 것 같아서.”
별과 봄을 안고 있는 은새의 팔에 힘이 살짝 들어갔다. 별다른 이유를 꺼내지 않는 그녀를 보고 우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늘 쓰던 훈련실로 가. 길드원이 몇 명 있긴 할 텐데 꽉 차진 않았을 거야.”
“알았어.”
우리의 말을 듣고 은새가 길드장실을 나왔다. 낮잠에 든 별과 봄을 길드 소속 헌터에게 맡기고 은새는 훈련실로 갔다.
5층에 위치한 실전 훈련실. 이곳은 시뮬레이터로 가상 공간을 만들어 헌터, 혹은 마수와 대련할 수 있게 만든 시설이었다.
길드 소속 A급 이상만 이용할 수 있게 분리된 장소이기에 훈련실은 한적했다. 먼저 와 있던 이들이 은새와 시선이 마주치자 흠칫 놀라며 눈인사를 했다.
“유은새 헌터다.”
“마수들 없이 혼자서 오신 건가?”
“신기하네. 다른 S급도 안 보이고.”
길드원들이 은새를 보고 수군거렸다. 그녀가 홀로 훈련실을 찾은 게 의아했다.
웅성거리는 길드원들에게 은새가 웃음으로 화답하고 자리를 잡고 섰다. 시뮬레이터를 가동하고 잠시 기다리니 생체 인식을 마친 기계가 안내음을 흘렸다.
[S급 헌터 유은새 님, 훈련 난이도를 설정하시겠습니까?]
“음, 28단계부터 해 볼까?”
시뮬레이터는 30단계까지 있었다. 난도를 세부적으로 조절할 수 있는 게 이곳의 좋은 점이었다.
28단계는 S급 던전에 비견됐다. 단, 1인이 공략할 수 있게 출몰하는 마수의 종류와 수가 조절되었다.
[훈련을 시작합니다.]
시뮬레이터의 난도가 설정되고 안내 멘트가 끝나기 무섭게 마수들이 쏟아졌다. 은새는 베일 카라스의 봉을 들고 마수들 사이를 종횡무진으로 움직이며 날아다녔다.
크르르르!
마수가 이글거리는 불길을 내뿜었다. 훌쩍 뛰어오른 은새가 마수의 뒤편에 착지해 스킬, ‘나 잡아 봐라’를 발동했다. 은새의 움직임에 점차 가속도가 붙었다.
은새가 잡힐 듯 잡히지 않자, 마수가 사방으로 불꽃을 방출했다.
“하!”
스킬, ‘임전무퇴’로 인해 순간적으로 응축된 힘이 베일 카라스의 봉에 머물렀다가 폭발했다. 은새가 휘두른 봉에 맞은 마수가 형체를 알아볼 수 없게 넝마가 되었다.
끼꺄꺅!
다음은 박쥐 마수였다. 무덤살이흡혈박쥐로 불리는 마수는 초음파 공격을 했다. 그러나 은새의 상태 이상 저항 스킬에 가로막혔다.
은새가 베일 카라스의 봉에 이능을 모아 하늘로 던졌다. 날카롭게 벼려진 이능이 마수의 날개를 찢었다.
하늘을 날던 마수가 뚝 떨어졌다. 마수는 바닥을 기어 은새에게 덤벼들었다.
날카로운 이빨이 은새의 팔에 상처를 냈다. 피를 본 마수가 흥분했다.
하지만 은새는 당황하지 않았다. 마침 접근하는 다른 마수를 이용해 무덤살이흡혈박쥐를 처리했다.
그런 식으로 은새는 몰려드는 마수를 하나씩, 혹은 동시에 여럿을 박살 냈다. 땀방울이 뚝뚝 떨어졌다.
‘벨키오르 님은 강해.’
마수를 발차기로 날려 버리며 은새가 생각했다. 대전 미로 던전에서 벨키오르와 함께 제물 스테이지에 남았을 때, 그녀는 그의 진짜 힘을 확인했다.
순간적으로 시스템이 에러가 날 정도로 강한 힘이 휘몰아쳤다. 파도처럼 넘실거리는 금빛 마력에 마수들이 맥없이 썰려 나갔고 은새는 넋 놓고 구경할 수밖에 없었다.
은새가 이를 악물었다.
‘강해지고 싶어.’
퍼억!
베일 카라스의 봉에 맞은 마수가 무참히 바닥을 나뒹굴었다.
“헉, 헉…….”
은새는 흘러내리는 땀을 손등으로 닦았다. 친구들이 벨키오르에게 자극받았을 때는 그러려니 했다.
하지만 이제 와 이런 생각이 드는 건 그녀의 마음이 변했기 때문이었다.
‘벨키오르 님한테 도움이 되고 싶어.’
대전 던전에서 벨키오르의 힘을 보고 자신이 많이 부족하다는 것을 깨달은 그녀였다. 오랜만에 느껴 본 무력감.
은새는 단순히 벨키오르의 보호를 받기만 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옆에 나란히 서고 싶었다.
물론, 현실적으로 어렵다는 건 알았다. 인간인 자신이 감히 드래곤을 넘어선다는 생각은 하지 않았다. 어린 별이마저도 그렇게 강한데.
이건 은새의 욕심이었다. 벨키오르의 옆에 서고 싶은 욕심. 어떻게 해야 강해질 수 있을까.
삐빅!
[S급 헌터 유은새 님, 28단계 훈련을 성공적으로 마치셨습니다.]
“곧바로 29단계 필드 전개!”
은새는 잡념을 없애기 위해 쉬지 않고 움직였다. 체력이 절반 이하로 떨어졌지만 은새는 멈추지 않았다.
마지막 30단계. 마수 한 마리, 한 마리가 상대하기 까다로웠다.
그 숫자도 만만치 않았기에 은새의 움직임이 점점 더뎌 갔다. 절반 정도의 마수를 해치웠을 때, 은새의 앞에 도저히 혼자서는 공략할 수 없는 적이 나타났다.
“하아…….”
땀을 뚝뚝 흘리며 은새가 베일 카라스의 봉을 들었다. 그녀가 발을 굴러 마수에게 날아가려고 할 때.
“유은새, 너 왜 몸을 혹사시키고 있냐?”
유하가 그녀 뒤에 서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