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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64)화 (64/190)

63화 – 조금 단것들이 좋겠군

벨키오르가 도착한 곳은 은새의 집 뒤뜰이었다.

“어, 오, 오셨습니까?”

미니 세계수 옆에서 쉬고 있던 서호랑이 벨키오르를 발견하고 어정쩡하게 인사했다.

세계수의 기운 때문인지 종종 서호랑이나 다른 헌터들이 미니 세계수 옆에서 쉬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어느새 세계수 곁은 헌터들의 쉼터가 되었다.

벨키오르가 무심히 질문했다.

“그녀는. 어디 있지?”

“집 안에 계십니다!”

누구라고 말하지 않아도 그가 은새를 찾는다는 걸 안 서호랑이 빠릿빠릿하게 대답했다. 대전 미로 던전에서 벨키오르의 위용을 확인한 그는 바짝 군기가 들었다.

그가 유령의 집 스테이지에서 마수들을 도륙했던 장면이 아직도 잊히지 않았다. 절대 까불지 말아야지.

동시에 존경심도 들었다. 마법사가 저 정도 경지에 이르려면 얼마나 뼈를 깎는 훈련을 했을까?

눈을 반짝거리는 서호랑을 이상하게 곁눈질한 그는 바로 집으로 들어갔다.

현관까지 가는 데 마주치는 헌터들마다 벨키오르에게 묵례를 해 왔다. 그를 바라보는 헌터들의 눈빛에는 서호랑과 비슷하게 존경심과 호기심이 가득했다.

‘희한하군.’

벨키오르는 그걸 신기하게 느꼈다. 자신을 불편해하던 이들이 던전이라는 곳에 함께 들어갔다 왔다고 친근하게 여기는 게.

이게 인간과 드래곤의 차이일까. 처음 벨키오르를 봤을 때와는 다른 사뭇 편안해진 분위기에 그의 입가가 느슨해졌다.

현관문을 열고 집 안으로 들어가니 은새가 별, 봄과 거실에서 애니메이션 영화를 보고 있었다.

“은새.”

“벨키오르 님, 다녀오셨어요?”

“아빠!”

별이 아장아장 뛰어와 벨키오르의 다리에 엉겨 붙었다. 은새와 있을 때면 그를 본체만체하는 별이지만 그래도 잠시 떨어져 있었다고 그리웠던 듯했다.

“좀 전에 아이들 밥 먹이고 앉았어요. 벨키오르 님도 같이 보실래요?”

벨키오르가 은새의 안색을 살폈다. 밝게 말하고 있었으나 그녀는 눈 밑이 퀭하고 지쳐 보였다.

그가 원래 세계로 가기 전부터 이 상태였다. 스텔라 본이 죽은 게 그녀에게 상당한 영향을 끼치는 듯했다.

가만히 은새를 보던 벨키오르는 가타부타 말없이 그들 옆에 앉았다. 은새가 멈춰 놓았던 영화를 재생했다.

영화는 공룡 친구들이 지구를 침략해 온 적으로부터 살아남기 위해 고군분투하는 내용이었다.

침략해 온 적이 생각보다 강해서 공룡 친구들이 많이 힘들어했다. 겨우 그들을 물리치고 나서야 지구는 평화를 되찾았다.

그러나 적과의 싸움에 지구가 많이 황폐해져 끝에 가서는 환경 파괴로 공룡 친구들이 전부 멸종해 버렸다.

“아, 아니. 왜 이런 내용이지…….”

은새가 당황했다. 별점만 보고 골라서 이런 내용인 줄 몰랐다. 결국 별과 봄이 울음을 터트렸다.

“공룡 친구들 죽은 거예요? 안대에…….”

삐삐-

훌쩍이는 별과 봄을 은새가 안아 달랬다.

“별아, 봄아. 괜찮아. 공룡 친구들은 너희 마음속에 영원히 살아 있을 거야. 그보다 환경 파괴가 얼마나 무서운 건지 알겠지? 별이랑 봄이, 이제 음식 남기면 안 돼.”

“네에. 다 먹을 거예요. 공룡 친구들 불쌍해…….”

삐!

은새가 안아서 달래 주자 별과 봄은 머리를 끄덕끄덕했지만 상당히 충격을 받았는지 쉽게 눈물을 그치질 않았다.

두 아이를 안아 든 은새가 방으로 들어와 침대에 눕히고 이불을 덮어 주었다.

“오늘은 늦었으니까 이만 코야 자자. 별이도 봄이도 그만 울고. 응?”

눈가를 닦아 주고 토닥여 주는 은새의 손길에 별이 그녀의 손을 꼭 잡고 말했다.

“뉴나, 자장가 불러 주세요.”

삐-

“그럴까? 알았어.”

별의 부탁에 봄이도 동조하듯 은새의 손에 코를 비볐다. 미소 지은 은새가 아이들을 토닥여 주며 자장가를 불렀다.

맑고 고운 노랫소리에 훌쩍이던 아이들이 금세 잠이 들었다.

겨우 아이들을 달래 재운 은새가 거실로 나왔다. 그녀는 소파에 앉아 있던 벨키오르에게 다가갔다.

“세계수 님이 무슨 일로 부르신 거예요?”

“산체스가 부른 것이었다. 동족이 죽었다는군.”

“네?!”

생각지도 못한 일에 은새는 당혹감을 감추지 못했다. 드래곤은 억겁의 세월을 사는 존재가 아니었나. 죽었다면 분명 큰일이 있었을 것이다.

“저…… 괜찮으세요?”

“무슨 의미지?”

“마음이 안 좋으실 것 같아서요.”

은새가 벨키오르의 손등에 손을 얹고 위로하는 눈빛을 보냈다. 한 마디 정도 차이 나는 손 크기가 두드러져 보였다.

벨키오르는 꼼지락거리는 은새의 손을 내려다보면서 생각했다. 그럴 의도는 없었는데 은새를 신경 쓰게 만든 듯했다.

“그렇게 친한 이가 아니었다. 다만, 끝이 좀 안 좋았다는군.”

“어떻게 돌아가셨는데요?”

“드래곤 슬레이어한테 당했어.”

“네? 그거, 위험한 거 아니에요?”

은새가 펄쩍 뛰었다. 드래곤한테 드래곤 슬레이어란 천적이나 다름없지 않나? 헌터에게 마수와 헌터살해자가 천적인 것처럼.

그녀의 생각을 읽은 듯 벨키오르가 낮은 목소리로 설명했다.

“타데아는 고룡이었다. 나보다 수천 년을 더 산 드래곤이었지.”

“네…….”

“용살자의 운명을 타고난 자가 아닌 이상, 인간이 우리에게 해를 끼칠 수 없어. 그게 섭리이고 자연의 이치이다.”

“멋지네요.”

절대적인 상위 포식자라는 말이 와닿았다. 그러니 타데아는 스스로 죽음을 선택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잠시 신기해하던 은새가 눈썹을 늘어뜨렸다.

“그래도 슬퍼요. 알고 지내던 이가 죽으면 가슴이 뻥 뚫린 것 같잖아요.”

“그건 네 얘기인가?”

“네…….”

은새는 스텔라 본의 죽음으로 시름에 잠겨 있었다. 그녀는 헌터고, 그동안 수많은 이의 죽음을 목도했으나 그때마다 정도의 차이만 있을 뿐 힘든 건 똑같았다.

스텔라를 살릴 방법은 없었을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있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다녔다. 무엇보다도 다시는 그녀를 보지 못한다는 게 가장 슬펐다.

벨키오르가 일어나 표정이 좋지 않은 은새의 어깨를 토닥였다.

“너무 슬픔에 매몰되지 말도록. 네게는 잃은 것보다 지켜야 할 게 더 많으니.”

“네. 벨키오르 님도 힘내세요.”

그의 은은한 위로에 은새가 잔잔히 미소 지으며 말했다. 사실 벨키오르는 힘을 내고 말 것도 없었지만 고개를 끄덕였다.

가만히 은새를 살피던 그가 주방으로 걸음을 옮겼다.

“식사 아직 안 했겠지?”

“네! 와, 맛있는 거 해 주실 거예요?”

“먹고 싶은 건?”

“벨키오르 님 요리라면 다 좋아요. 저랑 같이 먹어요.”

그녀의 주문에 벨키오르가 손을 휘저어 냉장고에서 재료를 꺼냈다.

은새는 식탁에 앉아 벨키오르가 요리하는 모습을 구경했다. 마법으로 불이 화르륵 솟아올랐고 도구들이 날아서 착착 그의 손으로 빨려 들어갔다.

벨키오르는 팬에 소금과 후추, 백포도주, 올리브 오일을 두르고 점보 새우를 재웠다. 붉은 피망과 노랑 피망은 가늘게 썰어서 팬에 오일을 두르고 볶았다.

펜넬을 웨지 형태로 썰어 끓는 물에 살짝 데치고, 마찬가지로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로 간을 해 그릴에 구웠다.

팬에 버터를 두르고 다진 샬롯, 마늘을 볶다가 양념한 새우를 넣어 함께 익혔다. 오목한 그릇을 꺼내 조리된 새우와 펜넬을 가지런히 놓고 마늘 향의 레몬 버터 소스를 고르게 뿌렸다.

화룡점정으로 파슬리까지. 고소하고 은은한 레몬 버터 향에 은새가 입맛을 다셨다.

“너무 맛있어 보여요!”

“안 끝났다.”

그는 냉장고에서 돼지 안심을 꺼내 심줄과 기름을 제거하고 로즈마리, 다임, 올리브 오일, 소금, 후추로 간했다.

새송이버섯을 4등분으로 잘라 그릴에 구웠다. 돼지 안심은 170도로 예열된 오븐에서 미디엄 정도로 구워 익혔다.

다진 로즈마리, 다임, 소금 약간을 넣고 거품기로 저어 되직하게 만든 생크림을 안심구이 위에 올리고 오렌지 소스를 뿌렸다.

순식간에 근사한 요리가 완성됐다. 은새가 핸드폰으로 찰칵찰칵 사진을 찍었다. 이것은 작품이나 마찬가지였다.

“자, 어서 먹어라.”

“잘 먹겠습니다!”

은새의 표정이 조금 밝아진 걸 확인한 벨키오르도 포크와 나이프를 들었다. 은새는 감탄하며 음식을 꼭꼭 씹어 먹었다.

입안에서 돼지고기의 육즙이 퍼지고, 기름진 맛이 오렌지 소스에 중화되어 끝에는 상큼함이 남았다.

그녀가 눈을 빛내며 벨키오르를 바라봤다.

“진짜 맛있어요. 벨키오르 님은 요리 천재 같아요!”

“묻었다.”

벨키오르가 손을 뻗어 은새의 입가를 닦아 줬다. 갑자기 다가온 그의 손에 깜짝 놀랐던 그녀의 얼굴이 화르륵 붉어졌다.

“부끄러워……. 다 큰 어른이 묻히고 먹는 거 꼴불견이죠?”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맛있게 먹어 주어 고마울 따름이었다. 요새 계속 음식을 깨작거려 거슬렸는데 조금이라도 기운을 차린 것 같아 다행이었다.

접시까지 먹어 치울 기세로 식사를 마친 은새가 의욕적으로 소매를 걷어붙였다.

“디저트는 제가 만들게요!”

“가만히 있어.”

어깨를 꾹 눌러 은새를 앉혀 두고 벨키오르는 마법으로 새로 그릇과 식기를 꺼냈다. 디저트는 무엇을 만들까.

은새의 얼굴을 보고 고민하던 그가 곧 결정했다. 조금 단것들이 좋겠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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