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화 – 두 마리 토끼
우리가 놀란 눈을 했다. 등급 상승이 아주 없는 일은 아니었지만 그래도 D급에서 A급이라니.
죽었다 깨어나지 않고서는 불가능한 일이었다. 아, 벌써 그런 일이 일어났으니 이건 모순인가.
“또, 최미리내 부길드장님이 말씀하시기로 골드스타 측에 ‘머리’가 붙었다고 했습니다. 상당히 두뇌 회전이 빠른 자일 거라고요.”
“그 머리가 천창현이라는 건가. 흠, 박 팀장은 이 사람이 수상해?”
박도윤이 잠시 머뭇거렸다.
“……네. 범상한 인물이 아닌 것 같습니다.”
“신예는 언제든 튀어나올 수 있어. 하지만 박 팀장이 하는 말은 귀 기울여 들을 필요가 있지.”
“…….”
“박 팀장은 고유 능력 ‘직감’을 가지고 있으니까.”
“적어도 주시할 필요는 있을 것 같습니다.”
박도윤의 고유 능력 ‘직감’은 평소에는 그리 두드러지는 편이 아니었다. 그러나 한 번씩 크게 발동할 때가 있었다.
주로 좋지 않은 일이 일어날 때. 우리가 서류가 놓인 책상을 손톱으로 두드렸다. 톡, 톡, 톡.
소리가 멈췄다.
“그래, 알겠어. 나가 봐.”
박도윤이 나가고 우리는 기억하려는 것처럼 낯선 이름을 되뇌었다.
“천창현, 천창현이라.”
그는 도천 길드 정보부에 그자를 조사하라고 일렀다. 예의 주시해야 할 인물인 것은 틀림없었으니.
미리내에게도 말해 두는 편이 좋겠지. 핸드폰을 손에 든 우리가 미리내에게 전화를 걸려는 차, 벨 소리가 울렸다.
화면에는 ‘아버지’라는 글자가 떠 있었다. 우리는 어쩔 수 없이 전화를 받았다.
천창현이라는 작은 불씨는 우리의 관심에서 그렇게 밀려났다. 얼마 후 우리는 그 이름을 다른 방식으로 듣게 되었다.
***
“뭐? 상급 포션 제조법?”
우리는 비서가 다급히 가져온 소식에 기가 막힌다는 반응을 보였다. 그도 그럴 것이, 오늘 낮 속보가 하나 터졌다.
그는 핸드폰으로 포털 첫 화면에 들어갔다.
[단독] 골드스타 길드, 상급 포션 제조법 확보!
[H데일리] ‘포션’ 던전 드롭 아이템 이제 옛말…….
[포텐셜뉴스] 만성적인 힐러 부족 현상, 해갈되나?
속보가 터진 지 얼마 되지 않았는데 벌써부터 난리였다. 물밀듯 올라오는 기사를 보고 우리는 빠르게 손을 움직여 커뮤니티 반응을 살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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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갓골드스타 얘네 사고 칠 줄 알았다
인류가 상급 포션 제조법에 성공했다니
어디야, 브라질이던가? 몇 년 전에 포션 비슷한 거 만들었다던데 그 이후로 소식 없었고
이렇게 국제 인증 마크까지 받은 건 처음인 듯
댓글(71개)
⤷가슴이 웅장해진다 내가 대한민국 사람이라니
⤷이거 효과 있음? 리얼 포션이랑 얼마나 차이 남?
⤷⤷성분이 96퍼센트 정도 유사하다고 함 ㅇㅇ 이제 힐러놈들 갑질 못 하겠다 쌤통
⤷그래도 포션을 어떻게 힐러에 갖다 붙여
⤷⤷힐러냐?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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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질주하는 골드스타…… 상급 포션 대량 생산 가능성은?
제조된 포션의 잠재적 가치 1,600조 원에 이르는 것으로 전망돼
댓글(1269개)
⤷미쳤다. 특허권이 살아있는 동안은 골드스타가 우리나라 먹여살리겠네
⤷골드스타 떡상했네 만년 2위 콩라인이라고 놀림당하더니
⤷그런데 골드스타에서 포션 제조 연구하고 있었음?
⤷⤷ㅇㅇ 좀 오래됨 (기사 링크)
⤷⤷⤷히엑, 이게 사실이면 5년 만의 결실이네
⤷도천 배 아프겠다ㅋ
⤷⤷분란 종자 꺼지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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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나 골드스타 쩌리 직원인데 이번에 상급 포션 제조하는 데 숨은 공로자 있댔음
연구팀 말고 헌터 중에. 이미 골드스타 내에서는 짜하게 소문 퍼짐.
참고로 좀 생소한 이름임.
댓글(470개)
⤷누군데?
⤷ㄴㄱ?
⤷(삭제된 댓글입니다)
⤷⤷삭제돼서 못 봤어. 초성 다시 써줄 사람?
⤷⤷⤷ㅊㅊㅎ 1분 뒤 댓 펑
…
타이밍 좋게 아직 지워지지 않은 댓글을 발견한 우리가 미간을 좁혔다.
“천창현?”
초성을 보자마자 우리는 그 이름을 떠올렸다. 일전에 박도윤이 말했던 그 인물이었다.
연구팀이 아닌데 포션 제조에 기여했다고? 어떻게? 화면에서 눈을 뗀 그가 비서에게 물었다.
“골드스타에서 밝힌 상급 포션 제조법이 뭐야?”
“핵심 배합법은 비밀에 부쳤습니다만 재료는 일부 밝혔습니다. 페르세포네의 석류와 천년나무의 새순, 그리고 눈꽃유리의 결정, 붉은노리개의 즙, 탄식의 재입니다.”
일전에 골드스타 길드에서 쓸어 담았던 아이템들이었다.
“설마, 예전에 사 모은다고 했던 게 그런 이유 때문이었나?”
우리는 이제 알겠다는 듯 이마를 쓸었다.
“가격이 장난 아니게 뛰었겠군.”
“네. 하지만 이미 골드스타 길드 측에서 독점하다시피 해서 손해는 없을 것으로 예상됩니다.”
“사전에 다 작업해 뒀겠지. 우리가 가진 물량은?”
“약 15억 규모입니다.”
비서가 태블릿 피시를 두드렸다.
“현재 시가로 300억 정도에 달합니다.”
“미쳤네.”
우리는 가지고 있는 물량을 팔지, 아니면 연구팀에 보내 포션 제조를 시도할지 고민에 빠졌다.
하지만 그 전에 해야 할 게 있었다.
“정보부에 말해서 예전에 천창현이란 헌터에 대해 조사하라고 했던 거 다 들고 오라고 해, 당장.”
“네.”
“그리고 골드스타 길드 내부의 소문을 은밀히 조사해. 과연 천창현이라는 자가 포션 제조에 기여했는지를.”
***
중국 청화 길드. 유길선 길드장은 뉴스 속보를 보고 있었다.
[다음은 한국의 골드스타 길드가 상급 포션 제조에 성공했다는 소식입니다.]
[해당 포션은 실제 던전에서 획득할 수 있는 포션 아이템과 96% 정도로 유사한 성분을 가지고 있으며, 회복 효과 역시 포션 아이템에 뒤지지 않는다고 판명되었습니다.]
[골드스타 길드는 약 5여년 전부터 포션 연구를 시작했고, 세계 전문가들은 이 제조 포션으로 한국이 얻을 경제적 이익이 1,600조 원에 달할 것으로 예측하고 있습니다.]
[정식 판매일은…….]
흥분된 앵커의 말을 듣고 있던 그의 미간 골이 깊어졌다. 텔레비전, 인터넷 할 것 없이 같은 뉴스로 난리였다.
“거슬리는군…….”
많은 나라와 길드가 그렇듯, 청화 길드도 포션 연구를 하고 있었다. 막대한 자본과 인력을 갈아 넣어 거의 성공을 앞두고 있었는데.
한국에서 먼저 국제 인증을 받아 버렸다. 게다가 골드스타 길드에서 밝힌 재료와 제조법이 청화 길드의 것과 거의 흡사했다.
정보가 유출된 게 아닌지 의심이 갈 정도였다. 이제 와 청화 길드에서도 포션 연구가 거의 막바지에 이르렀다고 공표해 봤자 후발주자가 될 뿐이었다.
유길선이 신경질적으로 티브이를 끄고 책상에 앉아 부길드장, 진아소를 호출했다. 곧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진아소가 들어왔다.
“부르셨습니까.”
“한국 골드스타 길드 측에 우리 정보가 넘어간 정황이 있었나?”
“아닙니다. 은밀히 조사해 본 결과 골드스타 길드 연구팀의 독자적인 성과라고 합니다.”
“하. 그게 말이 되나.”
유길선이 짜증스럽게 머리를 쓸어 올렸다. 그는 청화 길드 연구팀에서 제출한 골드스타 길드의 포션 제조법과 자사의 것을 비교한 보고서를 읽었다.
아무리 봐도 유사했다. 유길선은 혀를 차며 보고서를 쓰레기통에 처넣었다.
“연구팀에 일러 기존 연구를 파기하고 새롭게 시작하라고 해. 그리고 배신자는 반드시 색출한다.”
“네. 알겠습니다.”
진아소의 눈이 어둡게 빛났다. 청화 길드가 데리고 있는 헌터 중에는 잘 알려지지 않은 희귀한 능력을 가진 이들이 많았다.
예를 들어 사람의 마음을 읽거나 정신을 조종하는. 만약 내부 유출자가 있다면 반드시 찾아낼 것이다.
의자에 기댄 유길선이 후,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요즘 한국이 하는 일이 하나 같이 거슬려. 유은새가 춘티엔더야오칭을 부화시키질 않나, 이제는 우리가 하고 있던 포션 제조까지…….”
“…….”
“유은새에 대한 압박은?”
“그게, 도천 길드의 한우리 길드장이 전부 막아 내고 있습니다.”
“하.”
깊은 한숨을 내쉬는 유길선의 눈빛이 흉흉해졌다. 사뭇 강렬해지는 그의 기세에 진아소가 꿀꺽 침을 삼켰다.
유길선은 고요히 분노했다. 그의 턱에 힘이 들어갔다.
“한우리 길드장…….”
“알의 소유권을 포기한다는 문서가 저희의 발목을 잡고 있습니다. 정공법으로는 어려울 듯합니다.”
“한국 정부와 헌터 협회의 반응은?”
“한국 정부는 어떻게든 중재를 하려고 하는데 도천 측에서 계속 거절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는 도천의 입김이 무시 못 할 수준이라……. 한국 헌터 협회는 자신들이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며 손 놓고 방관하고 있습니다.”
“알 만하군.”
예상했던 반응이다. 한국 정부도 말로만 중재한다고 할 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을 게 뻔했다.
유일한 ‘춘티엔더야오칭’ 보유국이라는 명칭을 내려놓고 싶지 않겠지. 그만큼 국제적 위상이 올라갈 테니.
이대로 유은새를 압박하는 것은 소용이 없었다. 다른 방법을 써야 했다. 유길선이 나른하게 눈을 내리떴다.
“어쩔 수 없군.”
낮아진 목소리에 진아소가 유길선의 눈치를 봤다.
“왕호연과 양설을 불러.”
“……! 길드장님, 설마.”
진아소는 유길선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단번에 깨달았다. 왕호연과 양설은 청화 길드에서 숨겨 놓은 실력자였다.
그들은 특수 이능을 가지고 있었다. 유길선이 도천 길드와 유은새를 향해 제대로 칼을 뽑아 든 것이다.
“그 설마가 맞다. 그러기 위해선 도천 길드의 위상을 깎을 필요가 있겠어.”
“…….”
“우리는 도천과 유은새, 두 마리 토끼를 잡는다.”
유길선의 입꼬리가 호선을 그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