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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61)화 (61/190)

60화 - 잔혹하지만 희망적인 메시지

서호랑이 도저히 정신을 못 차려서 도천 길드원들은 던전을 공략하고도 이르게 서울로 출발했다. 나머지는 담당 헌터가 내려와 마무리 지을 것이었다.

돌아가는 차 안에서 은새는 친구들에게 ‘제물 스테이지’의 존재와 그녀가 내린 결정에 대해 말해 줬다. 당연히 미리내에게 등짝을 맞았다.

“너! 아무리 벨키오르 님이 있었어도 그렇게 함부로 막 결정해도 돼?”

“하지만 난 너처럼 머리가 좋지도 않고 딱히 방법도 없었는걸.”

“그래도 그렇지!”

“아야, 아야. 그만 때려…….”

“유은새 잘하는 짓이다. 기껏 힘들게 살려 놨더니 마음대로 나대고. 헹.”

솔이 코웃음을 쳤다. 다 끝난 일이니 망정이지, 아니었으면 제일 난리 쳤을 인물이 그녀였다.

“은새야 다신 그러지 마…….”

“그래. 아까 서호랑 우는 거 봤냐? 무슨 사람 몸에서 물이 그렇게 나오는지. 나는 걔가 제물로 뽑혔다는 건 줄 알았다.”

인찬과 유하가 뒤이어 잔소리했다. 친구들의 사납고 걱정스러운 눈초리에 은새는 두 손 두 발 다 들고 말았다.

“미안해. 미안해. 벨키오르 님도 저 때문에 고생하셨어요.”

차 한구석에 앉아서 조용히 은새가 하는 양을 지켜보던 벨키오르는 머리를 내저었다. 고생이랄 것도 없었다. 몸 풀기에 지나지 않았으니까.

“그, 정말 벨키오르 님이 몬스터를 싹쓸이했어? 어떤 마수가 나왔는데?”

그런데 눈치를 보던 솔이 눈을 반짝거리며 은근한 어조로 물었다. 은새는 잔소리 지옥에서 벗어날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지쳐 잠든 별과 봄이 깨지 않도록 나긋나긋하면서도 조용한 목소리로 벨키오르의 활약상에 대해 읊었다.

그가 얼마나 대단했는지 자랑하고 싶어서 입이 근질근질하던 차였다.

“자잘한 마수는 잘 기억 안 나는데 특히 기억나는 건 레드 다이아몬드 라이노서러스였어.”

“뭐?! 그게 거기서 왜 나와?”

“우와, 재수 옴 붙었네. 어떻게 살아남았냐?”

아닌 척 귀를 쫑긋하고 있던 미리내와 인찬, 유하가 은새의 말을 듣고 곧장 반응했다. 친구들의 적나라한 반응에 은새가 신이 나 벨키오르의 무용담을 더 풀었다.

돌아가는 길은 ‘거짓말!’, ‘진짜? 그래서?’, ‘유은새 버스 탔네~’라는 말의 향연이었다.

***

대전의 던전 공략 2주 후. 뒷정리도 어느 정도 마무리가 되고 은새와 친구들, 길드원들은 평화로운 일상으로 돌아왔다.

던전 브레이크의 영향으로 크고 작은 던전들이 종종 생겨났지만 그 수가 늘어났을 뿐, 여느 때와 다름없는 일상이었기에 길드원들은 이전처럼 묵묵히 던전을 공략했다.

은새도 종종 우리와 미리내의 부탁을 받고 공략에 참가하며 벨키오르와 함께 별과 봄을 돌보는 나날을 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갑작스럽게 전 세계에 비보가 날아들었다.

[단독] 세계의 천공오성(天空悟性, Prophet of the Stars) 스텔라 본. 영겁의 하늘로.

영국인 헌터 스텔라 본이 죽었다. 이 사실은 국제 헌터 사회에 큰 파장을 일으켰다.

스텔라 본은 별의 소리를 들어 예언을 하는 이능을 보유한 헌터로, 격변의 시대가 도래한 후 그녀는 수없이 많은 위험을 예고했다.

그녀가 마지막으로 남긴 말은 이러했다.

「가까운 미래에 어둠이 도래한다. 무수히 많은 별이 지고 권태로운 신이 눈을 뜬다. 세상은 혼란에 잠길 것이고 많은 피가 흐를 것이다. 그러나 어둠을 밝히는 찬란한 빛이 발현한다. 인간은 빛이 인도함에 따라 반드시 시련을 극복할 것이다. 새로운 세계의 지평을 열 것이다.」

잔혹하지만 희망적인 메시지였다. 세계 각국의 헌터들이 그녀가 남긴 말을 두고 많은 말들을 했다.

세계 종말을 선언한 것이라는 이. 인간을 인도해 주는 ‘찬란한 빛’이 무엇인지 밝혀야 한다는 이.

사람들의 입에서 입으로 스텔라 본의 메시지가 변질되어 퍼져 나갔다. 그들은 메시지의 진실을 외쳤지만 이미 죽은 이에게 사실을 확인할 수는 없었다.

많은 사람이 스텔라 본의 장례식장을 방문했다. 도천 길드의 핵심 인원 또한 전용기를 타고 날아가 장례식에 참석했다. 그중에는 당연히 은새도 있었다.

특히 은새는 스텔라 본이 죽기 얼마 전, 그녀를 영국으로 불렀다는 소식을 듣고 많은 이들의 관심을 가졌다.

“헌터 유은새! 스텔라 본이 남긴 말이 있었습니까? 그녀와 무슨 대화를 했습니까?”

“스텔라 본이 당신과 따로 만난 이유가 있었습니까? 그녀의 죽음을 당신은 알고 있었습니까?”

기자들이 목청 높여 질문했지만 은새는 묵묵부답으로 헌화했다. 한국으로 돌아올 때도 마찬가지였다.

빡빡한 일정을 소화한 뒤 우리는 길드장실로 돌아왔다.

“후우…….”

타이를 풀고 겉옷을 옷걸이에 건 그는 의자에 늘어졌다. 피곤했다. 중국의 압박이 거세져 가는 가운데 해외까지 다녀왔으니.

대전 미로 던전에서 나온 지 얼마 안 됐을 때 은새가 스텔라 본과 나눈 대화를 보고서로 작성해 제출했다.

도천은 비상이 걸렸다. 스텔라 본이 예언한 위험이 무엇인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어떤 것이든 대비해야 해. 요새 밀렵꾼들의 동태도 수상하고, 던전의 상태도 안 좋으니까.’

기억 속의 미리내가 말했다. 원인을 알 수 없는 진동. 이미 무시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아, 이러다가 세계 멸망이라도 하는 거 아니겠지?’

‘남궁솔, 너어는 입조심 좀 해라. 애가 왜 이렇게 경솔하냐.’

‘그래도 스텔라 본이 남긴 메시지는 나름대로 희망적이잖아.’

‘나는 그 희망이라는 게 조금 미심쩍어. 사람들이 혼란스러울까 봐 덧붙인 말은 아닐지.’

‘미리내야, 네가 그런 말을 하면 무섭잖아.’

친구들과 나눈 대화를 떠올리고 있는데 밖에서 문 두드리는 소리가 났다.

똑똑.

“길드장님.”

박도윤이었다. 의자에 기대 있던 우리가 몸을 바로 하고 물었다.

“박 팀장, 무슨 일이야?”

“대전 미로 던전과 관련하여 직접 보고드릴 게 있어서 왔습니다.”

“보고서로 제출한 것 말고?”

“네.”

박도윤은 주변을 살폈다. 혹여 도청 장치가 있지는 않을지 살피는 무의식적인 반응이었다.

한국 1위 길드의 길드장실인 만큼 보안에 철저하건만 그가 그런 태도를 보인다는 건 그만큼 중요한 말이라는 뜻이었다.

평소보다 진중해 보이는 표정도 그렇고.

“새는 짹짹거리고 쥐는 찍찍이지.”

우리가 자리에서 일어나 스킬, ‘낮말은 새가 듣고 밤말은 쥐가 듣는다’를 발동했다. 발동 주문이 좀 부끄럽지만, 온갖 도청 장치와 은신 능력자를 감지하는 능력이었다.

당연히 길드장실에 걸리는 것은 없었다.

“아무것도 없어. 얘기해.”

“저…… ‘제물 스테이지’의 보상으로 나온 게 이상해서 말입니다.”

“아, 은새가 낙오됐다는 거기?”

“…….”

박도윤의 눈동자가 흔들렸다.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눈치챈 우리가 양손을 흔들었다.

“아냐, 아냐. 어떻게 된 일인지는 은새한테 들었어. 죄책감 가지지 마, 박 팀장.”

“……죄송합니다. 제가 행동이 빨랐어야 했는데.”

“아니. 들어 보니 제물 스테이지에 남았으면 박 팀장은 뼈도 못 추렸을걸. 됐고, 보상으로 뭐가 나왔는데?”

박도윤이 심각한 표정으로 당시 일을 회상했다.

“왕 게임의 왕이 되었습니다. 저희가 다른 팀의 점수를 뺏어 올 차례였죠.”

“그런데?”

“그런데…… 시스템이 무슨 변덕을 부렸는지 골드스타 팀의 개개인의 점수가 전부 보였습니다.”

“그게 무슨 말이지. 원래는 점수가 안 보였어야 정상인데 보였다는 소리인가?”

“맞습니다. 게다가 순위별로 나와 있었습니다.”

우리가 대전 미로 던전 보고서를 서랍에서 꺼냈다. 거기에 쓰여 있는 스테이지의 ‘규칙’ 부분을 찾았다.

다른 건 차치하고, 왕 게임 항목을 소리 내어 읽었다.

“왕 게임의 왕은 다른 팀의 점수를 빼앗아 올 수 있다. 상대 팀의 팀원을 지목해 그 사람의 점수를 가져온다. 단, 공정성을 위해 선택지의 명단은 성만 남기고 이름은 ‘○○’ 처리한다.”

“네. 게다가 개인이 점수를 얼마나 가지고 있는지 알 수 없죠. 하지만 던전에서 나오기 직전 저희가 왕이 되었을 때는 골드스타 팀원의 이름과 개인의 점수가 전부 보였습니다.”

우리가 턱 밑을 쓸었다.

“그래……. 하지만 단순히 그것 때문이라면 박 팀장이 놀라서 달려왔을 리 없지?”

“1위가 예상치 못한 사람이었습니다.”

“음? 백찬민 길드장이나 육재희 부길드장이 아니었나? 뭐 다른 사람이었어도 딱히 놀라지 않았을 것 같은데.”

당시 골드스타 팀 구성은 어벤져스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었다. 골드스타 길드원 중에서도 개개인의 역량이 뛰어났고 경험이 많은 자들이었다. 그만큼 유명했고.

우리의 덤덤한 반응에 박도윤이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천창현이라는 자였습니다.”

“천창현……? 그게 누구야. 그런 사람이 골드스타에 있었나?”

우리가 서류를 뒤적였다. 자세히 읽어 보니 참가자 목록에 이름이 쓰여 있기는 했다.

“서호랑 헌터의 말로는 D급 헌터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헌협에 조회해 보니 A급이라고 나온다더군요. 이렇게 단기간 내에 등급 상승을 한 경우는 이례적이라 헌협에서도 그를 주시했던 모양입니다.”

“등급 상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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