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9화 – 이게 뭐지?
결과적으로 동료를 희생양 삼았다는 후회와 미안함과 슬픔이 그들의 어깨를 무겁게 짓눌렀다. 언제까지고 침울한 분위기가 계속되자 별이 포르르 날아 박도윤의 머리를 잡아 뜯었다.
[이봐. 답답하게 굴지 말고 얼른 일어나서 던전 공략인지 뭔지나 해, 도윤 팀쟝!]
별이 은새가 박도윤을 부르는 호칭을 따라 했다. 전음이라 그에게는 들리지 않을 테지만 의미만은 명확히 전해졌다.
멍하니 있던 박도윤이 정신을 차렸다.
“자, 다들……. 여기서 이러고 있을 시간 없다. 유은새 헌터가 뒤를 맡겼으니 우리는 무슨 일이 있어도 이 던전을 공략해야만 한다.”
팀원들은 ‘이 피도 눈물도 없는 팀장 놈’ 하고 욕을 하려다가 그의 얼굴을 보고 말을 아꼈다. 박도윤의 안색이 여기 있는 사람들을 통틀어서 가장 좋지 않았다.
별과 봄이를 안은 엘레나 킴이 동조했다.
“팀장님 말이 맞아요. 봄이와 별이, 이 아이들을 던전 밖으로 데려가는 게 최우선으로 해야 할 일이에요.”
은새가 부탁했으니까. 그녀가 부탁한 아이들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멈춰 있을 수 없었다.
박도윤과 팀원들은 일생일대의 사명이라도 받은 것처럼 굳은 얼굴을 했다. 서호랑이 이를 악물었다.
“최미리내 부길드장님과 접선할 방법은요?”
“솔직히 어렵죠. 계속 공략을 이어 나가는 것밖에는…….”
“저희 팀 점수가 몇이에요?”
오종환의 질문에 박도윤이 시스템을 불러 왔다. 솔직히 상종하기도 싫었으나, 여기서 나갈 때까지는 시스템의 도움을 받아야 했다.
[팀C의 점수! 두구두구두구…… 875,490점입니다!٩( *˙0˙*)۶]
상상 이상의 점수에 팀원들이 펄쩍 뛰었다.
“어째서?! 어째서 30만 점이나 갑자기 뛴 거죠?”
[스테이지 클리어 획득 점수입니다! 또한, 보상으로 열쇠 카드가 지급됩니다!]
“스테이지 클리어라니, 무슨…….”
제물 스테이지. 은새와 벨키오르와 도다리가 희생해 쌓은 점수였다.
박도윤과 팀원들은 다시 눈물바다가 될 뻔했다.
“고작, 고작 30만 점으로 값을 매길 사람이 아니었어!”
“유은새 헌터억…….”
그들이 다음 스테이지로 넘어가려면 아무래도 시간이 걸릴 모양이었다.
가까스로 멘탈을 수습한 이예나가 박도윤을 닦달했다.
“열쇠 카드, 이번 열쇠 카드는 뭐예요?”
박도윤이 어둑한 눈으로 보상을 확인했다. 그의 눈동자가 일순 커졌다.
“어…… 이게 뭐지?”
***
“이 게임을 끝낼 때가 왔어.”
스테이지를 통과하고 받은 열쇠 카드. 그건 이제까지 받았던 열쇠 카드하고는 달랐다. 미리내는 열쇠 카드의 내용을 확인하고 입꼬리를 끌어올렸다.
시스템 창이 띠링, 반응했다.
[전체 팀 점수를 양도하시겠습니까? 단, 결정은 번복될 수 없습니다. Y/N]
“YES.”
팀 전체 점수를 다른 팀에 양도할 수 있는 카드. 바로 이 던전 공략의 키 카드였다.
“YES! 이제 이 지긋지긋한 던전에서 나간다!”
솔이 양팔을 번쩍 들었다. 내내 고생한 유하와 인찬도 기분 좋은 얼굴이었다.
곧 시스템 창이 다른 화면을 띄웠다.
[양도하실 팀을 선택해 주세요. 1. 팀A 2. 팀C]
“팀C.”
“은새야, 우리가 간다!”
“오늘따라 은새랑 우리가 왜 이렇게 보고 싶지.”
“서인찬, 울어?”
인찬은 이 미로 던전에 들어와 고생했던 날들을 떠올랐다. 뛰고, 날고, 맞고, 벽에 박히고. 한평생 경험할 고생이란 고생은 다 한 기분이었다.
……다시는 하고 싶지 않은 경험이었다. 특히 ‘꼬리잡기’와 ‘고양이 목에 방울 달기’는.
띠링!
[전체 알림. 팀C가 1,111,110점을 기록. 아큘라의 미로 던전이 공략되었습니다! 축하드립니다! 다음에 또 찾아 주세요.₊·*◟(⌯ˇ ɞ ˇ⌯)◜‧*]
대전 미로 던전 공략에 걸린 총 시간 127시간 6분 59초.
최후 승자는 도천 길드였다.
***
골드스타 길드의 최종 점수는 556,000점이었다. 나름대로 선방했으나 던전 공략을 완료하기에는 턱없이 부족한 점수였다.
탈출구로 나가는 헌터들이 백찬민의 눈치를 봤다. 그는 웃고 있었으나 어딘지 기분 나쁜 티가 났다.
백찬민은 던전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기자들과 간략한 인터뷰를 했다.
“백찬민 길드장. 이번 던전 공략에서 특별히 어려운 점이 있었습니까?”
“이번 던전은 공략에 난해한 부분이 있었습니다. ‘시스템’이라는 낯선 존재가 규칙을 정해 스테이지를 클리어하게 했거든요. 그래도 열심히 했는데 안타깝네요. 다음에는 반드시 도천 길드를 이길 겁니다.”
젊고 유능하고 야심만만한 길드장의 모습을 연기한 백찬민은 대기하고 있던 차에 올라탔다. 그는 떠나기 전, 고생한 팀원들에게 격려하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잊지 않았다.
“다들 수고 많았어. 당분간 휴가 줄 테니 푹 쉬도록 해.”
왜 ‘당분간’이 영원히 쉬라는 것처럼 들리는 걸까. 묘한 기분이었지만 헌터들은 허리를 넙죽 숙이며 백찬민 길드장에게 감사를 표했다.
비록 길드장의 마음에는 차지 않았어도 그들은 최선을 다했다고 자부할 수 있었다. 상대가 나빴을 뿐.
차 문을 닫기 전 백찬민은 맞다, 하고 천창현을 바라보았다.
그는 눈매를 빙긋이 휘고 있었지만 눈빛만은 얼음장처럼 차가웠다.
“천창현 헌터, 이번에는 비록 실패했지만 당신의 활약은 기억하고 있겠어. 골드스타 내에서 라이징 스타로 띄워 줄 테니 한번 잘해 보라고.”
“……감사합니다.”
천창현은 얌전히 고개를 숙였다. 백찬민이 속으로 얼마나 열받아 있을지 눈에 훤했다.
‘이번에는 처음이라 넘어갔지만 다음에는 봐주는 게 없을 거야. 반드시 도천을 뛰어넘어야 해.’
이번처럼 눈앞에서 보물을 놓치는 굴욕은 다시는 당하고 싶지 않았다. 곧 백찬민과 육재희가 탄 차가 떠났다.
‘이번 일도 예상 밖이었군.’
천창현은 이번 던전의 패착에 대해 생각했다. 팀원 구성, 준비, 스테이지 선정. 모든 게 완벽했다.
딱 하나 문제라면 팀C의 존재. 어떻게 그렇게 점수를 긁어모은 거지? 확신할 수 있는 것은 유은새의 존재가 점수를 올리는 데 큰 기여를 했다는 것뿐이었다.
‘저번부터 유은새와 얽히면 되는 일이 없군.’
이번 던전 공략으로 골드스타 내에서 단숨에 중추로 파고들 생각이었는데 백찬민의 신임을 절반밖에 얻지 못한 것이 무척이나 찜찜했다.
‘유은새. 죽다 살아나서 뭔가 특별한 능력이라도 생긴 건가? 그럼 골치 아파지는데.’
혀를 찬 천창현은 사람들 틈에 몸을 숨기고 도천 길드 측을 바라봤다. 그런데 찾는 인물이 보이지 않았다.
‘유은새가 안 보여? 설마, 유은새 없이 박도윤 팀만으로 공략에 성공했다고? 그럴 리가.’
그녀의 모습이 보이지 않자 기자들도 웅성웅성했다. 입을 굳게 다물고 있던 박도윤이 가까스로 말문을 뗐다.
“유은새 헌터는…….”
침통한 그의 얼굴에 사람들의 궁금증이 점점 커져 갔다.
“던전에서 무슨 일이 있었습니까? 왜 유은새 헌터는 나오지 않았습니까?”
“그러고 보니 도다리도 안 보이는데, 그들은 어디 있습니까?”
솔이 사람들에게 손을 흔들어 주다가 은새가 없는 걸 알아차리고 박도윤에게 다가왔다. 그의 옆구리를 쿡 지르며 소곤거렸다.
“뭐야. 도윤 팀장. 은새 어디 있어?”
박도윤이 입술을 깨물었다. 그는 당장이라도 무릎 꿇을 듯이 절절한 음성으로 외쳤다.
“……유은새 헌터는!”
“저 여기 있어요!”
사람들의 시선이 던전 출구로 향했다. 도다리를 탄 은새가 생글생글 웃으며 손을 흔들고 있었다.
이미 벨키오르는 인식 저하 마법으로 모습을 감춘 뒤였다.
깜짝 놀란 박도윤과 팀원들의 눈이 커졌다. 믿을 수 없다는 얼굴로 멍하니 있는 그들을 제치고 별과 봄이 가장 먼저 포르르 날아서 은새의 품에 안겼다.
[뉴나! 어떠케 나를 떼어 놓을 수 있어요. 담부턴 아빠 말고 나랑 있어요!]
삐, 삐삐! 삐삐삐삐.
별이 작은 손으로 은새의 옷깃을 잡아당기고, 봄이 은새의 가슴에 얼굴을 마구 비볐다. 아이들이 투정을 부리며 눈물을 글썽이자 은새가 미안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아이고, 얘들아. 내가 미안해. 울지 말자. 응? 나 아무렇지도 않아.”
별과 봄을 달래는 은새를 본 팀원들이 이내 정신을 차리고 달려왔다.
“유, 유, 유은새 헌터어어억!”
“유은새 헌터!”
서호랑이 눈물을 흩뿌리며 뛰어왔고, 그 뒤를 박도윤과 이예나 등이 쫓아왔다. 그들의 표정 역시 볼만했다.
“어떡, 어떻게……. 아니, 됐습니다. 제가 지금 헛것을 보는 게 아니겠지요?”
“유, 유, 유은새 헌터어어억……. 헉.”
“도윤 팀장, 저 살아 있는 거 맞아요. 어떡해, 서호랑 헌터 좀 누가 달래 봐요. 숨넘어가겠어요.”
“유은새 헌터가 아니면 아무도 달래지 못할 겁니다.”
“네? 왜요? 서호랑 헌터, 그, 울지 마요. 저 손끝 하나 다치지 않았으니까.”
사실이었다. 제물 스테이지에서 나온 몬스터 웨이브. 각양각색의 마수 수백 마리가 끊임없이 나타났지만 전혀 문제없었다.
보는 눈이 없으니 벨키오르가 거의 학살하다시피 했다. 그가 유령의 집에서 얼마나 인간 헌터들을 배려했는지-놀라지 않도록- 알 수 있을 정도였다.
정말 눈 깜짝할 사이에 웨이브가 끝나 있었으니까. 은새는 손 하나 까딱하지 않았다.
심상찮은 이들의 분위기에 미리내와 친구들이 다급히 달려왔다.
“은새야, 무슨 일이야? 얘들 왜 이래?”
“그…… 일이 좀 있었어. 돌아가는 길에 말해 줄게.”
진짜 별일 아니었는데. 은새는 괜히 겸연쩍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