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화 –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아빠. 도와죠요.]
고민하던 별이 전음으로 벨키오르에게 도움을 청했다. 벨키오르는 별을 한 번 돌아보고 마찬가지로 전음을 보냈다.
[저 인간 여자가 갈무리하지 못한 기운을 네 것으로 만들어라.]
스킬의 여파로 엘레나 킴 주변에 성스러운 빛이 어른거렸다. 저 기운을 내 걸로? 별이 눈을 반짝였다.
[그다음은요?]
[너라면 스스로 깨우치겠지.]
결코 상냥한 가르침이 아니었으나 별은 이미 방법을 알고 있을 것이란 뜻이었다. 대충 벨키오르의 말을 받아들인 별이 의욕적으로 엘레나 킴의 기운을 흡수했다.
엘레나 킴은 순간 오싹함을 느꼈다. 정체를 알 수 없는 거대한 힘이 자신을 노리는 것 같았다.
[아, 이런 거구나.]
엘레나 킴의 기운을 ‘해석’한 별은 조물조물 마력을 움직였다.
[얍.]
앙증맞은 두 팔을 앞으로 뻗었다. 성스러운 빛이 은새와 일행의 머리 위로 내려앉았다.
별이 한 것은 ‘축복’이었다. 스켈레톤의 공격을 막고 일시적으로 성력 버프를 걸어 주는.
“어라?”
어딘가 달라진 느낌에 은새가 주먹을 쥐었다 폈다 했다. 별이 파닥파닥 날아와 은새의 머리에 제 볼을 비볐다.
[뉴나! 저 해냈어요!]
“잘했어! 우리 별이 천재야!”
은새는 별을 번쩍 안아 올렸다. 역시 해낼 줄 알았어! 그녀가 방긋 웃으며 별을 칭찬했다.
“어어, 지금 몸이…….”
“이거 대박이다.”
박도윤과 팀원들은 처음에는 어리둥절했으나 몸을 타고 흐르는 성력에 경악했다.
“오, 공격이 잘 먹힌다!”
“좋아. 이대로면 수월하겠어!”
축복을 받으니 공격에 속도가 붙었다. 스켈레톤의 기세가 주춤했다. 박도윤과 팀원들이 기세를 몰아 마수들을 처리했다.
퍼억!
마지막 해골 병사까지 머리를 부숴 확실히 처리한 은새가 휴, 숨을 돌렸다.
“관문 통과. 2층으로 올라가 보죠.”
별이 건 축복이 없어지기 전에 조금이라도 앞으로 나아가야 했다. 연출인지 진짜인지 모를 피가 얼룩덜룩 묻은 계단을 밟고 올라가자, 시체 썩은 내가 진동을 했다.
일행이 인상을 찌푸리고 서호랑은 헛구역질을 했다. 선두에 있던 은새와 엘레나 킴이 특유의 기운을 느꼈다.
“아무래도 그거 같죠?”
“네. 좀비요.”
곧 2층의 문들이 동시에 벌컥벌컥벌컥 열렸다.
그어어어…….
우우우…….
그륵그륵 가래 끓는 소리를 내며 나타난 것은 막 무덤에서 일어난 듯한 좀비와 구울이었다.
수십 마리의 마수가 끊임없이 밀려오는 것을 보고 일행들이 긴장했다. 좀비는 공격당하면 저주 디버프가 걸리고 구울은 공격력과 방어력이 터무니없이 강했다.
삑!
좀비와 구울을 정면에서 목격한 봄이 까무러치며 벨키오르에게 날아가 안겼다. 그의 품에 머리를 숨기고 벌벌 떨었다.
아직 아기인 봄이 보기에는 끔찍한 광경인 모양이었다.
은새는 봄에게 미안해졌다. 우리한테 맡기고 올 걸 그랬나. 봄이가 저렇게 떠는데 별이는 괜찮을까.
“별아, 너는 괜찮아?”
[개, 갠차나여! 하나도 무섭지 않아여!]
별이 꼬리를 가랑이에 말고 센 척을 했다. 눈을 부릅뜨고 당당히 맞서고 있었지만 봄처럼 덜덜 떨리는 몸은 숨길 수 없었다. 은새는 별을 잘 달래서 벨키오르에게 보냈다.
우우우-
그어어어-
좀비들과 구울들이 은새와 일행들을 향해 달려왔다. 팔다리가 꺾이고, 살점이 떨어진 채로 피를 뿜으며 달려드는 모습이 기괴했다.
은새가 급히 엘레나 킴을 불렀다.
“엘레나 킴 헌터!”
“성스러운 빛!”
엘레나 킴이 스킬을 사용했다. 상태가 안 좋았던 좀비들이 쓰러졌으나 대부분은 타격만 조금 입었을 뿐 그대로 전진했다.
꾸꾸!
도다리가 피어를 쏘았다. 좀비와 구울이 멈칫한 틈을 타 박도윤과 팀원들이 무기에 성수를 바르고 공격했다.
“돌격! 돌아간 팔다리들을 맞춰 주자고!”
“살점 떨어진 건 나중에 붙이라고 손에 쥐여 주자.”
“으아아, 오지 마! 오지 마!”
“서호랑! 눈 뜨고 공격해라!”
별의 ‘축복’ 효과가 빛을 발했다. 엘레나 킴의 스킬까지 겹쳐지니 팀원들의 공격력이 배 이상으로 올랐다. 이전 관문보다 이쪽의 피해가 월등히 적었다.
그어어어!
퍽!
휘익.
은새는 덤벼드는 좀비 떼를 봉으로 후려치며 공중에 날아올랐다. 확실히 공격이 먹히고는 있지만 좀비들의 수가 너무 많았다. 이대로라면 아무리 공격해도 끝이 없을 것이다.
은새는 봉을 꽉 쥔 채로 눈동자를 굴렸다. 그녀의 시야에 한쪽 구석에 서 있는 벨키오르가 보였다. 좀비를 상대하는 데 가장 효과적인 건 역시…….
‘불이야.’
“벨키오르 님!”
은새의 외침에 벨키오르가 기다렸다는 듯이 손에서 마력을 뿜어냈다. 강한 불길이 은새를 둘러쌌던 좀비들을 집어삼켰다.
그어어어!
좀비들이 새카맣게 타서 재가 되었다. 언제 보아도 압도적인 화력이었다.
우우우…….
엘레나 킴이 구울에게 정화의 화살을 쏘았다. 구울은 도리어 엘레나 킴을 표적으로 삼았다.
“윽!”
구울의 날카로운 손톱에 엘레나 킴의 팔이 찢어졌다. 다친 부위가 짓무르며 썩어 들어가기 시작했다.
그나마 축복의 효과로 엘레나 킴은 기절하지 않을 수 있었다.
‘위험해!’
비틀거리는 그녀를 발견한 은새가 무기를 교체했다. 손잡이에 다이아몬드가 박힌 순은으로 된 단검이었다.
그녀의 신형이 사라졌다가 엘레나 킴을 공격한 구울의 뒤에서 나타났다.
“하앗!”
은새는 구울의 목을 여러 번 찔렀다. 피가 얼굴에 튀었지만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은새가 단검으로 몇 번 더 구울의 목을 찌르고 베었다. 순은으로 된 단검이 구울의 목을 너덜너덜하게 만들었다.
푸욱!
우우우…….
힘을 담은 은새의 마지막 찌름에 마침내 구울이 쓰러졌다. 숨을 고르던 은새가 별에게 급히 소리쳤다.
“별아, 일행한테 축복 한 번만 더!”
[네!]
별의 마법이 주위를 밝혔다. 축복으로 인해 일행을 덮치던 좀비들과 구울들의 움직임이 잠시간 멈췄다.
그사이 은새는 아공간에서 아이템 하나를 꺼냈다. A-급 아이템 ‘영원의 안식처’.
즉, 구마 아이템이었다.
“다들 엎드리거나 눈 감아요!”
은새가 수류탄처럼 생긴 아이템의 핀을 뽑아 좀비들 사이로 던졌다.
콰앙!
일순 강렬한 섬광이 터져 나왔다. 순식간에 좀비의 반 이상이 날아갔다. 잠시 뒤 눈을 뜬 오종환이 휘파람을 불었다.
“사악한 언데드들아, 영원한 안식에 빠져들어라!”
“너는 이 와중에 그런 장난이 하고 싶니?”
이예나가 타박했다. 남은 구울과 좀비들은 박도윤과 팀원들이 차근차근 해결했다.
따닥, 따닥!
목이 잘리고도 발목을 물어뜯으려는 좀비를 은새가 멀리 걷어찼다. 숨이 덜 끊긴 몇 마리를 해치우니 어느 정도 정리가 되었다.
“으아아, 다 해치웠다!”
“우욱, 이 썩은 내는 진짜 적응 안 돼.”
일행은 썩은 피를 뒤집어써 시취를 풍겼다. 던전을 나갈 때까지 여기서는 어떻게 해결할 수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아공간에서 물통을 꺼내 대충 씻어 냈다.
“다들 포션으로 상처 치료하세요!”
“도윤 팀장님! 이예나 발목 반쯤 덜렁덜렁한데요?”
“오종환, 오버하지 마라! 팀장님, 아니에요!”
“저 최상급 포션 있어요. 드릴게요.”
“에헤이, 유은새 헌터! 아끼세요! 그냥 포션으로도 다 나아요. 오종환이 장난친 거예요.”
잠시 휴식을 취하며 은새와 팀원들이 상태를 정비했다. 상처 입은 팀원들이 포션을 마셔 치료하고, 피 묻은 장비를 닦았다.
조금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때.
띠링!
갑작스럽게 들린 소리에 일행이 긴장했다.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팀C, 유령의 집 1페이즈 통과 시간 1시간 52분 12초! 수고 많으셨습니다.٩̋(ˊ•͈ ꇴ •͈ˋ)و]
은새가 당황했다.
“뭐야, 기록되는 거였어? 빨리 공략하면 뭐가 좋은데?”
[60초 후에 공개됩니다!]
“60초 후에 무슨 일이 일어나는데?”
[59, 58, 57…….]
은새와 일행이 숫자가 줄어드는 걸 숨죽이고 지켜봤다.
[……3, 2, 1. 땡! 2페이즈가 열립니다!]
덜컹. 3층으로 가는 계단이 생겨났다. 헌터들이 어이없어했다.
“깜짝이야. 이런 걸로 놀라게 하지 마, 시스템.”
이제 어느 정도 시스템에 적응한 은새가 투덜거렸다. 일행이 터덜터덜 계단을 올라갔다. 3층에서 나타난 마수는…….
“고스트랑 밴시군요.”
박도윤이 작게 중얼거렸다.
고스트는 반투명한 형체로 물리력이 통하지 않는 마수, 밴시는 ‘죽음의 비명’을 지르는 것으로 유명한 마수였다.
“다크 나이트가 아닌 걸 다행으로 여겨야 하나.”
“아니, 밴시가 더 골치 아파.”
“저 밴시 처음 봅니다.”
“호랑아, 그래서 좋니? 좋아?”
이예나가 서호랑을 구박했다. 은새가 말했다.
“밴시부터 처리합시다.”
밴시는 한번 비명을 지르기 시작하면 저주 디버프와 체력 감소 디버프가 동시에 발생했다.
‘통곡’이라고 불리는 밴시의 스킬은 자주 사용할 수는 없어도 그들에게 치명타를 줄 수 있었다.
“내가 나서지.”
그때 벨키오르가 헌터들 사이를 헤치고 걸어 나왔다.
“네? 벨키오르 님이요?”
은새가 입을 동그랗게 벌렸다. 이 타이밍에 그가 왜 나서는 것인지 알 수 없었다.
벨키오르는 그런 기색을 읽고 아주 간략한 설명을 더 했다. 이마저도 은새니까 해 주는 것이었다.
“그대가 아는 것과 다른 적일 것이다.”
“네? 다른…….”
벨키오르의 말에 은새가 밴시를 바라봤다. 분명 일반 밴시인데 뭔가 다른 걸까? 의아해하는 그녀를 뒤로하고 벨키오르가 몸을 돌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