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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54)화 (54/190)

53화 – 뺏고 뺏기는 게 룰

[축하합니다! 왕 게임에서 왕이 되셨습니다!]

은새 주변으로 빵빠레가 울렸다. 그녀와 일행들이 얼떨떨해했다.

“아, 왕이 이런 식으로 되는구나.”

“저는 또 따로 뽑기를 해야 하는 건 줄 알았어요.”

“열쇠 카드라, 부○마블 같네요.”

자꾸 어디선가 있는 게임들을 짜깁기해 가져오는 듯했다. 신기해하는 은새와 팀원들 앞에 시스템 화면이 떠올랐다.

[어느 팀 누구의 점수를 빼앗아 오시겠습니까?]

“현재 우리 팀 점수가 몇이지?”

[팀C의 점수는 125,100점입니다!]

생각보다 많이 모았다. 벨키오르가 막판에 다 쓸어 버려서인 듯했다.

‘팀A의 점수가 130,000점 정도 됐지. 그렇다는 건 두더지 잡기에서 몬스터 웨이브를 돌파하는 게 아닌, 버티는 게 룰이었을 가능성이 커.’

사실이었다. 방어력이 높은 슬라보스를 상대로 20분간 버티는 게 두더지 잡기의 마지막 단계였다.

하지만 인간을 초월하는 존재인 벨키오르가 팀C에 껴 있었고, 그는 전부 도륙해 버렸다. 시스템이 당황할 수밖에 없었다.

‘아직 골드스타 길드는 우리가 들어온 걸 몰라. 이번 판으로 우리의 존재가 노출될 것이니 신중하게 골라야 해.’

은새가 턱을 쓰다듬으며 고민했다. 일단은 골드스타 길드에서 점수를 빼앗아 와야지.

“그런데 골드스타 길드에 누가 있지?”

“백찬민 길드장과 육재희 부길드장은 백퍼 있을 거고요. 다른 이들은 아마 골드스타의 에이스들 아닐까요?”

“저 길드에서 나오기 전에 지원팀에서 자료 받았습니다.”

박도윤이 아공간에서 자료를 꺼내 내밀었다. 은새는 그것을 빠르게 읽어 내렸다.

“뭐야, 이 인원은. 던전 구조가 미로인 걸 미리 알고 대비한 것 같은데?”

“저도 그 점이 이상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도천만 하더라도 급하게 던전에 들어가다 보니 밸런스를 생각하지 않고 S급만 넷이 들어갔다.

그런데 골드스타 길드는 모험가 특성과 특수 스킬 보조계 헌터까지 있었다. 인원도 서른 명으로 많았다.

던전 브레이크 발생 후 제일 먼저 그들이 왔는데 이런 준비성이라니 어쩐지 의심쩍었다.

“이렇게 되면 공적을 나눠 가져서 개개인의 점수가 적을지도 모르겠네.”

“그래도 확신의 백찬민 길드장을 노리면 되지 않겠습니까?”

“미리내가 그걸 몰랐을까요?”

이제 은새 팀은 팀A가 골드스타 길드일 거라고 확신했다.

왜냐하면 인원 차이도 있고, 던전의 공략 진행 방식을 보니 미리내 팀이 불리한 게 맞았다.

“그런데 이 천창현이라는 사람은 누구지?”

팀원 목록을 보던 은새가 고개를 갸웃했다.

“어…… 모르겠습니다. 최근에 길드에 들어간 모양인데요.”

“천창현이라는 헌터에 대해서 아는 사람?”

은새가 주변을 둘러보았다. 다들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런데 서호랑이 손을 번쩍 들었다.

“저 헌협 기초 훈련소에서 만났어요. D급 헌터였는데요. 게다가 능력도…… 되게 모호했던 걸로 기억하는데.”

헌협에서는 막 각성한 헌터들을 위해 기초 훈련을 진행했다. 대부분 본능적으로 전투하는 법을 알지만 경험을 쌓기 위해 많이들 참가하고는 했다.

“그런데 어떻게 이 멤버에 낀 건지는 모르겠어요.”

서호랑이 머리를 기우뚱했다. B급, 아니 A급이어도 어중이떠중이는 낄 수 없는 구성인데 D급이 참가하다니.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눈치였다.

가만히 천창현의 이름을 보던 은새가 박도윤에게 자료를 돌려주며 말했다.

“일단 그 사람은 내버려 두고, 누구 점수를 빼앗아 올지 결정해요.”

“저는 그래도 백찬민 길드장을 골라야 하지 않을까 싶습니다. 그자가 공적을 양보할 리 없으니까요.”

“안전빵으로 가야 하지 않을까요? 만약 팀B에서 같은 결정을 내렸다가 역공을 당한 것이라면요.”

“그럼 육재희 부길드장? 아니면 원딜 중에 골라도 평타는 하지 않을까요?”

“잠깐만, 이 사람들은 스테이지A를 골랐을 수도 있잖아. 거기엔 두더지 잡기 말고 다른 게 있다면?”

시간이 갈수록 일행들은 혼란스러워했다. 은새가 새로 뜬 시스템 창을 지그시 응시했다.

거기에는 ‘왕’이 점수를 빼앗아올 수 있는 이들의 성명이 죽 나열되어 있었다. 공정성을 위해 성만 보이고 이름은 땡땡 처리가 되었으나 알아보는 데 어려움은 없었다.

은새의 고민이 길어지자 벨키오르가 화면 한구석을 가리켰다.

“이자를 골라라.”

“네? 백연아…… 헌터요?”

은새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전혀 생각지도 않던 자였다.

백연아는 특수 스킬을 가진 보조 계열 헌터로, 눈에 띄는 스타일이 아니었다. 골드스타 길드가 어떤 스테이지를 갔을지 몰라도 그녀의 능력으로 점수를 많이 쌓지는 못했을 텐데.

은새가 벨키오르의 금빛 눈동자를 들여다보았다. 두 사람은 잠시 시선을 교환했다.

벨키오르는 자연을 관장하는 드래곤으로, 오랜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들이 보지 못하는 걸 보는 혜안을 지니게 되었다.

그런 걸 일일이 설명하지 않아도 은새는 벨키오르에게 무슨 뜻이 있을 거라고 생각했다. 그녀가 결정을 내렸다.

“알겠어요. 시스템! 나는 팀A의 ‘백연아’ 헌터의 점수를 가져오겠어.”

은새의 결정에 시스템 화면이 바뀌었다.

[Loading…….]

박도윤과 팀원들이 침을 꼴깍 삼켰다. 곧 경쾌한 소리를 내며 화면이 떠올랐다.

띠링!

[완료되었습니다! 팀A의 ‘백연아’ 헌터의 점수를 가져왔습니다. 이제 팀C의 점수는 182,000점입니다.]

“우오오오! 해냈다!”

“유은새 헌터! 대단하십니다!”

“우리가 골드스타 길드를 앞질렀다!”

“아니, 어떻게 백연아 헌터가 혼자 5만 점이나 가지고 있을 수 있지?”

박도윤과 팀원들은 축제 분위기였다. 다른 곳도 아닌 골드스타 길드를 이겨 먹는 건 언제나 새롭고, 짜릿했다.

은새가 벨키오르를 향해 씩 웃었다.

“감사해요.”

“아니다.”

벨키오르는 별것 아니라는 듯, 딴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

[팀C의 왕이 ‘백연아’ 팀원의 점수를 가져갔습니다!]

한창 전투 중에 점수가 스틸당했다는 알림을 본 백찬민이 격분했다. 그가 들고 있던 대검으로 마수를 가르자 피가 튀었다.

“이게 뭐야! 어떻게……! 팀C라니, 누구지?”

그들은 현재 ‘헨젤과 그레텔’ 스테이지를 통과 중이었다. 과자집을 노리고 달려드는 자이언트 앤트를 골드스타 길드의 헌터들이 사력을 다해 막고 있었다.

천창현은 우두커니 서서 시스템 창을 보았다. 백찬민은 열이 뻗쳤다.

“천창현 헌터! 이게 어떻게 된 거야. 백연아에게 점수를 몰아주면 아무도 모를 거라며?”

“…….”

“누가 새로 들어온 거지? 도천 S급들은 다 들어온 거 아니었나. 다른 길드인가?”

육재희와 팀원들이 백찬민의 눈치를 봤다. 굳은 얼굴로 시스템 창을 보던 천창현이 느릿하게 입을 열었다.

“유은새 헌터가 아닐까 싶습니다.”

“뭐? 영국으로 출국했다고 하지 않았어?”

“귀국한 모양입니다. 유은새 헌터가 아니면 이런 점수는 말이 안 됩니다.”

천창현은 팀별 점수를 보고 있었다.

팀A 124,900점.

팀B 11,570점.

팀C 182,000점.

어디까지 왔는지는 몰라도 벌써 점수상으로는 그들을 추월했다. ‘왕 게임’ 탓이 크지만 애초에 그 제도가 없으면 백만 점이라는 점수는 달성하기 힘들었다.

뺏고 뺏기는 게 룰. 이 ‘아큘라의 미로’ 던전의 기본적인 틀이었다.

그래서 천창현은 최미리내 부길드장 팀을 몰아붙였다. 그는 자신의 스킬과 알고 있는 지식을 활용해 미로 내에 있는 함정과 스테이지를 격파하고 수월하게 점수를 쌓아 갔다.

정신없이 몰아치는 맹공에 도천은 힘을 못 썼다. 점수가 쌓이는 족족 천창현이 귀신같이 뺏어 왔다.

이미 최미리내 부길드장의 수는 자신이 훤히 꿰고 있으니까.

하지만 이런 식으로 점수를 빼앗기다니. 예상외의 일이었기에 기분이 바닥을 쳤다.

‘유은새……. 죽다 살아나더니 방해되는군.’

그녀가 부활한 뒤부터 어째 순조롭게 되는 일이 없었다. 그가 짜증스럽게 혀를 찼다.

들고 있던 대검으로 달려드는 마수를 처리한 백찬민이 눈살을 찌푸리며 말했다.

“점수를 보아하니 유은새 말고도 상당한 실력자들이 있는 거 같은데.”

아무리 유은새가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혼자서 서른 명이 되는 이쪽과 비등한 점수를 들어온 지 얼마 되지 않아 쌓았을 리 없었다.

“후, 팀C의 팀원으로 예상 가는 인물이 있나?”

“아마 박도윤 팀과 오지 않았을까 싶습니다. 경호팀으로 영국에 동행했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육재희가 대답했다. 박도윤 팀이라. 도천에서 상위권에 있는 실력 있는 팀이었다. 팀원들 개개인의 실력도 뛰어났고, 능력 밸런스도 좋았으니 이쪽과 맞먹을 수밖에 없나.

‘그렇더라도 이렇게 단시간에 따라 잡혔단 말이야?’

저쪽은 우연히 팀원 밸런스가 좋았다고 하더라도 이쪽은 천창현의 조언으로 팀 인원수와 능력 밸런스까지 맞춘 상태였다. 단단히 준비한 상태에서 이리 쉽게 따라 잡히니 기분이 좋지 않을 수밖에 없었다.

키야아악!

“쯧. 버러지들이 끝도 없이 나오는군.”

다시 덮쳐 오는 마수들을 보고 가볍게 점프한 백찬민이 대검에 전격을 담아 휘둘렀다.

퍼지는 전격을 맞은 마수들이 기절하듯 쓰러졌다. 백찬민의 시선이 빠른 몸놀림으로 마수들을 잡고 있는 천창현에게 옮겨 갔다.

그웨엑!

과자집 문을 우악스럽게 뜯어먹으려는 마수의 얼굴을 통째로 잘라 버린 그가 무심히 검에 묻은 마수의 피를 휘둘러 털었다.

그의 뒤로 또 다른 마수가 접근했다. 공중에서 착지한 백찬민이 대검을 휘둘러 마수를 반 토막 냈다.

쿵 하고 떨어지는 마수의 상반신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천창현에게 백찬민이 물었다.

“천창현 헌터, 이제 어떻게 할 거지?”

“킹을 잡아야지요. 그것 외에 다른 방도는 없습니다.”

백찬민과 시선을 맞춘 천창현의 눈동자가 번뜩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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