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52)화 (52/190)

51화 – 시스템 창

던전에 들어가자마자 높다란 벽이 나타났다. 이미 한차례 전투가 벌어진 듯 마수의 시체와 혈흔이 보였다.

긴장한 채 주변을 둘러보던 은새와 일행의 눈앞에 이상한 창이 떠올랐다.

띠링!

[안녕하세요, 헌터님! 던전, 아큘라의 미로에 들어오신 걸 환영합니다. 다음의 인원을 팀C로 등록하시겠습니까? Y/N

▶유은새

▶박도윤

▶이예나

▶오종환

▶서호랑

▶마수1(조룡)

▶마수2(검은뿔표범)

▶마수3(알 수 없음)

▶마수4(알 수 없음)

▶마수5(춘티엔더야오칭)]

“이, 이게 뭐야?”

은새는 허공에 떠오른 글씨를 손으로 휘저었다. 하지만 글씨는 사라지지 않았다.

서호랑이 낯익은 글씨를 보고 눈을 반짝반짝 빛내며 다가왔다.

“이거 시스템 창이랑 비슷하지 않아요?”

“시스템 창? 그게 뭔데요?”

은새가 질문하자 서호랑이 신나서 설명했다.

“현대 판타지 소설 보면 자주 나오는 건데요, 보통 스킬 설명해 주고 레벨업 하면 알려주고 그런 거예요. 창작물에서는 주인공의 능력치를 수치로 객관화해서 보여 주는 게 일반적이거든요. 이 던전은 시스템 창이 있는 특이한 구조인가 봐요!”

“세상에. 그런 편리한 게 있단 말이에요?”

은새가 신기해했다. 박도윤과 다른 이들은 대강 알고 있었는지 평온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스템 창이 있다는 건 이 던전에 특이점이 있는 모양인데, 일단 이거 등록해야지 않을까요? 계속 화면이 멈춰 있습니다만.”

박도윤의 말에 은새가 찬찬히 문장을 살펴봤다.

[다음의 인원을 팀C로 등록하시겠습니까?]

“우리가 팀C면, A랑 B는 골드스타 길드랑 솔이네인가?”

“그런가 봐요.”

“그리고 어…….”

팀원 목록을 보던 은새의 시선이 흔들렸다. 마수 항목에 ‘알 수 없음’이 둘이나 있었다.

사람들 목록에는 없고 ‘춘티엔더야오칭’도 명확히 표시된 걸 보니 이 ‘알 수 없음’ 마수는 아마 벨키오르와 별이인 모양인데.

‘아니, 이러면 벨키오르 님의 정체가 드러날지도 모르잖아?’

인간이 아닌 게 들키면 큰일이었다. 다른 이들이 알아차리기 전에 은새가 다급하게 외쳤다.

“YES! 등록! 이거 말로 해야 하는 거예요? 버튼 눌러요?”

띠링!

[등록되었습니다.]

곧 알람음이 울리고 창이 떴다. 목록이 사라진 걸 보고 은새가 식은땀을 닦았다. 휴, 이런 복병이 있다니.

다행히 팀원 목록에서 이상함을 눈치챈 사람은 없는 듯했다. 은새가 속으로 한숨을 고를 때였다.

시스템 창 화면이 바뀌었다.

[처음 입장하신 헌터분들을 위해 규칙을 설명해 드리겠습니다. 아큘라의 미로 던전은 개개인의 실적을 ‘점수’로 환산해 ‘공략’할 수 있습니다. 다시 말해, 일정 점수에 도달해야지만 던전 공략이 완료됩니다. 그러니 헌터분들은 열심히 실적을 쌓아야겠지요? ∠( ᐛ 」∠)_]

“뭐야, 이 이모티콘?”

“이 시스템 창 누가 만들었어? 현대 패치가 너무 잘됐는데?”

“와, 이런 던전은 처음이네. 유은새 헌터, 우리 괜찮을까요? 형식이 너무 낯설어서…….”

“어떻게든 해 봐야죠. 앞서 들어간 이들도 있는데요.”

이미 들어온 이상 나갈 수도 없었다. 다부지게 대답한 은새가 시스템 창에 질문했다.

“점수는 어떻게 해야 얻을 수 있는데?”

띠링!

[다음 항목으로 점수를 획득할 수 있습니다.

▶마수 사냥(마리당 10점)

▶스테이지 클리어

▶특별 퀘스트 수행

▶왕 게임에서 왕이 되어 다른 팀의 점수 빼앗기]

“왕 게임……? 이거 우리가 아는 그 왕 게임 맞아?”

“다른 팀 점수 뺏기가 가능하면 골드스타가 압도적으로 불리한 거 아닌가요? 부길드장님 팀과 저희가 거기만 노릴 텐데.”

“그렇게 간단할 리 있나요. 분명 함정이 있을 거예요.”

“함정은 무슨 함정. 진지하게 좀 생각해라.”

서호랑이 유명 애니메이션 속 탐정 꼬맹이처럼 안경을 추어올리는 시늉을 했다가 팀원들한테 까였다.

하지만 시스템은 서호랑의 손을 들어 줬다.

[맞습니다! ‘던전 공략’에 필요한 점수는 개개인의 점수를 합산하되, 왕 게임으로 뺏을 수 있는 건 개인의 점수입니다.]

“그 말은 다시 말해 실적이 높은 사람이 지목되면 어쩔 수 없이 그만큼의 점수를 뺏긴다는 소리네요. 이거 전술을 잘 짜야겠습니다.”

박도윤이 심각하게 말했다. 팀원 몇몇이 이해하지 못한 표정이자 그가 설명을 보탰다.

“예를 들어 내가 만 점을 가지고 있고 서호랑이 오백 점을 가지고 있는데, 골드스타 길드 측에서 나를 지목하면 팀 점수에서 만 점이 깎이는 거라고.”

팀원들의 안색이 굳었다. 다른 팀들이 박도윤이나 은새 같은 점수가 높을 것 같은 사람만 지목한다면 계속해서 높은 점수를 뺏길 수 있었다.

그렇다면 아무리 점수를 쌓아도 부질없는 게 될 텐데.

생각보다 어려울 것 같은 느낌에 팀원들의 사기가 조금 떨어졌다. 시스템 창을 보고 있던 은새가 질문을 던졌다.

아직 가장 중요한 걸 듣지 못했다.

“던전 공략에 필요한 점수는 몇 점이야?”

[1,000,000점입니다!]

“뭐? 배, 배, 백만? 가만있어 봐. 마수 사냥만으로 백만 점을 모으려면 몇 마리를 잡아야 하지? 어, 십만 마리?”

“미쳤다. 이래서 남의 팀 점수를 뺏어 와야 하는구나.”

“사악한 시스템! 역시 시스템이 최종 흑막이었어!”

점수를 확인한 팀원들이 깜짝 놀라며 머리를 부여잡았다. 십만 점도 아니고 백만 점. 몇 시간, 아니 며칠이 걸릴지 모를 일이었다.

팀원들의 상태를 확인한 박도윤이 박수를 쳐 분위기를 환기하며 말했다.

“서호랑, 그만 현실로 돌아오고. 유은새 헌터, 일단 진행하시죠. 더 이상 지체하면 다른 팀과 거리가 벌어집니다.”

“그러네요. 슬슬 출발하죠.”

골드스타 길드와 솔이네가 들어간 지 벌써 상당 시간이 지난 상태였다. 은새가 턱을 쓰다듬었다.

“우리가 다른 팀의 점수를 확인할 수 있어?”

[가능합니다! 현재 스코어, A팀 130,780점! B팀 8,100점입니다!]

“뭐야! 어떻게 이렇게 차이가 나?”

“A팀이 누구고 B팀이 누구야? 설마, 최 부길드장님이 있는데 점수가 이렇다고?”

“에이, 아니겠지. 우리가 A팀이겠지.”

하지만 만약 아니라면……? 은새와 박도윤이 흔들리는 눈동자로 서로를 바라봤다.

대체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거야?

***

“으악, 망할 미로 던전!”

솔이 비상용으로 들고 다니는 단검으로 마수의 목을 따며 소리쳤다. 평소라면 이능으로 쓸고 다녔겠지만 현재 그녀는 불의 이능이 봉인된 상태였다.

짜증 내며 고전하는 그녀를 발견한 미리내가 유하에게 SOS를 쳤다.

“유하야, 솔이 좀 도와줘!”

“으이구, 저 애물단지!”

“조용히 해라, 진짜! 나도 이럴 줄은 몰랐다고!”

솔은 S급으로 각성한 이후 현재 최고로 무력감을 느끼고 있었다.

던전에 입장할 때까지만 해도 그녀는 느낌이 좋았다. 미로 던전이라고 해도 결국 마수를 때려잡는 건 똑같았으니까.

단지 함정이 많고 길을 잃으면 영영 같은 자리를 맴돌 뿐이었다. 하지만 도천의 두뇌 최미리내가 있으니 솔은 아무런 걱정이 없었다.

그에 더해 미리내는 ‘위험 감지’ 스킬이 있어서 웬만한 함정은 다 피해 갈 수 있었다.

하지만 돌연 시스템 창이 나타났다. 생전 듣도 보도 못한 희한한 규칙을 들고.

키야악!

“윽! 아…… 진짜!”

마수의 공격을 아슬아슬하게 피한 솔의 이마에 핏대가 섰다.

“이게 부○마블이냐! 열쇠 카드는 뭔데. 아니, 스테이지 클리어 실패 벌칙으로 몬스터 웨이브면 됐지, 속성 봉인은 왜 하느냐고!”

스테이지가 끝나고 지급된 열쇠 카드. 좋은 것인 줄 알고 열었는데 거기엔 ‘1인 한 타임 속성 봉인’이 쓰여 있었다.

그래서 솔이 현재 이 고생을 하는 것이었다.

[호오, 시스템에 불만이 있으신가요? 건의 사항을 보내 주실 주소는…….]

“거짓말하지 마! 아까도 그 소리 했거든!”

[그랬나요? ◡( ๑❛ᴗ❛ )◡]

“으, 얄미워!”

솔이 득득 이를 갈았다. 이 던전은 그간 그들이 겪어 본 어떤 곳과도 달랐다.

일단 공략에 필요한 ‘점수’. 그리고 던전에 들어온 헌터들을 팀으로 묶어 경쟁시키는 구조.

생각보다 까다로운 스테이지들도 문제였지만, 특히 ‘왕 게임’이 악랄하기 그지없었다.

미리내와 솔, 인찬과 유하가 알뜰하게 모은 점수를 골드스타 길드에서 홀라당 빼먹었다.

미리내의 계책도 소용없었다. 골드스타 쪽에 누가 붙어 있는 건지 이쪽의 머릿속을 훤히 들여다보는 것처럼 높은 점수를 가진 팀원만을 골라 알뜰살뜰하게 점수를 뺏어 갔다.

덕분에 이쪽은 개고생만 하고 있었다.

솔이 욕을 하는 소리를 들었는지 시스템 창이 떠올랐다.

띠링!

[그런 말씀 하시면 서운해요. 저는 헌터님들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걸요. 。:゚(;´∩`;)゚:。]

“말만 하지 말고 쓸모 있는 보상을 줘!”

[어쩔 수 없네요. 히든 스테이지, ‘티끌 모아 태산’!]

그우우우어-

크야악!

키야아악!

“으악! 뭐야?”

스테이지 곳곳에서 미친 듯이 마수가 쏟아져 나왔다. 마치 던전 브레이크를 방불케 했다.

이미 있는 마수들을 상대하고 있던 일행의 낯빛이 하얗게 질렸다. 그걸 아는지 모르는지 시스템창이 떠올랐다.

[자, 그럼. 본격적으로 달려 볼까요? (๑>ڡ<)☆]

상큼한 이모티콘에 모두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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