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50)화 (50/190)

49화 – 혹시 아까 그 사람

‘그런데 던전 브레이크를 어떻게 예측한 거지?’

오늘 대전에서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할 거라는 걸 예고한 게 천창현이었다. 던전 지형이 미로라는 것도.

그래서 골드스타 길드는 사전에 대비할 수 있었다.

물론 처음부터 믿은 건 아니고, 밑져야 본전이라는 식으로 준비했다. 그런데 설마 진짜로 맞을 줄이야.

백찬민은 천창현이 ‘예지’와 관련된 스킬을 가지고 있는 게 아닌지 의심했다. 만약 그렇다면 럭키였다.

예지 스킬을 가진 헌터는 드물고 귀했으니까.

‘매개는 꿈? 아니면 영국의 스텔라 본처럼 초월적인 존재의 소리를 듣는 건가? 정확도는? 쿨타임은 어느 정도지?’

뭐, 가까이 두고 살펴보면 알게 되겠지. 백찬민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천창현을 응시했다.

오늘 천창현은 큰 활약을 했다. 그가 밝힌 헌터 등급은 A급.

A급이더라도 경험치에 따라 능력이 천차만별이건만 천창현은 백전노장처럼 전투를 치렀다.

빠른 몸놀림으로 마수들을 농락하고 특이한 형태의 검을 휘두르며 마수들을 도살했다. 머리가 비상하고 실력이 좋은 건 확실했다.

‘저런 타입은 가까이 두고 쓰거나, 미리 싹을 제거해야 해.’

백찬민은 전자에 무게를 실었다. 통제하기 어렵다면 그때 가서 제거해도 늦지 않는다.

“소모품 다 챙겼으면 던전에 들어간다!”

백찬민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그의 목소리를 듣고 준비를 끝낸 골드스타 길드의 핵심 인재들이 던전으로 들어가는 입구에 섰다.

“야, 치사하게 먼저 가냐!”

남궁솔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으나 무시했다. 백찬민은 이 던전은 자신들의 것이 될 것이라 굳게 믿었다.

***

은새와 일행이 현장에 도착한 건 3차 웨이브가 시작된 직후였다. 오면서 핸드폰을 확인하니 미리내에게서 뒤를 잘 부탁한다는 메시지가 와 있었다.

은새가 허공에서 아래를 봤다. 새카맣게 몰려든 마수들을 헌터들이 상대하고 있었다. 어찌 노력은 하고 있으나 힘에 부치는 게 보였다.

“골드스타 길드가 안 보이네?”

골드스타가 가장 먼저 현장에 도착했다는 뉴스를 보았으니 아마 던전 안으로 들어간 듯싶었다. 그렇게 되면 선두로 던전 공략에 나선 것이 골드스타와 도천, 두 곳이 된다.

눈을 굴리던 은새가 그나마 다른 곳에 비해 마수의 수가 적은 몇몇 곳을 발견했다.

혜화 길드의 양희진 헌터와 박지연 헌터, 강도열 헌터가 고군분투하는 게 보였다. 그들뿐 아니라 익숙한 얼굴들이 제법 보였다.

‘어라, 조일수 헌터도 왔네.’

그는 지긋한 나이로 강자 계열에 오른 자였다. 하지만 나이 탓에 은퇴하고 지방으로 내려갔다고 들었는데.

‘아 설마, 그게 대전이었나.’

평화의 도시 대전은 은퇴한 헌터들에게 안락한 보금자리가 되었다. 그것도 오늘로 깨졌지만.

은퇴했더라도 강자였던 그가 갑작스레 터진 던전 브레이크에 나서지 않을 리 없었다. 조일수 헌터는 비슷한 연배의 1세대 헌터들과 힘을 합쳐 난관을 극복해 갔다.

은새는 현장에서 조금 떨어진 곳에 도다리를 착륙시켰다. 땅에 발이 닿기 무섭게 서호랑이 헐레벌떡 우리를 열고 나왔다.

“주, 죽을 뻔했다……!”

헉헉거리며 바닥을 기어 다니는 그를 내버려 둔 채 하늘이가 기지개를 켰고, 박도윤 헌터와 다른 팀원들이 서둘러 전투에 들어갈 준비를 했다.

인천 공항에서 서울까지, 서울에서 대전까지 사람들을 매달고 비행한 도다리에게 은새가 포션을 먹여 주었다.

주변 상황을 확인한 그녀가 지시를 내렸다.

“박도윤 팀장님은 팀원들과 같이 움직이세요. 그리고 어느 정도 소강상태가 되면 제 쪽으로 오세요!”

“네. 알겠습니다!”

박도윤이 팀원들을 이끌고 사라졌다. 서호랑도 뒷덜미가 잡혀 질질 끌려갔다.

은새가 벨키오르를 쳐다봤다.

“벨키오르 님은 여기 계실래요?”

“난 됐으니 그대는 그대의 할 일을 해라. 별을 데려갈 건가?”

[저 갈래요!]

아기 드래곤이 포르르 날아서 은새 옆으로 갔다. 제발 자신을 데려가라고 금색 눈을 초롱초롱 빛냈다.

“……네! 봄이를 부탁드릴게요!”

워낙 별에게 약한 은새였다. 별은 던전 경험이 있으니 괜찮겠지.

은새는 별과 도다리, 하늘이를 데리고 고전하는 헌터들 사이로 뛰어들었다.

삐? 삐!

은새가 멀어지자 얌전히 벨키오르의 품에 안겨 있던 봄이 삐삐 울었다. 날아가려는 봄을 벨키오르가 붙잡았다.

“너는 여기 있어라. 능력을 제대로 다룰 줄 모르면 방해가 될 뿐이니.”

삐빗!

봄이 투정을 부렸다. 자신은 그런 민폐쟁이가 아니라고 부정하는 듯했다.

벨키오르가 봄과 실랑이를 하는 동안 은새는 육식 독룡 베일 카라스의 봉을 들고 날아다녔다. 그런 그녀의 앞과 옆, 뒤에서 도다리와 하늘이, 별이 보조했다.

바글바글하던 마수들 틈에 길이 생겼다. 한쪽으로 마수의 시체가 쌓여 갔다. 그 모습을 본 헌터들의 입이 떡 벌어졌다.

“와, 유은새……. 유은새가 오니까 한 번에 훅 쓸어 버리네.”

“도천 길드 S급들 왔을 때도 그랬지만 진짜 어마어마하다. 솔직히 유은새 혼자서 군단을 이끄는 것이나 다름없잖아.”

“누가 유은새더러 마수빨이라고 했냐? 나 봉으로 마수 쥐어 패는 거 처음 봄.”

“나도. 저게 저렇게 쓰는 무기였냐?”

그들이 경외에 차 수군거렸다.

은새가 부패균을 목젖에 키우는 마수, 토토클의 옆구리를 사정없이 날려 버렸다.

퍽! 철푸덕.

다른 마수와 부딪쳐 토토클이 축 늘어졌다.

휘익!

키약-!

손목으로 봉을 가볍게 돌린 은새가 뒤이어 봉을 하늘로 던졌다. 비행형 마수가 숨어서 도심으로 날아가려다가 은새의 봉을 맞고 떨어졌다.

떨어진 마수를 별이 마법으로 전류를 흘려 기절시켰다.

한편, 그런 은새의 활약을 벨키오르가 보고 있었다. 그는 은새가 싸우는 걸 직접 보는 건 처음이었다.

‘움직임이 굉장히 효율적이군. 신체 능력을 백분 활용하고 있어. 게다가 시야도 넓고 무기도 잘 다루는군.’

조금이라도 보는 눈이 있는 사람이라면 알 수 있었다. 그녀의 전투 센스가 얼마나 훌륭한지.

일전의 던전 공략 이후로 제대로 된 전투는 오랜만이라 은새는 고삐가 풀려 버렸다. 생기 넘치는 그녀의 모습을 보는 벨키오르의 눈가에 웃음기가 어렸다.

그때, 무방비한 그를 노리고 뒤에서 마수가 입을 쩍 벌린 채 접근했다.

크샤아아!

삐-!

마수의 인기척을 느낀 봄이 벨키오르의 품에서 버둥거렸다. 그런 봄을 무심한 손길로 토닥인 벨키오르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손을 살짝 휘저었다.

“방해하지 마라.”

쉬익-!

날카로운 바람이 마수를 정확히 반으로 갈랐다. 소리도 내지 못하고 죽어 버린 마수에 봄이 눈을 반짝이며 벨키오르를 바라봤다.

삐!

“별거 아니다.”

‘대단해!’ 하고 흥분한 봄이 분홍빛으로 물든 꼬리를 파닥였다.

삐이, 삐.

벨키오르의 품에서 벗어난 봄이 당차게 울었다. 마치 자신도 벨키오르처럼 할 수 있다는 듯 고양된 표정으로 그를 바라봤다.

“넌 아직 이르다. 제대로 힘을 다루는 법을 익혀야 해.”

삐, 삐!

“그녀가 걱정할 거다. 얌전히 있어라.”

삐이…….

자기도 할 수 있다며 난리 치던 봄이 벨키오르의 말에 풀이 죽어 고개를 숙였다. 다시 얌전히 그에게 안긴 봄을 벨키오르가 무심한 손길로 쓰다듬었다.

조용해진 주변을 확인한 벨키오르가 은새의 위치를 확인했다. 자리를 옮기는 그들을 멍하게 보고 있던 헌터들이 멎었던 숨을 내뱉으며 웅성거렸다.

“뭐, 뭐야? 저 사람 누군데?”

“어떻게 한 거야?”

벨키오르의 흐릿한 존재감 때문에 헌터들은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몰랐다. 남은 거라곤 깔끔하게 두 동강이 난 마수뿐이었다.

대체 어떤 능력으로 이런 일을 한 거지?

얼떨떨하게 마수의 잔해를 바라보던 헌터들 중 한 명이 입을 열었다.

“혹시 저 사람, 유은새 헌터 상대 아니야? 그 마법사?”

인식 저하 마법의 효과는 지속되고 있었으나 벨키오르가 뿜어내는 마력 때문인지 존재감이 커져 점점 그를 알아채는 헌터들이 많아졌다.

헌터들이 그의 존재를 인식하자 조금 더 선명하게 얼굴이 보였다.

창백하지만 매끈한 피부와 날렵한 콧날, 작은 얼굴에도 또렷한 이목구비가 누가 봐도 미친 외모였다.

보는 게 황송할 정도. 쉽게 볼 수 없는 하늘색 장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보고 있던 헌터들이 정신을 차리고 수선을 떨었다.

“그래, 그 마법 이능 헌터! 와, 실력이 엄청난가 봐.”

“역시 마법이 맞았어! 저 존재감을 어떻게 아무도 눈치 못 챌 수 있냐?”

“아, 저래서 유은새 헌터가…….”

“넌 또 뭘 납득하고 있는데.”

어쩐지 현실을 깨닫고 슬퍼하는 남성 헌터들이 많았다. 모두 은새의 팬이었던 자들이었다.

‘성가시군.’

시선이 몰리자 벨키오르는 인식 저하 마법을 강하게 발동할까 하다가 그냥 두었다.

저들이 자신에게 다가오는 것도 아니고 그가 노출되어서 곤란한 건 정부의 압박을 받을 한우리이지, 벨키오르가 아니었다.

그와 상관없는 한낱 인간들을 신경 쓸 필요는 없었다. 이리저리 마수의 공격을 조잡스럽게 피하는 헌터들에게 무심한 눈빛을 보낸 벨키오르가 냉정히 몸을 돌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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