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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48)화 (48/190)

47화 – 대전 던전 브레이크

은새는 집에 들르지 않고 바로 길드로 향했다. 출발하기 전 벨키오르에게 ‘어떻게 하시겠냐’고 묻자 그는 잠시 생각한 뒤 따라가겠노라 답했다.

은새는 그가 따라오는 것에 의아했지만 결국 영국에 갔던 인원 그대로 강남구 삼성동에 위치한 도천 길드 빌딩에 도착했다.

경호 인력도 있었으니 은새가 데리고 온 인원만 해도 상당했다.

“은새야, 한국에 들어오자마자 오게 해서 미안해.”

길드장실에서 마주한 우리의 안색이 좋지 않았다. 한 차례 헌터 파견을 마쳤는지 길드는 한산했다.

급하게 전화를 받으러 뛰어다니는 이들은 다 사무직이었다.

“박도윤 팀장과 팀원들도 수고 많았…….”

우리가 고개를 돌렸다가 별과 봄을 안고 서 있는 벨키오르를 발견하고 움찔했다. 그가 다급하게 은새에게 눈짓했다.

‘왜 저 사람이 여기 있어?!’

은새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나도 몰라.’

그녀도 왜 그가 이곳에 왔는지 의문이었다. 벨키오르가 도천 길드에 온 것은 처음이었다. 영국에 다녀와서 뭔가 심경의 변화가 생겼나.

두 사람이 눈빛을 주고받는 걸 눈치챘으면서도 벨키오르는 담담한 표정으로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는 빌딩 입구에 들어설 때부터 계속 관찰하고 있었다. 이곳이 은새의 일터.

그동안은 은새 주변에 별 관심을 가지지 않았는데, 스텔라와의 만남으로 조금 궁금해졌다.

천체의 소리를 듣는다는 스텔라 본. 그건 벨키오르가 봤을 때 인간치고는 굉장히 특이한 능력이었다.

인간이 자연을 관장하는 드래곤이나 가질 법한 능력을 지니다니.

그러고 보면 은새의 능력도 귀한 축에 속했다. 이 세계에는 그런 자들이 더러 있다는 것인가.

우리는 벨키오르가 신경 쓰였으나 애써 무시했다. 박도윤과 그의 팀원들이 보고 있었다.

길드장이 그를 과하게 의식하는 기색을 보이면 위엄이 떨어진다. 우리는 다른 이들이 있는 곳에서만이라도 면을 세우고 싶었다.

알량한 남자의 자존심이었다. 벨키오르를 있는 듯 없는 듯 대하는 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이었다.

은새가 재촉하듯 질문했다.

“대체 무슨 일이야? 던전 브레이크라니.”

“직접 보는 게 좋겠다.”

우리가 태블릿 피시로 동영상 하나를 재생시켰다. 현재 진행 중인 뉴스 속보였다.

[……던전에서 튀어나온 마수들이 건물을 파괴하고 사람들을 해하고 있습니다! 대전 지역 헌터와 전국 각지에서 파견된 헌터들이 힘을 합쳐 막고 있지만 마수 하나하나가 A급 이상이라 피해가 만만치 않습니다. 대전 지역에서 A급 이상의 던전이 발생한 것은 이번이 처음으로 피해 규모는 약…….]

화면 속 리포터의 뒤로 먼지와 잔해가 날아다녔다. 크고 작은 폭발음과 피를 흘리는 사람들의 비명, 건물이 무너지는 장면.

은새는 심각한 표정을 지었다.

‘스텔라 씨가 말한 거대한 폭풍이 이건가?’

아닐 것이다. 냉정하게 생각해 봤을 때 던전 브레이크가 ‘세계’를 위협할 정도로 위험한 사안은 아니었다.

드물기는 해도 있어 온 일이니까.

“대전에서 던브가 터졌다니, 별일이네.”

“그러니까.”

대전은 격변의 시대 이전부터 평화의 도시로 불릴 만큼 큰 재해 없이 평탄한 지역이었다.

이후에도 마찬가지였다. 그래서 대전 출신 헌터들은 성격이 느긋하기로 헌터계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가끔 그들과 파티를 짜면 속 터진다고 성토하는 이들도 있을 정도였다.

만약 그런 일이 생기면 ‘그렇게 급하면 어제 잡지 그랬슈.’ 하고 충청도식 개그를 치는 게 그들이었다.

우리가 동영상을 끄고 다시 은새에게 말했다.

“하여튼 그래서 지금 대전으로 가 줄 수 있어? 박도윤 팀도.”

“그렇게 손이 급해? 이미 갈 사람들은 다 갔을 거 아니야.”

“던전 구조가 미로래.”

“아, 그래서…….”

은새는 금세 납득했다. S+급 미로 던전이라. 안에 뭐가 도사리고 있을지 모르니 일단 들어갈 수 있는 사람은 다 들어가는 모양이었다.

은새는 머릿속으로 필요한 것들을 떠올렸다.

함정 탐지 아이템도 필요하겠고, 미리내가 없으니 포션도 넉넉히 챙겨야 하고, 며칠이나 던전 안을 헤맬지 모르니 식량도, 여분의 장비도 있어야 했다.

“솔이랑 미리내, 인찬이랑 유하는 간 거지?”

“걔네는 먼저 미로 안으로 들어갔어. 만나기 어려울지도 모르겠다.”

“OK. 그럼 도윤 팀장이랑 움직일게.”

우리에게 확인을 끝낸 은새가 몸을 돌렸다.

“벨키오르 님은 어떡하실래요? 저 바로 대전으로 가야 할 것 같은데.”

볼○모트의 이름을 부른 것처럼 그곳에 모인 인원이 흠칫거렸다.

유은새 헌터, 왜 그런 걸 질문을 하세요! 서호랑이 속으로 비명을 질렀다.

당연하다는 듯 벨키오르가 대답했다.

“동행하지.”

“영국 외출이 즐거우셨어요? 웬일로 오래 밖에 나와 계시네.”

박도윤 팀원들의 속마음도 모르고 은새는 밝게 웃음 지었다. 그녀의 얼굴을 지그시 응시하던 벨키오르가 눈썹을 찌푸렸다.

“좋지 않은 느낌이 든다.”

“……!”

우리와 은새가 시선을 마주쳤다. 벨키오르가 누구던가.

저쪽 세계에서 최상위 존재인 드래곤이었다. 스텔라도 인정한 고귀하고 영험한 존재.

벨키오르의 말은 허투루 들을 게 아니었다. 특히 부정적인 내용이라면.

두 사람의 대화를 듣고 있던 우리가 무기를 챙겨 들었다.

“은새야, 나도 가야겠다.”

“음…… 너 안 가고 남아 있는 이유가 있던 거 아니었어?”

“중국에서 압박이 시작됐어. 정부가 하도 우는소리를 해서. 던전에 들어가면 며칠은 못 나오니까 뭔 일이 터져도 바로바로 대응할 수 없잖아.”

“그럼 됐어. 벨키오르 님이 있으니까.”

은새 품에 안겨 있던 별이 짧은 팔을 번쩍 들었다.

[뉴나! 별이도 있어요!]

“맞아! 우리 별이도 있지!”

전음이라 은새밖에 듣지 못해서 우리와 박도윤 팀은 갑자기 은새가 왜 별을 끌어안는지 이해하지 못했다.

삐!

봄이 자신도 껴 달라는 듯 별과 은새 사이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아이들을 양팔로 꽉 안은 은새가 따뜻하고 부드러운 느낌을 만끽했다.

잠시 뒤 은새가 일행을 이끌고 길드장실을 나섰다.

“그럼 다녀올게, 우리야! 우리 집 마수들 좀 부탁해.”

“걱정 마.”

어두운 안색으로 우리가 손을 흔들어 배웅했다. 은새는 똑같은 말을 되돌려주고 싶었다. 걱정하지 말라고.

핸드폰으로 헌터지원팀에 필요한 물자를 주문하면서 은새가 손뼉을 마주 쳤다.

‘아, 스텔라 씨 전언을 말해 준다는 걸 깜빡했네.’

지금은 보는 눈도 많으니 다녀와서 잊지 말고 보고해야겠다. 장차 미래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친구들도 알고 있어야 한다.

논의하고, 대책을 마련해야지.

준비를 마친 은새와 벨키오르, 박도윤 팀이 도천 길드 빌딩 앞에 섰다.

“저희는 어떻게 이동합니까?”

박도윤이 질문했다. 서호랑은 속으로 간절히 빌었다. 여기 올 때처럼 마수용 우리에 갇혀 도다리에게 짐짝처럼 옮겨지고 싶지 않다고.

“도다리가 들어다 줄 거예요. 그게 빠르니까요.”

“차라리 뛰어가겠습니다!”

저도 모르게 서호랑이 외쳤다. 악몽이 되살아나고 있었다.

공항에서 길드 건물까지 오는데 서호랑은 죽을 뻔했다. 물론 도다리가 들어서 옮겨 주는 게 몇 배나 빠르고, 안전하다는 건 알았다.

특히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한 긴급 상황에서는. 하지만 서호랑은 고소공포증이 있었다.

은새가 고개를 갸웃하며 물었다.

“그 거리를 뛰어오시겠다고요?”

“아닙니다. 유은새 헌터. 빨리 이동하는 게 좋겠습니다.”

“으브븝…… 팀장님!”

박도윤이 사색이 된 서호랑의 입을 틀어막고 하늘이가 먼저 들어간 마수용 우리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 나머지 팀원들도 뒤따랐다.

잠시 그들 사이에 실랑이가 있었다. 하지만 막내는 결국 다른 팀원들에 의해 제압됐다.

막내온탑 그런 게 어디 있어. 서호랑이 눈물을 글썽였다.

은새가 허허 웃다가 도다리의 등에 올라탔다. 이미 벨키오르와 별, 봄이 타고 있었다.

“출발할게요!”

꾸꾸!

성체로 변화한 도다리가 길게 울었다. 대전 S+급 미로 던전에 진입하기 5시간 전이었다.

***

대전 던전 브레이크 발생 지역. 수많은 헌터가 마수와 뒤엉켜 싸우고 있었다. 그들 중 눈에 띄는 활약을 펼치는 건 골드스타 길드의 삼인방이었다.

전방으로 나선 백찬민이 전격을 두른 대검을 휘둘렀다.

끼에에엑-!

AA급 마수 트란퀼리나가 갈고리 모양의 앞다리로 그의 공격을 막아 냈다.

“칫.”

백찬민이 혀를 차며 물러나자 뒤에서 달려온 육재희가 바람의 칼날을 날려 보냈다. 곤충의 날개와 비슷한 선명하게 비치는 익막이 찢겨 나갔다.

대기하고 있던 강희수가 트란퀼리나의 등을 노리고 이능을 담은 검을 내질렀다. 하지만 시야가 넓은 마수는 검격을 피했다.

크아아악!

성이 난 트란퀼리나가 피어를 내뿜었다. 넓고 강하게 퍼진 피어는 공기 중에 섞여 짓누르듯 헌터들을 압박했다.

등급이 낮은 헌터들이 공포에 질려 떨다가 부상을 당했다.

키에엑!

마수가 몸을 뒤틀자 도로가 뜯겨 나가고 건물이 부서졌다. 무너져 내리는 잔해를 백찬민이 혀를 차며 피했다.

“성가시게!”

그가 대검을 휘둘러 어마어마한 뇌전을 일으켰다. 하늘에서 쏟아진 뇌우가 일대를 휩쓸었다.

몸부림치던 트란퀼리나는 물론 미처 피하지 못한 헌터들까지 피해를 봤다.

하지만 백찬민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없었다. 던전 브레이크라는 재난 상황에서 제 목숨은 스스로 간수해야 했다.

까맣게 타 버린 트란퀼리나를 보고 헌터들이 수군거렸다.

“와, 역시 전격마황…….”

“S급이 다르긴 다르구나. 골드스타 길드가 여기 있는 마수들 반 이상 잡았지?”

“어. 그런데 어떻게 저렇게 빨리 왔지? 도천 길드는 아직인데.”

대전이 그나마 절망적인 상황에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건 골드스타 길드 덕분이었다. 던전에서 A급 이상의 마수들이 까맣게 쏟아지기 시작한 직후 그들이 도착했다.

멀리서부터 홍염룡을 타고 날아오던 솔이 백찬민과 육재희, 강희수를 발견했다. 그녀가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다.

“뭐야! 어떻게 이렇게 빨리 온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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