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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키운 마수가 드래곤을 물고 왔다 (47)화 (47/190)

46화 – 한국에 큰일이 일어났을 거예요

은새와 일행은 스텔라의 집에서 사흘을 머물렀다.

처음에 낯을 가리던 별은 새로운 환경이 신기한지 금방 눈을 반짝이며 봄이와 이곳저곳을 돌아다녔다. 도다리와 하늘이도 정원에서 늘어져서 푹 쉬었다.

은새는 스텔라의 집에서 멀리 나가지 않고 그 근처만 돌아보았다. 하지만 아무리 인구가 적은 동네라도 은새를 알아보는 사람은 있어서 곤란한 상황이 발생했다.

“유은새 헌터?”

“오! 헌터 유은새!”

“아…….”

점점 사람들이 은새를 에워쌌다. 그녀는 한동안 그들에게 잡혀 있어야 했다.

한 블록을 지나자 또 사람들이 몰려왔다. 또 같은 일이 생기려 하니 벨키오르가 마력을 피워 올렸다.

금색 마력이 은새의 손등에 머물렀다.

“뭐 하신 거예요?”

“그대에게도 인식 저하 마법을 걸었다.”

“와, 그럼 저도 안 보이는 거예요?”

“안 보이는 건 아니지. 존재감이 희미해질 뿐.”

은새는 그 말만 믿고 당당히 거리를 활보했다. 봄을 품에 안은 은새가 놀라워했다.

“우와, 정말 아무도 저를 못 알아보네요!”

S급 헌터로 발현한 이후 줄곧 사람들 시선 속에서 살아온 은새였다. 한국에서는 밖에서 하는 잠깐의 쇼핑조차 힘들었다.

모자나 안경, 외투로 무장하지 않았는데도 아무도 자신을 알아보지 못하다니. 이런 해방된 기분은 오랜만이었다.

순수하게 기뻐하는 은새를 보며 벨키오르가 무심하게 툭, 호의를 내비쳤다.

“필요하다면 너를 노리는 자들이 절대 너를 못 찾게 해 줄 수 있다.”

“음, 말씀은 고마워요. 그런데 그랬다간 주변 사람들이 다칠 수 있어서요.”

은새가 잠깐 과거를 더듬는 듯한 얼굴을 했다. 순간 그녀의 좋지 않은 표정을 본 벨키오르가 다시 물어보려 입을 뗐을 때였다.

얌전히 안겨 있던 봄이 몸을 버둥거리며 아이스크림 가게를 향해 삐삐 울었다.

“봄이 아이스크림 먹고 싶어? 알겠어, 잠깐만 기다려. 별이는 무슨 맛?”

[딸기 맛이 죠아요!]

벨키오르에게 업혀 있던 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은새가 별의 둥근 뒤통수를 쓰다듬어 주고 벨키오르에게 한쪽 눈을 찡긋했다.

“벨키오르 님 것은 적당히 사 올게요!”

그는 됐다고 하려다가 관두었다. 은새는 별을 챙겨 줄 때 그러지 않아도 되는데 매번 벨키오르도 챙겼다.

받아 주는 자신이 문제라는 걸 그 스스로도 자각하고 있었다. 그냥 됐다고 거절하면 되는 것을. 하지만 은새에게는 왜 그런지 몰라도 매정하지를 못했다.

잠시 뒤 은새는 콘으로 된 아이스크림 4개를 각각 2개씩 양손에 들고 왔다. 벨키오르가 걸음을 빨리해 다가가 2개를 받아 들었다.

별의 것은 분홍색 딸기 맛. 벨키오르의 것은…….

“……?”

무지개색이었다. 은새를 통해 인간 세계를 학습한 벨키오르지만 무슨 맛인지 감이 영 안 왔다.

“무슨 맛이지?”

“드셔 보세요!”

옆에서 기대하는 시선이 느껴졌다. 벨키오르는 어쩔 수 없이 한쪽 팔로 별을 업고 무지개색 아이스크림을 베어 물었다.

“…….”

입 안에서 탄산 캔디가 톡톡 튀었다. 벨키오르가 미간을 좁힌 채 조심스럽게 혀를 굴렸다.

맛이 미묘했다. 이걸…… 무슨 맛이라고 하지? 이도 저도 아닌 차가운 설탕물 맛.

“어때요? 재미있죠?”

은새가 맑은 웃음을 터트렸다. 그녀의 웃는 얼굴을 보자 벨키오르는 아무래도 상관없어졌다.

처음 접한 탄산 캔디의 불쾌함도, 미묘한 맛도. 은새의 말대로 조금 흥미로운 듯도 했다.

“별아! 아이스크림 흐른다!”

[엣.]

딸기 맛 아이스크림을 냠냠 먹고 있던 별의 손목으로 분홍빛 액체가 흘렀다. 은새가 기겁하며 닦아 줬다.

하지만 벨키오르의 등에 묻히고 말았다. 팔자 눈썹을 한 은새가 벨키오르의 눈치를 살폈다.

“이거 어떡하죠?”

“괜찮아.”

금색 마력이 그를 휘리릭 휘감았다가 사라졌다. 그러자 점점이 묻었던 얼룩이 감쪽같이 사라졌다.

깔끔한 처리에 은새가 가볍게 웃음을 터트렸다.

“편리하네요. 세탁기가 할 일이 없겠어요.”

그들은 벤치에 앉아 아이스크림을 마저 먹었다. 은새는 초코 맛, 봄은 바닐라 맛이었다.

[배불러요.]

별이 반쯤 먹은 아이스크림을 내려놓았다. 스텔라의 집에서 식사를 잔뜩 하고 간식까지 챙겨 먹었으니 배가 부를 만도 했다.

별이 먹다 남긴 것을 당연하다는 듯 벨키오르가 먹어 치웠다. 원래 드래곤은 남이 입 댄 것에 절대 손대지 않는다.

하지만 언젠가, 은새가 별이 먹다 남긴 걸 자연스럽게 먹는 모습을 보고 벨키오르가 질문했다.

‘그걸 그대가 왜 먹지?’

‘네?’

‘남긴 건데 굳이 먹는 이유가 있나?’

‘버리긴 아깝잖아요. 그리고 별이가 남긴 거니까 상관없어요.’

별이니까.

자신이 낳은 아이는 아니지만 본인이 돌보는 아이이기 때문에 상관없다는 은새의 말은 벨키오르의 가슴속에 깊이 박혔다.

그리고 아깝다는 말. 밥을 사랑하는 K국 국민으로서 은새는 별 뜻 없이 한 말이지만 그 말이 어떤 오해를 불러일으켰다.

벨키오르가 가만히 은새를 내려다봤다.

‘못 먹고 컸나?’

그는 함부로 은새를 동정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날부터 식탁에 올라오는 음식이 더욱 호화로워졌다.

또한 별이 남긴 것은 벨키오르도 함께 먹게 되었다. 은새의 얘기를 듣고 보니 자식이 남긴 게 그렇게까지 더럽게 느껴지지 않은 까닭이었다.

은새도 하는데 자신이라고 못 할 이유가 없지 않은가. 그녀와 같이 지내는 시간이 늘어날수록 벨키오르는 전에는 상상도 못 할 일들을 차츰 해 나갔다.

다시 거리를 걸으며 벨키오르가 질문했다.

“아까 한 말, 무슨 뜻이지?”

“네? 뭐가요?”

“주변 사람들이 해를 입을 수 있다는 말.”

“아. 그거요?”

은새가 대수롭지 않다는 투로 말했다. 옛날 일이었다.

“예전에 저를 다른 나라로 이민시키려고 계략을 짰던 사람들이 있었어요. 제가 무시로 일관하자 제 친구들을 건드리더라고요.”

다시 생각해도 화가 났다. 가장 큰 피해를 본 게 별다른 배경이 없는 미리내와 인찬이었다.

해당 국가들은 미리내와 인찬을 직간접적으로 압박했다. 헌터 활동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미리내와 인찬이 저지르지도 않은 실수를 사실인 양 국제 신문에 싣기도 했고, 그들의 실력이 지나치게 부풀려진 것처럼 언론을 선동했다.

그런 식으로 평판을 떨어뜨렸다.

그들이 고용한 레드 헌터 때문에 -암살을 전문으로 하는 이들- 미리내와 인찬이 생명의 위협까지 느끼자, 은새가 폭발했다.

해당 국가의 지원 요청을 싹 거절했고 세계 헌터 협회(WHA)에 적극적으로 항의했다.

그 일이 있은 뒤로 다른 나라에서 직접적으로 수를 쓰는 일은 거의 없어졌다.

“그래서 제 일은 저 스스로 해결하고 싶어요. 누구에게도 피해 주는 걸 원치 않아요.”

“그대의 동료라는 자들은 피해라고 생각 안 할 텐데.”

“물론 알아요. 하지만 제 마음이 편치 않아서요.”

은새가 흐릿한 미소를 지었다. 별이와 봄이의 머리를 쓰다듬는 은새의 얼굴에 옅은 그늘이 졌다.

속상하지만 그걸 겉으로 티 내지 않고 속으로 꾹꾹 눌러 참는 게 눈에 보였다.

벨키오르는 무어라 위로의 말을 건넬까 하다가 그만두었다. 대신 그녀가 재잘거리는 말을 귀담아 들어 주었다.

***

짧은 휴가가 끝나고 귀국일이 다가왔다. 은새는 짐 가방을 옆에 두고 울상을 지은 채 발을 동동 굴렀다.

“스텔라 씨, 덕분에 좋은 시간 보내고 가요. 항상 건강하셨으면 좋겠어요.”

은새가 스텔라를 꼭 끌어안았다. 어쩌면 이게 마지막일 수도 있었다.

스텔라도 그녀의 안타까운 마음을 아는지 마주 안아 줬다. 고생을 많이 했지만 착하고 여린 아이였다. 자신의 몸을 걱정하는 걸 말하지 않아도 알 수 있었다.

“고마워요. 유은새 헌터도 늘 몸조심하고요.”

“네…….”

은새는 좀처럼 발길을 떼지 못했다. 찡그리듯 웃은 스텔라가 비밀을 말해 주듯 작은 목소리로 소곤거렸다.

“아마 돌아가면 한국에 큰일이 일어났을 거예요.”

“네?”

그 말에 은새가 깜짝 놀라며 스텔라를 쳐다봤다. 파리한 낯빛으로 애써 웃어 주는 그녀의 모습에 은새는 입술을 깨물었다.

아직 친구들에게서 연락이 오지 않았다는 건 곧 벌어질 일이라는 소리였다. 더는 지체할 수 없었다.

은새가 이를 악물고 돌아섰다. 그녀의 등에 대고 스텔라가 말했다.

“유은새 헌터. 거대한 흐름은 바꿀 수 없어요.”

“…….”

“하지만 조금씩, 조금씩 바꾸다 보면 빛을 볼 날이 올 거예요.”

나아가야 할 길을 알려 주는 그녀에게 은새가 다부진 어투로 대답했다.

“명심할게요.”

은새와 일행이 차를 타고 떠나자 스텔라가 그 자리에 주저앉았다. 린다가 화들짝 놀라 얼른 부축했다.

스텔라의 입가에 피가 한 줄기 흘러내렸다. 린다가 속상하다는 듯 말했다.

“너무 많은 말을 해 주셨습니다.”

“어차피 얼마 남지 않은 목숨, 이로운 일에 써야지.”

스텔라가 껄껄거렸다. 부디 망설임 없이 나아가기를.

한동안 스텔라의 시선이 은새가 떠나간 곳에 머물렀다.

***

은새는 출국할 때와 마찬가지의 순서로 귀국했다. 막 한국 땅을 밟았을 때, 공항 전광판에서 속보가 흘러나왔다.

[대전광역시 중구 태평동 일대에 던전 브레이크가 발생했습니다. 브레이크가 발생한 던전은 추정 S+급으로 던전 생성과 동시에 브레이크가…… 이는 전례가 없는 경우로 현재 국내 헌터 길드에서 급히 인력을 파견해…….]

그와 동시에 은새의 핸드폰이 띠링띠링 울렸다.

[솔: 유은새 어디야?! 던전 터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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